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검. >
[마력 무기 제작 대회]의 승자에서 이하얀은 제외했다. 당연하게도 무기 하나가 아닌 수백 개의 무기를 때려 박은 것이니까.
위력 점수는 시청자들의 참고 점수일 뿐이었다. 시청자들의 평점은 수십만 개씩 적립되었으며 상당히 객관적인 지표가 형성되었다.
1등은 한별이 되었다.
그리고 심사에 참여해준 시청자에게 10억씩 돌리기 위해 추첨도 했다. 그날 한성은 수십억의 조회수와 수백만의 구독자를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 나빠.”
하얀이의 민심을 잃었다.
그녀는 입에 바람을 잔뜩 넣곤 벽을 보고 있었다. 한성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녹화하고 있었지만, 차마 웃을 순 없었다.
“왜에, 그래도 우리 하얀이가 가장 강했어. 기발······ 하기도 했고.”
“아빠! 방금 0.5초 머뭇거렸어!”
“아니야. 크흠. 요즘 목이 아파서 그래.”
“······칫.”
하얀이는 다시 벽을 봤다.
고개를 숙이고 저렇게 있으니까. 꼭 삐진 고양이를 보는 느낌이다. 한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가 괜찮은 무기 하나 선물로 줄게. 원래 1등 상품이지만, 우리 비공식 1등인 하얀이에게 상품을 안 주면 그게 이상한 거니까!”
한성이 품에서 꺼낸 무기는 길이현에게 부탁해 경매장에서 구매한 [보물]이었다. 진정한 게이트 오브 바빌론을 완성하기 위해선 진짜 ‘보물’이 있어야 하니까.
한성이 그걸 설명하자, 이하얀은 눈을 반짝이며 한성 앞에 와 있었다.
“······그래서 언젠간 그 마력 무기를 모두 ‘보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맞아요! 진짜 바빌론을 완성하기 위해선 진짜 ‘보물’이 필요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있는데요오. 이참에 제 레어를 하나 만들어야겠어요. 보물 창고! 그게 있어야 해요! 히히. 무기는 하나씩 모으면 되지만, 그것도 돈이 많이 들 거니까.”
하얀이는 그동안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바빌론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인지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이 삐졌었다는 것조차 잊으면서 말이다.
한성은 한 시간 동안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그런 거 하나 만들어 놓으면 나쁠 건 없다. 오히려 하얀이의 그 말도 안 되는 표절 무기가 실체화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 * *
아무리 한성이라도, 아니 그 어떤 존재라도 가루다와 적이 된다면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그들은 그 정도로 강한 종족이며 선(善)의 신격에 의해 ‘보호’받는 입장이다.
‘사실 감금이나 다름없지만.’
선(善)과 악(惡)이라는 건 참으로 애매하다.
그저 진영의 차이라고나 할까.
선이라고 해서 다 착한 건 아니고 악이라고 해서 다 악한 건 아니다.
성시연과 한별이 살인(殺人)에 대해 관대하다고 해서 악(惡)의 진영은 아니고 오벨리스와 계약한 안톤이 한성을 돕고 마족들을 막아서고 있지만, 악(惡)의 진영인 것처럼.
[가루다]
용의 천적이며 조인족이라 불리기도 하는 그들.
한국의 절반 정도 되는 하늘 섬인 [천공 세계]에 살고 있다. 참고로 [양산박]의 ‘하늘 섬’도 전 산장지기와 제페토가 가루다에게 도움을 받아 제작한 거다.
하여튼, 그들은 천공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겉만 봐서는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평화롭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곳. 가루다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신성력’이라 불리는 ‘선의 신격의 마력’을 만들어내곤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선의 신격에 의해 천공 세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겉으로는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에.’라고 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너무 강하기에,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세계의 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으며, 인간이나 다른 종족에게조차 힘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천공 세계로 들어갔다.
[세상의 끝]이라는 게임 커뮤니티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천공 세계만 해방하면 바로 클리어 아니냐?’
누군가가 제시한 의견이었다.
그들은 극도의 선(善)이었으니, 세상에 나오면 세계를 잡아먹으려는 마계족과 악의 신격을 말살할 수 있지 않느냐는 거다.
‘오, 진짜. 그럴 듯 한데?’
‘근데 그게 가능하냐?’
대부분의 반응은 그랬다.
그래서 누군가 실험을 했다.
고이다 못해 썩은 플레이어였으며 몇 번의 클리어를 완료한 튜버가 직접 움직인 거다. 천공 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가루다 일족이랑 친해진 후에, 선의 신격과 전쟁을 벌였다.
그는 클리어에 가까워진 상태였기에 온전한 신격을 이룬 후였으며 선(善)에 치우쳐 있었기에 가능한 ‘기습’이었고, 가루다는 해방되었다.
그때, 선의 신격 중 몇 명이 입을 열었다.
‘너희 인간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구나.’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튜버에게 이 세계는 게임일 뿐이었다.
그렇게 세상의 [종장]이라 생각했단 악의 신격이 검은 땅에 현신하게 되며, 모든 마계족이 지구의 절반 이상을 잡아먹었을 때.
가루다는 그들과 전쟁을 시작했다.
악의 신격에서 먼저 그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친, 가루다는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들인 거야?’
‘아군이야, 적군이야?’
그들의 힘은 강력했고 마계족과 악의 신격을 막기 위해 소수의 인간을 희생하고 다수의 적을 말살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강했고 악은 멸절했다.
그런데, 게임은 클리어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왜 끝이 안 나지?’
‘인류의 70%는 죽었어도, 이건 클리어 각 아니냐.’
그때 알았다.
악의 신격보다 더 큰 ‘적’은 선의 신격이었으며, 그들의 군대가 가루다였다는 것을. 게다가 스스로의 강한 신념을 지닌 미친 광신도들.
‘선’이라는 것의 강한 신념이 비뚤어졌을 때.
그것은 악마와 마계족보다 더 무섭게 변했다.
인간은 지구의 악(惡)으로 규정되었다.
‘악’이 없어진 세상엔 중립으로 보였던 ‘인간’이 가장 큰 ‘악’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살기 위해 선(善)을 공격하는 ‘악’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세계는 멸망했다.
오로지 선(善)만을 남기기 위해서 싸우는 미친 종족인 가루다 때문에 말이다. 선의 신격은 그들의 그런 종족 본능을 알고는 천공 세계에 가둔 것이었다.
“뭐, 이건 하나의 전설 같은 거지.”
한성은 그 사실을 옆에 있는 성시연에게 각색해 말해줬다. 아주 예전에 그런 일을 기록한 신화가 있었으며, 가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가루다는 위험한 종족이다.
그런 말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도 있었구나. 난 왜 몰랐지?”
“······책을 안 읽으니까 모르지.”
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시연을 바라봤다.
그녀의 외모는 오랜만에 본 건가, 싶을 정도로 새로웠다. 그리고 경이로웠다. 심장이 어디론가 쿵 떨어진 것처럼 강한 충격이 한성을 덮쳤다.
미치도록 깨끗하고 매끈한 그녀의 피부와 이목구비와의 조화는 더없이 완벽했으며 그녀의 붉은 입술과 보랏빛 눈동자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아찔했다.
누군가 보고 그려도 저 정도의 외모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지 못할 것 같았다.
또한, 몸은 어떠한가.
키는 170cm였는데 더 커진 듯했으며, 키뿐만이 아닌······.
“뭐해?”
성시연이 멍한 한성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그녀의 코가 한성의 코에 닿을 정도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순식간에 성시연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한성은 고개를 돌려야 했다.
“······여기가 [죽음의 소용돌이]다.”
한성은 분위기를 환기했다.
지금 검은 땅 최남단으로 온 상태다.
새카만 바다와 더 검은 먹구름. 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바다 위에선 번쩍이는 번개와 소용돌이치는 토네이도 수십 개가 굉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기 넘어서······ 그 악마의 검이 있다는 거야?”
“응, [신화]에 발을 걸친 마검.”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당장 저것을 한성이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장 필요할까? 죽음을 각오하고 마검을 가져야 할까?
대답은 긍정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구울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위해 생각한 게 이 ‘마검’이었다. 가루다의 부산물을 얻고, 용혈의 부산물을 얻으며, 발록의 부산물까지 얻기 위해서.
이 마검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선(善)과의 전투도 생각해야 한다.
한성은 표정을 굳히고 성시연과 함께 날았다. 성시연은 날개가 생긴 뒤로 아예 [비행]이라는 이능이 생겨 버렸고 한성은 마법과 마력 조종으로 공중 부양을 하는 것이다.
둘은 빠르게 날았다.
검은 하늘에선 번개가 내려쳤고 흉포한 토네이도는 그들을 집어삼키려 입을 벌려댔다.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그 안에서는 붉은 안광이 곳곳에 퍼져있었다.
그것들은 이 섬에 갇힌 힘에 악마화된 몬스터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마왕의 몸을 가진 성시연 때문에? 아니면 한성의 격을 보고? 그것도 아니다.
“조심해.”
한성의 말과 동시에 아래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검은 바다는 하얗게 흩어지고 토네이도 몇 개가 사라졌다. 번개 몇 개가 꽂혔지만, 전혀 타격은 없었다.
그것은 한성과 성시연을 덮쳐왔다.
한성은 성시연의 손을 잡고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그 자리에서 사라진 둘은 수백 미터 앞에서 생겨났지만, 방금 그것보다 거대한 무언가가 수십 개는 생겨났다.
[크라켄]
바닷속 괴수 문어. 몇몇 이야기에선 그저 커다란 문어 숙회라고 장난칠 정도로 약한 몬스터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 악마화된 크라켄은 이 아래 근처 바다를 뒤덮고 있었으며 지배자이기도 했다.
그 크기는 하나의 도시보다 컸으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량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그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속도에 비례한다.
쾅! 쾅! 쾅!
한 번의 휘두름은 수십 번의 소닉붐을 만들어냈으며 공간을 격했고 한성과 성시연은 수백 미터 밖, 바다에 처박혀야 했다.
성시연은 날개와 뿔을 길게 내빼며 바닷속에서 나왔다.
그녀의 손엔 한 마리의 괴수가 목이 부러진 채 잡혀 있었다. 바닷속에 숨죽이고 있던 몬스터 떼 중 하나였다.
성시연은 화가 났다.
“이 개새끼들.”
오랜만에 한성을 본다고 세르비체가 화장을 시켜줬고 머리에 고데기까지 했다. 그래서 물에 젖으면 안 됐다. 그래서 마력을 잔뜩 끌어올려 온몸에 막을 치고 있었는데 저놈이 다 망쳐 버렸다.
“하아, 시발. 저 숙회 쳐버릴 문어 대가리 새끼.”
성시연의 몸에선 보랏빛 마력이 폭사했다. 그녀의 머리 위엔 유형화된 ‘살기’가 악마의 형상으로 하늘을 뒤덮었으며 타오르는 그녀의 마력은 몸에 수분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하지만 마법을 하지 못하는 그녀의 머리는 부스스하게 변한 상태였다.
성시연이 폭주했다.
거대한 문어 다리를 하나씩 베고, 태워가며 복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잊고 있었어.”
한성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넋을 잃었다.
아름다움에 속아, 그녀의 성격을 잊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저 강함을 봐라, 분명 저 크라켄은 한성도 이기기 힘든 개체였다. 격을 지닌 악마의 몬스터. 게다가 이곳에서 마검의 힘까지 받은 놈인데······.
저놈은 말 그대로 문어 숙회가 되고 있었다.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그래도 성시연이 화가 난 덕분에 가장 걱정했던 관문을 쉽게 넘겼다.
성시연은 많이 지쳐 보였지만.
“대단했어, 나도 쉽게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놈이거든.”
“그래? 다행이네.”
성시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정갈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성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아무리 그렇게 봐도······.’
아까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한성은 그런 성시연을 데리고 섬으로 진입했다. 이미 다 죽어버린 섬이다. 나무나 생명체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고 흙과 바위가 전부였다.
그조차도 짙은 마기에 오염되어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깊숙이 들어갔다.
“정말······ 아무것도 없네.”
“소리도 없어서, 으스스하긴 하지.”
“근데, 도대체 너는 여길······.”
어떻게 아는 거냐. 그걸 묻고 싶었지만, 그가 검은 땅의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 성시연은 검은 땅의 아이를 목격했다.
검은 땅, 아주 깊숙한 곳에서 본 그들의 삶은 지독했다. 악의 신격에 종속된 죽어가는 용병들 사이에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아이들.
이미 반신이 마기에 침식되었고 팔이나 다리 하나쯤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는 그들.
성시연은 그들에게 31번 구역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세르비체도 옆에서 그들을 동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부했다.
자신들은 이미 종속되어 악에 물들었으며, 죽기 직전까지 마계족을 사냥하다 죽는 게 삶의 목적이라 했다. 그래서 성시연은 물었다.
그 아이들도 그런 거냐고.
똑같은 생각이고, 그들이 선택한 게 맞냐고.
‘저희도 똑같아요.’
세르비체는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서도 자기가 다른 사람을 해칠 거라는 사실을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는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목적은 오로지 마계족의 몰살이었다.
이한성은······ 어떻게 이런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도대체 무슨 목표를 지닌 것일까.
“다 왔다.”
성시연의 상념은 거기서 끊겼다.
그들의 눈앞에 강렬한 어둠과 빛이 산맥을 반으로 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산맥 위에 꽂혀 있는 두 개의 검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아홉 계급 중에 첫 번째인 ‘치천사’였으며 천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천사. 신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
하지만 지금은 악마들의 왕이 된, 천사 루시엘.
지금은 [루시퍼]인 그가 이룬 신화의 시작지점이었다.
< 악마의 검.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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