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 등급의 업적. >
사실 많이 당황하긴 했다.
‘진실 너머의 어둠을 보는 자’의 ‘정보’를 열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한성은 일개 인간이었고 그는 화신체로 내려와 있었지만, 신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레 겁먹은 한성은 지금까지 모아놓은 인지도 포인트를 몽땅 써야 했다.
- 인지도 포인트 10만을 사용합니다!
- 인지도 포인트 10만을 사용합니다!
- 남은 인지도 포인트 : 32,000
많이도 모아 뒀었다.
이것도 운의 일종인 건지, 마침 인지도 포인트를 쓰려고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못 썼을 때 이런 일이 생겼다.
그리고 얻은 2개의 아이템.
- [최상급 능력치 포인트] * 1
- [업적 업그레이드 포인트] * 1
이 두 가지였다.
한성은 곧바로 99였던 운을 100까지 올렸다. 그 순간 전신에서 끓어오르는 ‘운’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능력치는 100이 한계지만, 90 이상부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올리기 힘들어진다. 특히, 다른 방법으로 올릴 수 없는 ‘운’ 능력치는 더했다.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옆에 선 딜러가 그렇게 말했다.
인형이었는데, 두 눈이 텅 빈 게 굉장히 크로테스크했다.
한성과 ‘진실 너머의 어둠을 보는 자’는 ‘블랙잭’을 시작했다. 한성은 ‘시스템 카메라’를 발동하려 했지만, 그 장소에서는 아예 켜지질 않았다. 아쉬웠지만, 상관없었다.
“패를 돌리겠습니다.”
딜러 인형이 그렇게 말하며 카드를 돌렸다.
처음엔 둘이 가진 칩 100개를 두고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의 칩이 모두 떨어지면 ‘격’ 혹은 ‘업적’을 팔아 칩을 충전하는 방식이었다.
초반에는 비등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운에 의한 차이는 벌어졌다.
처음은 상대도 침착했다.
“게임을 상당히 잘하는군.”
“운이 좋을 뿐입니다.”
그의 칩 100개가 사라졌다. 그는 상당히 희귀한 [역사] 등급 업적을 하나 걸고 칩 150개를 다시 받았다.
“······운이 상당히 좋군.”
한성은 게임 중 질문 하나를 했다.
“이곳에 누구랑 같이 오신 겁니까?”
이 신격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가장 자주 붙어 다니는 악의 신격은 [아몬], [아스모데우스], [베리알]이었으며 중도의 신격은 [일곱 색 뿔의 유니콘], [오각 고래] 등의 신수와 붙어 다니기도 한다.
“간음과 부유의 악마가 이곳에 온다길래 슬쩍 봤더니, 행운의 여신의 시선이 닿아있는 자네를 발견했지.”
그는 당당했다.
지금은 밀리더라도 결국 자신이 이길 거라 믿는 거다.
“베리알이군요.”
“······자네는 생각 이상으로 큰 행운을 지니고 있었군.”
그는 벌써 다섯 개의 업적을 걸었다. 모두 역사 등급이었으며 한성은 칩이 800개가 넘어갔다.
이후 게임은 ‘포커’로 바뀌었고 한성은 몇 번씩 졌다. 800개가 넘어가던 칩은 300개가 되었고 지지부진한 줄타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동안 총 칩의 개수는 1,000개가 되었다.
그리고.
“올인. 하겠습니다.”
한성은 승부를 걸었고.
그는 한술 더 떴다.
“업적 하나씩 더 거는 게 어떻겠나.”
승부에 걸린 칩은 2,000개를 돌파했다. 아쉽지만 2,000개라면 적당한 [전설] 등급 업적 하나를 얻는 게 전부일 거다.
패를 깠다.
그리고 한성이 이겼다.
다른 속임수는 없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무패(無敗)의 신화를 무너뜨린 자.]
- 업적 등급 : [전설]
-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신격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패배를 받아들였고 당신을 진정한 승리자로 인정하였습니다.
- 당신은 그의 업적 가운데 [전설] 등급의 업적 하나. 혹은 [역사] 등급 업적 다섯 개를 고를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끝난 것 같다.
하지만 한성은 그를 잘 안다. 지금까지는 ‘형식’에 불과하다. 이제 저놈의 본모습이 나올 거다. 게임에서는 지겠지만, 승부에서는 지지 않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는 신격의 본 모습을 말이다.
한성은 목록을 훑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필요한 업적은 이곳에 없습니다.”
“그곳에서 골라야 하네.”
“그런 규칙은 없었습니다.”
“목록은 정해져 있네.”
“······행운의 여신은 없는 목록에서 고르지 않았습니까.”
그는 흠칫했다.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와 이 공간에서 승부를 결정했던 일화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선 안 된다.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들었지?”
일순, 공기가 변했다.
포르투나. 그녀는 바다의 여신이기도 했으며 눈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기도 했다.
사실 그는 포르투나의 행운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게임의 종목을 바꿔 ‘장님’인 포르투나가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게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마저 포르투나가 이기려 하자 그녀의 팔을 잘랐다. 그래서 생긴 이명 중 하나가 [행운의 여신의 팔을 자른 자]인 거다.
“당신은 운명의 여신 ‘데크라’.”
본래 그는. 아니, 그녀는 남성이 아닌 여성을 지닌 신이다. 철저하게 본인을 숨기고 이 불공평한 게임을 이어왔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말았군.”
그녀는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자]라는 업적을 이렇게 만들어왔다. 그것은 [신화] 등급 업적이며, 그녀가 평생 일궈낸 그녀의 ‘격’이기도 했다.
“그걸 알지 못해도 절 죽였겠죠.”
그녀가 한성을 죽이면, 한성이 얻은 [무패(無敗)의 신화를 무너뜨린 자]는 사라지고 데크라의 패배는 없던 일이 되게 된다.
그게 그녀가 이곳에서 게임을 하는 이유이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이유였다.
“전 [무패(無敗)의 신화를 무너뜨린 자]와 같은 업적은 필요 없습니다.”
거래를 하자는 뜻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곳에서 너를 죽이면 끝나는 일을.”
“제가 당신의 정체를. 그리고 포르투나와의 일을 어떻게 알고 있을 것 같습니까?”
“······.”
“제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당신의······ 행운의 여신과의 결전은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말이죠.”
“그걸 누가 믿을까? 고작 인간의 말을······.”
“신격이라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
“시간의 여신, 제거티.”
“······!”
“그녀라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네놈이 어떻게!”
데크라와 제거티는 리투아니아의 신격이며 태어날 때부터 붙어 있던 절친한 자매와 같은 사이였다. 하지만 데크라는 그녀에 대한 질투로 제거티가 사랑하는 신격을 죽였으며, 제거티는 복수심으로 데크라의 아이를 죽였다.
둘은 다시는 이어지지 못할 악연(惡緣)이다.
같은 땅에서 태어났으며 서로 권능이 얽혀있는 신격이기에, 제거티가 그 사실을 알면 데크라는 아주 크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단 한 번의 패배도 겪지 않은 자]도 사라질 거다. 그녀는 그만한 힘을 가졌고 이 진실은 충분한 ‘명분’을 줄 것이므로.
“그녀도 아직은 모릅니다.”
“······.”
“거래하시죠.”
“무엇을 원하느냐.”
됐다.
한성은 따로 준비해 둔 게 없다. 하지만 데크라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신격이라도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니까.
“제가 얻은 2,000포인트를 다 해서 [라파엘]의 업적을 주십시오.”
“······하. 그 업적이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느냐?”
데크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작 2,000포인트로 얻을 수 있는 업적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을 데크라가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존재도 없었다.
그런데 앞에 이 인간은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냐.”
“이 거래는 이뤄질 것. 그리고 저를 불러올 때 죽인 육체를 되돌려 주고, 거기에 원래 주는 [한 번의 온전한 기회]라는 것을 줄 것도 알죠.”
[한 번의 온전한 기회]도 사실 데크라가 제거티에게 빼앗은 ‘권능’ 중 하나였다.
한성은 빙긋 웃었다.
“······재수 없는 놈.”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렇게 한성은 현세로 돌아오면서, 죽었던 육체가 되살아났고 그녀가 준 하나의 목숨도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베리알’을 처치할 수 있는 ‘라파엘’ 업적까지 얻었다.
그 업적은 [전설] 등급이었지만, [신화]로 진화할 수 있는 최상위 등급의 전설이었고 한성은 [업적 업그레이드 포인트]를 사용해 그 업적을 [준신화]로 만들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 * *
- 다른 이에게 받은 업적은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 [라파엘의 악(惡)을 베는 검]이 완전히 당신의 업적이 되었습니다.
- 앞으로 이 업적은 온전한 당신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간음과 부유의 악마를 벤 자]
- 업적 등급을 판정합니다!
- ······. ······.
- 운명을 초월하는 [운]이 발동됩니다!
- 업적 등급 : [신화]
- 당신은 ‘일부’지만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베리알의 신격]을 베었습니다. 앞으로 72 악마의 68위인 베리알 아래의 악마는 당신에게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 72 악마는 앞으로 당신에게 적대감을 가질 것입니다.
- 당신은 악(惡) 성향에 대해 상대적인 상성적 우위를 가질 것입니다!
- 신화 등급의 업적이 발현되었습니다.
- 당신의 [격]은 한층 높아집니다.
한성은 거기까지 보곤 고개를 돌렸다.
하얀이가 한성의 품으로 달려들었고, 성시연은 그 뒤로 한성을 안았다. 사시에 하얀이가 낀 상태였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야 이 나쁜 새끼야!”
“아빠아아!”
“미안.”
한성이 잘못한 건 없지만, 저런 모습을 보니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한성은 둘을 다독이면서 한쪽에 쓰러져 있는 세르비체 화신체를 바라봤다.
안톤은 그 화신체를 바라보며 단검을 꺼내 들었다.
한성은 그를 불렀다.
“안톤.”
“······.”
그는 단검을 든 상태로 멈췄다.
“살릴 수 있습니다.”
“······10년을 이곳에 갇혀 있었어.”
“압니다.”
“백치가 되면? 살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세르비체가 지금까지 겪은 고통은?”
“그렇다 해도 안톤이 그걸 결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
“의견만이라도 물어보는 게 맞습니다.”
한성은 세르비체를 바라봤다.
그의 [정보 열람]에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보였다. 알리스가 왜 굳이 그녀를 화신체로 만들었는지, 그녀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이렇게 멀쩡한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성은 그녀를 살리기로 했다.
* * *
안혜림과 얜 샤를은 손을 잡기로 했다. 한성이 알려준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다.
파지지직!
얜 샤를의 번개는 2m까지 늘어나 있었다. 마기가 풀풀 풍기는 중급 마족의 검을 막아섰다.
콰과광!
두 무기의 충돌은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하얀빛은 검은 마기를 씹어먹으며 중급 마족의 팔 전체를 태워버렸다.
“뒤!”
그것은 안혜림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찰나의 순간, 다섯 개의 화살을 쏘아내며 얜 샤를의 뒤를 점하던 마수 다섯의 미간을 정확히 쪼갰다. 얜 샤를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신속화]
그녀의 몸은 한 줄기 빛으로 쏘아졌다.
동시에 [재능 없는 자의 빛]이라는 업적이 발현되었다.
화악!
콰아아앙!
정면으로 쏟아진 얜 샤를의 수십 개의 번개 다발은 중급 마족 셋과 수십의 마수를 한 번에 쓸어 버렸다.
이곳에서 안혜림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실전으로 얻은 업적이었으며 힘이었다.
“후우.”
“이제 보스방인가.”
이곳까지는 많이 왔다. 하지만 이곳을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상급 마족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스스로가 가진 힘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이한성은 이미 검은 땅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보다 수배는 강한 마족을 상대하고 있을 거다.
“오늘은 들어간다.”
안혜림은 [도살자] 모드로 돌입했다.
두 눈은 붉게 물들었고 전신을 휘감던 푸른 마력은 붉은색으로 타오른다. 그녀는 활을 넣고 검을 꺼냈으며 밀도 높은 기세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얜 샤를도 지지 않았다.
파지지지직.
손에서 뿜어지던 번개였다. 하지만 지금은 몸 전체에서 빛 속성의 번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빛나는 하나의 [갑옷]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힘을 모두 뿜어 기다란 번개의 창을 만들었다. 얜 샤를이 가진 [무기화]의 응용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딘’의 강림처럼 보였다.
둘은 보스방으로 진입했다.
안혜림은 다시 한성의 옆자리에 서기 위해서, 얜 샤를은 자신을 지켜줬던 한성과 성시연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그렇게 움직였다.
* * *
그 시각, 진훈과 한별은 한성이 알려준 던전을 클리어한 상태였다. 하지만 던전은 그것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그것은 히든 던전이었다.
“이건 벅찰 것 같은데.”
한별의 분석은 대부분 정확하다.
던전 자체의 마력 밀도가 다른 곳과는 차원이 다르다. 벽을 구성하는 금속조차도 일반적인 그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리고 안에서 느껴지는 핏빛 오라.
그것은 둘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훈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졌다.
“가자!”
“위험하다니까.”
“그러니까 가야지. 한성은 지금 검은 땅에서 재앙들과 싸우고 있을 거 아니야. 겨우 이 정도 던전에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하······ 그건 아니지.”
“그렇지?”
“그래, 맞다.”
한별도 문득 한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보다 더 한 재앙? 아니면 더 강한 마족? 무엇과 상대하고 있을까.
한성의 성장세는 대단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바로 옆에서 봤던 자신은 확실히 안다. 그는 성장하는 것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을 보이는 게 아닌, 성장 말이다.
‘진훈을 뛰어넘는 놈은 처음 봤어.’
거기에 기상천외한 전투 센스까지.
그런 놈 옆에 나란히 서기 위해선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을 안다. 한별은 그렇게 위안하며 진훈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그렇게 성장해갔다.
이 세계관은 플레이어의 힘에 따라 재앙(災殃)의 난이도를 조절한다. 그러면서 주인공급의 캐릭터 역시 플레이어를 따라갈 수 있도록 움직인다.
그것이 캐릭터들의 위험이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길이지만, 그것 또한 플레이어에 대한 시험이자 고난이었다.
< [신화] 등급의 업적.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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