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스 사냥을 시작하다. >
[비스트 마스터]라는 이명을 지닌 ‘이지훈’.
말 그대로 ‘야수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영웅이다. 하지만 온전한 격에 오른 그의 지배력은 ‘야수’에 한정되지만은 않았다.
쉽지 않지만 몬스터 혹은 마수. 그리고 몇의 마족도 지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무적의 능력은 아니다. 마족은 하나에서 둘. 다수의 마수나 몬스터는 일시적으로 지배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 이 정도면 되겠지?”
이명과는 다르게 아주 어린 모습을 한 그는 31번 구역 하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자그마한 [하늘 섬]은 잔디와 나무. 거기에 정자까지 마련되어 있는 안락한 이동 수단이다. 중앙엔 작은 연못까지 있어서 가끔 낚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한성이라는 31번 구역주를 낚기 위해 [타락의 광기]를 이곳으로 이끌고 왔다.
미리 홀린 상급 마족을 통해야 하는 꽤 피곤한 작업이었지만, 순수한 [마력 기관]을 지닌 이가 31번 구역에 있어서 [타락의 광기]를 쉽게 끌고 왔다.
그래도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
하지만 생각 이상의 재미있는 장면을 봤기에 후회는 없었다. 이한성의 연인으로 보이는 그녀가 보여주는 ‘업적 전투’는 그만큼 대단했다.
업적이란,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준다.
“역시 흑연의 차녀인가. 아쉽군, 아쉬워. 화신체만 아니었다면······ 괜찮은 인재로 성장했을 텐데.”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설령 이곳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녀는 화신체. 그것도 이토록 순수한 마력 기관을 지닌 존재라면, 인간이라 볼 수 없다.
그녀는 마족의 일부였고 죽어야만 한다.
그것이 양산박의 의지니까.
“이놈들은 나한테 이런 거나 시키고 지들끼리 사냥이나 가? 후. 다시 만나기만 해 봐라.”
이 짓을 시킨 두 놈은 동쪽으로 이동했다. 무리에서 떨어진 [블랙 바실리스크]를 발견했다는 보고 때문이다.
이지훈은 입맛을 다셨다.
잘만 한다면 바실리스크 한 마리를 길들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뭐 어쩔 수 없다. 어차피 그것은 무기 재료가 되어야 할 운명이었으니까.
똑똑.
“응?”
이지훈은 이상한 소리에 주변을 돌아봤다.
이곳에 누군가 있을 리가 없다.
이 작은 하늘 섬은 은폐, 방어, 인지 방해 등의 결계가 잔뜩 붙어 있기에, 그 누구도 쉽게 알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이 높은 곳에 사람이?
똑똑.
이지훈은 좌우로 돌려 아무도 없자,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그곳엔 무언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흐억?”
“안녕?”
“너, 뭐야.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이한성.”
그는 바로 그들의 목표인 이한성이었다.
“너 맞지.”
“뭐, 뭐가?”
“저 더러운 걸 이곳으로 불러들인 사람이.”
“······아, 아, 아닌데?”
“에이, 맞는데?”
“아, 아니라고!”
“말은 왜 더듬어?”
“아, 아, 아닌······ 야!”
이한성은 성시연을 구하는 것보다 이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비스트 마스터 이지훈.
그는 어린 모습이었다. 저래 보여도 50년은 산 중년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 모습만큼 정신 연령도 낮았다. 그게 그의 힘의 원천인 ‘순수함’이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다.
“누가 시켰냐.”
“아무도 안 시켰거든!”
“아하, 그럼 하긴 했다는 거지?”
“······.”
말을 안 하겠다는 듯 입을 앙 다물었다.
하지만 한성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금 한창 바쁜 아이레스는 아닐 거고. 인재 찾는 거 좋아하는 이인주나 권용덕일까?”
“허, 헙!?”
“맞구나. 그놈들은 또 너 시키고 도망갔지? 바쁘다고 사냥하러 갔겠네. 안 그래? 비스트 마스터 이지훈.”
“······너, 너 누구야.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지?”
“훗.”
한성은 이지훈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속으론 벌벌 떨고 있었다. 이 미친놈은 어린아이 같은데 미치도록 살벌한 놈이다. 비스트 마스터란 이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한성이 지금 아무리 격을 얻었다고 해도 양산박의 인물에 비하면 발끝도 못 따라간다는 거다.
‘게다가 시간을 더 끌면 위험하다.’
검은 구름은 31번 구역에 닿았다. 순수한 마기로 보건데 성시연은 살아있다. 하지만 시간을 더 끌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지훈은 눈동자를 사방으로 돌리다가 무언가 깨달았다.
이렇게 자신을 잘 알고 양산박에 대해 해박한 사람은 단 한 명이다. 그것은 바로 산장지기. 게다가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외모와 격이라면 몇 년 전 사라졌던 전(前) 산장지기가 분명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해가 되긴 한다.
양산박은 아주 폐쇄적인 곳이다. 이지훈이 아는 사람도 이인주와 권용덕 정도가 전부고 나머지는 얼굴만 아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 앞에 ‘이한성 후보생’이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은 이쪽 셋을 아주 잘 안다는 듯 말했다. 게다가 ‘양산박’에서 제공하는 ‘하늘 섬’을 이렇게 쉽게 찾아낸 것도 그렇고.
“혹시······ 산장지기십니까?”
“이제 알았구나. 지훈아.”
“아하!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쩌다가······?”
아주 많은 질문이 함축되어 있다.
이지훈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한성도 ‘알 바 아니다.’라고 말하면 편하다. 전 산장지기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넘어갈 수 없다.
“멍청한 놈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개고생을 하는데! 지금 산장지기인 ‘주정뱅이 혹부리’는 맨날 술이나 처먹고 해 놓으라는 하늘 섬 보수는 계속 미루기만 하고!”
“아, 아니. 그건······.”
양산박의 인물 중에서도 최근에 함께한 이들만 아는 게 현재 산장지기의 별명이다.
게다가 그는 ‘아, 귀찮아. 보수는 내일!’이라고 외치면서 술을 먹는 게 일상이지 않은가. 이지훈은 머릿속에서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완전히 믿기 힘들다.
“너희는 맨날 이딴 식으로 하늘 섬을 사용하면서도 딱히 실적도 없고. 내가 몇 년을 투자해서 ‘블랙 키리윰’ 광산을 겨우 찾아서 ‘합법적’으로 채굴하려 작업하는데, 훼방을 놔?”
이지훈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이한성이라는 인물.
‘검은 땅의 아이’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이전의 정보는 전무하며 17살이라는 나이에 전혀 맞지 않는 굉장한 무력과 업적을 보유했다.
그런 정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굳이 이 구역을 찍어서 구역주로 왔다는 것까지. 전 산장지기의 외모야 어차피 중요한 게 아니다.
“헉. 정말이십니까? 그럼 아카데미에 ‘검은 땅의 아이’로 들어가 이곳에 구역주가 된 이유가 바로······?”
“그래, 그런데 새삥이었던 이인주랑 권용덕이 벌써 신입이니 뭐니 하면서 이런 꼰대 짓을 벌여? 그러니 내가 속이 다 터지지.”
“아아. 그랬던 거군요!”
“당연하지. 릴리스의 신격을 삼킨다는 게 후보생? 니들도 못하는 걸 일개 후보생이 어떻게 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야지.”
거의 넘어왔다.
한성은 쐐기를 박았다.
“내가 곧 양산박으로 찾아갈 테니까. 제페토한테 블랙 키리윰 가져간다고 [대단위 광학 주포] 제작이나 빨리 진행하고 있으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이지훈은 그 말을 들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양산박에서 제페토가 만들고 있는 [대단위 광학 주포]는 양산박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극소수인 정보다.
당연히 외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
[격]이 전 산장지기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낮았지만, 그라면 그것도 이해가 간다.
그는 [도플갱어 킹]이었으니까.
그 누구도 그의 본모습을 모르고, [격]마저 숨길 수 있는 존재. 몇 년 전, 새 산장지기 [두억시니]를 세워놓고 무언가를 찾는다고 나가버렸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타락의 광기 끌고 왔던 [게헨나의 마석] 있지?”
“헛, 그것까지······.”
“주고 가.”
“네? 아니, 그건······.”
“쓰읍.”
“······네에.”
이지훈의 어깨가 축 처졌다.
[게헨나의 마석]은 이지훈이 마족을 길들일 때 사용하는 것으로, [전설] 등급에 드는 최상급의 아이템. 하지만 지금은 온전히 타락의 광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다.
이지훈은 아깝긴 했지만, 어차피 이미 90% 이상 소모된 상태였다. 어차피 이 작업이 끝나면 재활용도 안 되는 물건이었기에 그냥 넘겼다.
“그럼 수고. 양산박 놈들한테 이곳에는 접근 좀 하지 말라고 해. 그러다 내 계획을 방해하면 다 죽여버린다고.”
“알겠습니닷! 그럼 저는 이만.”
이지훈은 하늘 섬을 타고 거의 도망치듯 날아갔다. 하늘 끝으로 날아간 그는 순식간에 점으로 변해 사라졌다.
“하아. 미친.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도플갱어 킹은 지금 아마존에 있을 거다. 앞으로 5년은 양산박으로 돌아올 예정이 없으니, 그 전까지는 들킬 일은 없다.
그의 계획이 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여튼, 양산박 놈들은 가만히 두면 안 돼.”
한성은 전 회차에 양산박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감히 한성을 시험하고 신입으로 넣으려고? 지금 당장은 약하기에 이렇게 속여야 하지만, 몇 년만 지나면 한성의 손에 떨어질 거다.
그렇게 되면 이놈들을 죽도록 갈궈서 영혼 한 톨까지 부려먹어줘야겠다.
한성은 이지훈이 날아간 곳으로 ‘엿’ 하나를 날려주곤 아래를 바라봤다.
“젠장.”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다.
한성은 아래로 떨어지다시피 내려갔다.
* * *
성시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이한성이었다.
그와 처음 만났던 카지노.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고 그곳에서 살아남았을 때······ 그때부터였을 거다. 이상하게 못생겼던 그에게 호감이 생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죽이고 싶다는 마음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묘한 ‘감정’이라는 게 느껴졌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그것은 ‘관심’이라는 것이었다.
이후, 안혜림과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매스꺼운 ‘질투’라는 것도 경험했고 강원도 게이트에서 그의 강인함에 ‘존경’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릴리스의 신격에 육체가 변화했을 때.
그런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줬을 때.
성시연은 알았다.
‘나는 이한성을······.’
“뭐해. 성시연.”
“좋으······ 하드으으?”
“뭐라고?”
성시연은 그제야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엔 이한성의 널찍한 등이 보였고 전신을 두드리던 고통 또한 사라진 상태였다.
“이······ 한성?”
“뭐야. 벌써 포기하고 있었던 거야?”
강대한 그의 격은 검고 더러운 타락의 광기와 맞서고 있었다. 세상이 부서질 듯 요동치는데, 그와 그녀 둘만은 고요했다.
“······왜 이렇게 늦었냐.”
“미안. 해결할 일이 있었어.”
“······나쁜 새끼.”
“흐흐흐. 근데 고생 좀 더 해줘야겠어.”
이한성은 성시연에게 손을 뻗었다. 성시연은 손을 잡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나랑 갈래?”
“어딜.”
“사냥하러.”
“뭘?”
“저거랑. 또 하나의 나쁜 놈.”
“너 하는 거 봐서.”
“······잘할게.”
“흥.”
성시연은 고개를 스윽 돌리더니 은근슬쩍 한성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한성은 미소를 지으며 공간 조종을 사용했다.
휘리릭.
팟.
둘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신성철은 칼과 안톤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신성철이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었고 이한성이나 성시연과 의리라고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힘듭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톤이 확고하게 말했고, 칼은 살짝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신성철은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지금도 성시연은 ‘타락의 광기’와 맞서고 있을 터였으니까. 그리고 절대 오래 버틸 수 없을 거다. 그녀의 격과 업적은 아직 나약했으니까.
신성철은 몇 번이나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게 없었다. 격과 업적은 이 검은 땅에서 생명과도 같은 것. 당장 필요한 것도 없는 그들의 무게 추를 기울일 여지는 없었다.
그때, 밖에서 하얀이와 헤일렌이 들어왔다.
“작전이 변경되었습니다.”
헤일렌의 말이었다.
신성철, 칼, 안톤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이한성님과 성시연님은, 지금부터 알리스 사냥을 시작합니다.”
“······그게 무슨?”
안톤이 물었다. 이미 타락의 광기가 이 구역을 덮쳤을 때부터, 그 작전은 한없이 미뤄지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냥을 한다니.
“오실 분만 오십시오.”
“······?”
“늦으면 전투에 참여할 기회도 없을 테니까요.”
헤일렌은 그렇게 말하고 하얀이와 함께 가게를 나갔다.
피자 가게 안에 있던 세 명은 서로를 바라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었다.
이한성 그놈은 ‘또라이’라는 것이다.
< 알리스 사냥을 시작하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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