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땅에 온 이유.(3권 끝) >
두 개의 송곳니가 광대까지 올라온 오크 문신을 새긴 거한이 1리터 잔에 따른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소리쳤다.
“크으, 맛은 좋은데 어디서 더러운 냄새가 난다.”
“코가 다 썩겠어. 크크큭.”
“어이, 주인장! 여기 인간이 아니라도 들어올 수 있나? 밥맛 떨어지게.”
그들은 [블랙 오크]라는 용병 단원이다. 검은 땅에서 주로 활동하며 블랙 오크가 추앙하는 악의 신격 [오벨리스]에 종속된 이들.
그들은 검은 땅에서 가장 많은 [종속자]들이 포함된 거대 용병단이다. 게다가 개개인의 무력도 상당해서 그 누구도 쉽게 건들 수 없는 이들.
“이 새끼들이!”
“참으세요. 성시연님.”
“그래도 저건······!”
“한성님이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싸우더라도 대장이 있을 때 하는 게 맞습니다.”
한성은 벌써 5일째 의식이 없다.
“젠장할.”
성시연은 밥을 먹으러 온 것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건 악의와 살기. 그리고 이러한 모욕뿐이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큰 싸움이 나지 않은 것은 신성철과 한명수가 나서서 말렸기 때문이며 아르헨이라는 인물이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봤기 때문이다.
“크크큭. 그래도 반반한 게, 깔려서 살려달라 애원하면······”
쾅!
“이 미친 새끼가!”
성시연은 테이블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몸에서 마기가 뿜어지며 살기가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이번 전투에서 희귀 등급의 업적을 몇 개 쌓으며 한층 강해졌다. 게다가 저들은 악의 신격에 종속되어 마력과 마기가 섞여 있는 놈들.
같은 마기를 쓰면 성시연이 유리하다.
오랜 격을 쌓아온 놈들이기에 이길 순 없어도 한 방 먹여 주는 건 가능했다.
“뭐? 미친 새끼?”
“씨발. 잘됐네. 한 판 붙자!”
“크크큭. 와라. 개 같은 년아.”
블랙 오크 용병단이 우르르 일어났다.
순식간에 피자집 안은 살기로 가득 찼으며, 마기와 마력이 섞여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만하십시오.”
신성철 또한 마력을 일으켰다. 순수한 마력이었으며 [헤라클레스]에게 받은 영웅의 기세가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미 폭탄은 터지기 직전.
블랙 오크 용병 단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을 보며 피자집 주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에휴. 지금부터 파손되는 기물은 이 싸움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청구할 것이며, 앞으로 일어나는 싸움은 무기 없이 맨손으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쩔 수 없는 사망자는 있을 수 있지만, 고의로 죽이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말에 블랙 오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기를 내려놓으며 목 관절을 풀었다.
그러니 당황한 것은 성시연이었다.
왜소하고 작은 키의 노인일 뿐이다. 머리는 하얗게 세고 앙상한 팔뚝은 피자와 맥주는 드는 것도 힘이 들어 보이는 노인 말이다.
그런데 모두가 주인의 말에 따른다.
그가 성시연에게 물었다.
“참여하시겠습니까?”
“참으셔야 합니다!”
신성철이 그렇게 외쳤다.
성시연은 화가 나도 참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정도 참을성이 없었다면 암살자가 되지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릴리스의 화신체가 된 이후, 성격의 변화가 있었다.
속에서 뜨거운 열이 올라오고 손가락은 당장이라도 저들의 목에 박아 파내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밤새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이곳은 한성의 땅이었으며, 이러한 것들은 성시연 스스로 이겨내야 할 것들이다.
“······참겠······.”
성시연이 참겠다고 입을 여는 순간, 그녀의 어깨에 익숙한 손이 올라왔다.
“참여합니다.”
일순 일대의 공기가 변했다.
그 한마디로 모든 이들이 뿜어내던 기세를 감춰야 했다.
성시연이 돌아봤을 땐, 이한성이 서 있었다.
당당한 [격]을 가지고 말이다.
“결투장을 엽니다.”
주인이 씨익 웃으며 버튼 하나를 누르자 홀 중앙엔 큼지막한 결계가 생성되었다. 3명씩 총 6명 정도는 무리 없이 들어가 싸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인이 입을 열었다.
“이 결계는 가게가 파괴되는 것을 막고, 무단으로 누군가 이탈하는 것을 막습니다. 승부가 날 때까지 결계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왔다.
[고대 스파르탄의 결투장]
총 6명까지 들어가는 이 결계는 일정한 ‘규칙’ 안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권능이다.
두 결투자가 합의 하에 진입하게 되면 승부가 나거나 주인이 해체하지 않으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결계.
제 31번 구역 [오늘의 피자]의 주인인 ‘칼’. 그가 지닌 [유물]의 고유 능력이다. 만들어진 반쪽짜리 보물이 아닌 진정한 [보물]의 힘이었다.
주인은 잠시 쉬더니 입을 열었다.
“양쪽. 참여하시겠습니까?”
“전 참여합니다. 저랑 성시연 둘이 들어가죠.”
한성의 말에 블랙 오크 용병 단원은 피식 웃었다.
그가 보기에 한성은 B등급도 안 되는 후보생일 뿐이다.
이곳의 주인?
배경이 좋았을 거다.
신격을 삼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블랙 오크는 믿지 않았고 성시연 일행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전투에 참여했던 소수의 영웅이 술에 취해 지껄이는 과장된 영웅담일 뿐이다.
“저희도 참여합니다.”
용병단 대장은 안 보인다. 몇몇 용병 단원만 보일 뿐. 그중에서 성시연에게 가장 큰 적개심을 보였던 단원 둘이 손을 들었다.
넷은 결투장에 진입했다.
* * *
신성철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엔 말리지 않는다. 이곳의 주인은 한성이었고 이런 갈등은 한성이 잡아야 맞는 거다.
저쪽 단원 두 명은 S등급에 이른 용병이다. 비록 종속으로 얻은 힘이기에 빌려온 반쪽짜리 [격]이었지만, 그들이 오랜 시간 이곳에서 쌓아온 업적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성철은 한성을 믿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 있으신가 보네요.”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헨이었다. 그 옆으로 피터라는 사람도 보인다.
“오랜만입니다.”
“뭐, 직접 본 적은 거의 없지만.”
“그렇죠······ 그것보다 넘어진 곳은 괜찮으세요?”
아르헨은 한성이 쓰러질 때 그를 받아주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성시연이 그런 걸 보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녀는 몸을 날려 아르헨을 내팽개치며 직접 한성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방심하고 있던 아르헨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고 말이다.
“······후우.”
아르헨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 보였다. 마치 만화처럼.
그 사이, 결투는 시작되었다.
블랙 오크의 단원은 원래부터 전투를 좋아하고 강하다. 그게 ‘전투에 미친 신격’에 종속된 이유이며, 신격에 종속되면서 그런 성향이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달려오기도 전.
화악.
한성은 [격]을 방출했다.
쿠우웅.
가게 전체가 흔들린다. 이 결계는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성의 [격]은 그 결계마저 비집고 나와 가게 전체를 마비시켰다.
그의 기세는 적을 압박했다.
능력치로 따지면 B등급 이하.
격이 있으니 S등급이 된 거다.
하지만 이미 한성은 등급의 위계 따위는 멀찍이 날려버린 후였다.
A등급과 S등급을 나누는 가장 큰 요소는 [격]이다. 그것이 계약이나 종속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반쪽. 스스로의 업적으로 이룬 것이라면 완연한 [격]이 된다.
한성은 능력치도 부족했고 계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격은 완연한 S등급 이상으로 올랐다. 그것은 한성이 지닌 업적의 힘이며 그 업적은 [악의 신격]에 상성의 우위를 갖는다.
털썩.
용병 둘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기어이 버티려 했지만, 무릎은 땅에 닿았다.
한성은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상체는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결국, 둘의 머리는 바닥에 닿았다.
쿵.
“칼, 내가 이긴 거 맞죠?”
“······네, 승리하였습니다. 블랙 오크 단원 이름이······ 하여튼 두 명은 전투 의지를 상실하였으며 전투 능력까지 무력화되었습니다. 이한성······ 구역주가 승리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성은 격을 숨겼고 가게의 결계는 풀어졌다.
가게 안은 정적이 흘렀다.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그저 과장된 소문인 줄 알았고, 영상이 있다고 떠드는 것도 가짜인 줄 알았다. 이곳에서 ‘튜브’를 보는 이도 거의 없으니, 확인할 길도 없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칼의 반응이었다.
“······칼이 인정했다니.”
아르헨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신성철도 같이 놀란 표정이다.
그가 직접 ‘구역주’라고 했다면, 그 사실에 반박하는 이들은 없을 거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그 모습에 하얀이가 헤일렌을 바라봤고 헤일렌은 신성철을 바라봤다. 그는 그런 눈빛이 부담스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칼은 이곳 치안대 대장입니다.”
“······대장이요?”
“네, 피자집은 취미고요. 아니, 이게 본업이라고 해야 하나.”
“······치안대 대장이면 대단한 건가요?”
“그렇죠. 이 구역엔 마땅한 행정 시설이 없어요······ 아니, 쉽게 말하면 이 구역에서 가장 강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는 하얀이의 시선에 가장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했다.
“등급으로 따지면 SS등급. 물론, 검은 땅에서야 등급이라는 게 무의미하겠지만요······.”
“왜 무의미한 건가요오?”
옆에 있던 하얀이가 물었다.
요즘 점점 발음이 좋아지고 어려운 단어까지 사용하는 하얀이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건 신성철이었다. 이 땅에 대한 경험이 많았기에 헤일렌이 검색할 수도 없는 직접적인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S등급이라는 건 계약이나 종속. 혹은 업적으로 격을 이룬 사람이라는 건데······ 아, 쉽게 말하자면.”
신성철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자 옆에 있던 아르헨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쓰러진 둘은 나쁜 놈과 계약한 나쁜 놈이지?”
“우웅? 그래요?”
“그래. 그런데 너희 아빠는? 나쁜 놈을 잘 잡는 착한 놈인 거야.”
“아하! 아빠 착한 놈.”
“놈······은 아니고. 하여튼 그래서 더욱 쉽게 잡는다는 거지. 결국, 너희 아빠는 이 땅에 있는 나쁜 놈들에게 아주 압도적인 상성을 지녔다는 거야. 상성은 아니?”
“네, 알아요!”
작고 귀여운 하얀이가 알아듣는 듯하자 아르헨은 뿌듯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뿌듯해 보였다.
“그거, 물이 불을 이기는 거. [상성 자동 대칭 시스템]을 구성할 때 배웠어요!”
“······어린데 그걸 벌써 배웠어?”
“네! 아빠가 쉬운 거라고 알려주셨는데.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ㅡ
아르헨은 못 믿겠다는 눈치로 하얀이와 헤일렌을 번갈아 봤다. 그러자 헤일렌이 하얀이에게 말했다.
“아! 하얀아. 지금 인간 폼이라 몰라보고 있나 봐.”
“아차. 아빠가 반 인간 폼 유지하는 거 연습하라고 했는데.”
하얀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배에 힘을 주는 듯 주먹을 쥐고 끙끙거렸다.
뿅!
하얀이의 머리에서 두 개의 하얀 뿔이 나왔다.
“앗, 옷 찢어지니까 꼬리는 나중에.”
“······?”
“저 드래고니안이에요.”
“······!?”
“그때 싸울 때, 반 인간 폼으로 싸웠는뎅.”
“······.”
아르헨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옆에 있던 피터가 슬쩍 손을 뻗어 아르헨을 받았다.
툭.
“······왜 그러지.”
“······보통 이 반응이지 않을까.”
옆에서 신성철이 알려줬다.
아카데미 있을 때는 겪지 못한 반응이었기에 하얀이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존재가 이 세계에서. 특히, 검은 땅에서 얼마나 무섭고 경이로운 존재인지.
* * *
우우웅!
중앙의 게이트에서 밝은 빛이 뿜어진다.
그리고 곧이어 [제현 PMC]라는 로고가 박힌 컨테이너와 10명 정도의 사람이 나타났다.
한성은 가장 앞에 있던 길이현을 반갑게 맞이했다.
“반갑네요. 며칠 안 지났지만요.”
“반갑습니다. 원하셨던 물건은 다 챙겨왔습니다.”
뒤 컨테이너 이야기다.
한성은 웃으며 말했다.
“인부들은 오늘 쉬라고 하고. 길이현 상무님이랑 이곳 책임자······.”
“접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진현이라고 합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능력은 있는 사람인지 그의 눈에선 자신감이 넘쳤고 길이현도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성은 그 둘과 성시연까지 총 넷이서 움직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며칠 전 마수들을 막은 방어벽 위였다.
“여깁니다.”
방어벽 앞에 있던 마수와 마족의 사체는 모두 사라진 후다.
영웅이나 용병 등의 직접 싸우는 사람들은 마족의 [검은 마력석]만 채취하거나 그것들의 무기 혹은 장신구 정도만 채취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전장에 널브러진 사체를 치우는 대가로 사체의 부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도 많았기에 사체는 빠르게 정리된다.
“우리가 작업할 곳은 거깁니다.”
한성이 가리킨 곳은 계곡을 감싸는 두 산맥 중 하나. 희미하지만 나무, 풀은 물론 돌까지 마기에 오염된 상태였다. 즉, 마계화가 진행 중이라는 거다.
죽음의 산맥이며, 사람은 절대로 진입해선 안 되는 숲.
“저기에 [블랙키리윰]이라는 광물이 잠들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블랙키리윰]
마계 안에 있는 광물. 마족이 사용하는 검이나 장신구가 비싼 값에 팔리는 이유이며 강철 절반의 무게, 8배의 강도, 5배의 마력 전도율을 지닌 금속.
한성이 이 지역을 원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 그리고 그거 아시죠?”
“······?”
“이 앞으로는 모두 마계의 땅이라는 거.”
안전한 구역은 31번 구역 뒤로 펼쳐져 있다. 이 앞으로는 모두 마계화가 진행 중인 땅이다.
“······네. 알죠.”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거죠.”
“······.”
한성은 검은 하늘과 산맥의 지평선을 바라봤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며 악신(惡神)의 영향력을 줄이는 일. 수많은 [보물]과 무한한 [자원]의 보고를 간직한 검은 땅의 선점.
한성은 그 선봉장에 설 것이다.
< 검은 땅에 온 이유.(3권 끝)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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