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59화 (59/200)

< 첫 번째 사냥감. >

한성은 게이트로 검은 땅에 도착했을 때, 익숙한 노린내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 상큼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검은 땅은 이 세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중간에 다른 곳에 가야 할 일은 얼마든지 생기겠지만, 그 어떤 메인 스토리도 이곳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꼭 변태 같습니다.”

“마자! 아빠 변태 같아!”

“······진짜 변태 같다.”

헤일렌은 언제나 무심한 척 디스했고 하얀이는 헤일렌을 따라 했다. 가장 경멸의 눈빛을 보낸 건 성시연이었다. 벤토와 마주하고 가끔 한성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내곤 한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대장.”

“저도요! 전 대장은 더 변태였거든요. 마기가 좋다며 한쪽 코로 흡입도······!”

“야! 내가 언제 그랬냐?”

“이제 무섭지 않지 않습니까? 그동안 미치도록 훈련해서 [마기 저항]을 얻었으니까요.”

“크하하. 그렇긴 하지.”

저게 그 유명한 [태산을 부수는 영웅]이자 S등급인 신성철과 한명수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한성은 시끄러운 일행을 두고 드론 카메라를 켰다. 워프로 도착하는 것부터 생방송으로 보내기로 시청자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오, 잘 연결된다.”

한성이 생방송을 키자 순식간에 수십만 명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검은 땅이라도 인터넷 하나는 끝내주게 잘 된다는 것이다.

‘10G 인터넷은 마력의 진동으로 전 세계를 단 하나의 연결망으로······. 아프리카, 아마존, 히말라야 산맥, 바닷속까지 마력만 있다면 어디든 초고속 인터넷을······.’

이라는 설정이다.

한성이 생각하기에도 오버 테크놀러지 같긴 하지만, 영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짜잔!”

한성이 손을 미간에 올리며 한쪽으로 서자 하얀이가 옆으로 서며 똑같이 검지를 미간에 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반갑습니다.”

“검은 딴에 오신 거슬!”

“환영······ 검은 땅이지. 하얀아.”

“검은 딴에! 검은 딴!”

“······검은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성은 하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직접 말했다. 그러자 하얀이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나도 할 수 이써써요!”

“우리 하얀이 당연히 잘하지. 다음 멘트 해 볼래?”

“이고슨 우리의 새로운 띠작!”

“와아, 잘한다. 하얀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헤일렌과 용병단은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피했고 성시연은 저게 뭐하는 짓인가 목을 빼놓고 쳐다봤다.

“음?”

한성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붉은 피가 하늘을 뒤덮고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악의 신격에 종속된 인물은 아니니······.

“성시연!”

“응?”

한성은 빠르게 성시연의 팔목을 잡았다.

순간, 붉은빛이 성시연의 머리부터 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왜······?”

“잠깐.”

한성은 속으로 시간을 쟀다.

1, 2, 3.

다시 한 번.

4, 5, 6.

변화는 없다. 눈동자도 그대로고 마기도 안정적이다.

성시연은 그런 한성을 빤히 바라봤다.

“아니야. 걱정할 거 없겠다.”

“······나 변할까 봐?”

“······혹시나 했어.”

“나 변하면······.”

“걱정마. 그럴 일 없으니까.”

“그런 사람치고 너무 급박해 보였던 거 아냐?”

“······크흠.”

한성은 조금 들떠 있긴 했다. 성시연도 옆에 있고 하얀이와 헤일렌도 있다. 게다가 든든한 [해피머니] 용병단도 있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 [피의 시간]이 시작될 때 오긴 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대장님, 검은 땅은 처음이십니까?”

신성철이 한성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성시연이 한성을 빤히 바라봤다. 성시연은 아직도 한성이 검은 땅의 아이라고 알고 있다.

“처음입니다.”

이번 회차에선 온 적이 없으니 처음이라고 해야 맞다. 언제 왔냐, 어떻게 왔었냐 물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그렇군요. 이곳에선 마족보다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가요.”

“무법지대다 보니 악랄한 범죄도 잦고 침식 때문에 죽음을 달고 살다 보니, 제 정신이 아닌 사람도 많죠. 특히, 한성님은······ 이곳의 소유주로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 때문에 흑연, 정연, 언더월드 쪽에서 전력도 많이 빼 갔고요.”

“네.”

“범죄자뿐만이 아니라 사명감에 가득 찬. 침식에 정신이 피폐해지고 마족에 원한이 가득한 ‘착했던’ 사람들마저 한성님을 배척할 겁니다.”

이거 듣다 보니, 성시연보다 한성이 문제인 것 같다.

“아마 기 싸움은 물론이고 무력 다툼도 많이 일어날 겁니다. 웬만하면 제가 제압할 수 있지만······. 제가 끼지 못할 상황도 많을 거고요. 저보다 강한 사람도 많을 겁니다.”

한성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전 회차에서 한성이 검은 땅에 처음 왔을 때.

그때도 몇 번은 죽었다. 마족과 싸우기도 전에 동네 건달에게 맞아 죽었고 술 먹다가 옆 테이블의 영웅한테 술잔에 머리가 깨져 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이곳에서 수십 년을 보냈던 사람이다. 비록 전 회차이고 지금은 그 정도 무력이 없지만, 마계화된 땅도 아니고 도시의 소유주로 시작했다.

이걸 못하면 진짜 병신이나 다름 없다.

“그런 문제라면 걱정 없습······?”

드으으으.

아주 멀리서 진동이 느껴진다.

진원지는 [마족의 계곡]이라 불리는 산맥 사이의 계곡이다. 마계화된 땅에서 평화로운 도시로 향하는 길목.

“가봅시다.”

한성과 일행은 쉴 틈도 없이 뛰어야 했다.

한성은 30m는 훌쩍 넘어 보이는 높은 방어벽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마법을 쓰지 않고도 마력의 응용과 육체 능력만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였다.

한성은 눈앞에 띄워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정면에서 몰려오는 마수와 마족을 비췄다.

- ㄷㄷ 아프리카 실시간 실화냐.

- 여기서 생방송하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역대급 관종.

- 미친 마수들 봐라. 저게 다 굇수들 아니야?

- 하늘 봐. 빨간색이야.

- 저건 [피의 시간]이라는 겁니다. 검은 땅에서 일주일에 한 번······.

- 응, TMI 꺼지고.

- 난 겁나 유용한데? 저런 게 있었다니, 이번 방송도 꿀잼 각인가.

“휴우, 데뷔 한 번 쌈빡하게 하겠네. 그렇죠. 여러분?”

방어벽 위엔 여러 영웅과 용병들이 보인다.

대부분 다리 한쪽, 팔 한쪽씩은 마기에 침식되어 있다. [피의 시간]이기에 종속된 인원을 제외하고 나왔기에 수는 적었다.

“누, 누구십니까?”

앞에 있던 경비대원 중 한 명이 한성에게 물었다.

“나?”

한성은 그 물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도시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작긴 하다. 작은 마을 정도. 뒤에 평화로운 곳에 비하면 처참할 정도지만, 이 정도면 시작하는 곳으로 나쁘지 않다.

한성은 정면의 마수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의 새로운 주인.”

이곳은 앞으로 인류의 최전선이 될 거다. 지구를 집어삼키려는 마족을 멸절하고 마족에게 빼앗긴 땅을 하나씩 정복할 정복자의 선봉대.

한성이 그 중심에 있을 거다.

*  *  *

제 31번 구역에서 10년 넘게 활약한 ‘아르헨’은 한쪽 다리를 절면서 방어벽으로 올라왔다. 오늘 [피의 시간]도 조용히 지나가기엔 걸렀다.

“요즘 빈도가 너무 높은데?”

옆에 있던 ‘피터’는 소리 없이 끄덕였다. 등 뒤에 매고 있던 2m에 이르는 거검을 꺼내 들어 닦을 뿐이다.

“또 무너질 때가 됐나.”

“······재수 없는 소리.”

“풋. 한두 번도 아니고.”

S등급 정도 영웅이 되면 방어벽이 무너져도 몸 하나 빼는 건 어렵지 않다. 마수나 마족들이 강한 건 ‘마기’와 ‘많은 수’ 때문이다.

상급 마족이 나오거나 귀족 마족이 나오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그럼 마법부터 간다.”

아르헨은 눈을 감고 캐스팅을 시작한다. 검은 마기가 대기 곳곳에 있어서 캐스팅할 때마다 심장을 쿡쿡 찔렀다. 침식당한 한쪽 발과 얼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마족은 아르헨의 부모와 동생까지 처참하게 죽인 놈들이었으니까. 아르헨은 죽기을 때까지 전장에서 저놈들과 싸울 거다.

그녀가 언젠가 잠들 곳은 이 전장이겠지.

“[화염의 바다]”

그녀의 마법이 계곡 사이로 뿜어졌다. 용광로처럼 팔팔 끓는 그녀의 불덩이는 마수와 마족을 철저하게 녹이며 전진했다. 중간에 몇 개의 실드까지 깨고서야 불씨가 꺼졌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주변의 영웅과 용병이 공격을 시작했다.

땅에서 가시가 솟기도 하고, 마법이 아닌 이능의 불꽃이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곳곳에선 번개가 떨어졌고 어딘가에선 무언인지 모를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나하나 강력한 마법들뿐이다.

하지만 이들 눈에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다.

평소 방어 때를 보면 이것보다 몇 배는 강하다. 당연하게도 종속된 이들이 방어선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든 악의 신격에 미쳐버릴 수 있는 몸이지만, 그만큼 강하다.

“······못 막을 거 같은데.”

전력이 너무 약화 되었다.

이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엔 별 변화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야 수백 번도 더 겪었다.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 정면이 아닌 왼쪽에서 거대한 마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과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순수하고 따듯하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마기에 침식되고 그렇게 되면 마력은 순수함과는 거리가 생긴다.

이런 경우는 단 하나.

다른 대륙에서 온 신입일 뿐이다.

“······그런 거 치곤 너무 겁이 없는데.”

그들은 방어선 위에서 싸우지 않았다.

17명의 새로운 인원은 방어벽 아래로 내려갔다. 뒤에선 마법으로 보조하고 앞에선 검과 창 등으로 직접 공격한다.

“저것들이 미쳤나.”

저런 짓은 S등급의 영웅이라도 쉽게 하지 않는다. 접근하면 마기에 침식되기 때문이다.

아르헨은 그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신입인데······ 아깝네.”

훅. 콰아아!

훅. 콰아앙!

옆에 피터도 방어벽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검을 휘둘러 마력을 방사하고, 그 힘으로 마수를 찍어 죽일 뿐.

그런데 생각보다 잘 버텼다.

“······좀 버티네.”

가장 앞엔 어디서 많이 봤던 사람이었다.

[태산을 부수는 영웅]. 그도 이 근처에서 꽤 활동했기에 잘 안다. 그는 다리 한쪽이 침식되어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한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다시 왔다고?

게다가 침식된 다리도 멀쩡해 보였다.

그것뿐이 아니다. 그의 마력은 그 어느 때보다 순수하며 따듯했다. 마치 침식 따위는 다 나았다는 것처럼.

그는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듯 보였다.

[열두 과업의 영웅]이라는 이명을 지닌 ‘헤라클레스’와 계약한 영웅다웠다. 그는 방망이를 휘두르며 마족과 마수를 한 줌의 마기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눈이 더 가는 건, 그 옆의 한 소년이었다.

아직 2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년.

분명 느껴지는 힘은 B등급도 못 되어 보인다.

그것과는 전혀 맞지 않게 희미한 격을 보유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의 시선에 그에게 닿지는 않았을 거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넋을 놓고 보게 된다.

한 폭의 그림처럼 절묘한 검술은 그의 옆을 지나는 마수와 마족의 치명적인 약점을 그대로 그어버렸고 신성철과 한명수와 완벽한 합을 보였다.

저 등급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가 분명했다.

뒤에 있던 어린 소녀는 더 대단했다.

앞에 있는 소년을 따라 하는 듯 손을 휘적휘적하는데 수십 마리의 마족이 순수한 백색을 띤 마력에 압착 되어 죽어 버린다. 저건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 보이지 않았다.

“······뭔가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한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분명 잘 못된 것은 없어 보이는데, 뭔가 빠진 듯한 느낌.

“아, 마기에 침식이 안 돼?”

그들의 푸른 마력은 적의 검은 마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보통 영웅이 마족과 붙어서 싸우면, 마기는 마력을 오염시키며 육체에 스며든다. 그러면서 영웅의 마력은 검게 변하며 육체 또한 침식당하는 거다.

그런데 저들은 반대다.

마력이 마기를 밀어낸다.

오히려 마족의 몸에 마력을 밀어 넣어 약화하고 있었다.

우뚝.

“저건 뭐야.”

조용하던 피터가 검을 바닥에 박고 멈춰 선다.

그의 시선 끝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뭐가? 갑자기 왜 이래······?”

아르헨도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몰랐다. 이토록 순수한 마력은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의 마력엔 마기가 섞여 있었으니 더 헷갈렸다.

저건 상상 이상으로 순수한 마기였다.

마치 상급 마족을 보는 듯한. 아니, 그 이상이다.

“······아르헨.”

피터는 검을 꽉 쥐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내려가 저 마기를 뿜는 소녀의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것처럼. 하지만 아르헨은 그의 팔목을 잡았다.

“아직. 기다려.”

“······안 돼. 저건 지금 죽여야 해.”

피터는 안다.

순수한 마력은 강하지 않지만, 순수한 마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특히, 저 소녀의 마기는 마치 [마력 기관]을 지닌 마왕 같았다.

아직은 약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네가 막는다고 해도 난 가야······.”

“그런 거 아니야. 저 앞을 봐.”

아르헨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곳엔 붉은 마기를 폭포처럼 쏟아내는 귀족급 마족이 보였기 때문이다.

상급 마족은 강력한 육체 능력을 기반으로 S등급 정도의 힘을 보인다면, 귀족급은 그 상급 마족의 육체 능력에 [격]까지 지닌 괴물이다.

“······게다가 저건 릴리스의 화신체가 되어가고 있어.”

폭포처럼 쏟아지는 붉은 마기. 저건 분명 릴리스의 [격]이었다.

여긴 절대로 못 막는다.

저 앞까지 나간 사람들?

당연히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아르헨은 피터를 데리고 뒤로 빠지려고 했다. 이 구역은 포기하고 다시 정비하는 게 맞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저 미친놈.”

모두 뒤로 빠지는 데, 유독 눈에 띄었던 한 소년이 릴리스의 화신체가 되어가는 ‘귀족 마족’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 첫 번째 사냥감.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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