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惡)을 베는 검. >
신성철과 안톤은 급하게 헤일렌과 하얀이를 따라갔다. 넷은 얼마 가지 않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은 함께 둥지를 향했다.
향하는 도중에 [타락의 광기]가 방해했지만, 안톤의 온전한 격과 하얀이가 지닌 [가드니스의 권능] 덕분에 격의 손실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기에, 그들은 서둘렀다.
그렇게 그들이 둥지로 향하는 길.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누워있는 한성이었다.
“······?”
하얀이는 그 자리에 멈췄다.
심장이 뚫려있다.
그리고 호흡이 없으며 기척도, 마력도.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이는 용의 모습으로 한성의 품으로 날아갔다.
코로 한성을 툭툭 건드려 확인해보기도 하고 꼬리로 뺨을 툭툭 치기도 했다. 하지만 한성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흙에 고인 검붉은 핏물이 전부였다.
그 옆으로 다가온 헤일렌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신성철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게 무슨······.”
결코 죽지 않을 것 같던 한성이 죽었다.
하지만 이건 더 이상 확인할 것도 없이 사망이다. 아무리 격을 얻었다고 해도 심장이 뚫리면 끝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였으니까.
“끼이이잉?”
하얀이는 믿고 싶지 않은 것인지, 한성의 곁을 돌면서 계속 건드렸다.
그때, 멀리서 강한 파동이 그들을 덮쳤다.
콰아아앙!
성시연과 알리스의 충돌이었다.
한 번의 격돌은 주변 모든 것을 부쉈다.
성시연은 뿔이 세 개였고 날개는 한층 길어져 있었다. 게다가 꼬리까지 생긴 것인지, 그녀의 존재감은 한층 커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신성철이 물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안톤조차도 저런 모습은 검은 땅에 있는 오랜 시간 동안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이곳의 그 누구도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쿠우우웅!
성시연의 마기가 폭발했다. 금방이라도 성시연은 그 힘에 먹힐 것 같았고 신성철이 뛰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안톤이 그를 막았다.
“돌아왔어.”
성시연은 힘을 갈무리했다.
그리곤 자신도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낀 듯.
한 발, 한 발 알리스에게 다가갔다.
털썩.
성시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알리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것도 아주 공손하고 다소곳이.
그 모습에 안톤과 신성철이 동요했다.
마왕이 된 것인가.
성시연은 알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며, 알리스는 그것이 영광된 것이라도 되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안톤은 검에 손을 얹었고 신성철이 경계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알리스의 목을 꺾고 머리를 밟아 터뜨려 버렸으니까.
신성철은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쩌다 한성이 기습을 받아 심장이 뚫렸다. 그것은 알리스의 공격이었고 성시연은 그 분노로 각성에 돌입해 알리스를 죽인 거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계속 생각이 막힌다.
더는 이어갈 수가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빠가······ 아빠가, 죽은 거예요?”
어느덧 반 인간 폼으로 돌아와 한성을 자꾸 들어 올리려는 하얀이가 누군가에게 물었다. 한 명을 특정하지 않은 모두에게.
“아빠······, 아빠아아······!”
하얀이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처음엔 믿을 수 없었고, 다음은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그녀의 가슴엔 커다란 상실감이 새겨진다.
AI이며 보조 인공지능이었던 헤일렌까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는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있다.
투둑.
성시연은 어느새 그들 옆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곤 텅 빈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그러면 안 되잖아.”
“아빠······.”
“네가 날 두고 그렇게 가면······ 안 되잖아.”
“······으아아앙.”
“네가, 네가 날 두고.”
성시연은 이런 감정이 처음이었다. 가슴 한쪽은 뻥 뚫려 공허하고 한쪽은 꽉 막혀 무언가 뚫고 올라오려 그런다. 그것조차 혼란스러움에 갈팡질팡한다.
하얀이는 한성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으며 성시연은 한성 옆에 무릎을 꿇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이한성은 일어나지 않았다.
[ 드디어 계약을 이행할 때가 왔구나. ]
뒤였다.
쓰러져 머리가 사라진 알리스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둥지, 마족, 마수. 그리고 하늘을 뒤덮고 있었던 [타락의 광기]까지 알리스의 육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안톤이 조용히 읊조렸다.
“······간음과 부유의 악마. 베리알이다.”
마족도 악신과 계약을 한다.
하지만 온전한 ‘계약’이 아니다. 스스로 [전설]급 격을 획득했지만, 마왕이 되지 못한 귀족급 마족의 말로는 대부분 저렇게 ‘악마’에게 종속되어 버린다.
“알리스는 자신이 죽는 순간에 모든 걸 바치겠다는 계약을 한 거야. 죽은 후에 종속되는 거지.”
그녀가 세운 마기의 원천이자 그녀가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인 ‘둥지’에서부터 그녀가 만들어온 마족과 마수. 그리고 화신체들까지.
모든 게 베리알에게 종속되기 시작한다.
[ 흐르르르르. ]
베리알은 울었다.
그저 울음일 뿐인데, 일행은 버틸 수 없었다. 신성철은 바닥에 쓰러졌고 하얀이도 고통스러워한다. 안톤과 성시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주 일부의 격일 뿐이다.
그 격만으로도 일행이 지닌 업적이 손상되고 격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격의 차이였으며 범접할 수 없는 세월의 힘이었다.
“안 돼.”
안톤이 소리쳤다.
알리스에게 날아가는 화신체 중 하나 ‘세르비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안톤은 그대로 뛰어나갔다.
직접 재우기로 했다. 육신을 죽여 세르비체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려 했단 말이다. 그런데 저 악의 신격인 베리알에 흡수된다면 세르비체는 영원히 지옥 속에서 농락당하며 타오를 거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 흐르르르 ]
베리알이 안톤을 바라봤다.
저 작은 인간이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발끝을 기어오르는 개미 하나를 어떻게 죽여야 할까. 마력으로 태워? 손가락으로 짓눌러? 아니면 입에 넣어 버릴까.
화악!
안톤은 격을 방출했다.
검은 마력. 마기와는 또 다른 마력이 안톤을 휘감으며 진한 연기를 뿜어댔다. 바닥을 갈려 나가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오염된 마기도 날려 버린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업적.
오랜 세월 쌓인 격.
안톤의 인생이었으며 안톤이 만들어온 전설이었다.
[ 이 화신체의 아비구나. ]
베리알은 세르비체의 화신체를 음흉한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단순히 높은 격의 음성.
그것만으로 안톤은 저만치 날아갔다. 그가 아무리 전설을 이룩한 온전한 SS등급 이상의 영웅이라고 하지만, 신격을 두고 격을 논할 순 없었다.
베리알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알리스의 육체에 주변의 모든 걸 담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직접 현신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신성철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건 일반적인 화신체를 넘어섰다.
왜 베리알이 저런 짓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재앙(災殃)의 지경을 넘어선 것은 분명했다.
“이대로 두면 안 돼요.”
신성철이 성시연과 헤일렌에게 말했다. 하얀이는 정신이 없다. 한성만 보고, 한성을 향해 울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문득 베리알이 이쪽을 바라봤다.
[ 너희구나 ]
그 말에 무언가 느낀 하얀이가 울다 말고 베리알에게 시선을 돌렸다.
[ 그 아이의 친구들이. 흐르르르. ]
베리알의 시선은 이한성에게 꽂혀 있었다.
신성철은 그 순간, 상상하지 못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베리알이 뿜어내는 게 아닌 성시연, 헤일렌, 하얀이가 방출하는 힘이었다.
화악!
성시연은 줄어들었던 뿔과 날개를 쭉 뽑아냈다. 전신엔 붉은 마기가 타오르기 시작했고 눈은 붉은 안광에 빛나고 있었다.
“이 개 같은 새끼가!”
푹.
콰과과과!
성시연은 바닥을 박차고 베리알에게 달려갔다.
다음은 헤일렌이었다.
“네놈이구나.”
그녀는 구울일텐데 어떻게 이런 힘을 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심장에선 거대한 마력이 폭사되었고 특수능력인지 모를 거대한 [기간트]의 모습이 그녀에게 투영되었다.
상상 이상의 힘이었다.
구울은 지닐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격’을 지닌 모습이었다.
피날레는 하얀이었다.
“우리 아빠! 아빠 돌려 내!”
그렇게 어리고 귀여웠던 하얀이는 어느새 30m가 넘어가는 거대한 몸으로 변해 있었다. 통통하고 귀여웠던 뿔과 꼬리엔 거친 비늘이 뒤덮여 있었고 황금빛 눈동자는 살기가 가득했다.
쿠어어어어!
용혈은 용혈.
모두가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베리알의 격을 하얀이는 한 번의 포효로 부숴버렸다.
신성철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누구든 지닌 힘은 정해져 있는 법이고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그저 감정의 동요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정상이고 상식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이게 그들이 지닌 원래 힘인지.
아니면 잠재력의 폭발인 것인지.
신성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등급으로 따져도 그저 A등급에 불과했던 성시연은 알리스를 상대하면서 S등급으로 올랐고, 인간의 정신으로 마왕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저 모습은 그것조차 벗어나 보였다.
안톤과 동급. 혹은 그 이상.
크어어어!
특히나 드래고니안의 활약은 더욱 대단했다. 태어난 지 겨우 몇 개월이 되었다. 그런데 성시연과 안톤이 뚫지 못하는 베리알의 격을 홀로 벗겨내고 있었다.
그것은 한성을 잃은 슬픔이었고.
한성을 죽인 베리알에 대한 분노였다.
그런데,
“······아니야, 그게 아니야.”
베리알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베리알의 격에 부딪히며 자신의 생명을 깎아 먹고 있었다. 마땅히 사용해야 할 힘이 아닌, 사용해선 안 될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얀이가 그의 격을 벗기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는 즐기고 있었다.
눈앞에서 작은 벌레들이 벌이는 재롱잔치를 말이다.
털썩.
신성철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막연히 상상만 했던 그 압도적인 힘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처절한 무력감을 선사했다.
그는 절망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뒤에서 미약한 인기척이 났다.
“뭐야, 이 난리는.”
“······?”
신성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빨리 돌리고 싶었지만, 덜컥 겁부터 났기 때문이다.
“······귀, 귀신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S등급 용병인 신성철은 세상에서 귀신을 가장 무서워한다.
“왜 멀쩡하게 산 사람을 귀신으로 만듭니까.”
“······?”
톡톡.
한성은 옷만 뚫리고 멀쩡해진 가슴을 가리켰다. 그러자 신성철은 가슴과 얼굴을 번갈아 봤다.
“사, 살아나셨습니까?”
“죽은 적이 없습니다.”
고약하지만, [진실 너머 어둠을 보는 자]는 꼭 이런 장난을 친다. 어차피 자신이 이길 거니, 미리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투다.
하지만 오래 살다 보면 질 때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한성은 저 멀리 베리알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베리알이군요.”
“네, 맞습니다.”
한성이 모를 리가 없다. 방금 짜릿한 승리를 빼앗고 절망뿐인 패배를 안기고 온 [진실 너머의 어둠을 보는 자]와 저 베리알은 둘도 없는 콤비이기 때문이다.
한성은 검을 꺼냈다.
“한성님?”
신성철이 한성을 불렀다.
베리알은 엄연히 악의 신격이다. 당연히 검 따위로 대항할 수 없다. 격과 업적. 그것만이 신격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한성은 웃을 뿐이었다.
“세상엔 참 많은 업적이 있죠.”
그의 검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그런 걸 수집하는 신격도 있고.”
“네?”
“그 수집한 걸 빼앗는 인간도 있는 법이죠.”
다시 만날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또 만났으면 좋겠다. 이번에 너무 처절하게 패배해서 다시 덤빌 용기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덤벼 준다면 이번엔 배로 뜯을 수 있을 텐데.
스윽.
한성은 검은 옆으로 들고 걸었다.
한 발, 한 발.
베리알이 눈치를 챘는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한성을 바라봤다.
[ 어떻게······? ]
당연한 반응이다.
신격도 그의 공간에서 멀쩡히 돌아올 순 없다. 신격은 업적이나 격의 일부를 빼앗겨 돌아오고 인간은 죽어서 돌아온다.
하지만 이한성은 너무나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격이 상승한 느낌이다.
우우웅.
한성은 말없이 웃었다.
그의 검은 점점 밝게 빛났다.
그것은 [빛]이었다. 순수하고 밝은 빛. 어둠은커녕 악조차 다가갈 수 없는 신격의 힘. 그 빛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오염된 마기는 근처에 오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 도대체······? ]
“이한성!”
“아빠!”
거대한 분노로 스스로의 생명을 태우고 있었던 일행은 한성을 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한성이 돌아온 게 두 눈에 보였으니까.
한성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것을 해치우는 게 먼저였으니까.
훅.
한성은 자세를 낮췄다.
『 사타나엘. 』
한성의 말에 베리알에 놀란다. 그것은 ‘악마 베리엘’이 천사였을 때 가졌던 이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다.
이름만으로 무언가를 할 순 없다.
[ 그 이름을 왜······? ]
하지만 한성은 다르다.
그의 역행 마법은 세상에 규칙을 내리고 존재를 정의하는 [언령]이니까. 거기에 [준신화] 등급의 업적이 포함된다면?
『 나는 능품천사(能品天使), 라파엘의 사도. 』
천사들의 군대라 칭해지며, 배신자를 처단하는 임무를 맡는 ‘능품천사’. 그리고 그 지휘자인 ‘라파엘’의 이름까지.
한성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에게서 빼앗은 ‘업적’과 ‘역행 마법’을 하나로 엮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베리알은 그 권선징악(勸善懲惡) 이야기의 악역(惡役)이 되어야 한다.
『 나는 배신자를 처단하는 신의 검이자. 』
[ 아니, 그것은 아주 오래전······. ]
『 악을 쫓는 천사들의 군대. 』
콰과과과.
한성은 바닥을 가르며 베리알에게 쇄도했다.
한성에게 투영된 라파엘의 모습은 베리알에게 극도의 두려움을 선사했고 그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화신체를 소모하면서 무리하게 신격을 방출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성은 이미 그를 지나쳐 멈춰선 후였으니까.
빛이 사라진 검을 검집에 넣었다.
툭.
『 나는,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
투두두둑.
베리알의 화신체는 수십 조각이 난 상태로 바닥에 흩어졌다.
『 악(惡)을 베는 검이 되었다. 』
한성은 업적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 악(惡)을 베는 검.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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