< 이혼녀의 최후 >
본래 용병이나 영웅이라는 것은 시스템을 보는 ‘각성’을 하거나 혹은 이능에 맞먹는 재능을 지녔을 때 도전하곤 한다. 그리고 그중 90%는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용병 업계에 들어오는 이들은 1,000명에서 1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영웅이 되는 이들은 5% 미만.
즉, 6,000만 명인 한국 국민 중에서 용병은 60,000명 정도 되고 영웅은 3,000명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한국은 그 비율이 평균보다 훨씬 높은 편이기에 영웅의 숫자가 꽤 높다.
아카데미 한 학년이 1,000명이면서 매년 졸업생은 300명 미만이다. 그중 한국인이 50명 정도, 매년 죽는 영웅도 그 정도이니, 얼추 맞는 수치일 거다.
* * *
검은 땅에서 31번 구역의 습격이 진행되고 있을 때,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커다란 혼란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무나도 흔해진 계약 때문이었다
문제는 지금이 혼란이었다.
지금은 ‘계약’이라는 걸 통해서 일반인도 ‘각성’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100명 중 1명은 일반인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그 사람 모두가 용병이나 영웅이 될 수는 없다. 몬스터와 마계족 또한 그 정도로 강해졌으며 기존의 영웅들은 말로 할 것도 없이 더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무분별한 힘은 항상 문제를 만든다.
범죄율이 급증했고 사건 사고도 마구 생겨났다. 기존의 몬스터 필드에서 벗어나는 몬스터가 생겨났으며, 없었던 던전이 생기거나 던전이 터져 몬스터 웨이브가 생기는 일도 생겨났다.
그중 가장 심각한 일은 신격의 등장이었다.
대한민국에선 도깨비로 추정되는 신격의 힘이 곳곳에서 발현되며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사람을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같이 놀자며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다행이었다.
일본은 괴팍하고 파괴적인 ‘오니’가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하는 등 사고를 치기 시작했는데, 웬만한 영웅으로는 ‘오니’를 이길 수 없었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일본은 큰 위기를 맞이했다.
사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양호했다.
중국은 ‘손오공의 분신’이라고 생각되는 개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손오공 그 자체의 신격은 아니고 계약자의 능력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강력해서 중국 정부는 무너지기 직전까지 가기 시작했다.
인도는 가네샤, 동유럽은 케르눈노스, 미국은 정말 불쌍하게도 크툴루 신화라는 이상한 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 ‘신격’이지 ‘신격’의 힘을 가진 괴수라고 불러야 할 재앙(災殃)들이었다.
하얀이는 아카데미에 남아있었다.
한도석과 후보생 몇몇과 아카데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크하하하. 드디어 힘을 얻었다. 내 왼손에 흑염룡이······. 끄아악!”
4학년 중 한 명이었다.
이름도 없는 그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뿜어지기 시작했고 붉게 물든 그의 눈동자는 살기가 가득했다. ‘흑화’를 시작한 그 후보생을 한도석이 가볍게 기절시켰다.
아무리 최소한의 격을 얻은 후보생. 게다가 정말 흑염룡의 힘을 얻었다고 해도 ‘천마’의 두 번째 계약을 맺어 SS등급이 된 한도석의 일격을 버틸 순 없었다.
“으앗, 강사님! 그거 제가 잡으려고 했는데!”
“아······ 그래, 미안하다.”
하얀이의 외침에 한도석은 머쓱했다.
경쟁인지 미션인지. 하얀이는 카메라를 조종하며 무분별하게 ‘흑화’하거나 도심에 등장한 몬스터. 혹은 도깨비의 분신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여러분! 제가 가장 많이 잡았습니다!”
악의 신격과 계약했다고 무조건 이렇게 되는 건 아니다. 힘을 발현했음에도 선(善)과 부딪히지 않으려는 이들도 많았고 신격의 힘을 아예 개방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미쳐버리는 것은 일부였다.
“하얀 후보생.”
“넵!”
“도깨비 위주로 상대해 줬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하얀이는 그렇게 날아갔다.
한도석은 뒤에 남아있는 후보생들을 바라봤다.
수백 명의 쟁쟁한 후보생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선과 악. 기준 없이 계약했다. 하지만 이들은 미치지 않았고 스스로를 컨트롤 할 줄 안다.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안혜림, 최이명, 이창석, 제임스 딘, 길성현까지는 아무와도 계약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후보생 스스로의 선택. 그 누구도 강제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이곳에서 전력이 된다는 거다.
“지금부터 아카데미를 수호하면서 서울 시민을 구할 겁니다.”
한도석은 후보생을 이끌고 실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영웅 후보생.
아직 배우는 입장이다. 위험할 수 있지만, 이보다 좋은 실습은 없다. 이미 성인으로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자격을 지닌 게 바로 후보생이라는 신분이다.
그리고.
영웅이 용병과 다른 점은 단순히 가진 재능과 무력이 아니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
그게 자신의 친구, 가족, 애인 등이 아니더라도.
인류를 위해 싸우겠다는 신념.
그것을 지닌 게 바로 영웅이다.
후보생들은 한도석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해룡과 릴리스가 부딪혔다.
아래는 마계족과 인간의 대결이라면, 하늘 위에선 신격과 신격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해룡은 [수호]를 위해 싸우기에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해룡의 존재만으로 한성은 한숨 놓였다.
한성은 루시엘의 성검을 꺼냈다.
그 옆으로 성시연이 루시퍼의 마검을 들고 왔다.
마무리하는 것은 한성과 성시연이어야 했다.
[ 고작 인간 따위가! ]
그것은 릴리스가 한성과 성시연에게 하는 말이었다.
[ 겨우 몽마(夢魔)의 악귀 따위가! ]
이것은 해룡이 릴리스에게 하는 말이었으며.
[ 작은 나라의 도마뱀은 돌아가라! ]
릴리스가 해룡에게 내뱉었다.
그녀의 붉은 마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지금까지 목격했던 ‘격’과는 차원이 다른 신격 그 자체. 많은 격이 손실되었다고 해도 지금의 한성과 성시연 따위가 맞설 수 없는 상대.
하지만 해룡의 존재력으로 그것을 맞받아치고 있었다.
[ 지는 뱀이었으면서. ]
릴리스는 에덴 동산에서 이브에게 선악과(善惡果) 먹게끔 뱀으로 변해 유혹한 전력이 있는 신격이었다.
해룡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격끼리는 서로 알고 지내는 모양이다.
[ 겨우 ‘왕’의 격 따위가! ]
이렇게 들으니 신격도 특별히 대단한 존재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싸울 때도 위엄있게 싸울 것 같았는데, 이걸 보니 거의 초딩 싸움이나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소리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르다.
- 와, 전쟁 스케일 수준 보소. 거의 영화 아니냐.
- 영화도 이렇게 못 만듦.
- 미친, 가까이서 찍으면 카메라 터진다고 해서 멀리서 찍는 게 이 정도냐.
- 해룡이라는 신격이 어마어마하게 큰 거임. 근데 저 상대 신격은 몸은 작은데 힘은 엄청 커 보이네.
- 저거 악마인 거 같긴 한데, 어떤 악마임? 누가 말 안 해줌?
- ㅇㅇ그냥 무명인 듯.
당연한 사실이지만, 한성은 릴리스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릴리스가 자신의 이름을 말할 것도 아니니 악마에게 관심이 가는 일은 거의 없을 거다.
그저 릴리스라는 것을 눈치챈 몇의 시선이 전부.
그 정도로 업적의 힘이 생기진 않는다.
한성은 검을 고쳐 잡았다.
옆의 성시연도 마찬가지.
둘이 두 검을 잡고 루시퍼를 상대했을 때처럼.
[악(惡)과 선(善)의 협공]이 시작되었다.
[ 너희가 그 검을 어떻게! ]
이런 상황에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릴리스는 루시퍼의 아내였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는 아마······.
“뭐, 루시퍼랑 이혼한 주제에.”
아내가 되었다가 지금은 헤어졌으니, 아마 이혼녀가 맞을 거다. 그런 법적 효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네 이놈! ]
도발은 먹혀들어갔다.
성시연이 마검으로 릴리스의 격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성시연의 ‘격’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릴리스가 완벽하게 만든 ‘화신체’를 가졌으며 ‘루시퍼의 마검’을 가졌기에 가능해진 일.
게다가 성시연은 루시퍼의 잔상을 잡으며 [신화] 등급에 이르는 업적이 생겼다.
한성도 시작했다.
[마기를 태우는 천벌(天伐)]
[릴리스를 사냥하는 자.]
[대악마의 아내, 릴리스의 신격을 불사른 자.]
[루시퍼 신화의 태동을 경험한 자]
[신격 사냥꾼]
[악으로 치닫는 악을 정화한 자]
[루시퍼의 악(惡)을 벤 자]
[루시엘의 성검을 소유한 자]
지금까지 악을 상대하는 것에 사용할 수 있는. 거기에 릴리스에 특화된 업적이었다. 모두 전설 등급 이하의 업적.
한성의 기세는 폭풍처럼 몰아쳤다.
해룡의 격을 등에 엎고 성시연의 보조를 받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신격에 오른 릴리스를 아직은 인간인 한성이 받아치기엔 부족하다.
- [나는 관종이다.]가 발동합니다.
- 1억에 달하는 시선이 당신에게 향합니다.
- 1억 이상의 관심이 당신에게 집중됩니다.
- 90% 이상의 시선이 당신에게 이입됩니다.
- 모든 능력치가 2,000% 증폭됩니다.
- 모든 존재력이 2,000% 증폭됩니다.
- 모든 격이 2,000%로 증폭됩니다.
- 당신은 ‘일시적’으로 [신격]에 도달하게 됩니다.
- 당신의 ‘이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부족했다.
한성은 지금껏 얻은 업적을 꺼내 들었다.
[폭풍의 신입생]
[세계 역동(逆動)의 시작을 밀어낸 자.]
[처음으로 걷는 길]
[신화에 도전하는 인간]
- 모든 것엔 최초가 있습니다.
- 당신은 신화에 도전하는 인간. 그리고 지금 당신은 신화 앞에 서 있습니다.
- [세상의 관심으로 신격에 닿은 자.]
- 당신은 ‘관심’이라는 것 자체에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업적’과 ‘격’의 원천이며 가장 거대한 힘이기도 합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다.
신격은 그 정도로 높고 높았다.
한성이 그렇게 많은 업적을 쌓았더라도 말이다. 본래 신격이라는 것은 수백 년, 수천 년 이상 업적을 쌓고도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시적’으로라도 부족할까?
- ······당신은 아직 이명을 얻을 ‘격’이 부족······.
- 당신의 행운이 반응합니다!
- 강대한 적을 앞두고 있습니다.
- 생에 다시 없을 행운의 발현입니다.
행운이 발현되었다.
한성은 전신에 차오르는 관심과 함께 ‘격’이라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전 회차에서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이뤘던 ‘신격’이라는 경지.
그것을 단 반년 만에 이뤄낸 것이다.
본래 이 시나리오에서 검은 땅의 절반은 포기해야 하는 게 정석이다. 이 시나리오가 아무리 빨리 깨어난 것이라고 해도 앞으로 5년. 당연히 그 시간 안에 ‘신격’을 이겨 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한성은 해냈다.
‘일시적’이지만 말이다.
- 신화 등급 업적이 발현됩니다!
- 사용자의 ‘격’에 맞춰 [신화]가 온전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 [라파엘의 악을 베는 검]
- [간음과 부유의 악마를 벤 자]
검의 모양으로 변한 밤부. 만파식적의 대나무가 허공을 갈랐다. 아주 별볼일 없어 보이는 한 번의 휘두름.
그것은 공간을 타고 릴리스에 닿았다.
릴리스는 그 공격을 받아선 안 된다고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피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극.
릴리스는 격을 폭발시켰다.
검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휘두름은 너무나도 쉽게 격을 격파했고 그녀의 신격에 닿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루시퍼의 마검이 그녀의 심장을 찔렀으며, 해룡의 격이 그녀를 눌렀다.
아아.
벼락처럼 끝이 났다.
신에게 버림받고 세상을 뒤집기 위해 인고했던 세월이.
이런 곳에서 겨우 인간 따위에게 죽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하지만 그 죽음에 눈앞에 도달하자 이겨 낼 수 없는 두려움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신체로 오는 건데.
아니, 그냥 손상된 격을 생각하지 않고 숨어 있는 건데!
아니, 아니! 세월 속으로 도망갔어야 하는데!
릴리스는 공포 속에서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니야.
아직 가능성이 있어.
일말의 격이라도 남겨둔다면······.
기억만이라도, 지금 당장 격을 떼어 어딘가로 날려 보낸다면!
고귀했던 릴리스는 한없이 망가졌다.
하지만 한성은 그런 릴리스마저 가만히 두지 않았다.
[신격을 먹는 자]
콰르르르르!
한성의 업적이 다시 발현되었다.
릴리스의 격은 찢기고 또 찢겼다.
50%는 한성이. 30%는 성시연이 20%는 해룡의 신격이. 골고루 나눠 먹었다. 잘근잘근. 스스로의 격에 해가 없는 선에서 아주 맛있게.
그것이 검은 땅의 절반을 날렸어야 할 대악마의 아내.
아니, 루시퍼의 이혼녀.
릴리스의 최후였다.
< 이혼녀의 최후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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