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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75화 (75/200)

< 악을. 아니, 악만 베는 검. >

한성은 워프 게이트로 서울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뜬 시스템 문구를 보곤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 [긴급 퀘스트 : 진훈의 과거.]

- 중요!

- 진훈은 끔찍한 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과거의 발단(發端)과 결말(結末)은 연결되어 있으며 진훈의 결정에 따라 종장의 난이도가 대폭 상향될 수 있습니다.

성공 조건이 정해진 게 없다.

하지만 한성은 안다.

진훈은 과거를 기억해 낼 것이며, 그 과거는 진훈이 가질 의협심(義俠心)과 무력(武力)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는 이겨내겠지만,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진훈은 종장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한 명의 전력이 빠진다는 게 아니다.

50% 이상의 전력 손실이며, 그렇게 될 경우 한성조차도 이 세계의 결말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 전에 죽게 되겠지.

한성은 마음을 굳게 먹고 막대한 살기를 뿌려대는 전장으로 달렸다. 그 과정에서 한성은 서울. 그리고 아주 멀리 솟아난 게이트들을 볼 수 있었다.

예상외로 빠르다.

이건 1년 후에나 있어야 하는 몬스터 웨이브의 전조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6개월이면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될 것 같았다.

왜 그럴까.

한성의 인지도가 너무 올라서? 검은 땅에서 활약한 것 때문에? 능력치와 친구들의 성장세?

모르겠다.

전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성이 재앙들보다 앞서 나간다는 것. 운이 따라줬고 53년이라는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앞의 재앙은 무지막지하지만, 한성은 더 무지막지하다.

‘일단은 진훈이 먼저다.’

저 멀리 전장이 보였다.

신격의 머리 위로는 어마어마한 격의 기세가 뿌려지고 있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고 번개가 곳곳에 흩어지며 그것과 맞서던 사람들은 모두 쓰러진 상태였다.

그보다 안 좋은 건, 진훈이었다.

진훈은 쓰러져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고 한별은 옆에 쓰러져 있다.

‘속전속결.’

빠르게 해결한다.

한성은 역행 마법. 신격을 사냥하는 마법을 시작했다.

『 나는 라파엘의 사도. 』

본래는 사도가 아니면 효과가 반의 반으로 줄어드는 업적이다. 하지만 한성이 스스로를 라파엘의 사도로 규정하면서 그 위력은 배가 된다.

화악!

한성에게서 격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온전한 [역사] 등급의 격이며, 신화의 태동을 시작한 이의 격.

그리고.

한성은 방송을 키려다 멈칫했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힘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진훈의 아픔까지 방송에 내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하늘 위에 드론 몇 대가 떠 있는 게 있었다.

이 광경을 생중계하는 언론이겠지.

한성은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화면도 흐리고 음성도 실리지 않는다.

- [관종의 삶]이 발동합니다!

- 몇의 시선이 당신에게 향합니다.

아직은 한성을 주시하는 사람이 몇 없다.

하지만 곧 많아질 거다.

신격이 깃든 화신체가 한별에게 손을 뻗었다.

한성은 곧바로 달려들었다.

콰아아아.

한성은 공간을 가르고 시간을 단축했다. 지금껏 틈틈이 공부했던 시공간의 응용 방법. 한성은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신격 앞에 섰다.

한성은 검을 들었다.

『 나는 능품천사(能品天使), 라파엘의 사도. 』

콰아아앙!

한성의 말이 허공을 격했고.

그 파장은 검에 깃들며 화신체의 손을 막아냈다.

어마어마한 파장이 주변을 휩쓸었다.

“늦어서 미안.”

한별과 진훈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리곤 다시 화신체를 노려봤다.

지금까지 검은 땅에서 한 것들은 철저한 계산 아래······. 크흠. 사실 우연이다. 운이 좋았기에 알맞은 업적들을 딱딱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곳에서 써먹는 것이고.

[ 라, 라파엘의 사도······? ]

화신체의 격이 한성을 뒤덮었다.

한성은 앞의 격에 비해 한없이 약했다.

하지만 한성에겐 업적. 그리고 이야기가 있었다.

『 너는 격노와 정욕의 마신, 아스모데우스 』

한성의 말에 화신체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동시에, 손톱이 날아왔다. 한성은 공간의 방벽을 세웠으며 그것을 뚫고 들어온 공격은 검으로 쳐냈다. 그리곤 오래전 사라졌던 그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 세 쌍의 날개를 지닌 치천사는······ 』

이 신격은 아스모데우스.

최고의 지위였던 치천사였으며, 세 쌍의 날개를 지닌 강력한 천사였지만, 그녀는 악에 빠져 72 악마가 되었다.

대천사 라파엘은 배신자였던 그녀를 잡아들였다.

그 과거.

지금은 사라진 오래전의 역사.

한성은 그것을 다시 써내려갔다.

『 신을 배신한 악마가 되었다. 』

이것만으로는 약하다.

하지만 하늘 높이서 아슬아슬하게 이곳을 찍고 있던 드론 몇 대가 보였다.

- [관종의 삶]이 발동합니다!

- 50만의 시선이 당신을 향합니다.

- 75만의 관심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 능력치와 존재력이 상승합니다!

- 업적 [라파엘의 악을 베는 검]이 발동합니다!

- 업적 [신격 사냥꾼]이 발동합니다!

- 업적 [신화에 도전하는 인간]이 발동합니다!

한성이 그동안 쌓아왔던 업적이 한성을 정의한다. 한성의 격은 어느새 아스모데우스의 신격보다 커져 있었고 아스모데우스는 작은 아이처럼 작아져 버렸다.

아스모데우스는 강하다.

하지만 이곳에 내려온 신격 ‘일부’는 약하다.

『 나는 악을, 그리고 배신자를 처단하는 신의 검 』

화악!

그 말과 동시에 한성의 검은 하얗게 빛났다.

턱.

한성의 발목을 누군가 잡았다.

“······안······돼.”

진훈은 하얗게 비어버린 동공으로 한성의 발목을 잡았고 있었다.

진훈은 기억을 되찾은 듯 보였다. 전부인지, 일부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 때문에 한성은 지금의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푸욱.

화신체의 기다란 손톱이 한성의 복부를 찔렀다.

[ 으히히히. 사도? 라파엘? 다 죽어! ]

“크흑.”

한성은 피를 토하며 상체를 숙였다.

그것을 본 진훈의 눈동자가 떨렸다. 당연하다. 그는 남들이 다치고 죽는 것을 못 본다. 아예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지키고 봐야 하는 성향이다.

그런데 자신의 친구가.

자기 때문에 배를 찔렸다.

이대로면 죽을 수 있다.

진훈이 쥔 발목이 헐거워졌다.

‘좋았어.’

사실 한성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클라이막스엔 연출이 중요하다.

“괜찮아. 쿨럭.”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사실 아직 복부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식도까지 오지도 않았다. 한성은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혀를 깨물어 피를 뱉어낸 거다.

『 하지만 』

한성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행 마법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극적인 연출 덕분에 진훈의 심리 상태가 변했기에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

『 당신은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

그녀는 한 인간을 사랑한 치천사였으며.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 그대는······. ]

화신체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까와는 달라져 있었다. 방정맞고 정신 한쪽이 이상해진 화신체와는 다른, 정상적이고 나지막한 여인의 목소리.

“흐으윽.”

진훈의 텅빈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렀다.

『 나는 악을 베는 검이자 』

한성은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진훈은 한성의 발목을 붙잡지 않고 고개를 떨궜으며, 한성의 검은 화신체의 목을 갈랐다.

스걱.

화신체의 목은 허무하게 잘렸다.

[ 끼이아아아악! ]

『 치유를 행하는 자이고 』

잘린 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한성은 그 화신체를 바라봤다.

잘린 목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온다. 그것은 악(惡)이었으며 그녀를 오염시키고 물들인 ‘악마’의 잔재이기도 했다. 이것으로 완벽하게 그녀를 정화할 순 없지만, 큰 한 걸음이었다.

『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자 』

라파엘은 천사들의 군대였으며 신의 검이기도 했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천사이기도 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온 라파엘의 이야기이자 ‘힘’ 그 자체다.

- [격노와 정욕의 마신, 아스모데우스]를 쫓아냈습니다.

- 당신은 다시 한 번 신격을 사냥했습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악으로 치닫는 악을 정화한 자]

- 등급 판정 : [전설]

- 당신은 악마가 되어버린 천사의 운명 일부를 갈랐습니다. 아직은 작은 흠집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날갯짓은 거대한 폭풍이 될 것입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예정된 운명을 거부한 자]

- 긴급 퀘스트의 정상적인 클리어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신들의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신화의 태동을 시작한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등급 판정 : [준 신화]

- [준 신화] 등급 두 개는 하나의 [신화]가 됩니다.

- [신화의 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  *  *

엘 포른의 눈앞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비스트 마스터]는 거대한 늑대 위에 있었으며 주변으로 수십 개체에 이르는 백호, 바실리스크, 히드라, 섬 거북 등이 ‘백’의 상태인 괴수들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현세로 나온 ‘백’은 흐릿한 유령 모습이지만, 이 안에서는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상태였기에 밖에서 싸우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옆에는 거대한 망치에서 하얀 번개를 뿜어대며 괴수를 압살하는 덩치, 그는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백의 백을 태워버렸고 그의 앞을 막는 수십 미터의 괴수 백들도 망치 한 방으로 수백 미터를 날려 버렸다.

그는 양산박의 [천둥의 사자]였다.

엘 포른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흑청을 찾으러 가려 했다.

그런데.

“뭐, 뭐야 저건!?”

구우우웅-

무언가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엇인지, 엘 포른은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발록]

그것도 머리에 기다란 뿔이 세 개나 달린 40m에 이르는 투신(鬪神). 마계 내에선 마왕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다.

“왜······ 하필······.”

오늘은 정말 조심히 잠입해 흑청만 훔치려 했다. 엘 포른은 저 양산박의 두 명의 이목을 속이며 안으로 진입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저건 불가능이다.

‘백’ 상태의 발록이기에 육체는 없고 영체에 불과하다.

생전에 가진 능력에 10%나 될까. 하지만 발록은 태어나면서부터 ‘격’을 지니고 [투신의 탄생]이라는 전설 급 업적을 지니게 된다.

말 그대로 사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건, ‘백’으로서 [신화의 태동]을 시작한 발록이었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  *

성시연과 헤일렌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곳은 명계의 하늘이라 불리는 현세와 명계의 경계선(境界線)이다.

한성은 이상한 곳을 돌더니 경계가 약한 곳을 찾아냈고, 그곳에 공간 이능으로 구멍을 뚫었다.

그들이 5일 내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숙련도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였으며, 지금 저 발록을 이쪽까지 끌고 오면서 멀쩡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야, 발록 겁나 쎄 보여.”

“아마 저 셋이 힘을 합해도 막지 못할 겁니다.”

“그럼 실패하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양산박에서 사용했던 [대단위 광학 주포]에 가격당한다면 73%의 확률로 ‘백’ 파편을 떨어뜨릴 겁니다.”

대본은 한성.

연출은 헤일렌, 보조는 성시연.

그리고 주연은 저 셋과 발록.

사실은 둘이었지만, 셋이니 조금 더 확률이 올라갔다.

“야, 싸운다! 대박. 저놈들도 진짜 강했구나.”

발록은 마수들과 싸우던 양산박의 2명과 멀리 있던 엘 포른을 공격했다. 셋은 잠시지만 힘을 합쳤다. 발록은 압도적으로 강했고 셋은 무방비하게 밀렸다.

그런데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강해 보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들은 더 저항하지 않고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명계 입구로 유인하는 거 맞지?”

“네, 맞는 것 같습니다.”

비스트 마스터는 자신의 소환수를 희생해가며 시선을 끌었고 권용덕은 새하얀 천둥의 힘으로 발록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그들이 명계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

키이이잉-

이지훈이 어떻게 메시지라도 전한 것인지, 대단위 광학 주포는 바로 준비되었다.

현세에서 쏘는 광학 주포.

그것은 명계의 입구에서 상체와 머리를 내놓은 발록으로 향했다.

콰아아아앙!

작은 빛줄기와 발록의 충돌은 명계를 뒤흔들었다. 어두운 연기가 걷히며 드러난 발록의 상태는 처참했다. 머리는 멀쩡했지만, 어깨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이러다 발록이 지는 거 아니겠지? ······헤일렌! 어디 가!”

성시연은 멍하니 말하다 발록 쪽으로 빠르게 향하는 헤일렌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헤일렌은 거침없이 나아갔고 어렵지 않게 [발록의 살점]을 획득할 수 있었다. 성시연은 발록이 눈치채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이스! 획득 완료!”

성시연은 웃으며 돌아오는 헤일렌을 보며 소리쳤다.

발록의 어깨는 순식간에 재생되었고 셋은 뒤도 안 돌아보고 명계를 빠져나갔다.

구우우우웅-

그 방향을 향해 소리치던 발록은 그들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곤 아쉽다는 듯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갔다.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역시, 한성은 이런 계획을 어떻게 만들어내는 거지?”

성시연은 더욱 커진 현세로의 입구를 바라봤다.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자주 못 볼 텐데.”

한성은 이 계획만 완성되면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한 달에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만 검은 땅으로 온다고 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큰일이 난 것 같았고, 아카데미가 정상화 되기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으니까.

‘나도 가고 싶다.’

성시연도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었다.

예전엔 친구들과의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의 소중함을 몰랐다. 별일 아닌 거에 웃고 서운해하며 더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기도 하는 그런 생활 말이다.

예전엔 정말 몰랐다.

그게 그렇게 소중한 시간인 줄 말이다.

‘반드시 돌아간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한성의 계획을 검은 땅에서 진행해야 했고 마기를 완전히 감추고 인간의 모습을 하기까지는 높은 ‘격’이 필요했다.

< 악을. 아니, 악만 베는 검.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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