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관종이다. >
신격의 복사체.
아니, 신격의 석상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 신들과 싸우다 패한 거인들이 이러했을까.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가 뿜어졌다.
한성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빨리 나가!”
그러면서 가면을 막아섰다. 한성뿐만이 아니라 진훈, 세르게이, 안혜림, 얜 샤를 등 모든 친구가 한성을 도왔다.
“이놈은 도대체······!”
사자 가면이 한성에게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어떻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곳에 후보생을 가두고, 버그를 이용해 후보생을 몰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으며, 어떻게 정보를 지켰는데!
이한성은 그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
끊겼던 연결이 복구되고 저들도 이 똑같은 버그 무기를 받았다. 그 말은 비밀 아지트가 모조리 털렸단 뜻이다.
그러면서 전황은 뒤바뀌었다.
‘게다가 아레스 석상도 알고 있다.’
저것은 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위한 보험 같은 거였다. 사실, 전혀 필요 없었던 안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나 천재, 관종, 꽃미남?”
“······.”
한성의 태연한 대답에 사자 가면은 더욱 몰아쳤다.
100여 명 중 격을 지닌 자는 7명이었으며, 아까 전황이 뒤집힌 뒤로 그 7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가면 일행 대부분 접속을 해지했다. 지금이라도 신입생들과 함께 접속을 해지해야, 완전하게 정체를 들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성 일행을 상대하던 사자 가면과 6명은 철저하게 묶여 있었다.
‘저 아레스만 오면 되는데!’
저 오라의 영역에 들면 연결이 끊겨 다시 접속을 해지할 수 없으며, 저 오라의 공격에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 이것은 프로그래밍으로 조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 말은, 아레스가 올 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한성은 그의 생각을 읽은 건지, 태연하게 말했다.
“난 나갈 생각 없어.”
“······!”
사자 가면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다른 후보생들은 모두 접속을 해지한 상태였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이한성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면 7명을 붙잡고 있었고 말이다.
“젠장.”
“어때, 사냥당하는 기분이.”
이제 입장은 바뀌었다.
‘가면’도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후보생을 잡으려는 사냥꾼이었다면, 이제는 자기들이 사냥감이다. 게다가 저 미친놈들은, ‘격’에 의해 한없이 밀리고 다치다가 죽으면서도 다시 살아나 덤빈다.
이놈들은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 가상 현실이라는 것 때문에 저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저들을 한 번에 죽이면 되는데, 한성 이놈은 절대로 죽지 않으면서 요상한 마법으로 7명 전체를 전투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게다가 저 작은 꼬마 소녀.
작은 체구에 맞지 않게 어마어마한 힘으로 격의 압도를 버티며, 오히려 밀어버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죽는다.
저 아레스 석상은 적아의 구분이 없으니까.
“너희는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프로그래밍이나 권능 따위가 아니야!”
“응, 알아. 우린 살 거야.”
“이런 미친놈!”
이젠 가면도 한성을 정상인으로 보지 않았다.
어디 나사 하나가 빠져도 제대로 빠진 놈이었다.
저런 힘을 뿜는 아레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 번 영역에 들어가면 끝이다.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아무리 이곳이 가상 현실이며, 저게 아레스의 복사체인 석상이라고 하지만, 신격은 신격이다.
으스스스.
점점 가까워진다.
붉은 오라는 땅을 검게 오염시키고 하늘에서 빛을 빼앗는다.
한성이 소리쳤다.
“이제 너희도 나가!”
“안 가! 너부터 가.”
“그래, 항상 우리만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이젠 더는 안 돼.”
“우리도 돕는다. 하나보단 여럿이 낫잖아.”
이한성은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었다. 돕기 위해 옆에 있어 준다는 생각은 감격할 만큼 좋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것을 상대하기엔 너무나 약한 친구들이었으니까.
“헤일렌, 강제로 아웃시켜.”
- 알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친구들은 이곳에서 사라졌다. 최이명도 이하얀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이제 한성 혼자였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아레스의 석상을 바라봤다.
존재감이 대단하다. 가짜지만 신격은 신격. 저것이 옆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팔다리가 저릿저릿하다.
- 한성님, 격의 해방이 완료되었습니다.
헤일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타이밍이다.
무대는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좋아.”
화악!
한성의 전신에선 어마어마한 격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신격에 비하면 한없이 작지만, 이곳에선 아무도 넘어 설 수 없는 강자다.
역사를 썼고 전설을 걸으며 신화에 도전하는 자다.
정면의 사자 가면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졌고 다른 가면들도 맥없이 휘날렸다. 하지만 죽이진 않았다. 저것들을 죽이는 것은 아레스가 되어야 한다.
쿠우우웅!
겨우 아레스의 검 하나가 한성을 향했을 뿐이다.
대기가 갈라지며 검이 불타올랐고 공간이 흔들린다. 그 요소들의 대류로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가면들은 격이 역류해 피를 토하며 내팽개쳐졌다.
그곳엔 한성만 오롯이 서 있었다.
아레스의 검은 한성의 검과 맞닿은 상태.
한성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그렇게 그 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한국 영웅 아카데미 체육관은 침묵이 감돌았다. 가상 현실 기기에서 나온 후보생은 중앙 홀로그램에서 송출하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뭐야······ 쟤네들은 왜 안 나왔어?”
“······다시 못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왜 우리만 나가라고 한 거야?”
“저건 또 뭐야. 신격의 복사체라고? 그게 뭐지.”
그렇다.
한성이 가상 현실 안쪽의 화면을 밖으로 송출하기 위해 연결해둔 채널로 모든 상황이 송출되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갇혀 있던 친구들은 기기에서 나와 홀로그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밖에서는 수십 명의 강사와 경비대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쟤들은······ 뭐야?”
누군가 손으로 열리지 않은 캡슐을 가리켰다.
이한성, 이하얀, 진훈, 세르게이, 나디아, 얜 샤를, 안혜림, 최이명까지. 8명은 안에 있으니 아직 깨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 캡슐들은?
한도석도 그것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들이 후보생 중에 섞여 있던 가면이구나. 가상 현실에서는 7명이 남아있었지만, 이곳엔 5명이 있다. 2명은 다른 곳에서 접속했다는 뜻.
완벽하진 않지만, 5명이나 잡았다.
한도석은 경비대를 불러 캡슐을 포위했다.
하지만 아직 잡아들일 순 없었다.
그들은 아직 가상 현실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이한성!”
캡슐이 열리며 진훈이 소리쳤다.
뒤로도 나머지 캡슐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다.
“미친, 어떻게 혼자 하려고!”
“으으, 진짜 항상 우리만 이렇게! 다 약해서 그래, 방해만 됐던 거라고.”
“아빠아! 으아앙!”
친구들은 홀로 싸우려는 한성이 밉기도 했지만, 그것은 모두 자기들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니 도통 한성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도석은 가상현실 기기에 누웠다.
혹시나 해서였다.
“역시 접속은 안 되는군.”
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되지 않는다.
한도석은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그곳엔 거대한 거신상과 검을 맞대고 있는 한성이 보였다. 저게 [아레스]라는 신격의 복사체이며 석상이란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강해 보이는 건 안다.
한성은 가상 현실 안에서 제한되어 있던 격을 회복했지만, 저 아레스에게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한도석은 그걸 잘 알기에 홀로그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둘의 전투는 치열했다.
아레스의 검격은 형상화된 ‘격’인 검붉은 오라가 한 번 휘둘러지면 바닥이 뒤집히고 구름의 모양이 변했다. 한성은 그것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반격은 생각도 못 했고, 아레스는 더욱 빠르게 공격해갔다.
아레스의 방패는 쓸 일도 없었다.
그 정도로 전력 차이가 컸다.
그때, 후보생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캡슐 5개에서 ‘펑’ 소리가 들렸다. 한도석은 직접 다가가 확인했다.
‘죽었어.’
안에서 아레스와 한성의 전투에 휘말려 죽은 거다.
그래서 현실에서도 두 눈이 터져 죽었다. 아마 뇌가 타 버려서 이렇게 된 걸 거다.
‘사실이었군.’
더 걱정되었다.
한성은 절대로 죽어선 안 된다.
그 사실에 체육관 안에 있던 후보생들이 동요했고, 전 세계가 보는 채널의 댓글도 난리가 났다.
- 죽지마. 이한성!
- 살아야 해ㅜㅜ
- 뭐야, 왜 친구들 다 보내고 혼자 싸우는 건데.
- 으아ㅠㅠㅠ죽지 말라고!
- 이게 뭐야. 왜 혼자야.
- 내가 도울 수만 있으면 돕고 싶다ㅠㅠ
- 미친, 이게 뭔 상황이래.
- 저기서 죽으면 진짜 죽는다고? 그거 뻥 아니야?
- 아니이이이ㅜㅜ 그거 개구라 맞지? 맞다고 해줘!
다들 한성을 바라본다. 걱정하고, 응원한다. 그것은 그 채널 뿐이 아니었다. 체육관 안에서도 한성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한성! 힘내라!”
“미친, 왜 우리를 내보내서!”
“······우리가 저기에 있었다면 살 수 있었을까?”
“이한성이 우리 모두를 살렸어.”
후보생도, 한쪽에 있던 가면이 죽으면서 캡슐 안에 있던 현실의 몸도 죽었다는 것을 아는 상태였다.
“이한성! 무조건 이겨라!”
“죽지 마! 이겨, 이겨서 돌아와!”
“아빠아아!”
그때부터였을 거다.
상황이 뭔가 이상했다.
한성의 힘은 점점 커졌다.
그것을 밖에서 어떻게 아냐고? 눈에 보이니까. 한성을 감싸던 파란 마력은 점점 진해졌으며 커졌다.
아레스의 검은 검붉은 오라를 뿜으며 하늘을 쪼갤 듯 쏟아질 때, 한성은 겨우 막아내고 피하기 바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성은 아레스의 검을 빗겨내고 반격까지 하게 되었다.
‘뭐지? 뭐가 달라진 거지?’
아레스와 관련된 업적이 있는 걸까.
아니다. 그런 거라면 아레스가 뿜는 기세도 달라졌어야 한다. 업적이란, 상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며 자신의 힘도 커지지만, 상대도 위축되기 마련이니까.
한성은 강해졌다.
점점, 확실하게.
어떻게?
한도석은 문득 화면 끝에 ‘시청자 수’를 바라봤다. 이미 4천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대단한 숫자이긴 하나, 그것으로 한성이 강해지거나 하는 건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때, 아레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어떤 업적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한도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체육관에 모인 후보생은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성의 전투를 바라봐야만 하는 상황. 그들은 한성을 걱정했으며······.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 한성이 아레스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떻게 되긴! 이기고 있는 거지!”
“그니까 어떻게!”
“나도 모르지!”
“젠장! 이한성 이겨라!”
“그래, 무조건 살아라!”
한도석도 속으로 응원을 시작했다.
* * *
- [관종의 삶(SS)]이 발동됩니다.
- 2,000만의 시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 3,000만의 관심이 당신에게 집중됩니다.
- 4,000만의 응원이 당신에게 닿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1,000%로 상승합니다.
- 존재력과 격이 1,000%로 상승합니다.
- [관종의 삶]의 숙련도가 SS등급으로 상승하였습니다.
-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 과도한 관심이 당신에게 집중됩니다.
- [나는 관종이다(F/SSS)]으로 격상(格上)됩니다.
“우오오오오!”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힘이다.
이렇게 강한 힘이라니!
한성이 이 무대를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벌써 이 페이즈가 나왔다는 것은, 한성이 강해짐에 따라 세계에서 내려오는 [재앙(災殃)]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뜻했다.
정상적으로 힘을 길러선 친구는커녕 스스로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거다.
그래서 도박을 해야만 했다.
단순히 신입생으로 잠입한 테러리스트와 외부에서 이러한 습격을 계획한 이들을 잡는 것은 옵션 중 하나여야 했다.
친구들을 살리는 것?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한성이 힘이 먼저였다.
그래서 무대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한성을 지켜보며 수많은 감정을 느껴 이입할 수 있게. 걱정하며, 기대하며, 슬퍼하며, 분노할 수 있게.
헤일렌을 시켜 최소한의 안전을 도모하고 송출을 유지하며 이 모든 장면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친구들과 마지막까지 남아서 ‘가면’들에게서 다른 후보생을 지키다가, 결국 혼자 남아야 만 했던 것들.
모두 이 무대를 위한 준비 장치였다.
한성은 마지막 일격을 위해 업적을 발동했다.
- [신격 사냥꾼]
- [신화에 도전하는 인간]
- [신격을 먹는 자]
- 전설 등급 업적이 발동됩니다!
한성은 역행 마법을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파엘의 악을 베는 검]을 사용하기 위해, ‘버그’에서 만들어진 ‘가짜 신격’과 ‘전쟁의 신’이라는 것을 [악(惡)]으로 규정했다.
쿠우우웅!
한성의 몸에서 뿜어지는 힘은 아레스를 능가했다.
- [라파엘의 악을 베는 검]이 발동합니다!
한성의 등 뒤엔 세 쌍의 날개가 하늘을 뒤덮을 듯 밝게 빛났으며, 그가 든 검엔 성스러운 기운이 태풍처럼 몰아쳤다. 아레스의 검붉은 기운은 한없이 밀려 꺼질 듯했다.
한성은 그 기운으로 [광선검]을 뽑아내며 자세를 낮췄다.
“죽어라.”
그 한마디와 함께 한성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아레스의 뒤에서 검을 거둬들이며 상체를 세웠다.
그그그극.
그극.
아레스의 몸은 목, 몸통, 하체로 분리되었다.
< 나는 관종이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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