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86화 (86/200)

< 나는 정점이다. >

한성은 첫 번째 시험을 시작했다.

처음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 봤던 가상 몬스터와의 실전이었다. 그때와 다를 건 없었다. 몬스터의 수와 등급이 달라지며 등장하고 후보생은 그것을 사냥한다.

겨우 반년 전, 한성은 트윈 헤드 트롤에서 떨어졌다. 운이 좋게도 두 개의 머리가 서로 싸우다 생존 시간에 관한 포인트를 모두 얻고 나왔었다.

“똑같이 트윈 헤드 트롤이네.”

눈앞에 멀뚱히 서서 한성을 바라보는 트윈 헤드 트롤을 보자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크와아앙!

트롤이 덤벼들었다. 트롤의 움직임은 한성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고 별 감흥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그저 한성이 휘두른 검에 수십 조각이 나 바닥에 떨어질 뿐이었다.

번쩍.

트롤 한 마리가 끝나자 세 마리가 나오고, 다섯 마리까지 나오는 걸 간단하게 해치웠다.

그리고 시험 단계는 B등급으로 올라간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업적이나 격과 같은 외적 능력은 사용할 수 없다. 본신의 육체 능력과 마력 능력. 그리고 이능 등을 활용해 사냥해야 한다.

“힘을 실험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네.”

한성은 검을 가볍게 돌리며 집어넣었다.

이럴 때, [공간 조종]이랑 [시간 관여]를 연습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런 시간, 공간, 중력 등의 능력은 다루기 상당히 까다롭고 효율이 잘 안 나올 때가 많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상대성 이론부터 해서, 이 세계관에 퍼져있는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능력자들의 영상까지 섭렵했다. 그러자 조금씩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 기본적으로 ‘공간 조종’으로 사용 가능한 기술은 ‘공간 방벽’, ‘공간 폭탄’, ‘공간 왜곡’ 등의 기술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공간을 늘렸다 줄이는 게 전부인 기술들이다. ]

한성은 그 기본적인 기술을 실험했다.

트롤은 강했지만, 공간 방벽을 뚫지 못했고 공간 폭탄에 다리 하나가 작살났으며 공간 왜곡에 한쪽 팔을 잃었다.

[ ‘시간 관여’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 기술은 ‘시간 지연’, ‘시간 단축’ 등이 있으며 그것은 적에게 공격용으로, 혹은 자신에게 보조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

한성은 다시 일어나는 트롤에게 ‘시간 지연’을 사용했다. 빠르던 트롤은 한없이 느려졌다. 마치 슬로우 모션을 하는 듯, 허공을 허우적 거렸다.

그리곤 한성 본인에게 ‘시간 단축’을 사용했다. 그러자 한성에게 ‘세상’은 두 배 정도 느려진 상태로 움직였다. 한성의 시간이 빨라져, 인지 능력과 사고 능력 따위가 함께 빨라진 것이다.

하지만 한성은 이런 간단한 것을 원한 게 아니다.

[ 공간과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공간은 수축 및 이완되기도 하며 극도로 왜곡되어 기이한 모양을 띠기도 한다. ]

한성은 달려드는 트롤과 한성과의 공간을 늘렸다.

잔뜩 올라간 숙련도.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해.

두 가지가 합쳐지자 겨우 1m인 공간은 수백 미터까지 늘어났다. 트롤은 계속 달려왔지만, 한성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홀로 뛰는 것만 보인다는 것이다.

한성은 이것을 [공간 감옥]이라 불렀다.

[ 시간은 공간과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공간의 왜곡은 빛이 가는 길을 늘리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시간의 지연이 된다. ]

한성이 지닌 [공간 조종]과 [시간 관여]는 다르면서도 같은 맥락이다. 공간 조종으로 시간의 지연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시간 관여로 공간의 왜곡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성은 트롤와 한성 사이에 무한에 가까운 공간의 왜곡을 만들면서, 그 사이의 시간을 극도로 지연시켰다.

빠르게 달리던 트롤은 그 자리에 멈췄다.

그것은 그들의 움직임을 멈춘 게 아니다.

그들은 끝없이 지연되는 시간 속에 갇혀, 한없이 넓은 공간을 뛰고 있는 거다. 그것에게는 한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겠지만, 실제로는 절대로 잡힐 수 없는 거다.

이것은 [시간 감옥]이었다.

[ ‘질량’은 공간의 왜곡을 만들고, 공간의 왜곡은 ‘중력’을 형성한다. ]

결국, 공간의 왜곡은 거대한 중력을 만들 수 있다.

쿠우우웅.

한성이 만든 [시간 감옥]은 거대한 중력을 동반한다. 이미 트윈 헤드 트롤이 감당할 수 있는 중력을 넘어섰다. 바닥 곳곳이 깨지기 시작한다.

핑-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역시 이 기술은 정신력 소모가 크다.

이론적으로는 1만3천 배에 달하는 중력이 배가되어야 했지만, [중력 관여]와 같은 이능이 없기에 이론과는 다르게 실행되었다.

한성은 [시간 감옥]을 풀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 줌의 먼지만 있을 뿐이었다.

한성에게는 5초 남짓.

트롤에게는 1개월 남짓의 시간이 흘렀으며, 5천 배 정도의 중력을 겪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직 확실치는 않다. 이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능’이 작용하고 있었으니까.

다음 몬스터.

A등급에 이르는 오우거가 등장했다.

이번엔 더 고급 기술을 사용한다.

[ 공간은 일정 크기 이하로 줄이기 힘들다. 중간을 뚝 자르는 것과 같은 행위는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정신력만 충분하면 공간을 자유자재로 자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처음 [광선검]을 만들었을 때, 공간을 잘랐다고 놀란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공간 조종]이라는 능력으로는 SS등급 최상위의 모든 힘을 사용해야 ‘자른다’라는 현상이 가능해진다는 것. 하지만 한성은 마법의 조합으로 그것을 해냈다.

효율로 따지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

‘자른다’라는 뜻은 무엇을 뜻하는가.

공간을 잘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깊이 1m 콘크리트에 50cm 정도로 칼을 쑤셔 넣은 것과 비슷하다. ‘공간이 벌어졌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이렇게.

쑤욱.

한성의 광선검이 오우거의 배에 박혔다.

그리고 공간 조종으로 벌어진 공간을 유지했다. 극도의 물리력과 마력의 밀집이 만들어 내는 벌어진 공간은 금방 아물기 때문이다.

그극. 콰드드득.

극단적인 공간의 왜곡은 중력의 쏠림을 낳는다.

오우거 배에 꽂혔던 검은, 오우거를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단단한 오우거의 가죽과 근육. 그리고 뼈 하나하나까지 작은 공간의 틈으로 사라졌다.

투둑.

한성이 검을 거두자 바닥으로 핏방울 몇 개가 떨어졌다.

“이렇게 사용하는 것도 있네.”

이걸 잘만 사용하면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하겠다.

한성은 문득 기록과 시간을 봤다.

“시간이 슬슬 부족해지네.”

이것저것 실험하기는 좋은데, 일단은 1등을 놓쳐선 안 된다.

한성은 바로 공략에 들어갔다.

오우거가 5마리까지 나온 것을 처치하자 다음 몬스터가 나왔는데, 특 A등급으로 분류되는 와이번과 하피. 그리고 트윈 헤드 오우거 등이 줄줄이 나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성은 검을 쥐곤 앞으로 달렸다.

다가오는 건 베어 넘기고, 날아오는 건 태워버렸다. 시험 중인데도 몬스터 일부는 도망가기도 했다.

*  *  *

“아이고, 죽겠네.”

진훈은 게이트를 나왔다.

아깝게 죽었다. 와이번을 죽이고 하피도 어렵지 않게 끝냈다. 트윈 헤드 오우거에서 시간을 좀 썼지만, 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온 마수들.

검은 땅에서나 있을 법한 놈들이 나오면서 진훈은 급격히 밀리기 시작했다. 진훈의 황금빛 안광으로도 이길 수 없는 귀족급 마족이 나오면서 진훈은 목이 돌아가 사망했다.

“와아아아! 역시 진훈! 전 학년 1등이야!”

“2만5천 점 실화냐.”

“4학년 1등도 1만9천 점인데. 미쳤네, 진짜.”

“게다가 더 무서운 건 뭔 줄 아냐?”

“뭔데?”

“방금 이하얀이라는 꼬마가 2만4천 점 넘겼다.”

“헐, 걔 이번 신입생 시험에서 마법 부문 1등 한 애 아니야?”

곳곳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말에 진훈은 전광판을 바라봤다.

꼭 예전 생각이 든다.

한성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도 이랬다.

저 멀리 한별과 길성현이 게이트에서 나왔다. 길성현은 역시나 진훈보다 포인트가 떨어졌으며, 한별은 진훈과 비슷했다.

재미있었다.

이렇게 경쟁할 수 있는 강자들이 있다는 게.

신입생 중에서는 최이명이 상위권에 살아있었고, 4학년은 5명 정도가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등은 이하얀.

“와, 미친. 저거 이한성 아니야?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무슨 비트코인급이야.”

“어이, 떡관종 코인 풀매수 안 한 흑우 없제?”

“한성코인 떡상 가즈아!”

한쪽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는데, 자기들끼리 내기라도 한 것인지 얼마를 걸었니, 배당이 얼마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사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후보생은 성인 취급을 받기도 하고 도박은 합법이었으니까.

그들의 관심은 게이트에서 포인트를 무지막지하게 올리고 있는 상위권 후보생들이다.

“이한성 1등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1등 이한성 2만8천 포인트.

2등 이하얀 2만7천 포인트.

3등 이진성 2만6천 포인트.

3등은 4학년이었다. 그 아래로 세 명은 4학년. 그리고 최이명이 그 타이밍에 나왔다. 그가 세운 기록은 2만4천 포인트 정도로 상위 20등 안에 들 정도의 기록은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강자들이 많다.

진훈은 그것에 더욱 큰 행복을 느꼈다.

‘검은 땅으로 가는 건 이곳에서 1등을 한 후다.’

진훈은 그렇게 결심했다.

옆에 선 한별과 세르게이. 한성의 친구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이게 한성이 1등을 해야 하는 이유다. 아카데미를 지키고 메인 캐릭터를 아카데미에 잡아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제임스 딘은 입이 떡 벌어져 있었고, 이창석은 뭐가 화난 듯 보였다. 그리고 최이명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단지, 눈빛이 진훈처럼 빛나고 있을 뿐.

그들은 모두 이한성과 이하얀의 독주를 보고 있었다.

모두 자신이 겪었던 시험이기에 더욱 놀란 표정이다. 2만3천 포인트부터는 마수과 마족이 나온다. 당연히 일개 후보생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

게다가 격이나 업적도 사용하지 못하는 시험에서?

진훈은 문득 옆을 돌아봤다.

그곳엔 세르게이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있었다.

“······뭐해?”

“나 개인 방송.”

“너도 했었어?”

“난 한성보다 더 오래전부터 했어. 구독자도 삼백만 넘었다고.”

진훈은 예전에 한성을 보고 방송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카메라 조작도 어렵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라 몇 번 잡다가 그냥 훈련이나 더 하기로 마음먹은 거다.

“자, 한성의 팬분들. 오늘은 한성 대신 제가 한성을 방송합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세르게이는 원활하게 방송했다.

이미 곳곳에 이 상황을 생중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인지, 다른 방송에서 넘어왔다는 채팅도 많았다.

“지금 몬스터 대전 게이트 시험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 포인트 보이시나요? 한국 영웅 아카데미 최초로 학년 통합 순위 변동 시험에서 1등이 누구인지! 이걸 보십시오!”

- 와ㅋㅋㅋㅋㅋㅋ여윽시 이한성.

- 나 이한성한테 10만 원 검. 근데 배당이 1.2배ㅋㅋㅋ

- 난 4학년한테 걸었는데, 돈 잃었네.

- 3만 점 돌파 실화냐. 저 정도면 거의 마왕급 나올 텐데.

- 그런데 무슨 일로 관종 이한성이 직접 방송을 안 하고?

- 이건 분명 이한성이 세르게이한테 시킨 거다.

“하. 하. 하. 그런 거 아닙니다. 하. 하. 하. 이한성이 아무리 관종이라도 그런 설정 방송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 이거 뭔가 이상한데.

- 세르게이 연기 너무 못함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아 역시 이한성.

- 넘어가 줍시다.

- 다 아는 건데ㅋㅋㅋ어떻게 등장할까. 그게 기대됨.

“크흠. 일단 포인트 올라가는 걸 보면서 현재 등장하는 몬스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전, 검을 든 입장에서 공략하는 방법 또한 곁들이겠습니다.”

세르게이는 원활하게 방송을 이어갔다.

진훈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또 혼자가 방송을 안 하는 것 같았다. 뭔가 친한 친구들이 다 하니까 자기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랄까.

그때였다.

4학년 다수가 게이트에서 나왔다.

거의 실신 직전이었는데, 얼굴이 하얗게 떠 있었다.

“거의 죽어가는데.”

그리고 금방 이하얀이 나왔다.

“으악! 아빠는 아직도 해?”

이하얀은 자신이 졌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작은 손으로 머리를 쥐면서 아깝다고 하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 뭐야······ 이한성 유부남?

- 엄마는 누구······?

- 이하얀 몇 살인데, 이한성 17살 아니었음?

- 근데 진짜 부녀 맞음? 부녀가 1등하고 2등을 한다고?

- 말이 안 되잖아!

- 이한성은 뭐든지 가능. 이한성이니까.

- ㅇㅇ이한성이 이한성한 것임.

댓글은 대환장 파티였다.

아무말 대잔치에 비트코인 안전자산이 되는 소리랄까.

이한성을 잘 모르는 사람은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물론, 기존의 시청자들이 잘 설명해 줘서 오해는 금방 풀렸다.

“나온다!”

“와, 미쳤어. 3만5천 점이다.”

“와아아아!”

이한성이 게이트에서 나왔다.

그는 멀쩡한 얼굴이었다.

게이트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5m 간격을 두고 가까워지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저벅저벅.

한성이 걷자 길이 열렸다. 후보생은 입을 소리치던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섰다. 이한성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한성은 세르게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한성의 한 마디에 댓글 창이 난리가 났다. 도대체 또 무슨 떡관종 소리를 하려고 분위기를 잡는 것인가. 별의별 예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언제나 한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정점이다.”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였다.

< 나는 정점이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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