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90화 (90/200)

< 루시퍼의 검 >

어둠을 뿜는 검과 빛을 뿜는 검이 겨우 2m 간격으로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어둠과 빛이 산맥을 가르는 모습.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결코 그 묘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는 광경. 신비로웠고 경이로웠다.

성시연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것은 아름다웠지만, 슬픔이 묻어 있었다.

루시퍼는 이곳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천사에서 악마가 되었다.

어딘가에선 루시퍼가 교만과 욕심 때문에 천사들을 이끌고 신에게 대항하다 추방당했다고 했으며, 어딘가에서는 천사보다 인간을 위했기에 신에게 대항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딘 가에서는 스스로 빛을 뿜을 수 없기에, 남의 빛을 비춰 빛을 발해야 하는 존재였기에 원래부터 그는 악마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한성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하얀 검은 루시엘의 검이었으며.”

구우웅.

한성이 다가가자 압도적인 격이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검은 검은 악마 루시퍼가 사용하던 검.”

한성이 그 검 앞에 도착했을 때, 검과 검 사이에는 하나의 인영이 생겨났다. 반쪽은 천사였으며 반쪽은 악마인, 루시퍼의 옛 잔상.

아주 오래전, 그가 악마로 타락할 때의 모습이다.

[ 오랜만이군. 인간이 찾아온 게. ]

그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목을 긁는 소리와 맑은소리가 묘하게 합쳐져 있다. 하지만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니었다.

한성은 그를 올려다봤다.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 모두 알고 온 모양이군. ]

루시엘이 루시퍼가 되면서 남긴 잔상들. 강한 격이 흔적이었기에 하나의 인격을 이룬······ 그런 장대한 설정이 있었지만, 결국 퀘스트의 일부다.

그것도 히든 퀘스트.

[ 검을 뽑아라. 그리고 날 베라. ]

단순한 퀘스트.

이것만 성공한다면 그의 검을 가질 수 있다.

한성은 ‘성검’ 앞에, 성시연은 ‘마검’ 앞에 섰다.

이 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격’이다.

성검은 ‘격’과 ‘업적’으로 주인을 판별한다. 한성은 신화의 태동을 시작했으며, 신격과 악마를 사냥하고 라파엘의 사도이기도 하다.

자격은 충분하다.

성시연은? 확실히 한성에 비하면 부족하다. 하지만 그녀도 죽음에서 되살아온 자였으며 마왕의 화신체를 가졌고 마력기관도 있었다.

그녀는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이곳에서 육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 머뭇거림은 전혀 없었다.

둘은 검을 잡았다.

동시에.

*  *  *

진훈은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다. 적은 진훈이 보이고 진훈은 적이 보이지 않는 상황.

핏.

무언가 진훈의 목을 베려 했다. 하지만 진훈은 살갗을 긁히는 정도로 회피할 수 있었다.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어 뒀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지금 상태론 적을 잡을 수 없다.

적은 계속 진훈을 괴롭힐 거고, 진훈은 피하는 게 고작.

진훈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대기의 움직임을 느끼고.’

공기의 떨림이 몸으로 전해진다.

‘마력의 흐름을 잡고 있어라.’

대기 안엔 마력이 존재한다. 그 어떤 존재라도 그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모든 걸 속일 순 없다. 진훈은 끊임없이 느끼고 생각했다.

무엇으로 적을 감지할 수 있을까.

그때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있는 마력이 양옆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그것은 그곳에서 끝났다. 진훈의 감각으로는 잡을 수 없었던 극도로 미미한 움직임.

퍽.

꿰에엑!

진훈은 손을 뻗어, 적의 목을 움켜쥐었다.

“와! 성공이다!”

진훈은 신이 나 자리에서 뛰었다. 그때, 주변이 밝혀졌다. 그것은 앤 샤를의 번개였다.

“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왜, 댓글 반응 좋은데.”

그 옆에는 안혜림도 있었다.

이 셋은 튜브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팀을 구성했다. 이번 컨텐츠는 B등급 [암흑 지하 던전에서 살아남기.]였다.

진훈은 성장을 위한 훈련을, 얜 샤를은 공략을, 안혜림은 해설을 맡았다.

- 미친ㅋㅋㅋㅋㅋㅋ컨텐츠 클라스 뭐임.

- 후보생들의 던전에서 살아남기? 양학 아니고?

- 진훈ㅋㅋㅋㅋ눈 감고 자객 나이트 잡는 클래스.

- 그것도 목을 확 잡아 버리네.

- 혜림이 누나 예뻐요!

- 얜 샤를도 존예. 번개 들고 있는 모습 개쩐다.

셋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구독자가 수십만을 돌파했다. 곧 100만을 찍을 것 같았다. 단순히 한성이 주최한 대회를 진행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것도 채널에 아무런 영상이 없었기에 구독을 하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다. 그 증거로 영상 하나 올릴 때마다 구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나 조금만 있으면 80만 찍는다. 수익화 승인도 났어!”

안혜림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얜 샤를도 수익 승인이 났다며, 오늘 올린 영상부터는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진훈은 그것보다 수련에 집중했다.

“역시 영상으로 찍어 놓는 게 좋아. 확인할 수도 있고······ 댓글로도 조언이 많아서, 또 괜찮네.”

진훈은 신세계를 맛보고 있었다.

진훈이 훈련하는 영상을 보고 수많은 전문가가 댓글을 달고 있다.

예를 들면, 진훈이 오우거를 잡는 영상에서.

- 오우거의 가죽은 검과 같은 날붙이보다 주먹이 효율적입니다. 오우거 파워 건틀렛이라는 게 오우거의 심장과 가죽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그 이유죠.

제가 5살 때, 오우거를 잡으면서 느꼈던 거는 확실히 키가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그때부터였을까요. 키 크는 영약 ‘텐텐’에 빠지게 된 게.

[좋아요 1,201 / 답글 5,600]

진훈은 진짜로 믿었다.

확실히 사냥할 때 주먹이 편했기 때문이다.

‘텐텐? 그런 영약도 있나? 확실히 오우거 잡을 때는 키나 덩치가 중요하긴 한데.’

하지만 진훈은 그 글의 답글을 확인하지 못했다. 워낙 이런 인터넷 관련된 지식이 짧기 때문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텐텐 전설.

- 나는 4살 때부터 20년 먹었는데 165다. 오우거 학살자라 불리지.

- ㅋㅋㅋㅋㅋ이게 텐텐의 신화다.

- 전 5살 때 트롤을 잡았죠. 그때부터였을까요. 몸이 다치면 후시딘을 바르게 된 게.

- 이 미친 사람들ㅋㅋㅋㅋㅋㅋ진훈 진심으로 고민한다.

- 앜ㅋㅋㅋㅋ어제 진훈 텐텐 영약 찾고 있었음ㅋㅋㅋ

그런 답글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훈은 일행과 던전의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던전은 한성이 알려준 곳이었다.

“근데 한성은 이런 걸 어떻게 잘 알까.”

“맞아······ 이미 수도권의 모든 던전은 밝혀졌다고 한 거 같은데, 숨겨진 던전을 툭툭 내놓는단 말이야.”

“한성이야 원래 항상 신비롭긴 했지.”

그들은 모이면 항상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워낙 신기한 인물이었으니까. 별의별 것을 다 알고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미쳐버린 관종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셋은 널찍한 공동으로 들어왔다.

사방에 거신상들이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서 있었는데, 그 위압감이 엄청났다.

안혜림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한성이 우릴 여기로 보낸 이유는 뭘까.”

한성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 컨텐츠라는 것은 생활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지. 그게 예상할 수 없고 위험하다면 더욱 빛나는 컨텐츠가 되는 거고. ]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말도 뒤에 덧붙였으니까.

[ 중요한 건,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거야. 당황하고 겁먹으면 시청자들도 감정을 이입하게 되거든. 실제로는 이길 수 있는 상대지만, 보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니까. ]

그때, 거신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훈은 황금빛 마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고 얜 샤를은 번개로 창을 만들고 갑옷을 만들며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적들이 엄청 강해 보이기는 해도. 이곳에 모인 셋이면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느껴지는 ‘격’은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했던 것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혜림은 한성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우린 어떻게든 살아 나간다.”

그 말에 진훈과 얜 샤를이 안혜림을 바라봤다.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라는 표정들.

하지만 안혜림은 ‘연출’에 집중했고 진훈과 얜 샤를도 무언가를 깨달은 것인지 한 마디씩 뱉었다.

“······그, 그러자.”

“만약 위험하면 날 버리고 가.”

마지막 얜 샤를의 말에 진훈과 안혜림은 벙쪘다.

‘그건 좀 오버 같은데.’

아무래도 ‘관종’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재능은 얜 샤를이 지닌 듯했다. 셋은 조용히 웃음을 참으며 거신상들에게 달려들었다.

- 으앙 이게 무슨 일이야.

- 진짜 큰일 난 거 아닌가?ㅜ

- 안 돼. 한성 불러와! 한성 지금 방송 중 아니야?

- 뭐야뭐야. 다른 친구들 연락 안 됨? 이러다 죽으면 어떡해!

- ······뭔가 이상한데?

- 이 어색한 대사들은 뭐지.

셋은 그렇게 튜버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  *  *

한성은 팔을 늘어뜨렸다.

한성과 성시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옷은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찢기고 타버렸고 전신에 새겨진 자상에서 흐르는 피는 멈추질 않았다.

루시퍼의 잔상은 잔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강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때는 루시엘이 루시퍼가 되면서 그가 [사탄]의 신화를 시작하는 시기였다.

원래 치천사였기에 강한 존재이기는 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남긴 ‘흔적’에 불과했으니, 그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성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하긴, 이 무기는 온전한 신화급 신격을 얻은 후에 얻는 게 정석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한성과 성시연은 성공했다.

[ 대단한 인간이군. ]

루시퍼의 잔상은 흐릿해지고 있었다. 표면은 이가 나간 듯 형체가 없었고 몇 군데는 까만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 그쪽도 대단한······ 몸을 가졌고. ]

그가 성시연을 보고 한 말이다.

한성은 의외로 루시퍼가 점잖아 보이기도 했다.

싸우는 내내 그랬다.

마치 둘을 지도하듯 검을 그었고 치명상을 피하고 공격했다. 성시연을 대할 때는 더욱 조심스럽게 굴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업적들을 얻을 수 있는 거지? ]

진심으로 궁금해 보였다.

이것은 잔상에 불과한데,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가지는 게 말이 되는 걸까? 그게 위대한 신격이 남긴 잔상의 힘인 것인가?

[ 걱정 말게. 내가 들은 게 본체로 흘러가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

루시퍼는 강하기도 했지만, 지혜로웠으며 배려심도 있었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신에게 대적하다가 쫓겨나게 된 것인가.

한성도 전 회차에 이곳에 들리지 않아 잘 몰랐다.

종장에서 루시퍼와 싸우긴 했지만, 직접 마주한 건 아니었다. 아마 그때는 진훈이 루시퍼를 죽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뭐, 무력 또한 대단하긴 했다.

완전히 성장한 진훈도 루시퍼와 싸우다 몇 번이나 죽을 뻔했었으니까.

[ 게다가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도 경이롭고. ]

한성은 성검을 들었고 성시연은 마검을 들었다.

지금 루시퍼의 잔상은 악과 선이 정확히 반반 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약점이 없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두 약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

한성은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성이 지닌 [라파엘의 악을 베는 검]과 [신격 사냥꾼]이 합쳐 루시퍼에게 유효타를 날렸고 [예정된 운명을 거부한 자]를 이용해 성시연이 가진 화신체와 여러 업적을 조합하여 [악마의 왕에 대적하는 마왕]이라는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거다.

둘은 퀘스트를 클리어했고 강해졌다.

동시에, 두 개의 검을 얻을 수 있었다.

“감사했습니다.”

[ 뭘, 내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 ]

한성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의 일?”

[ 이 인간. 자기가 궁금한 것만 묻는군. 하하하. ]

루시퍼는 유쾌했다. 잔상이 사라지는 사이에도 저렇게 웃다니. 어찌 되었든 잔상의 인격이 사라지는 건 확실한 건데도 말이다.

그 말은 죽음이라는 뜻이다.

[ 하긴, 내가 뭘 알아봐야 곧 소멸될 텐데. ]

루시퍼는 이미 하체가 사라졌고 양팔이 반쯤 없어진 다음이었다.

이제 궁금한 것도 없다는 눈치였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요.”

순간 의심이 들었다.

이 게임 속에 들어온 한성에 대해, 무언가 힌트가 있을까? 예전 릴리스의 반응처럼 온전한 신격. 그것도 위대한 신격이라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루시퍼는 이야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하나만 기억하게. ]

루시퍼는 이미 머리만 남겨두고 모두 사라진 후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이 세계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

한성은 그 자리에 굳었다.

무슨 뜻일까.

당장 말도 안 되는 마검과 성검을 얻었으며, 전설 및 준신화 업적까지 얻었다는 시스템 문구가 주르륵 떠올랐지만, 한성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 루시퍼의 검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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