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심. >
한성이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시스템 문구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새삼스럽지만 말이다.
- [존재력]의 영구적인 손실이 발생하였습니다.
- [능력치]의 영구적인 손실이 발생하였습니다.
- [이능]의 영구적인 손실이 발생하였습니다.
- 기이한 [운]이 발현됩니다.
- 완벽한 [운]이 발현됩니다.
- 다시 없을 [운]이 발현됩니다.
- [행운의 여신]이 플레이어 이한성에게 깃듭니다.
- [두 번째 메인 스토리]의 보상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 [전설을 걷는 자]가 시작되었습니다.
- 희미한 격을 얻었습니다.
- 미약하지만 [희귀] 등급의 격을 얻었습니다.
- 손실된 [존재력]이 격을 통해 복구됩니다.
- 손실된 [능력치]가 업적을 통해 복구됩니다.
- 손실된 [이능]이 행운에 의해 복구됩니다.
잃었던 모든 것이 복구되었다.
한성의 손도 돌아와 있었고 능력치 및 이능도 전과 다를 바 없이 돌아와 있었다. 거기에 반쪽짜리지만 [희귀] 등급의 격을 얻었으며 [전설]에 도전할 자격이 생겼다.
- [Main Story – 02]를 완벽하게 클리어하였습니다!
- 퍼펙트 클리어!
- 아카데미의 피해 : 4% 미만.
- 메인 캐릭터의 피해 : 3% 미만.
- 게이트 파괴 : 99%
- 릴리스의 화신 격퇴 : 90%
- 보상이 결정됩니다.
- 인지도 포인트 10,000을 지급합니다.
- 모든 이능이 한 단계 성장합니다.
- 모든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한성은 다시 한 번 성장했다. 인지도 포인트야 이제 워낙 많아서 어디에 써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할 지경이었고, 이능이 한 단계 올랐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상태창]
이름 : 이한성
능력치 : [근력 49] [속도 49] [민첩 49] [체력 49] [감각 49] [마력 49] [정신력 49] [지능 49] [매력 38] [행운 99]
잠재력 : 529/1,000
고유 능력 :
대상 개화(C/SSS), 육체 강화(B/A)
특수 능력 :
정보 열람(B/EX), 전설의 비약 제작자(C/S)
특성 :
마력 지배(S/SSS), 공간 조종(B/SS+), 시간 관여(C/S), 관종의 삶(A/SS)
마력 지배는 드디어 S등급에 올랐고, 모든 능력치는 평범한 육체의 1차 한계인 49에 머물렀다.
아직 중간고사가 끝나지도 않은 시점. 이 세계를 시작한 지 2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 이 정도 능력치와 이능을 보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성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성시연은. 그녀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한성은 일부러 릴리스의 [격]만 태웠다. 그 격이라는 게 릴리스의 발끝 정도의 아주 미약한 격이라지만, 화신체를 직접 죽이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고 성공 가능성도 극히 낮은 도박이었다.
하지만 한성은 시도했고 성공처럼 보였다.
그런데 과연 성공일까?
성시연은 이미 마족화가 되었다.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외모는 50% 정도였고 내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신격에 다다른 태초의 릴리스를 잠시나마 감당했던 몸이다. 당연히 일개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것은 [마왕] 정도의 완벽한 육체가 와야 겨우 가능한 정도였다.
‘릴리스의 화신체.’
성시연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육체에 적응하는 것. 다른 이들의 시선. 그리고 언제든 다시 릴리스의 화신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말이다.
한성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뚫렸던 배를 만졌다. 완전하게 치료했다고 하지만 큼지막한 흉터는 어쩔 수 없었다.
달칵.
“아빠!”
“한성님.”
병실의 문이 열리고 반 인간 폼을 한 하얀이가 달려들었다. 다행히 한성의 몸은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기에 하얀이를 번쩍 안아 들 수 있었다.
“오구, 하얀이 왔어?”
“으아아앙! 아빠아아!”
하얀이는 한성의 품에 안겨 울었다.
닭똥 같은 눈물이 한성의 가슴을 적셨고 하얀이는 작은 손이 한성의 어깨를 때렸다.
“아빠아아! 나 버리지 마요. 으아앙, 나 혼자 두지 말고, 멀리 가지 마요오!”
“어디 안 가. 항상 하얀이 옆에 있을게.”
“약속해. 약속해야 해에에! 으아아앙!”
한성은 하얀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 헤일렌은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웃고 있었고, 한성도 슬쩍 미소를 지었다.
좋았다.
혼자였던 곳에서 이렇게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한성은 결심했다.
절대로, 절대로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고.
* * *
[흑연]의 가주, 소이연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서서 그들을 막았다.
“흑연의 가주님, 길을 열어 주십시오.”
“안 될 말입니다.”
“영장은 발부되었습니다. 협조하지 않을 시, 강제 집행될 수 있습니다.”
“[보호국], 국장님.”
“······네, 가주님.”
서늘한 소이연의 눈빛에, 보호국 국장 ‘안재국’은 두꺼운 팔다리를 잔뜩 긴장시켰다. 뒤로 선 보호국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 딸입니다.”
“아직 모릅니다.”
“제가 확인했습니다.”
“정부가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소이연은 저들에게 성시연을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성시연은 인간이 맞고, 자신의 딸이 맞다. 하지만 정부는 다르게 생각할 거다.
그들은 일말의 잠재적 위험도 참지 못하니까.
“전쟁이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안재국이 말했다.
소이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전쟁이라도 할까요?”
흑연은 강하다.
하지만 정부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세계가 변하고 100년 동안 많은 성장을 해 왔다. 권력은 금력을 끌어모으고, 금력은 무력을 끌어모은다.
발 빠른 한국 정부는 그 어떤 나라보다 먼저 변화를 선택했다.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인재는 선점했고, 강력한 금력으로 수많은 천재를 육성했다.
그렇게 그들은 한국을 세계 강국의 대열에 끼워 넣었다.
“꼭 피를 흘려야 하겠습니까?”
“누가 먼저 시작했습니까.”
“적법한 과정을 거쳐, 공인된 검증을 받으면 끝날 일입니다.”
“그럼 그 적법한 과정을 거쳐, 흑연과 전쟁을 하면 되겠네요.”
“가주님.”
“안재국씨.”
“······.”
“더는 좋게 말 안 합니다.”
“······.”
“지금까지 흑연, 그리고 언더월드와 협조한 건 정부입니다. 그 덕에 한국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와서?”
한국이 강국의 대열에 끼기 시작했을 때.
다른 나라가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과격한 방법으로 한국의 뒤를 노렸다. 그럴 때마다 한국을 지킨 것은 흑연, 정연, 언더월드였다.
당연히 정부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한국 정부는 그런.”
“감히.”
공기가 일변했다.
소이연의 기세는 공간을 장악하며 숨 쉬는 모든 것을 옥죄였다. 대기의 마력은 싸늘하게 식어갔고 눈앞에 안재국의 동공도 흔들렸다.
“정부의 개 따위가 흑연을 노려?”
“아닙니다. 저희는 적법······.”
“적법? 그럼 흑연부터 없어져야 맞겠군.”
소이연은 진심이었다.
이 이상 접근한다면 정부와 전쟁도 불사할 거다.
피해는 만만치 않겠지만, 그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양쪽 진영의 기류는 심상치 않았다. 본래라면 이 정도까지 오지 않는다. 항상 정부는 흑연에게 부탁하는 입장이었고, 흑연은 마지못해 들어주는 쪽이었다.
그런데, 안재국은 물러서지······ 못하고 있었다.
끼이익.
그때, 나무로 만들어진 정문이 열렸다.
차가웠던 공기가 일순 변했다.
저벅. 저벅.
소이연과 안재국은 발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이한성씨?”
“오랜만입니다. 가주님.”
이한성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안재국과 소이연의 중앙까지 걸어와 입을 열었다.
“오호, 안재국 국장님 아니십니까.”
“······네가 날 어떻게 알지?”
“어떻게 모르겠습니다. 우리 정부의 충실한 경비견인 [보호국] 국장이시지 않습니까.”
한성의 말에 안재국의 얼굴은 화가 난 듯 붉어졌다.
“뭐? 이 새끼가.”
“말이 험하시네요. 그러니 친구를 잘 사귀시라는 겁니다. 원래 자주 만나는 친구들끼리는 말투도 닮고 하거든요.”
“······뭐?”
“아, 저랑 같은 반이기도 한데. 줄리아 마틴. 걔가 원래 싸가지가 좀 없어요.”
“······!”
“그리고 우전 그룹의 홍덕구. 그놈은 입이 거칠죠.”
“······나는 모르는······.”
“딱 우리 안재국 국장님과 닮아가지 않습니까.”
안재국은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저 확신에 찬 얼굴은 그저 떠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니 반박해 봐라. 그럴 때마다 더 자세하게 말하겠다. 라는 듯이.
한성은 안재국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조심하십시오. 그놈들은 미국의 군수 재벌들과 친하고 중국의 정부와 친하니까.”
확신에 찬 한성의 마지막 말에 안재국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한성은 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짚었다.
“잘못하면, 여기. 작은 구멍이 뚫릴 겁니다. 당신의 아내인 혜인 컴퍼니의 이혜수, 장녀인 안희연, 막내인 안정재 모두. 그렇게 따르던 한국 정부에 의해서.”
“······.”
“그럼 안녕히.”
한성은 그렇게 등을 돌렸다.
한국 정부는 생각보다 깨끗하다. 공공의 적이 세계 곳곳에 도사리며 한국을 노리고 있으니까, 내부에서 썩기 시작했다면 한국은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을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모두가 깨끗할 수는 없었다.
안재국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사색이 된 얼굴로 휘하 보호국 대원을 이끌고 흑연을 벗어났다.
“속이 다 시원하네.”
의외로, 소이연의 말이었다.
그녀도 답답했던 모양인지 사이다 한 사발을 들이킨 모습이었다.
“훗.”
“그렇게 웃을 줄도 아는군요.”
“뭐, 저는 사람 아닙니까.”
“전 사람이 아닌 줄 알았어요. 이번 마계의 게이트 사건을 영상으로 봤거든요. 소리가 안 나와서 아쉬웠지만, 대단했습니다. 정말······ 감사하기도 하고요.”
소이연은 진심으로 감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고마움도 절절하게 느껴졌다.
한성은 [관종의 삶]을 발동하기 위해 생중계를 했다. 하지만 먼 곳에서 음성을 뺀 나머지만 보냈다. 마음 같아선 이 상황을 방송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릴리스의 격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것보다 시연이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성을 빼고 부르니 괜히 어색했지만,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성을 굳이 붙이는 것도 이상했다.
소이연은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성시연에게 한성을 안내했다.
[흑연]의 위세는 역시 대단했다. 과연 이게 1층인가 할 정도로 높은 천장에 좌우 벽에 걸린 그림들은 명작이 아닌 게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곳곳에 숨겨진 암살자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졌다.
원래 한성도 느끼지 못해야 정상인 강자들이었지만, 한성은 이미 희미한 격을 지니기 시작했으며 [정보 열람]이 B등급에 이르면서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깁니다.”
소이연은 3m는 될 법한 문을 가리켰다. 수십 겹의 결계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밖의 위협을, 그리고 안에서의 위협을 막을 수도 있는 결계.
끼이익.
한성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숨이 막혔다.
하얀 침대에 눕혀진 성시연의 모습은······ 마족이었다. 허벅지 밑으로 검은 피부였으며 붉은 손톱은 길게 돋아나 있었고 길쭉한 뿔과 양 날개는 검은 기세를 뿌려댔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새하얀 피부에 더욱 붉어진 입술은 매혹적이었고 깊게 파인 눈과 날렵한 콧날은······ 아니, 이런 세세한 묘사를 할 수가 없었다.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경이롭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매혹적이었으며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아름다움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한성은 [정보 열람]을 사용했다.
[상태창]
이름 : 성시연
능력치 : [근력 55] [속도 65] [민첩 69] [체력 60] [감각 69] [마기 67] [정신력 43] [지능 30] [매력 69] [행운 42]
잠재력 : 569/954
고유 능력 :
그림자 타기(A/S), 사고 가속(C/A)
특수 능력 :
검은 가시(F/SS), 명계화(미개화/SS), 바람의 결(D/B)
특성 :
살인(B/A), 마왕의 길(F/SS), ■■■(미개화/???)
* 화신체(마족화)가 진행 중입니다.
* 릴리스와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어진 상태입니다.
* [종속]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습니다.
“이런.”
성시연은 육체는 완성형에 가깝지만 [격]이라는 게 없고 [계약]이나 [종속]이 없기에 69라는 한계에 부딪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능력치였다.
그보다 중요한 것.
‘종속이 진행 중이었다······ 라.’
이 말은 이미 [종속의 인(印)]이 영혼에 새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릴리스와 다시 연결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으로 가려져 있던 특수 능력이 [명계화]로 개화했다. 게다가 [암왕의 길]이었던 게 [마왕의 길]로 변화해 개화했으며 [검은 가시]와 [사고 가속]까지 개화를 마쳤다.
이 모든 게 분명 릴리스의 영향이 분명했다.
‘거기에 잠재력 50이 증가.’
그것도 대단하지만, [마력]이 [마기]로 변화되기도 했다. 성장은 성장이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한성?”
성시연이었다.
그녀는 한성의 옷깃을 붙잡았다. 이렇게 강대한 능력치와 이능을 지녔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었다.
“시연아.”
“······나, 나 이제 어떡해······?”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다.
한성은 성시연의 손을 잡았다.
“나······ 이제······.”
“괜찮아.”
“······흐으으.”
“내가 지켜줄게.”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반짝이는 눈물은 서글펐고 억지로 앙다문 입은 안타까웠다. 그녀는 암살자가 아닌, 한 명의 소녀처럼 울고 있었다.
한성은 뒤에 있던 소이연을 바라봤다. 그녀를 바라보는 한성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지금부터 저는.”
“······.”
그녀를 지킬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신격 사냥을 시작합니다.”
돌아올 때가 됐다.
용살자였으며, 신격 사냥꾼이었던 예전의 이한성으로.
< 결심.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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