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70화 (70/200)

< 명계(冥界) >

양산박으로 빠르게 돌아간 이지훈은 [하늘의 성(城)] 가장 깊숙한 [제페토 연구실]을 찾아갔다. 급한 나머지 노크도 안 하고 문을 쾅 열었다.

“제페도 할아버지!”

“아 깜짝······. 뭐시여.”

“전 산장기지를 만났어요!”

“뭐? 그놈을 봤다고?”

“네! 블랙 키리윰 광산을 발견했다고, 주포 만드는 거 시작해 달라고 하던데요?”

“블랙 키리윰 광산을? 진짜로?”

“네!”

제페토는 이지훈을 빤히 바라봤다. 그놈이 분명 뭔가 할 게 있다가 나간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블랙 키리윰을 찾기 위해서라니.

“어떤 모습이디?”

“31번 구역 구역주로 왔어요. 17살 후보생으로요.”

“잉? 후보생인데 구역주가 됐다고?”

제페토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도플갱어 킹]이다. 당연히 그 정도 힘이 된다. 아니, 오히려 그 신분에 그런 힘은 너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했다.

그놈이라면 분명히 더 조용히 움직였을 텐데 말이다.

“뭔가 이상한데.”

제패토는 그놈을 오래 봤다. 그렇게 눈에 띄게 행동할 만한 놈이 아니다. 아니, 워낙에 특이한 놈이라 가끔 정신 나간 짓을 하긴 하니 이해는 된다.

“그렇다 해도······ 웬 갑자기 합법을 운운하지?”

“정신이 좀 든 게 아닐까요?”

“에끼! 이놈아. 정신이 들어? 그놈은 평생 또라이짓 하고 다닐 놈이야.”

“아! 그런 거 있잖아요.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오물을 몰고 다니는 거죠. 그 정도 변태이긴 했던 것 같은데.”

“흐음.”

제페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놈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또라이에 변태는 맞지만, 관종은 아니란 말이다.

아니, 거기서 거기인 건가?

‘진짜 뭔가 변화라도 있었나.’

제페토는 그렇게 생각하다 이지훈을 바라봤다.

“이참에 밖에 좀 나가 볼래?”

“저요? 어디요?”

“31번 구역으로 가서······.”

“아악! 안돼요!”

“왜!”

“산장지기가 얼마나 무서운데. 괜히 알짱거린다고 얻어맞으면 어떡해요!”

“그런 인주나 보내라. 걔라면 좋다고 갈 거다.”

“어흐, 인주요······? 말하면 분명히 간다고 하긴 할 텐데. 뭐, 말은 해 볼게요.”

“알겠어. 그놈이 진짜라면 인주가 알아볼 거고, 가짜라면······ 인주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우린 블랙 키리윰만 있으면 되니까.”

제페토는 이지훈을 내보내고 오랫동안 한쪽에 방치했던 [대단위 광학 주포]를 바라봤다. 이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산박의 인원이 희생되었는가.

그러면서도 결국 만들지 못해, 양산박은 하늘 위로 도망쳐 왔다.

“블랙 키리윰만 있으면······.”

제페토는 그놈이 진짜 산장지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복수를 완성하고 그들을 몰아낼 수 있을 테니까.

*  *  *

한성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알리스와 그녀의 신격은 처치할 수 있었지만, 둥지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 둥지를 온전히 없애고 주변에 연결된 마기 신경망을 끊어야 일대의 마기가 사라진다.

“이게 알리스의 둥지입니다. 등급으로 따지면 SS등급 최상위에 있는 귀족 마족이었습니다.”

- 미친ㅋㅋㅋㅋㅋ귀족급 마족의 둥지를 초토화 시킴.

- 이걸 생방송으로 송출하는 당신. 여윽시 이한성.

- 악! 하얀이 이상한 거 먹어요!

- 저기 저기! 하얀아! 그거 지지야 지지!

몇몇 채팅에 한성이 뒤를 돌아 하얀이를 바라봤다.

용의 폼을 하고 있던 하얀이는 바닥에 떨어진 검은 마력석 몇 개를 집어 먹었다. 그러곤 맛이 좋은지 ‘끄윽’ 시원하게 트림까지 한다.

“괜찮아요. 원래 용혈은 마기에 영향을 거의 안 받으니까요. 오히려 하얀이에겐 좋은 영양 간식이 될 겁니다.”

- 거의 베어그릴스.

- 마기는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점심일 뿐이죠.

- ㅋㅋㅋㅋㅋㅋ하얀이 트림. 완전 귀여워.

- 와, 성시연 엄청 예뻐. 원래 저렇게 예뻤나?

- ㄴㄴ 더 예뻐진 듯.

- 전엔 존예였다면 이젠 진짜 거의 여신급.

“크흠.”

옆에서 작업하면서 한성의 채팅창을 슬쩍 보고 있던 성시연은 헛기침을 했다.

한성은 그런 성시연을 바라봤다.

지금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다. 눈동자 색을 빼놓고는 마족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인간과 똑같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비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한성은 성시연의 정보를 열람했을 때,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상태창]

이름 : 성시연

능력치 : [근력 72] [속도 75] [민첩 76 [체력 71] [감각 75] [마기 79] [정신력 54] [지능 33] [매력 79] [행운 42]

잠재력 : 656/954

고유 능력 :

그림자 타기(S/S), 사고 가속(A/A)

특수 능력 :

검은 가시(A/SS), 명계화(미개화/SS), 바람의 결(D/B)

특성 :

살인(A/A), 마왕의 길(C/SS), ■■■(미개화/???)

* 화신체(마왕급)가 완성되었습니다.

* 릴리스와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어진 상태입니다.

* [종속]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습니다.

아직 릴리스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성 옆에 있을 때만큼은 안전할 것이다. 릴리스가 미쳐서 본신의 모든 격을 들고 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능력치는 이미 70대를 넘겼다.

순수한 육체 능력치는 A등급.

하지만 대부분의 영웅이 그렇듯 특성이나 능력으로 증폭되는 능력치를 생각하면 이미 S등급 이상이 된다. 그녀의 마력 기관의 힘에 이곳에서 쌓은 업적을 생각하면?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매력 능력치를 봐라.

79라는 수치가 어디 말이나 되는 걸까.

일반 사람이 두 눈으로 직접 보면 0.1초도 되지 않아 홀딱 반해버릴 수치다. 취향이든 성격이든 상관없이 아름다움만으로 말이다.

한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이제 이 둥지를 해체할 겁니다. 잘 보십시오. 앞으로 우리 31번 구역은 이런 식으로 검은 땅에 존재하는 모든 둥지를 파괴할 거니까요.”

이제 대충 정리가 되었고 마무리가 남았다.

일행은 한성 뒤로 물러났다.

한성은 마법을 펼쳤다.

막대한 마력이 들었지만, 이제 그 정도는 감당할 몸이 되었다. 옆에선 전용 마력 보급기인 헤일렌과 하얀이도 있었다.

우우웅!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에 새겨진다. 그곳에서 뻗어 나가는 수십 개의 마법진. 수백 개의 마법진이 하나의 결계을 이뤄 둥지와 일대 바닥을 모두 감싼다.

한성은 품에서 깃발 하나를 꺼냈다.

앞으로 31번 구역을 상징할 깃발이다.

하얀 용에 검은 뿔을 크게 올려둔 그림. 한성이 직접 만들었으며 하얀이의 마력과 성시연의 마기로 회로를 새긴 상징적인 깃발.

한성은 그 깃발을 둥지 위에 꽂았다.

꾸욱.

번쩍.

깃발에서부터 시작된 환한 빛은 한성이 만든 마법진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하더니 둥지로 퍼져나갔다.

- 뭐야. 무슨 마법이 이래.

- 범위 봐라. 그리고 마법진을 동시에 몇 개나 만든 거야?

- 에이, 설마. 저걸 동시에?

- 못해도 8중 캐스팅이다. 저건.

- 미쳐버렸다. 영상미 무엇.

그런 채팅창이 올라오는 도중.

둥지는 사라져 있었고, 그곳엔 한성의 깃발과 주먹만 한 마석이 떨어져 있었다.

마석.

이지훈이 타락의 광기를 데려올 때도 사용했던 [게헨나의 마석]도 비슷한 것인데 [전설] 등급 이상의 격을 지닌 존재의 ‘에너지 덩어리’라고 봐야 한다.

거의 ‘격’ 혹은 ‘업적’과 같은 힘 덩어리다.

이지훈은 그걸 다른 상급 마족을 홀리고 타락의 광기의 방향을 바꾸는데 사용했지만, 한성은 세르비체를 위해 사용할 거다.

“다들 보이십니까?”

한성은 점점 사라져 가는 마기를 카메라로 비추며 말했다. 온갖 검은 마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던 땅이 정화되기 시작한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여기서부터 저기 산맥. 그리고 31번 구역까지.”

31번 구역을 세 개는 이어놔야 할 법한 거리.

“모두 31번 구역으로 편입할 겁니다.”

한성은 구역 확장을 선포했다.

채팅창은 난리가 났지만, 한성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길드 관계자 혹은 검은 땅에서 활동하던 영웅들 정도.

“그리고 앞으로 이곳은 검은 땅 전체를 정복할 전진 기지가 될 것입니다.”

두두두두두.

쿠우우웅.

멀리서 헬기 수십 대와 10톤 트럭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기가 사라지면 일반인과 일반 장비들도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다.

헬기에서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은 길이현 상무였다.

“참 평화롭네요.”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한성에게 말했다.

“앞으로 점점 평화로워질 겁니다.”

길이현은 웃으며 뒤에서 내리기 시작한 사람들을 지휘했다. 저들은 이곳에 방벽을 세울 거고, 새로운 구역 시설을 만들어 갈 거다.

한성은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운 영웅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저희 31번 구역으로 오세요.”

구역 안쪽에선 블랙 키리윰을 캐내고 한성과 드한이라는 건축가는 31번 구역 전체를 통제하는 신경망을 구성할 거다. 그리고 방벽은 블랙 키리윰을 왕창 써버릴 거다.

그 누구도 부술 수 없는 요새를 짓겠다.

그리고.

“아, 마기 정화의 비약, 포션. 그리고 최상급 아티펙트도 별도로 판매할 예정입니다. 아마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할 아티펙트일 겁니다.”

이참에 홍보도 확실하게 해야 한다.

한성의 구독자는 이미 1,500만 명을 넘어섰고 실시간 시청자만 해도 500만이 넘어간다. 이 기회를 이용하면 31번 구역을 용병과 영웅으로 바글거리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31번 구역의 전력이 될 거고 말이다.

*  *  *

한성은 잠시 한국에 들렀다.

세르비체를 치료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했다.

그중에 가장 첫 번째는 [알리스 둥지의 마석]이었고 두 번째는 그동안 모았던 구울이다.

“구울 부대가 필요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종칠씨. 그리고 한예슬씨.”

“네.”

“검은 땅으로 오셨으면 합니다.”

예전부터 언급은 해 뒀었다.

전 회차에서야 언더월드가 대대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이었고 한성은 이종칠을 데리고 적에 맞서 싸우던 사이였으니 자연스럽게 ‘대장’이라 부르게 됐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그에게 강제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좋습니다.”

그들은 의외로 쉽게 허락했다.

“사실, 그동안 튜브를 통해 지켜봤습니다.”

“저희도 31번 구역에서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둘은 언제 그렇게 친해진 것인지.

매일 싸우기만 하다가 이제는 호흡이 거의······.

아니, 설마?

“둘이······ 사귀십니까?”

“크흠.”

“그게, 같이 부대끼다 보니.”

“세상에 믿을 만한 놈 없다더니······ 아차. 이게 아니지. 뭐, 그건 축하합니다. 그것보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검은 땅으로 가는 것을 묻는 거다.

정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네, 오히려 검은 땅에선 구울의 활용도도 커지고, 월등한 재료도 많으니까요.”

한성은 지금까지 모은 15마리의 900대 잠재력을 지닌 구울과 이종칠, 한예슬을 검은 땅으로 보낼 수 있었다.

한성은 그 길로 이강철을 만나러 갔다.

그와는 완전히 친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블랙 키리윰과 [전설]에 해당하는 재료 아이템. 그리고 진짜 업적과 역사가 있는 [보물] 등급의 유물 등을 제공한다면?

“우오오오! 좋습니다!”

“······진짜요?”

“그런 조건이 어디있습니까! 그리고 블랙 키리윰 무제한 제공이라고요?”

한성이 슬쩍 보니, 이강철은 손톱만 한 블랙 키리윰을 얇게 펴 검에 덧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성이 세 번째로 필요한 게 바로 이강철만이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블랙 키리윰]으로 만든 무기였다. 다른 대장장이도 어느 정도는 다루겠지만, 이강철만큼은 아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시죠.”

한성은 이강철도 영입을 완료했다.

드한, 이강철, 이종칠.

공밀레 삼대장이 완성되었다.

앞으로 그들은 31번 구역 확장에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것이며, 영혼까지 갈려 나갈 것이다.

한성은 한국에 온 김에 친구들을 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스스로 던전을 공략하고 검은 땅에 올 때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들도 명색이 ‘주인공’급 인물들이지 않은가.

작든 크든, 그들은 재앙(災殃) 속에서 살아남아 강해질 것이다.

한성은 그것을 마무리로 검은 땅으로 돌아갔다.

*  *  *

한성은 안톤을 만났다.

그는 한성이 만들어준 [인큐베이터]에 잠들어 있는 세르비체를 지키고 있었다. 쪽잠을 자며 간단하게 식사를 해 가며 그 옆에서 딸의 얼굴을 종일 보고 있었다.

“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정말 그거면 이 아이를 치료할 수 있는 건가?”

“······치료도 가능하고······ 치료하고 싶은지 동의도 구할 수 있습니다.”

“······.”

“어쩌시겠습니까?”

한성은 안톤의 의중을 물었다.

싫다고 해도 설득해야 한다.

세르비체는 그만한 재능을 가졌으니까. 이 세상이 멸망할 때, 진훈과 한별 옆에 서서 한 사람의 몫을 해 줄 거다. 그녀는 수억의 사람을 살릴 능력이 있다.

이런 인물이 왜 알려지지 않았는지, 오래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알리스의 화신체였으니까.

알리스를 죽여도 화신체를 되돌리는 불가능한 일이고, 육체를 유지한 체 정신을 되살리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마 그것을 시도한 플레이어도 없을 거다.

그러니 세르비체는 악의 신격 중 하나. 혹은 어떠한 마왕의 화신체가 된 채로 살다가 주인공 일행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한성.”

안톤은 힘겹게 입을 뗐다.

“네.”

“······살려줘. 우리 딸을······ 제발.”

아버지의 마음은 다 똑같다.

편하게 해주네 어쩌네 하지만 똥 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은 거다. 게다가 소중한 사람이 함께한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살리겠습니다.”

한성은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말했다.

“일주일. 딱 일주일간 전투 준비를 끝마쳐 주세요.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알겠네.”

한성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세르비체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선 [명계(冥界)]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그 목표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제발 [명계]가 멀쩡하길 빌 뿐이었다.

< 명계(冥界) > 끝

ⓒ [동주]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