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을 거스르는 운. >
친구들이 먼저 연락 왔었다. 성시연은 괜찮은지 말이다. 병문안을 온다고 했지만, 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성시연이 육체에 적응한 후엔 한성이 먼저 연락했다.
“한번 놀러 와. 응. 지금은 괜찮아. 올 때 무장도 하고 오고. 우리가 놀 게 뭐가 있냐. 그냥 대련하는 게 다지. 그래, 그럼 올 때 연락 주고.”
진훈, 한 별, 세르게이, 나디아, 얜 샤를, 안혜림까지 데리고 흑연으로 와서 성시연과 대련했다. 물론, 한성은 그들에게 [마기 저항 포션]을 지급했다.
성시연 혼자.
그리고 나머지 전부.
한성은 일단 구경만 했다.
다들 말도 안 된다며, 불공평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대련이 시작되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쏙 들어갔다.
“오호호호. 다 덤벼라!”
콰아아앙.
성시연은 이제 3m까지 솟아오른 마기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세르게이랑 나디아가 그녀의 검을 막았으며 진훈과 한별은 옆에서 공격했다.
“미친! 힘이 무슨!”
안혜림과 얜 샤를이 뒤에서 덮치기까지 했지만, 성시연은 어렵지 않게 막았다.
모두 마기 덕분이었다.
폭사된 그녀의 마기는 진훈의 주먹을 맨몸으로 막아냈으며 한별의 염력을 지워버렸다.
“말도 안 되잖아!”
그나마 가장 효과가 있는 건 얜 샤를의 무기화된 번개였다. 아무래도 [빛]과 [전기]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성시연의 날개가 나오자 그것들마저 모조리 날아갔다.
“사기야!”
“말도 안 돼!”
“후후후. 말이 안 되긴! 다 죽었어!”
성시연은 그동안 8위에 머무르며 쌓였던 한을 풀고 있었다. 진훈에겐 육체로, 한별에겐 이능으로, 세르게이에겐 무기술로. 모두 뒤처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성시연은 화신체가 되어 힘들었던 과거를 모조리 잊은 듯 즐거워했다. 그 모습에 다른 친구들도 기분이 좋긴 한 모양인지, 웃으며 대련을 마쳤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끝이 났다.
“사기야!”
이번엔 성시연이 외쳤다.
미친 육체 능력을 지닌 진훈, 말도 안 되는 이능 천재인 한별, 검성의 재능을 지닌 세르게이.
셋은 이미 [마기 저항]이 생겨났다.
게다가 성시연의 패턴을 모두 파악한 것인지 대등하게 맞서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도 분발하더니 며칠이 더 지나서 모두 [마기 저항]이 생겼다.
안혜림은 [다중 인격]을 사용하지 않고도 ‘활’을 이용해 성시연에게 강한 유효타를 날렸고 얜 샤를의 번개는 더욱 강력해져 마기를 뚫기도 했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한성이 [마기 저항 포션]을 무제한으로 지급하고 아주 순수한 마기. 그러니까 거의 마왕급의 마기를 지닌 성시연이 끊임없이 마기를 퍼부어줬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마기 저항을 얻을 거라 생각하진 못했다.
“역시 천재는 천재.”
모두 주인공급의 캐릭터다.
그들의 재능엔 한계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성이 이강철에게 의뢰한 무기가 도착하자 또 한 번 뒤집혔다. 성시연의 마기 블레이드는 5m까지 늘었다.
“오호호호! 다 죽었어!”
역시 마기를 쓰기 위해선 일반 무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리 좋은 건 아니었지만, 마기와 잘 맞는 무기로 바꾼 것만으로도 저 정도 성장했다.
성시연은 검은 땅으로 가야 한다.
그곳이라면 성시연은 정말 날아다닐 거다.
“다들 밥 먹자!”
한성이 밥을 시킨다며 소리쳤다.
“난 피자!”
“난 치킨!”
세르게이와 나디아가 그렇게 외쳤다.
저 둘은 피자와 치킨을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은 건지, 매일 저렇게 외치고 있었다.
“에라, 그거 지금 며칠째인지 알아? 한식 좀 먹자 제발!”
며칠 동안 묵묵히 먹던 한별이 이렇게 외칠 정도였다.
하긴, 아직 17살이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나이.
저렇게 서로 죽일 듯 대련하면서도 참 재미있게 잘 지낸다. 그러면서도 구운 파인애플이 올라간 건 절대로 싫다며, 오이는 너나 먹으라며 싸우기도 했다.
“······.”
한성은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리에 껴도 될까.
저들은 이제 알아서 잘 성장할 거다. 그 누구보다 재능이 출중하며 노력 또한 부족하지 않은 친구들이다.
이번에 성시연이 완전히 변하거나 죽을 뻔했던 것처럼. 그저 위험 정도가 아닌, 막을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될 거다. 그저 한성과 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성이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퀘스트까지 빗겨나가진 않는다. 그건 하나의 시스템이며 운명이기 때문이다.
* * *
한성은 복잡할 때 하얀이를 데리고 생방송 하는 게 가장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이케? 이케?”
“그래! 그렇게 하고 손가락을 조금 더 꺾는 거야.”
“짜잔!”
“좋아! 바로 그 포즈야.”
한성과 하얀이의 포즈 만들기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개귀욤.
- 한성은 어쩜 더 잘생겨지는 것 같다.
- 하얀이는 더 귀여워져ㅠㅠ
- ㅋㅋㅋㅋㅋㅋㅋ관종포즈다.
- 관종은 유전인 게 학계의 정설 아니냐.
- 내 안에 흑염룡이 봉인되어있다!!
한성과 하얀이는 서로 등을 대서 선 상태로 팔을 올려 손가락을 미간에 올린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나른한 듯 시크하게 쳐다보는 게 포인트.
하얀이는 반 인간 폼을 하고 있었다. 뿔과 꼬리는 그대로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포즈였다.
“후훗, 나에겐 용의 힘이 봉인되어 이따!”
“난 행운이 만렙이지.”
“나는 귀염이 만렙이당!”
“나는 고이다 못해 썩어 버렸지!”
“······아, 아빠. 썩었어······?”
“아,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란다.”
“맞는 거 같은데, 아빠는 매력이 썩었었잖아.”
“그게 언제적 얘기야! 헤일렌! 도대체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
“헤일렌은 죄 없써! 아빠가 못생겼었잖아!”
할 말이 없었다.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하다니.
한성은 카메라로 찍고 있는 헤일렌을 바라봤다.
“전 죄 없습니다.”
“가장 큰 죄가 팩트 폭행이다!”
“헤일렌 언니는 죄 없다니까!”
한성은 좌절했다.
자식들이 크면 다 소용없다더니, 이제 합심해서 한성을 공격하고 있다. 이런 게 ‘다굴’이고 ‘팩트 폭행’이라는 거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흐윽.”
- ㅋㅋㅋㅋㅋㅋㅋㅋ케미 무엇.
- 한성 다굴 당한다ㅋㅋㅋㅋ근데 좀 당해도 됨. 너무 잘생겨졌음.
- 인정. 잘생긴 놈들 다 죽어야 함.
- 어? 나 죽어야 하나.
- 넌 평생 무병장수할 듯.
- ㅋㅋㅋㅋㅋㅋ헤일렌은 더 시크해졌음.
- 포즈에 대사까지 정하는 거 실화냐ㅋㅋㅋ
- 대사 정하다 한성 썩은 거 실화냐!
- 여윽시 한성의 혈육인가. 벌써 관종 냄새가 난다.
- 한성 드래곤이랑 결혼했었음?
- 뭐래ㅋㅋㅋㅋ하얀이 알에서 나왔구만.
- 속보, 이한성 알을 낳다. 충격 고백.
- 이한성 전 처가 드래곤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
채팅창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이미 구독자는 500만을 넘어섰기에 생방송을 틀면 순식간에 10만이 들어오고 한 시간만 지나면 30만 정도는 기본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있었지만, 보기 편하게 한국어로 번역되어 올라왔다.
그러니 이상하고 재미있는 채팅도 많았다. 웬만한 동체 시력으로는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지만, 한성은 방송에 대해선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저기요! 저 오늘 오랜만에 쉬는 날이거든요? 거, 다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시청자들한테 뭐라 하지 마! 하얀이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하, 하얀아.”
“헤헤, 장난이야.”
하얀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성에게 안겼다.
“······지금 나 조련당하는 거 맞지?”
채팅창에선 그걸 이제 알았냐며 웃으며 난리가 났다.
그래도 오랜만에 평화로운 하루였다.
* * *
한성은 며칠이 더 지나서 게이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오래 걸렸다. 들인 돈은 더 많았다.
하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게이트였다.
한성은 이 게이트의 사용 권한에 관해 상의하고 검은 땅의 31번 구역 소유권을 이양받기 위해서 다시 세 사람을 만나야 했다.
한구본, 소이연, 심우주까지.
이 모임은 극비로 이뤄졌다.
전에 말했다시피 이 셋이 모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저 만날 일이 없어서 만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는 거다.
당장 동네 피씨방 사장 둘이 만나도 남아있는 한 명의 사장은 둘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까. 어떤 짓을 하려고 홀로 빼놓은 것인지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된다.
그런데 세계에서 손꼽히는 세 단체의 장이 모였다.
웬만하면 비밀로 하는 게 맞다.
“일단 게이트 사용 횟수와 용량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보통 검은 땅으로 통하는 게이트는 일주일에 한 번 왕복. 최대 무게는 1톤까지다. 사람으로 따지면 1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갈 수 있다는 거다.
“게이트 사용 횟수야 다 똑같은 거 아닌가?”
한구본이 말했다.
그럴 만하다. 한구본은 마법으로 일어선 [정연]의 가주니까. 본인의 마법 실력도 실력이지만, 가문에 소속된 마법사는 세계 최고였으며 수없이 많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수십 년을 연구해 만든 게 현재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그것과는 다르다고?
“3일에 한 번.”
“······?”
“용량은 최대 5톤까지.”
“······그게 가능하다고?”
한구본이 놀라 물었다.
놀란 건 소이연과 심우주도 마찬가지다.
한성은 으쓱하며 말했다.
“한 달에 총 10번, 대략 50톤이죠.”
“······대단하군.”
소이연과 심우주는 눈을 반짝였다.
횟수는 두 배가 넘고 용량은 10배가 된다. 검은 땅과 한국 간의 이동 횟수와 용량은 양쪽 전력의 유동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한구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존심이 상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한성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믿을 수밖에 없기도 했다.
“딱 4등분은 안 되니까. 2번씩 10톤으로 잡고. 나머지 2개는 매달 경매로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딱이죠?”
이건 서로 밀고 당길 필요가 없다.
그들이 예상하던 숫자보다 훨씬 컸으니까. 한성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다른 영웅과 용병의 유동이 많아지면 좋은 건 한성이다.
“괜찮군요.”
“저희도 좋습니다.”
“······나도 뭐.”
한성은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31번 구역의 소유권.”
“꼭 소유권이어야 하나?”
심우주가 먼저 물었다.
빌려주는 것도 가능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도 좋다. 어차피 하나의 단체가 그곳을 지키는 건 힘들다. 그런데 한성 홀로? 당연히 불가능하다.
게다가 굳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의도도 궁금했다.
“네, 무조건 소유권이어야 합니다. 이미 합의는 끝낸 내용 아닙니까?”
이것도 더 끌 게 없었다.
한성은 확고했고 셋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들은 소유권을 넘기더라도 31번 구역이 위험에 빠지게 그냥 둘 순 없었다. 그곳은 마족과 인간의 영역을 가르는 전략적 요충지였고 전진 방어 기지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곳을 지키는 게 한성이다.
이번에 [마기 저항 포션]이니 [수호의 위성]이니 말도 안 될 정도로 역사적인 물건을 마구 내놓고 있는 한성이란 말이다.
그들은 한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31번 구역의 위기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거다.
그때였다.
- 한성님, 비상입니다!
그와 동시에 소이연의 스마트 워치에서도 AI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감히 우리 흑연을 습격했다고?”
간혹, 한성이 지닌 [운]은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상했으며 시스템에 대응하고 운명에 맞서기도 한다.
골라도 하필 이때를 고르다니.
그들은 완벽한 계획을 세웠을 거다. 그러니 소이연이 없는 틈을 타 [흑연]의 본가를 직접 습격할 생각을 했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 실수.
한성이 그들의 습격을 예상했다는 것.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성시연이 화신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몇몇은 [마력 기관]의 존재와 가치를 알아볼 거다.
이런 미쳐버린 세상에서 그것을 아무도 노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갈 때까지 시간을 벌 순 있을 겁니다. 제가 미리 결계를 쳐 놓았으니까요.”
“이한성씨의 말을 듣기 잘했네요. 설마 우리 흑연의 본가를 직접 칠 생각을 하다니······.”
소이연도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조심하자는 의미였으니 받아들인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실수.
이 모임의 존재.
아마 소이연이 돌아오는 것까지는 예상했을 거고,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곳엔 말도 안 되는 강자가 세 명이나 있었다.
“괜찮으시면 같이 가 주실 수 있을까요?”
한성이 물었다.
“정식으로 의뢰한다면 가 줄 수 있다.”
한구본은 그렇게 대답했고 심우주는 딱히 뭘 받을 생각이 없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 정화의 비약 20%짜리 하나씩 드리죠.”
그 말에 눈을 빛냈다. 지금은 사고 싶어도 물량이 없어서 쉽게 살 수가 없었다. 가격을 떠나서 이 정도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세 번째 실수.
바로 한성의 친구를 건드렸다는 거다.
“당장 이동하겠습니다.”
그들은 흑연의 본가와 꽤 많이 떨어져 있다. 하지만 한성의 [공간 조종]은 경지에 올랐으며 한구본은 개인 워프도 가능한 SS등급의 마법사다.
휘리릭.
팟.
그들은 작은 점으로 사라졌다.
< 운명을 거스르는 운.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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