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55화 (55/200)

< 친구와 연인 사이. >

아카데미 게이트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서울 외곽의 작은 건물.

용병 등급 A급에 해당하는 [해피머니] 용병단. 용병 단장은 S등급 용병인 ‘신성철’, 검은 땅에서도 10년 이상 활동한 40대 중반의 베테랑이다.

휘하로 A등급 용병을 13명이나 보유한 소수 정예이기도 하다.

“에라, 요즘 왜 이렇게 의뢰가 없는 거야.”

신성철은 담배 연기를 뻑뻑 뿜어대며 불평했다. 한쪽에서 고스톱을 하고 있던 용병 한명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맨날 소수 정예라고 가려 받으니까 그렇죠. 싼 거라도 받아서 합시다. 언제까지 놀기만 할 수도 없고.”

“이런 미친 새끼.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 찾는 게 의뢰냐? 그것도 꾸깃한 1,000원짜리 세 장을 가져온 꼬마한테.”

“큭큭. 그래서 13번 신입을 보내셨습니까. 그것도 1,000원짜리 하나 주고?”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걔 입 겁나 가볍습니다. 대장.”

“에라! 니 말대로 할 일 없으니까 보낸 거지. 그렇다고 놀 수만은 없잖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서울은 너무 안전한데. 저희도 그냥 용병 때려치우고 몬스터 레이드나 하러 갑시다. 아니면, 검은 땅도 나쁘지 않지 않습니까.”

“요즘 진심으로 고민 중이다.”

신성철의 말에 한명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검은 땅에서 발 한쪽을 마기에 침식당한 이후로, 검은 땅을 쳐다도 안 봤다. 그렇다고 레이드를 하기엔 검은 땅에서 용병으로 벌던 돈의 10%도 되지 않으니 차라리 노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뭘 그렇게 쳐다봐?”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6개월째 놀고 있는 이유가 뭔데요.”

“말은 똑바로 해야지. 7개월 놀았다.”

“그거나 그거나. 근데 왜 생각이 변하셨습니까.”

“마기를 정화할 비약이 나왔다잖아.”

“그거 다 사기 아닙니까? 아직 제대로 경매도 안 하고. 그놈의 경매 감정사들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말입니다.”

“사기였으면, 누가 그 돈 주고 사겠냐.”

하긴, 그것도 맞다는 듯 한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잠깐 자신의 패를 보더니 소리쳤다.

“고스톱만 3천 번은 한 것 같습니다. 에라, 이것도 질리네.”

한명수는 쥐고 있던 패를 던지고 판을 엎었다.

그러자 양옆에서 잔뜩 기대하고 있던 5번과 6번이 소리쳤다.

“아니! 명수 형님. 판 엎기가 어디 있습니까!?”

“뭐가! 어차피 나지도 않은 판인데!”

“에라, 못 해먹겠네! 뭐가 안 났습니다. 지금 나기 직전이구만. 와, 이것 봐 명수 형님 패 보이냐. 진짜 연기 쩐다. 형님, 손목 가져오시죠.”

“아 쫌! 닥쳐봐! 손님 왔잖아!”

누군가 누추한 사무실에 들어왔다.

한명수가 이때다 싶어 친절한 얼굴로 다가가 인사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고갱······ 아니, 고객님.”

“여기가 해피머니 용병단 맞습니까?”

“네네, 맞습니다. 정확히 알고 찾아오셨네요.”

“저는 한국 영웅 아카데미 이한성 후보생이라고 합니다.”

“······아, 후보생이시군요.”

한명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한성을 신성철의 앞으로 안내했다. 후보생이라 돈이 될 만한 의뢰는 아닐 것 같았지만, 일단 지금은 다시 검은 땅에 갈 생각까지 하고는 마당 아닌가.

가만히 있던 신성철이 입을 열었다.

“거, 이름 찾아오신 것 보면 알겠지만, 우리 싸게 일 안 합니다.”

“3일, [보호] 및 [긴급 전력] 의뢰입니다.”

보호는 말 그대로 경호와 같은 것. 긴급 전력은 예상치 못한 몬스터의 습격이 있을 시에 같이 레이드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이다.

“3일? 우리 비쌉니다. 보호면 아래 등급 용병단을 찾으십쇼.”

신성철은 아무리 급해도 하루에 고작 수백만 원 정도 하는 보호 의뢰를 맡을 생각은 없었다. 그럴 바에 차라리 레이드를 하고, 레이드를 할 바엔 검은 땅에서 돈을 모으는 게······.

“두당 100억. 생명 수당 포함한 가격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VIP 고객님.”

신성철은 S등급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어느새 한성의 옆에 서서 상체를 90도까지 숙이고 있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  *  *

[한국 영웅 아카데미에 등장한 ‘게이트’의 정체는?]

[악(惡)의 신격을 막은 자는 누구인가.]

[후보생 이한성. 그가 격의 소환을 막아냈다.]

[이한성, 그는 누구인가. 어떻게 신격을 막아낼 수 있었나.]

[흑연의 차녀, 성시연 후보생은 마기에 침식되었다.]

[한국 영웅 아카데미, 어떻게 미리 마력 포탑을 설치했을까.]

[최초로 공개된 ‘마기 저항 포션’과 ‘마기 방독면’.]

[제현 PMC의 신제품, ‘수호의 위성’은 무엇인가.]

수많은 뉴스가 종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성시연이 화신체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영상으로 뜨지 않았기에 공개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은 흑연의 힘에 막혔을 거다.

한성은 제현 그룹의 길이현에게 용인 근처의 널찍한 땅을 받았다. 한성이 [워프 게이트]를 만들기 위해 적당한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허허, 사장님.”

“······저 사장 아니라니까요.”

“그럼 대표님?”

신성철이라는 S등급 용병은 참으로 신기했다. 전 회차에서도 그를 모른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표도 아닙니다.”

“그럼 대장 하십쇼.”

돈 많으면 대장이란다.

역시 [해피머니] 용병단의 단장다웠다.

한성은 믿을만한 용병이 필요했다.

개중에 [해피머니] 용병단은 돈만 많으면 접근이 쉬웠다.

물론, 단순히 수백억 정도가 아니었다.

아카데미 게이트 사건에서 활약하는 것으론 두당 100억이었지만, 앞으로 [검은 땅]에서 함께 활동하기로 한 것에는 [마기 정화의 비약(20%)]을 제공하고 특정 마법 아이템을 지급하면서 수익까지 분배하기로 했다.

자존심 강한 S등급 용병을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메리트였다.

“······천천히 하죠. 그것보다 준비는 잘 돼갑니까?”

“네, 그럼요.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습니다. 역시 대장님은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개인으로 워프 게이트를 만들 생각을 하셨습니까. 하하하.”

옆에 있던 한명수도 지지 않았다.

“크으, 그것도 검은 땅으로 향하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31번 구역을 통째로 관리하신다고요? 개인적으로 전 대장보다 훨씬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이놈이?”

옆에서 듣던 신성철이 한명수를 째려봤다.

“대장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전 대장님?”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장난스럽기도 하고 돈만 밝히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한성은 정면에 솟아오른 게이트를 바라봤다.

높이만 20m가 넘어가고 좌우 너비는 30m나 된다. 곳곳에 마족에게서 나온 [검은 마력석] 수십 개와 상급 마력석 수백 개가 게이트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게이트를 구성하는 재료엔 하나하나가 수천억에 달하는 고가의 물질이 상당수 들어갔다. 그 때문에 한성은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야 했다.

한성은 마치 게이트 너머를 바라보듯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  *  *

한성은 성시연에게 매일 찾아갔다.

첫날은 계속 울었고.

두 번째 날은 멍한 상태였다.

세 번째 날은 한 시간 정도 대화했으며.

네 번째 날은 드디어 웃었다.

다섯 번째 날.

“기분은 어때?”

“괜찮아. 사실 힘이 넘치기도 하고.”

성시연은 침대가 답답한 모양인지, 잠을 잘 때가 아니면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성은 그 앞에서 소이연이 준비해준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나도 먹을래.”

“······괜찮겠냐.”

“그럼, 당연하지. 이제 내가 너보다 강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면서 으쓱하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한성은 얼음에 위스키를 부어 차게 희석해 먹는 ‘온 더 락’으로 따라줬다. 한성이 세 바퀴 정도 돌린 후에 향과 맛을 음미했다.

그러자 성시연이 어색하게 따라 했다.

“크윽. 켁켁. 이게 뭐야. 그 소주랑은 다르잖아!”

“당연하지, 완전 다른 술인데.”

“······엑, 맛없어.”

성시연은 그러면서도 홀짝홀짝 잘 마셔댔다. 그러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성시연이 입을 열었다.

“근데.”

“응?”

“왜 그렇게까지 했어?”

약간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는 성시연의 눈동자가 한성을 바라봤다. 영롱했다. 전에도 예뻤지만, 지금은 정말 인간의 외모가 아니다.

가끔 이렇게 쳐다보면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응?”

“들었는데······ 그렇게 ‘격’을 제거하는 건 네가 죽을 확률도 있고, 실패할 확률도 크다고······ 그래서 그냥 화신체를 없애는 게 낫다고. 그냥 날 죽이는 게 훨씬 쉬웠을 거래.”

“······누가 그러디?”

“엄마가.”

“······뭔, 말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하냐.”

“틀린 말도 아니잖아.”

잠깐 잊고 있었다.

성시연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또 어떤 사람인지도.

“그럼 죽일까?”

“그게 더 쉽······.”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

한성은 성시연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난 친구를 버리지 않아.”

한성의 말에 성시연은 앞으로 기울였던 상체를 들었다. 눈빛이 흔들린다. 무슨 생각인지 성시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친구.”

“그럼 친구지.”

한성의 착각일까.

아니다. 호감도가 이제 90을 넘겼다. 한성이 성시연을 구하고, 며칠 동안 이곳에서 그녀를 달래는 사이 호감도가 급격히 올랐다.

이건 부정할 수 없이 좋은 감정이 맞다.

하지만 한성은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미친 게임은 플레이어의 주변에 붙어있는 사람부터 위기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이번에 성시연이 이렇게 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더 심할 거다.

그건 정말 피할 수 없는 죽음일 수도 있다.

“운동이나 하자.”

“운동?”

“힘 좀 얻었는데, 써 봐야지.”

그날부터, 한성은 성시연을 데리고 대련을 하기 시작했다.

성시연은 처음 대련하면서 ‘마력’을 피우려고 하다 깜짝 놀란다.

“어머, 시발.”

“야야. 말 좀.”

성시연의 손에 잡혀 있는 단검에서 2m에 이르는 마기 블레이드가 뿜어졌기 때문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힘이었다.

“그게 네 육체가 지닌 힘이다.”

사실 한성도 놀랐다.

이 정도일 줄이야.

“······한성.”

“응?”

“우리 대련하러 온 거 맞지?”

“······그, 그렇지. 근데 왜 그렇게 웃어?”

성시연은 한성에게 감정이 있었다.

호감이 아닌 다른 감정.

한성은 진짜 죽을 뻔했다.

그는 검을 주로 사용하며 성시연의 단검. 아니,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에 맞섰고 중간중간 마법을 사용하며 몸을 피하고 버텨야 했다.

성시연의 육체는 대단했다.

한성의 검에 닿아도 생채기 정도로 끝났고, 그녀의 마기 밀도는 웬만한 상급 마족보다 과밀(過密)했기에 마법을 써도 뒤로 밀리는 정도일 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한성이 누구인가.

그렇게 3일 정도 대련을 하자 금방 적응했다.

“사기야!”

“응, 아니야. 재능이야.”

“재수 없어, 죽어!”

콰아아앙!

성시연은 한성과 대련하면서 과도한 마기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2m에 달했던 마기 블레이드는 단검의 크기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고농도로 압축하기 시작했고 원할 때는 순간적으로 블레이드를 실처럼 쭉 뽑아내 공격하기도 했다.

다행인 건, 성시연이 마법을 못한다는 거고.

더 다행인 건, 마법을 배울 머리가 안 된다는 거다.

성시연이 가진 능력치 중 가장 낮은 능력치가 [지능]인데, 다른 능력치에 비해 반도 안 되는 것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뭐야. 이제 마기도 안 통해? 포션도 안 썼는데!?”

“이런, 이제 마기에도 적응하는 고인물이랄까.”

“고인물은 무슨, 다 썩어서 마기가 됐구만.”

한성은 [마기 정화의 비약]을 팔면서 말했던 게 있다.

[마기 저항]이라는 게 생길 수 있다고, 그건 사실이다. 물론 정확한 방법은 ‘장시간 고농도의 마기에 노출되면서 정화 포션과 저항 포션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한성은 육체의 1차 한계를 벗어 던지기도 했다.

- 과도한 [마기]에 노출됩니다.

- 강력한 충격에 육체가 붕괴를 시작합니다.

- 고농도의 마력에 육체가 회복됩니다.

- 기이한 [운]이 발동됩니다.

- 육체가 지닌 1차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될 때면, 한성은 성시연을 꼬셨다.

“한 번만.”

“싫어.”

“왜에, 한 번만 보자.”

“뭘 자꾸 보재? 이 새끼 변태 아니야?”

“한번 보자, 보고 생각해 보는 건 어때?”

“······.”

한성은 게이트 사건 때 생중계했던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시연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 싫은 모양인지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도망칠 순 없는 법이다.

[아카데미, 게이트 사건 해결 영상.]

이번 제목만큼은 어그로를 끌지 않고 진중하게 했다.

영상이 흘러간다.

별관이 무너지고 한성이 등장한다. 그곳엔 부화장 안에 있는 성시연의 모습이 보였고, 멀리 마족과 마수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들은 한성의 사람들에 의해 막혔다.

진짜 내용은 여기서부터였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릴리스의 격이 성시연의 몸에 깃든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화신체가 성시연인지는 모른다. 이미 변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성은 그에 맞선다.

소리는 들리지 않아서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성의 몸에서 뿜어지는 힘은 일대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그는 손이 사라지며 피를 토한다.

한성의 팔이 릴리스의 몸에 닿았고.

그녀의 팔은 한성의 복부를 뚫었다.

“······아팠어?”

“죽을 만큼.”

“······더 세게 찔렀어야 했는데.”

참, 성시연이 또 어떤 사람인지 잊고 있었다.

최근 약한 모습을 너무 많이 봐 왔었다.

성시연은 손을 뻗었다.

그 손은 한성의 배에 닿았다.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아파······?”

“······아니.”

사람이 참 왔다 갔다 한다.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나쁜 새끼.”

“아니, 이년이?”

“풉. 푸하하하.”

“웃기냐.”

그 웃음에 한성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는 돌아온 것 같았다.

< 친구와 연인 사이.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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