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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67화 (67/200)

< 마왕의 길 >

한성이 성시연을 데리고 움직인 곳은 알리스의 둥지였다. 한성은 그곳으로 가면서 이지훈이 건넨 마석으로 타락의 광기를 움직이려 했다.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네.”

타락의 광기는 마석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성시연을 따라왔다. 덕분에 한성은 [게헨나의 마석] 10%를 그대로 지니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쉽게 재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꽤 신경 쓴다면 보조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나만 따라오는 거 맞지?”

“응······ 아마?”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그래서 성시연에게 바로 갈지, 이지훈을 찾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지훈은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양산박에서 계속 접근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먼저 해결했다.

이것도 이지훈이라 다행이었다.

강함으로 따지면 양산박에서도 순위권에 들지만, 정신 연령 만큼은 어리고 순수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전 산장지기의 무서움을 아는 몇 안 되는 양산박의 일원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동안 양산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디 감히, 날 신입으로 끌어들이려고.’

한성이 양산박을 가졌으면 가졌지, 그런 곳에 신입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게다가 성시연과 31번 구역을 미끼로 두고?

한성은 한때 양산박의 주인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었던 그 ‘양산박’에 말이다.

하여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근데 어떻게 사냥한다는 거야. 그 알리스라는 귀족 마족을.”

“이 [타락의 광기]는 마족이든 마수든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거든.”

“알리스도?”

“그건 힘들지. 하지만 둥지 주변에 있는 다른 마족들하고 마수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을 거야. 물론, 그때쯤이면 타락의 광기도 거의 소멸하기 직전이겠지.”

이게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것이다.

‘타락의 광기’로 알리스의 손발을 모두 제거한다.

하지만 알리스가 이것만으로 당할 리 만무하다.

“알리스는······.”

“우리 둘이 상대할 거야.”

한성은 강하다.

하지만 그것은 ‘릴리스의 신격’에만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과는 ‘업적’이 중심이 되는 싸움이었으며, 릴리스의 신격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 귀족급 마족은 다르다.

육체적 싸움을 피할 수 없고 격과 업적 또한 거대하다. 거기에 오랜 시간 쌓아온 [보물] 등급의 장비에서 나오는 권능까지 있을 거다.

아무리 한성이라도 그런 그녀를 혼자 죽이는 건 힘들다.

“성시연 너는 마족들에게 천적과도 같은 존재니까.”

“······.”

“그러면서도 널 가장 원하기도 하지.”

마력 기관 때문이다.

특히, ‘귀족’이면서 오랫동안 격을 쌓아온 알리스는 [마왕]이 되길 원한다. 그러니 [업적]이니 [마력 기관]이니 하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쿠우우우우.

뒤를 쫓아오는 타락의 광기.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거대한 돔.

그것은 [알리스의 둥지]였다.

쏴아아아.

둥지에선 이미 거대한 기세가 뿜어지고 있었다. 마치 신격으로 보일 정도의 어마어마한 격이었다.

그때였다.

한성의 살가죽에 소름이 돋아났다.

동시에.

핑-

푸욱.

무언가 날아와 한성의 심장을 찔렀다.

그것은 눈동자도 따라가지 못할 찰나의 순간이었으며 미리 알았어도 막지 못할 강대한 일격이었다. 그것은 한성의 심장을 뚫고 등으로 빠져나갔다.

한성은 보았다.

저 멀리 한성을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

“쿨럭.”

한성의 시야는 꺼졌고,

옆에서 성시연의 비명이 들렸다.

*  *  *

성시연은 눈앞에 하얗게 변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인지할 수 없었고 생각할 수 없었다.

“대체······.”

이 대응할 수 없는 공격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성은······ 한성은 죽은 것인가.

겨우 이 정도에 죽을 거였으면, 왜 이곳까지 왔는가.

성시연은 아래로 떨어지는 한성을 받았다. 길게 돋아난 날개를 펄럭이며 바닥에 착지했다.

성시연은 한성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적은 그 시간마저 주지 않았다.

핑-

다시 한 번 멀리서 무언가 날아온다.

화악!

성시연의 몸엔 붉은 마기가 뿜어졌다. 그것과 동시에 30cm 정도였던 뿔이 두 배는 길어졌고 날개는 1.5배까지 커졌다.

콰아아앙!

속이 뒤집히고 마력 기관이 상했지만,

그녀는 막았다.

성시연의 순수하고 붉은 마기에 상대의 검은 마기체가 소멸된 것이다. 그것은 마기 자체의 상성이었으며 성시연이 지닌 ‘마력 기관’의 힘이었다.

성시연은 분노했다.

하지만 차분했다.

그녀는 바닥에 한성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리고 일어서서 둥지 위에 선 알리스를 바라봤다.

“개 같은 년.”

성시연은 그 말을 끝으로 한 줄기 붉은빛이 되어 사라졌다. 알리스에게 날아간 것이었다. 그 사이, 사방에서 수많은 마족과 마수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알리스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성시연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둘의 충격은 일대의 모든 것을 밀어냈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타락의 광기, 마족, 마수, 둥지의 마기까지. 모든 것을 밀어냈고 둘만이 고요한 전장에 서 있었다.

까드득.

성시연은 이를 악물었다.

이 눈앞의 마족 따위가 한성의 심장을 찔렀다.

감히,

감히, 이한성을?

그 누구도 죽이지 못했던 이한성을?

성시연은 눈앞에 알리스라는 마족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끄으으으윽!”

성시연의 몸에선 붉은 마기가, 알리스의 몸에선 검은 마기가 폭사하기 시작했다. 농축된 마기의 폭풍은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거칠게 날뛰었다.

콰과과과과!

바닥은 갈려 나가고 타락의 광기마저 뒤로 물러난다.

이게 알리스의 힘이었다.

하지만 성시연은 그 힘에 맞서고 있었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말이다.

성시연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가슴의 마력 기관이 마구 뛰며 상상하지 못한 마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폭주 기관차 같았다.

하지만 그 순수하고 거대한 마기는 성시연마저 잡아먹으려 했다

- 마기에 정신이 잠식당합니다!

- 당신의 강대한 의지가 발현됩니다!

- 역사 등급 업적이 발동됩니다!

- [마기의 잠식을 짓밟은 소녀.]

- 당신은 릴리스의 마기를 이겨내었습니다. 마력 기관은 릴리스로부터 받은 기관이지만, 이제부터는 온전히 당신의 마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젠장!”

다행히 정신은 차렸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투두둑.

성시연의 머리에 세 번째 뿔이 돋아나기 시작하며 꼬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완전한 화신체가 되어간다는 뜻이었다.

- ‘화신체’화가 진행됩니다.

- 진행율 76%··· 82%··· 85%······.

- 완전한 화신체가 되면 당신은 릴리스에게 귀속됩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래선 안 된다.

한성이 지켜준 이 온전한 ‘인간성’을 버릴 순 없었다.

육체로 인한 힘은 원하지만, 정신을 빼앗겨선 안 된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저 눈앞에 보이는 알리스라는 개년을 찢어 죽일 수 있으니까. 한성의 복수, 알리스의 죽음. 성시연은 그것만 생각했다.

‘절대로 안 돼.’

- 당신이 쌓아온 업적이 발동됩니다!

- [릴리스의 화신체를 얻은 자.]

- [악의 신격에서 살아남은 자.]

- [악신의 의지를 꺾은 자.]

- 당신은 릴리스의 화신체를 얻었으며, 그녀의 신격에서 벗어났고, 그녀의 의지를 꺾었습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며 당신은 ‘사랑’이라는 의지로 그것을 해냈습니다.

-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이룰 수 있는 업적입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존재의 증명을 이뤄낸 자.]

- 당신은 릴리스의 완전한 화신체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영혼만큼은 인간임을 증명했으며 ‘사랑’은 타락하지 않음을 보였습니다.

- 당신은 온전한 [희귀] 등급의 격을 얻었습니다!

- [마왕의 길]이 개화했습니다!

그 문구가 성시연의 온몸을 휘감았을 때였다.

그녀는 한층 강해졌음을 느꼈다.

하늘에서 느껴지는 타락의 광기에 대한 압박.

앞에서 온갖 힘을 쏟아내는 알리스의 기세.

모든 게 한 단계 낮아졌다.

성시연은 눈앞에 보이는 알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쿠우우웅! 콰와와왕!

아까보다 훨씬 약한 반발력이었다.

성시연은 눈뿐만이 아니라 전신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릴리스의 현신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뿔은 세 개로 아주 기다랗게 솟아났으며 두 개의 날개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랬다.

그리고 등 뒤엔 꼬리가 펄럭였다.

“덤벼라.”

- 이히히히히.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알리스의 웃음소리였으며 수많은 화신체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그녀가 지닌 힘의 원천이며 그녀의 손발이 되어줄 화신체들.

성시연은 웃음이 나왔다.

전엔 몰랐다.

그 거대했던 ‘격’을 지녔기에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귀족급 마족, 알리스. 한성이 심장을 뚫리는 것에 이성을 잃고 달려나갈 때도 이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성시연은 방금 화신체를 완성하고 정신을 유지하면서 특성 [마왕의 길]을 개화했다. 그러면서 미완성이었던 [마력 기관]이 100%가 되었다.

그 때문인지 무언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저 알리스가.

겨우 귀족급에 불과한 알리스가.

자신과 같은 눈높이라는 것이 말이다.

저벅. 저벅.

성시연은 걸었다. 사방에서 몰려오려던 마족은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났고 마수는 낑낑거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오직 성시연과 알리스.

- 이히히······? 이이?

알리스는 점점 다가오는 성시연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감각. 그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오는 원초적인 두려움이었으며······.

······압도적인 종(種)의 격(隔)이었다.

알리스는 다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 그, 그럴 순 없어······ 이건 아니야······.

버텨야 한다. 저건 마왕이 아니다. 그저 인간에 불과한 종족이었으며 그녀는 고작 수많은 화신체 중에 하나다. 그저 ‘마력 기관’을 가진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알리스.”

성시연의 입에서 알리스의 이름이 나왔을 때,

알리스는 알 수 있었다.

- 아아······.

“꿇어라.”

그녀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완벽한 ‘지배자’의 음성이었다. 알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완벽하게 복종하고 있었다.

털썩.

알리스의 두 무릎은 다소곳이 모였다.

- 아아, 나의 마왕님.

“그래, 알리스.”

성시연은 그런 알리스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그리곤 부드러운 손으로 알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시연에게서 뿜어지는 극도로 순수한 마기에 알리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나의 주인님.

순간, 성시연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의 손은 알리스의 턱으로 향했다. 그리곤 싸늘한 살기와 함께 알리스의 턱은 하늘로 돌아갔다.

두드득!

털썩.

알리스는 그대로 쓰러졌다.

목은 완전히 부러졌고 그녀의 마기는 꺼졌다.

성시연은 알리스의 머리를 밟아 터뜨렸다.

콰직.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

성시연은 바닥에 스며드는 진액에 대고 말했다.

*  *  *

한성은 당황했다.

한성이 아는 알리스는 이런 기습 공격 따윈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알리스라도 격을 지닌 한성을 단 한 번에 죽일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 있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 회차와는 무언가 달라진 것인가.

하지만 그때.

한성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문구 덕분이었다.

- 알 수 없는 두 개의 이명과 하나의 수식언을 지닌 신격이 당신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강한 호승심과 호감을 보입니다.

- 강제 퀘스트 발동!

- [단 한 번의 승리]

- 단 한 번도 져 보지 못한 ‘전승자’에게 승리를 빼앗아라. 그는 승리자이며, 또 승리자다. 그에게 승리를 빼앗고 패배를 알려줘야 한다.

- 난이도 : SSS등급

한성은 그 시스템 문구를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나왔다.

이 공간 안에서라면 이 세계관에서 가장 강한 신격.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으며 최상위 신격마저 이 신격과는 승부를 꺼린다는 말도 안 되는 사기 신격.

“안녕하십니까.”

한성은 잠시 쉬었다 입을 열었다.

- ······.

“‘행운의 여신의 팔을 자른 자’이며”

- 날 아는군.

머리를 울리는 소리. 그의 격은 한성은 속이 진탕되고 손발에 땀이 흘렀다.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는 강대한 신격.

“승리의 칼을 부러뜨린 자.”

이 신격은 두 개의 이명을 지녔고.

단 하나의 수식언을 가진 신격이다.

“그리고 ‘진실 너머의 어둠을 보는 자’.”

- 으하하하.

한성은 이 게임에 처음 갇혔을 때 생각했다.

100%의 확률.

즉, 완벽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엇이 있을까.

그 어떤 걸 얻고, 어떻게 강해지더라도, 어쩔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무리 고인물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

그것은 바로.

‘이 신격을 만났을 때.’

온전히 [운]으로 결정되는 승부.

인간은 물론 다른 신격도 범접할 수 없는 [운]을 가지고 ‘행운의 여신’의 팔을 잘랐으며 ‘승리의 칼’을 부러뜨렸다. 그는 진실 너머의 어둠을 보는 신격.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만나야 하는 신격이다.

그렇기에 보상은 엄청나다.

첫 번째는 [한 번의 온전한 기회]

게임에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 아무런 패널티 없이 육체가 죽기 직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시간] 관련 최상위 특전.

그것은 이 게임에 갇힌 한성에게 최고의 보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신격이 가진 업적 중 하나.’

[역사]에서 [전설]에 이르는 업적 중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 수많은 신격에게 패배를 안기고 단 한 번도 져 본 적 없는 신격의 업적을 말이다.

한성은 [운]에 올인했다.

그게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그것을 확인해야 할 때였다.

‘운수 좋은 날이군.’

한성은 오늘 이 상황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건 말도 안 될 정도로 [운]이 좋은 상황이었다.

“그럼 승부를 시작하죠.”

한성은 신격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마왕의 길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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