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 사냥꾼. >
처음엔 그저 데뷔 무대로 만들 생각이었다.
적은 많지만, 아군은 강했다.
모두 [마기 저항]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성이 만든 [수호의 위성]과 [마력 충전석]까지 지니고 있으니 쉽게 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방어벽 아래로 내려가 싸웠다.
이 마족들이 계속 벽 앞에서 싸우게 되면 방어벽 위에 있는 영웅들도 마기에 젖어 버릴 거다. 그럴 바에 저항을 지닌 일행이 앞을 막는 게 낫다.
그리고 이건 한성의 ‘데뷔전’이기도 했다.
검은 땅에서의 쓸데없는 기 싸움.
한성에 대한 불신.
그런 것 따위를 한 번에 날려줄 데뷔전.
한성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몸이 기억하는 검술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마력이 검술에 반응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대기가 진동했으며, 마수의 목을 잘랐다. 마족이 달려들 때면 희미한 [격]의 진동으로 몸통을 갈랐다.
옆에 있던 신성철이나 한명수도 놀랄 정도였다.
마법은 곧장 잘 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검술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마법과 검을 동시에 잘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하얀이었다.
“형님, 저기 대장 따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게 대단한 정도냐. 역시 용혈은 용혈이야.”
하얀이는 아장아장 걷는 듯하면서 일행의 속도를 잘 따라왔고 손을 휘적거리면 [가드니스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방벽을 [부유/조종]의 힘으로 휘둘러 마수들을 짓이겨 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무한대로 생성되는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을 기반으로 [역행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한성이 쓰는 [신격을 사냥하는 마법]이 아닌.
드래곤이 원류인 [언령] 마법이다.
“터져라!”
콰과과광!
작은 한 마디는 수십의 마수를 터뜨렸고.
“쫙~ 타올라라!”
화르르륵!
장난스러운 한 마디는 수백의 마족을 태워버렸다.
“아닛! 어디서 아빠를! 저리 갓!”
한성이 기습을 당할 때, 하얀이가 소리치면 기습하려 했던 마족이 수백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가기도 했다.
옆에 있던 헤일렌이라는 구울도 만만치 않았다. 마법과 검술은 아직 어색했지만, 어마어마한 마력을 기반으로 그냥 때려 부수고 있었다.
“무시무시 하구만.”
신성철 자신도 방망이 하나로 수백의 마족을 때려잡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한명수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 뒤에 대장 애인분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거의 마왕인 줄 알았다.”
“······원래 인간이었다는 게 안 믿깁니다.”
“······나도. 아직도 못 믿겠다.”
스걱.
5m에 이르는 마기 블레이드가 마족의 목을 벴다. A등급의 힘을 보유한 마족이었지만, 성시연의 순수한 마기엔 저항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상성의 우위였다.
“으하하핫. 다 죽어. 죽어! 죽어!”
콰아앙! 콰아앙!
스걱. 콰아아아!
원래 암살자였다고 했지만, 그들이 보기엔 진정한 마왕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아니, 화신체가 되면서 원래의 인격은 사라진 것인가.
그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후후후. 역시 뼈째 가르는 느낌이 죽인다니까.”
이게 원래 성시연의 모습이었으니까.
조용한 ‘암살’에서 화려한 ‘학살’로 변한 느낌은 없지 않아 있긴 했다.
그런데 그때.
정면에서 거대한 마기가 느껴졌다. 언제 코앞까지 다가왔는지, 그걸 몰랐다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세였다.
한성은 가장 앞에서 일행을 멈춰 세웠다.
“······역시 쉽게 끝낼 줄을 모르네.”
이 빌어먹을 게임은 항상 그랬다.
한성은 눈앞에 떠오른 문구를 바라봤다.
- [긴급 퀘스트 : 릴리스의 화신체를 막아라.]
- 악의 신격, 릴리스는 신격 일부를 잃었습니다. 그것을 되찾기 위해선 신격을 불태운 플레이어 ‘이한성’을 죽여야 합니다. 그녀는 당신이 이곳에 올 거라는 것을 알고 휘하 귀족급 마족에게 격을 부여해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성공 시 : 역사 등급 업적.
- 실패 시 : 화신체 성시연의 죽음, 주변 도시 5개의 멸망, 플레이어의 죽음.
- 해당 퀘스트는 플레이어의 [전설을 걷는 자]에 의해 상향되었습니다.
- 플레이어의 [운]에 의해 보상의 폭이 대폭 증가합니다.
한성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끝마쳤다.
“모두 방어벽 위로 올라가세요.”
릴리스의 화신체는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성시연이 변했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아름다운 여성체에 뿔과 날개가 있다는 것은 비슷했다.
붉게 차오른 눈동자.
가만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사지가 떨리는 압박감.
아직 한성이 감당할 수 없는 [격]이다.
“신성철님”
“네, 대장님.”
“이곳은 제가 맡습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방해만 될 겁니다.”
저건 신성철도 못 이긴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거대한 격을 지녔으니까.
신성철은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그가 릴리스의 신격을 태운 걸 목격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성은 성시연을 바라봤다.
“가 있어. 지금의 너는 방해만 될 거야.”
성시연은 그 말에 뭔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알았다는 듯 끄덕였다. 자신도 아는 거다. 지금 저 격에 닿으면 성시연은 릴리스의 충실한 화신체가 된다는 걸.
그리고 [피의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이게 끝날 때까지 지원은 없을 거다. 다행인 건 마족들도 이성이 없이 본능에만 움직인다는 거다.
“뒤를 지켜주세요.”
한성은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원래 이 땅에서 첫 번째 사냥감은 릴리스가 아니었다. 한성과 상성이 좋은 신격을 먼저 먹어 치워버리고, 상승한 격으로 릴리스를 잡으려 했다.
‘직접 찾아왔다면 또 말이 다르지.’
사냥감이 찾아왔다. 자신을 먹어 달라고, 잘근잘근 씹어 먹으라며 제 발로 걸어온 거다.
[찾았다!]
귀족급 마족. 이제는 화신체가 된 그녀는 흰자 없는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며 한성에게 소리쳤다.
[격]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는 한성을 뒤로 밀치고 주변의 마수를 짓이겼다. 방어벽도 멀쩡할 순 없었다. 값싸게 만든 돌벽이었으니까.
- 감당할 수 없는 [격]에 노출되었습니다.
- 플레이어의 희미한 [격]이 흔들립니다.
-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30% 하락합니다.
-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자리 잡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성시연의 몸에 깃들었던 [격]보다 컸다. 그때가 손가락 하나 정도였다면, 이번엔 발목 하나랄까. 같은 신격에게는 정말 별거 아닌 차이였지만, 한성에게는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하지만 뒤로 무를 수 없다.
[긴급 퀘스트]라는 것은 도망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저 실패 시의 패널티는 한성이 죽을 때도 발동되지만, 도망칠 때도 발동된다.
[나의 격을 태워버린 놈이구나!]
남성과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섞여 있는 듯,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그 소리만으로 다시 한 번 마수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한성도 버티기 힘들다.
그 정도고 거대한 격.
하지만 한성에겐 업적이라는 게 있었다.
- 당신의 [전설] 등급 업적이 반응합니다.
- [대악마의 아내, 릴리스의 신격을 불사른 자.]
- 당신은 이미 릴리스의 신격을 사냥한 전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녀가 당신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한성에겐 [관종의 삶]이 있다.
- 100만의 사람이 당신에게 집중합니다.
- 120만의 관심이 당신에게 힘을 전달합니다.
- 150만의 사람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 당신의 능력치가 200%로 상승합니다.
- 당신의 희미한 격이 200%로 상승합니다.
- 당신의 존재력이 200%로 상승합니다.
당장 한성이 견딜 수 있는 최대치의 버프였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힘이 고양감을 이끌었다.
단순히 능력치 200%가 아니다.
격이 두 배로 상승하고 존재력이 상승했다는 건, 홀로 온전한 [희귀] 등급의 격에 이르렀다는 뜻이고 [전설을 걷는 자]의 자격으로 미약한 [역사] 등급의 격에 발을 걸쳤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막혀 있던 호흡이 텄다.
“후웁.”
거대한 압박을 한층 떨쳐냈다는 증거.
“아직도.”
한성은 릴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마기가 한성을 노린다. 전보다 배는 진하고 붉은 그녀의 마기는 바닥을 처참하게 부수고 공간을 진동시키며 한성에게 쇄도했다.
- 당신의 [역사] 등급 업적이 반응합니다.
- [마기를 태우는 천벌(天伐)]
- 당신은 마기를 태워버리는 [천벌]이 소유자입니다. [마기 저항]과 융합되어 강력한 마기 반발을 일으킵니다.
- [릴리스]와 [마기]의 키워드를 가진 두 가지 업적이 동시에 발동됩니다. 그녀의 영향력은 당신에게 큰 힘을 끼치지 못합니다.
[이, 이게 무슨······!]
한성은 아무 생각 없이 일행을 보내고 혼자 온 게 아니다.
“아직도 모르겠어?”
릴리스는 뒷걸음질 쳤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릴리스의 기세는 절반 이상 줄어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아주 작았던 한성의 기세는 릴리스와 비슷한 정도까지 커져 있었다.
한성은 거침없이 릴리스를 향해 다가갔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니야?”
[마, 말도 안 된다. 이런 게 가능할 리가······!]
한성은 마력을 끌어모았다.
[마력 지배]로 인해 릴리스의 마기까지 흡수하며 [역행 마법]을 준비했다.
두근- 두근-
모든 소음이 사라지며,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눈앞에서 릴리스가 뭐라 소리쳤지만, 그따위 것은 듣지 않아도 된다.
한성은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 세계의 역동을 원하는 자여. 』
릴리스는 몽마이자 마녀.
그것도 태초의 악마.
그녀는 오래전부터 세계의 역동을 꿈꿨다.
한성은 그녀를 그렇게 [정의]했다.
- 당신의 [역사] 등급 업적이 반응합니다.
- [세계 역동(逆動)의 시작을 밀어낸 자.]
- 그녀는 세계의 역동을 원합니다. 당신이 만들어 낸 업적이 그녀에게 반응합니다.
그녀의 기세는 더욱 작아졌다.
한성은 릴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한성에게 붙잡혔다.
『 나는 세계 역동의 시작을 밀어낸 자. 』
이전처럼 없어진 과거. 이 세계에는 없는, 한성만 아는 과거로 [존재력]을 인정받고 업적의 힘을 끌어오지 않아도 된다.
한성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언제 이런 모습을 본 적 있을까.
릴리스는 항상 강했다. 아무리 신격의 일부라고 해도, 그녀는 이 땅에서 대적할 만한 자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
전 회차에서 종장에 다가가 그녀를 만났을 때도, 그녀는 당당하고 차가웠으며 이름처럼 강력한 악마였다. 한성도 혼자 상대할 수 없었던 위대한 신격이었단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숙이지 않는 자.
그런데 저 모습을 봐라.
『 나는 신격을 사냥하는 자. 』
[그따위 거짓말을!]
붉은 릴리스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린다.
한성은 더욱 크게 말했다.
대기의 마력이 공명했으며, 릴리스의 붉은 마기 또한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 당신의 [운명]이 반응합니다!
-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이며 당신은 그 운명을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 당신의 [전설을 걷는 자]가 발동됩니다.
- 수많은 이들이 당신의 행보를 지켜봅니다. 당신의 과거는 전설이었으며 앞으로 더욱 거대한 전설을 써내려갈 것입니다.
[격]을 얻는 과정은 하나의 퀘스트이기도 하지만, 한성에게 부여된 자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릴리스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
릴리스는 마기 자체는 한성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에 몸을 직접 움직였다.
기다랗게 뽑힌 붉은 손톱이 한성의 목을 노렸으며, 형상화된 기다란 붉은 낫이 등 뒤에 생성되어 한성의 육체 곳곳을 노렸다.
하지만 이미 비슷해진 격. 한성의 공간 조종에 의한 방벽을 뚫을 수 없었다.
한성은 입을 열며 검을 휘둘렀다.
『 태산(太山)을 엎은 맹수일지라도. 』
릴리스가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한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회수했다.
펄떡.
바닥엔 릴리스의 팔 한쪽이 떨어져 있었다.
릴리스가 붉은 마기를 쏟아 지혈하는 동시에 한성을 향해 두 날개로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한성은 다시 한 번 가볍게 피해내며, 두 날개를 썰었다.
투둑.
[······왜? 이게 무슨······?]
『 사냥꾼 손엔 한낱 사냥감일 뿐이다. 』
한성은 릴리스의 목을 벨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니다.
스걱.
릴리스의 남아있는 어깨와 다리를 베었다. 그녀는 팔과 다리. 날개까지 없는 상태로 바닥에 떨어졌다.
한성은 검의 끝을 그녀의 복부에 놓고 지그시 눌렀다.
[끄아아악!]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무리 본체가 따로 있다고 해도 신격을 옮겨 감각을 공유하기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성은 그녀를 쉽게 죽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냥감. 한성은 사냥꾼.
앞으로 절대로 잊히지 않게 각인시킨다. 육체를 넘어 영혼에 닿은 신격에게까지. 그것은 하나의 업적이 되고 그녀와 한성의 관계를 정립할 것이다.
이게 업적의 힘이다.
[죽여, 죽여줘······.]
5분, 10분. 끈질기게도 죽지 않는 릴리스는 그제야 단단한 눈빛이 풀렸다. 원래의 릴리스라면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신격 사냥꾼]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녀는 한낱 사냥감에 불과하다.
만족스러웠다.
한성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목을 베었다.
스걱.
툭. 도르르.
잘린 릴리스의 목은 한성의 발에 닿았다.
그리고 업적의 과정을 마무리했다.
『 나는 신격 사냥꾼이다. 』
< 신격 사냥꾼.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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