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전야. >
한성과 성시연은 댓글도 확인했다.
- 미쳤다. 저게 뭔 일이래.
- 서울 중앙에. 그것도 아카데미에 마족이랑 마수 실화?
- 그래도 저 정도로 막은 게 어디야, 우리나라 아니었으면 수도 절반을 날아갔을 걸.
- 저기 나온 저 악마는 뭐야?
- 저거 유형화된 살기임. 현역 영웅이니 믿으셈.
└ 나도 본 적 있음. 혹시 검은 땅에 계심?
└ 나온 지 조금 됐음ㅋㅋ
- 그보다 저 악마, 성시연이라는 친구 닮지 않았음?
└ 저게 보이냐. 딱 봐도 마족이구만.
└ 응, 님 신고.
└ 미친, 누구 배짱이냐. 지금 흑연 깐 거임?
└ 님 고소가 아니라 암살 들어감. 조심.
“날 못 알아보네.”
“저걸 어떻게 알아보냐. 일부러 멀리서 찍기도 했고.”
성시연은 벌떡 일어나 전신 거울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이 몸도 마음에 들긴 해.”
“적응력 실화냐.”
“응, 쩔지. 상당히 괜찮단 말이야.”
성시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엉덩이를 쥐어 보기도 하고 가슴을 이리저리 살피기도 했다. 허리도 그렇고 다리 라인도 그렇고, 확실히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야야.”
“왜? 친구라며. 뭔가 야하고 막 그러나?”
“아니거든.”
“봐도 상관없어, 예쁜 걸 어쩌겠어.”
“아니라니까!”
성시연은 그런 한성의 반응이 재미있는 건지, 뒤태를 뽐내고 장난스레 섹시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원래 성시연의 성격은 아니다. 릴리스의 잔재가 남아있기에 생긴 성격의 변화 같았다.
게다가 너무 친해졌다.
한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오늘 할 일은 마족의 모습을 감추는 방법.”
“난 괜찮은데 이 모습도.”
“뿔이랑 날개 정도는 감춰 봐야지. 평생 집 안에 있을 건 아니니까.”
보통 마족이 100%의 힘을 낼 때는 뿔과 날개. 혹은 꼬리나 긴 발톱 등 자신의 특성을 모두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게 없는 상태. 즉, 인간의 모습에선 최대 30% 정도의 힘을 내는 게 전부다.
보통 고위급 마족을 만나면 처음엔 인간과 상당히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가, 페이즈가 넘어가면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족. 특히, 고위급 화신체의 신체 기관은 인간과는 달라.”
이제 이런 말을 해도 웃을 뿐이다.
확실히 보통 캐릭터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마력 기관]이야. 순수한 마기를 생성해내는 기관이지. 거의 마왕급의 육체에만 존재하는 건데 너도 가지고 있어.”
보통의 그것보다는 훨씬 작고 약하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신체 기관 대부분이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추가로 [마력 기관]이 생긴 것이니까.
“가장 먼저 할 것은 그 기관의 사용을 억제하는 것.”
평소엔 장난을 치더라도 이렇게 훈련할 때는 상당히 진지하다. 게다가 육체의 힘인지는 몰라도 재능이 한층 강화되어 뭘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인다.
성시연은 반나절의 훈련 끝에 [마력 기관]을 억제했으며 날개를 접고 뿔을 반쯤 줄일 수 있었다.
“눈동자는 안 변하네.”
보랏빛이 도는 눈동자는 변하지 않는다.
“그건 화신체의 뇌 구조와 관련 있어서.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거야.”
“뇌 구조?”
“응, 그러니까 인간은 ‘지능’ 쪽으로 발달했다면 ‘마족’은 ‘이능’과 ‘마기 조절 능력’으로 발달했지. 쉽게 말하면 대뇌피질의 밀도가 다르고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그게 가장 쉬운 설명이냐?”
“음,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성을 추구하면 본래의 눈빛으로 돌아올 거고, 마족과 같은 성향을 지니게 되면 보랏빛이 더 진해질 거야.”
성시연은 인간에 가까울까. 마족에 가까울까.
예전이었다면 머뭇거림도 없이 마족이라고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그녀는 차가운 겉과는 다르게 속은 따듯하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넌 그런 걸 어떻게 아냐.”
“······공부하면 다 나와.”
당연히 뻥이지만, 그런 공부를 할 리 없는 성시연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한성은 시간을 내어 언더월드에 들어왔다. 여길 올 때는 족발에 소주를 빼놓지 않는다. 한성은 이종칠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구울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재료의 질보단 조합이라니까요.”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좋은 재료에서 좋은 구울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죠. 그런데 봐요. A라는 엘프는 근력이 뛰어난 엘프에요. 하지만 B라는 엘프는 자연 친화력이 좋죠. 근력은 근육과 인대에서 나오고 친화력은 심장과 DNA 자체에서 나와요. 그런데 질만 좋다고 가져다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 그럼 몬스터의 생전 재능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거군요.”
“네, 그리고 두 번째가 재료의 신선도죠.”
한성은 이종칠에게 들었던 조언을 그대로 다시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옆집 구울 상점을 운영하는 한예슬도 있었다. 이름이 어떤 배우와 비슷했는데, 외모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말투에서는 억센 아줌마의 분위기를 풍기긴 했다.
“그 말은 내가 맞지! 조합이 중요하다니까!”
“예슬 아줌마. 그래도 질을 너무 신경 안 쓰면 안 된다잖아. 거긴 싸다고 막 샀으면서.”
“허이구, 이 새끼는. 내가 언제 막 샀다고 해? 내 눈을 거지로 보나······.”
한예슬은 이종칠에게 욕을 날리려다 한성의 눈치를 봤다. 그래도 아직은 손님과 동시에 ‘투자자’이니까.
당장 이종칠의 지하 연구실을 2배는 늘리고 고급 재료를 왕창 구매하기 시작하는 걸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을 거다.
“한예슬씨도, 투자 필요하면 말만 하세요. 대신 이종칠씨 정도의 구울은 나와야 할 겁니다.”
“아, 예. 호호. 당연하죠. 저도 양심은 있답니다.”
한예슬이라는 여자는 이종칠과 궁합이 최고다.
이종칠은 구울의 제작 그 자체와 전투에 재능이 있다면, 한예슬은 좋은 재료를 선별하는 눈이 굉장히 뛰어나고 구울의 성장 과정에 도움이 많이 된다.
둘은 어떻게든 붙여 놓는 게 좋다.
오늘은 이종칠에게 투자한 성과를 거두러 온 날이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종칠은 한성을 지하 연구실로 안내했다.
한성은 전 회차에서 몇 개의 무력 부대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 그중에서 검은 땅에서 활동하기 위해 만들었던 부대가 있었다.
마기의 침식을 피하기 위해 구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원활한 관리를 위해 이종칠을 단장으로 앉혔다.
[용의 기사단]
와이번을 타고 다니며 ‘이능’과 ‘검’을 사용하는 구울 무력 부대였다. 세르게이가 검술을 가르쳤으며 한성이 직접 공수한 와이번을 이종칠이 구울로 만들어 종속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용의 기사단]은 검은 땅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한성은 비주류인 마법을 주로 사용했기에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함이 컸다.
“이것들이군요.”
한성의 투자로 최고의 재료, 최고의 조합으로만 만들어진 구울이다. 총 30개체. 아무리 조합에 실패해도 잠재력 600 이상은 나올 만한 구울.
한 개체의 재룟값만 수백억을 넘어간다. 하지만 그 정도로 검은 땅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력 부대를 구성할 순 없었다.
“이거, 이거. 그리고 이거.”
30개체에서 총 3개체.
상당히 높은 확률이다.
잠재력이 900을 넘기는 개체만 고른 거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10%의 확률을 만들 순 없다. 이종칠이 아직 특성을 개화하지 못했어도, 재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머지는 어떻게 할까요?”
“알아서 하세요. 파시든, 건조하시든.”
“알겠습니다.”
한성은 뒤로 돌았다. 지금까지 이런 방법으로 모은 게 총 7개체. 시간이 될 때마다 언더월드 전체를 뒤지다시피 돌아다니면서 고른 4개체.
총 11개체의 잠재력 900 이상의 구울이 있다.
전 회차보다 훨씬 강력한 [용의 기사단]을 만들기 위한 발판이다. 거기에 [정보 열람]과 [대상 개화]가 있으니, 그 시기는 훨씬 빨라질 것이다.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간다.’
한성은 이종칠에게 인사하고 밖을 나왔다.
오늘은 다른 용무가 있어서 언더월드를 온 거다.
5분 정도 걸어 다른 구역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시장이 나온다.
좌우로 천막으로 이루어진 상점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고 그 상점엔 검, 도끼, 창, 활, 방어구 등 수많은 장비가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은 대장장이의 거리다.
“여기 [희귀] 등급 검이 있습니다! 아주 저렴한 3억! 3억에 떨이 합니다!”
“[마법] 등급! 마법 두 개가 붙어있는 활 팝니다. 타깃 보정과 사거리 증가가 걸려 있습니다.”
저런 것들 하나하나는 모두 대장장이가 만든 거다.
공산품은 마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공장에서 찍어내고 거푸집으로 찍어내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마력이 닿으면 깨지고 이능이 닿으면 부식되어 사라진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대장장이는 굉장한 대우를 받는다. 마력을 지닌 사람이 직접 두드려 만든 무기만이 마력과 이능을 버텨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성이 손을 대어도 [명인]의 무기가 아닌 이상 한계가 명확했다. 이능에 가까운 마법, 권능에 가까운 성능. 하지만 그것의 끝은 [보물] 등급이다.
그것도 오랜 이야기가 쌓여 진정한 ‘유물’이 된 ‘보물’을 따라가는 반쪽짜리 [보물] 등급일 뿐.
한성은 걷다가 평범한 대장간 앞에 섰다.
[블랙 스미스 타이쿤]
마치 게임 이름 같다.
맞다. 있는 게임의 이름이다.
설정상, 이 주인장은 그 게임을 무지하게 좋아한다.
하지만 실상은 PPL이다. 현실에 있는 게임의 광고였으며 그 게임 속의 주인공이 바로 이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한성이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되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어서 오십시오!”
근육질의 사내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온다. 20대 중반이나 되었을 법한 외모였다.
“찾는 거 있으세요?”
어렸을 때부터 세계 최고의 [명인]이었던 아버지에게 대장장이질을 배웠으며 [마력지체]였던 어머니의 재능까지 물려받아 미래에 최고의 대장장이가 될 캐릭터다.
“무기 의뢰 좀 하려고요.”
“그러세요? 대기가 있어서 몇 주는 더 걸릴 수 있습니다.”
한성은 품에서 재료 몇 개를 꺼냈다.
며칠 전에 얻은 [중상급 마족의 뿔] 두 개. 마력 부족하지 말라고 [상급 마력석] 하나. 마기에 침식되지 말라고 [마기 저항 포션] 세 개.
“이 정도입니다.”
“······.”
“할 수 있습니까?”
“······할 수는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꼭 하고 싶습니다. 대기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강철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를 공략하는 방법은 하나다. 좋은 재료로 제작 의뢰를 맡겨 호감도를 쌓고, 나중엔 최고의 재료를 원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아, 그런데 누가 쓰는 겁니까? 사용자의 프로필이 있다면 훨씬 손에 맞는 무기가 될 것입니다.”
“성시연 후보생. 단검 두 개.”
한성은 간략한 프로필을 이강철에게 보냈다.
그렇게 좋은 무기는 아니겠지만, 당장 마계의 무기에 적응하기엔 나쁘지 않을 거다.
이강철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검은 땅에서 많은 무기를 만들기 시작할 텐데, 지금부터라도 슬슬 적응해야 했다. 아마 이렇게 웃을 시간도 없이 영혼까지 갈려 나가며 무기를 만들지 않을까.
한성은 씨익 웃었다.
이강철은 이한성의 미소에서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 * *
어둠이 가득 찬 공간. 원형의 탁자에 8명의 인원이 앉아 있었다.
“새로운 목표에 대한 안건입니다.”
걸걸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그는 이곳의 ‘리더’였다. 강함과는 무관하게 이 모임을 주관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임무를 내리는 것. 다들 귀찮아서 하지 않으려는 것을 돌아가면서 하는 거다.
“흑연의 차녀인 성시연 후보생이 [릴리스]의 화신체가 되었다는 정보입니다. 외관으로 봐선 [마력 기관]이 형성된 상태로 보입니다.”
몇몇이 감탄을 뱉었다.
[마력 기관]이라는 것. 상상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다. 검은 땅에서도. 웬만한 마족들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순수한 마기’를 끝없이 뽑아낼 수 있다.
그것은 전에 훔치려 했던 [고대 기간트의 심장]보다 한 단계 위의 물건이었으며, 특히 이곳에 모인 [밤의 존재]들에겐 그 무엇보다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다.
“순서는 기여도 경매를, 물건은 선점한 이가 가지면 됩니다.”
이 모임은 [기여도]라는 것으로 유지된다.
단체를 운영해도 되고 홀로 활동해도 된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배당되는 임무를 해결하거나 모임에 이로운 활동을 하면 기여도를 지급한다.
그 기여도로 이런 [정보]를 얻으며 서로 부딪히지 않게 순서를 정하기도 한다. 또 전 세계에 퍼진 [밤의 존재]라는 단체의 영향력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일천.”
“이천.”
“오천.”
당연히 인기가 많다.
오천이라는 수치는 정기 임무 1년 치에 해당하는 기여도이며, [특급] 임무 한 번의 기여도이기도 하다.
“삼만.”
누군가 명확한 의견을 피력한다.
“······더 없습니까?”
다들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마력 기관]이 탐나더라도 삼만이라는 기여도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으며 입찰한 [벤토]의 명확한 의사 표출은 이곳의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럼 ‘벤토’가 첫 번째 작전을 맡겠습니다.”
< 폭풍전야.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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