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 됐다. >
한성이 [용의 기사단]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블랙 와이번]의 둥지였다.
아래로 수백 미터. 바닥엔 용암이 흐르고 좌우 절벽엔 수많은 블랙 와이번이 날아다닌다. 용암에서 뿜어지는 것인지, 와이번에게서 뿜어지는 것인지 뜨거운 아지랑이가 훅 치고 올라온다.
“이걸 잡자고? 산채로?”
“그래야지.”
성시연이 기겁해 묻는다.
사실 죽여도 상관없긴 하다. 어차피 구울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울도 육체가 완전해야 잠재력이 손상되지 않는다.
“하얀이는 어떻게 못 하나?”
하얀이가 그렇게 말하는 성시연을 쳐다본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다.
성시연은 하얀이가 용혈을 가졌으니, 종족적 우위라는 것을 드러내서 생포해 보자는 것이었다.
“못 해. 아이러니하게도 블랙 와이번은 용혈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변종이라 드래고니안의 피어도 큰 효과가 없지.”
“그럼 어떻게 해?”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한성, 성시연, 하얀, 신성철이 전부다.
헤일렌은 세르게이에게서 받은 [검술 인공지능] 샘플을 연구 중이다. 한성이 세르게이에게 직접 연락해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한 건데, 와이번 위에서 검술을 펼치려면 약간의 수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정이라기보다는 가상 시뮬레이션 훈련이랄까.
하여튼 그 부분은 헤일렌이 완벽하게 해낼 거다.
“······그럼 그냥 몸으로 잡아?”
“아니.”
한성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빛의 구슬(희귀)]
설명 : ‘빛의 폭발’이라는 A등급 권능이 담겨 있다. 각종 마력석과 회로 덕분에 수십 배 증폭된 강렬한 성(聖) 속성 빛이 생성된다.
간단한 상성 공략이다.
많은 사람은 모른다.
아니, 이 세계에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해야 한다.
“블랙 와이번은 ‘권능’급 A등급 빛에서 ‘수십 배’ 밝은 빛을 한 번에 쐬면 잠깐 기절해.”
“뭐가. 그렇게 긴 설명이래.”
“눈을 하얗게 까 뒤집고 말이지. 그 시간은 0.5초 정도.”
“0.5초면······.”
“만약 우리가 선 곳에서 0.5초 기절이면?”
천장이 그리 높지 않다. 양옆으로 꽤 긴 공간이 있지만, 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바닥에 떨어질 시간은 충분하겠고.”
“그런 다음 뒤통수에서 30cm만 내려가면 작은 십자가 모양의 비늘이 있는 포인트가 있어. 그곳을 강하게 내려치면 척추가 탈골돼서 전신 마비가 올 거야. 잘 못 치면 죽겠지만, 뭐, 우리는 16마리 정도만 있으면 되니까.”
“······그게 가능해?”
“우리 신성철 용병님이라면 가능하겠죠?”
검도 아니고 몽둥이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S등급 용병 신성철. 그가 못하면 누가 하겠는가.
“죽지 않게만 잘 조절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작전은 시작되었다.
이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건, 날개가 있고 마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성시연이 할 거고 하얀이는 [가드니스의 권능]의 방벽으로 탈출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다른 놈이 끼어드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한성이 빛으로 잠깐 기절시키고 신성철이 퍽치기. 아니, 뒷목을 후드려 치면 끝.
“참 쉽죠?”
한성은 어느새 카메라를 켠 상태였다.
“이제부터 실습 갑니다. ‘한 번에 포획 성공’ 미션이요? 저 그런 거 안 받는······ 1억 감사히 받아가겠습니다. 하하하.”
거절하기엔 너무나 큰돈이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석유 부자나 영웅일 게 분명했다.
* * *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인주는 적당히 S등급 용병으로 신분을 숨기고 31번 구역으로 들어왔다.
어차피 31번 구역은 작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31번 구역은 어느새 3배까지 늘어나 있었고 구역 전체가 사람이 가득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림이었다.
이곳은 용병 혹은 영웅이 아니면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전장’ 한복판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곳이었다.
일반인은 찾아보기 힘들고 ‘수도’ 시설과 ‘발전’ 시설 정도가 전부인 곳. 방벽은 흙이었고 건물들은 콘크리트로 대충 찍어서 만들었던 곳.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구역 중앙의 게이트에선 자재와 사람이 끝없이 나왔다. 저게 과연 한국으로 향하는 게이트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것뿐이 아니다.
흑연, 정연, 언더월드가 지배하는 구역으로 보이는 곳에서 각종 물자와 인력이 들어오고 있었다.
원래의 31번 구역 방벽은 새로 지어지고 있었고 그 외곽으로 거대한 방벽 하나가 더 건설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알리스의 둥지가 있던 곳까지, 이 구역의 세 배는 되는 구역 전체에 말이다.
이곳이 내성이라면, 저 밖은 외성인 것처럼.
게다가 말도 안 되는 건 저 블랙 키리윰이다.
31번 구역 산맥에 거대한 각종 채굴 기계를 설치하고 레일을 통해 블랙 키리윰이 마구 캐고 있었다.
저거 손톱만큼이면 무기 하나를 덧씌울 수 있다. 그리고 그 무기는 한 단계가 높아질 정도로 질이 좋아진다. 당연히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기도 하다.
그런데 광산이 있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 산장지기’가 맞는 건가.”
그렇다면 왜 양산박으로 가져오지 않고 이곳에 모두 쓰고 있는 것인가.
“이 이상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블랙 키리윰 광산 근처엔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인주는 넋을 놓고 걷다가 경비원한테 제지당했다.
“아, 네네. 죄송합니다.”
이인주는 쉽게 물러났다.
만약 이한성이라는 사람이 전 산장지기가 맞다면 어차피 이 블랙 키리윰은 양산박으로 갈 거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응?”
이인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자신을 제지했던 경비원에게 물었다.
“저, 저기요.”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저거······ 블랙 키리윰으로 방벽 기둥을 만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이런 미친!”
“네? 뭐요?”
“아, 아니. 저게 말이 되는 겁니까? 저 아까운 걸? 아니, 진짜 이한성, 이 자식 미친 건가!?”
“저 블랙 키리윰은 저희 구역주이신 이한성님의 소유이고, 그것을 구역을 위해 쓰실 권한이 있으십니다.”
경비원의 눈빛은 더욱 사나워졌다.
아까는 광산에 접근하려 하더니, 이제는 구역주를 의심하는 것인가. 게다가 행색이 꽤 수상하다.
“잠시 저희랑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네? 아니요. 안 돼요. 지금 전 만날 사람이 있는데······.”
“지금 반항하시는 겁니까?”
“아니에요! 저 이한성이라는 놈. 아니, 여기 구역주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요!”
“뭐라고?”
경비원은 그녀의 말에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 삐!
그러자 주변으로 수십 명의 경비원이 도착해 그녀를 둘러쌌다.
“자, 잠깐! 저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는 수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협조해 주시죠.”
이인주는 반항하기를 포기했다.
이미 얼굴은 알려졌고 여기서 반항하면 다시 31번 구역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오기 힘들 거다. 게다가 방벽에 사용되는 블랙 키리윰을 보자 제대로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미쳤어. 제대로 미쳤어.”
이인주는 경비원에 의해 질질 끌려갔다. 그러면서도 방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어마어마한 자원을 겨우 방벽 만드는 데 사용하다니!
신경망에 필요한 소량이 아니라, 아예 기둥을 박고 있다.
저건 금도 아니라 다이아몬드로 방벽을 쌓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저 정도 양이면 [대단위 광학 주포]를 수십 개는 만들고 몇 년은 ‘소모’할 양이다.
저게 방벽으로 들어간다니, 아까워 죽을 것만 같았다.
‘또라이가 분명한 걸 보면 전 산장지기가 분명한데······.’
그녀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 * *
이한성은 어렵지 않게 [블랙 와이번]을 공수했고 이종칠이 급하게 구울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는 도중 한성은 안톤에게 들렸다.
“안톤. 우리는 명계에 진입할 겁니다. 거기서 세르비체의 영혼을 안정화하고 육체에 안착시키는데 필요한 [흑청]를 구할 겁니다.”
“흑청······? 그게 뭐지?”
“명계에 들어온 인간의 영혼을 청소할 때 사용하는 [환생차]를 만들다가 남은 찌꺼기들이 모여 생성된 암석(巖石) 같은 겁니다. 검고 맑다고 해서 흑청이라 부르죠.”
“······그걸로 영혼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네, 거기에 이 [전설] 등급 아이템 두 개가 사용될 겁니다.”
전설 등급인 아이템 [알리스 둥지의 마석]은 흑청을 정제하는데 사용하고 [게헨나의 마석]은 명계에 진입할 때 사용해야 한다.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넌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제가 공부를 좀 잘했습니다.”
“······내가 말을 말지.”
안톤은 한성이 물어보지 말라는 뜻을 우회해 전달한 것으로 알아들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
“세르비체를 구하는데 소모되는 모든 아이템과 비용은 [블랙 오크] 이름으로 달아놓도록 하겠습니다.”
“······.”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딸을 구하는데 돈이 든다.
그런데 그걸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그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말이다.
“······다, 당연하지. 근데 혹시 지금까지 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
한성은 씨익 웃으며 계산서를 내밀었다.
괜찮다.
아직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한 절반 정도 썼을까.
아마 이 작업이 끝나고 세르비체가 살아 돌아왔을 때가 된다면 안톤은 거대한 빚더미에 올라와 있을 거다. 아마 세르비체까지 평생 한성에게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이 기회에 [블랙 오크] 전체를 사 버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안톤은 손을 덜덜 떨면서 한성을 바라봤다.
마치 악마를 본 표정이었다.
“세르비체가 안정화되면 같은 화신체가 된 성시연과 몇 주는 보내야 할 겁니다.”
“······?”
“그런 걸 보고 반드시 필요한 ‘재활’이라고 하죠.”
“······음.”
“성시연도 흑연의 차녀라 몸값이 꽤 비싸죠.”
“······!”
한성은 다시 웃어 보였다.
정말 악마나 다름없는 웃음이었다.
* * *
[명계(冥界)]
흔히 하데스가 다스리는 사후 세계라는 인식이 가득하지만, 그곳에 하데스는 없다. 하나의 세상이며 영혼을 분리하는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떠한 생명체가 죽으면 영혼이 분리되어 명계로 향하고, 그곳에서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된다.
‘혼’은 순수한 생명의 근원(根源)이며 ‘백’은 혼이 쌓아온 ‘의식’ 혹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혼’은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게끔 새로운 곳으로 향하고 ‘백’은 명계에 남아 하나의 개체를 이룬다.
그렇게 그것들은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게 된다.
“그래서 이곳은 살아있는 사람은 오래 버틸 수가 없습니다. 혼과 백이 자연스럽게 분리되기 시작하기 때문이죠.”
“······무서운 곳이군. 그래서 그걸 만든 건가?”
“네, 이 ‘비약’에 마석 하나가 통째로 쓰였어요. 그래도 한 시간 버티는 게 고작입니다.”
안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에는 안톤과 성시연. 그리고 헤일렌만 왔다.
하얀이는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기에 명계에서 위험할 수가 있다.
헤일렌은 다른 이들에 비해 약하지만, 영혼이 없기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며 15개체로 이루어진 [용의 기사단]을 이끌어야 하기에 같이 왔다.
성시연은 또 마왕급 화신체를 가졌기에 명계에서 한성의 비약이 없이도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육체다.
즉, 이 비약은 한성과 안톤이 먹을 거라는 뜻.
“참고로 말하자면 재룟값만 2조 정도 될 겁니다.”
“······이게 바로 노예 계약인가.”
안톤은 해탈했다.
이미 계산서에서 확인한 것만 수조 원이다. 거기에 몇 조가 더 붙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무리 비싼 값이라고 해도 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던 빚을 질 용의가 있었으니까.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명계의 입구는 검은 땅 어디서나 열 수 있다.
당연히 쉽지는 않다.
하지만 한성은 ‘운이 아주 좋게’ [게헨나의 마석]을 얻었으니까. 명계에 출입하기에 이보다 좋은 매개체는 없었으니, 명계의 문을 여는 건 생각보다 준비할 게 별로 없었다.
한성은 그 명계의 문을 바로 양산박의 본 기지인 [하늘의 성]이 떠 있는 곳 아래에서 열기로 했다.
‘잘 못 열면 뭣 되니까.’
땅은 땅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대혼돈 그 자체가 올 거다. 이왕이면 인간의 영역에서 멀고 양산박과 마계의 영역 중심에서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일이 틀어졌을 시, 양산박의 전력을 빌릴 수 있으니까.
“그럼 명계의 문을 열겠습니다.”
한성의 말에 모두 긴장했다.
작전은 이미 정해져 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안전하고 빠르게 해결하고 돌아오는 게 핵심이다.
한성은 미리 준비한 마석을 꺼내 사용했다.
화악!
강한 빛이 터지고 하늘에 구멍이······.
······?
“어어?”
한성은 본인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눈앞에 뜬 시스템 문구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시발 X 됐네.”
그동안 제발 쓰지 말자던 쌍욕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X 됐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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