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반드시 잃어야 한다. >
[포탑 디펜스]
이건 이정현 마도사가 [결계 구성 협업]을 의뢰했을 때 생각해 낸 방법이다.
이 두 번째 시나리오는 ‘아카데미’ 내에 게이트가 생기기에 공략하기 어려운 거다. 강원도 또한 그랬다. 제 2의 수도라는 발전된 도시였기에, 이러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이번엔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 결계 구성에 참여할 권한.
두 번째, 재룟값을 구하기 위한 돈.
세 번째, 지난 52년 동안 키워온 마법 실력.
마지막으로 밤마다 아카데미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관종이라는 이미지. 한성은 밤마다 카메라를 끌고 아카데미를 돌아다녔다.
곳곳에서 작은 마법진을 그리며 컨텐츠를 찍는 ‘척’ 했다. 바닥에 수십 개의 회로를 중첩해야 하기에 아예 들키지 않고는 작업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난 테러 이후 아카데미 내 감시가 강화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제까지 총 360개의 포탑 발현 마법진을 설치했지.’
게이트가 발생할 지점은 무작위다. 하지만 ‘아카데미 안’이라는 범위는 있으니, 그 안에서 최대한 많은 면적을 커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계획한 것이.
[마수 방어의 포탑(1단계)]
설명 : 마기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공격하는 시스템이 탑재된 마법 포탑. 매우 단순한 시스템이기에 마력을 최소한으로 소모한다.
* 마력은 연계된 [마법 결계]에서 충당됩니다.
* 단계를 높이기 더욱 정교한 마법진이 필요합니다.
운이 좋았다.
이런 포탑을 하나 설치하기 위해선 상급 마력석 1개를 통째로 갈아 넣어야 한다. 당연히 아카데미 내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성이 아카데미 결계 구성의 [마력 효율 통제]라는 파트를 담당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작전이었다.
“후, 시간은 벌었다.”
한성은 도서관 위에서 포탑을 완성했다.
이번 퀘스트에서 생성된 게이트는 세 개의 페이즈로 나뉜다.
첫 번째는 최하급 마수.
보통 B등급을 넘지 ‘그리 강하지는 않은’ 마수들이다. 하지만 마수가 그렇듯 자체의 무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이 뿜는 마기가 무서운 거다.
두 번째는 A등급과 그 이상의 마족이 몇몇 섞여 나온다. 아마 그때부터 한성의 포탑은 실효성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파괴될 거다.
그리고 세 번째, 이 게이트의 주인이 등장한다.
그 과정은 아주 빠르기에 한성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한성님, 안전하게 5분 정도 있습니다.
“오케이.”
한성은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주변에 마기가 넘실댔지만, 한성에겐 [마기 저항 포션]이 있다. 한성은 링거에 담긴 포션을 어깨에 꽂았다. 그러자 은은한 빛이 한성의 몸에 흐르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A등급 이하의 영웅은 마기 안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성시연과 얜 샤를도 마찬가지일 거다.
‘젠장.’
이 게임은 참 잔인하다.
한성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캐릭터부터 위험에 빠뜨린다. 마냥 그 순서였다면 어떻게든 막았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니 답답할 뿐이다.
한성은 빠르게 움직였다.
도서관 별관에서 성시연의 위치가 파악되다가 끊겼고, 얜 샤를은 로비에서 끊겼다.
다행히 얜 샤를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샤를, 괜찮아?”
“하, 한성?”
이미 반쯤 마기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다. 눈은 붉게 충혈되고 피부는 검은 반점이 올라온다. 아직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으니, 금방 치료될 거다.
“이거 마셔.”
한성은 [마기 저항 포션]을 건넸다. 샤를은 꿀떡꿀떡 잘 먹더니 조금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한성, 성시연은 별관에 있었어.”
“알아.”
“그리고······ 별관은 무언가 거대한 힘을 가진 것들로 가득 차 있었어.”
얜 샤를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했다.
한성이 뭔지 모를 리 없다.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의 공략을 몇 번이나 돌려보고, 기억하고, 대비하고, 준비했었으니까. 하지만 그 목표가 성시연이라는 것에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한성이 무서워했다고 하지만, 그건 초기의 일이다. 지금의 성시연은 한성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다.
* * *
한도석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한성이 어떻게 저런 포탑을 미리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기 마수는 잘 막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후에 등장하는 A등급에 이르는 하급 마족이 등장하면 전세는 역전될 거다.
‘가서 돕고 싶지만······.’
한도석과 이정현은 정부와 길드들의 지원이 올 때까지 지켜야 한다.
어차피 여기서 저 마기에 저항할 수 있는 건 A등급 이상. 그것도 S등급은 되어야 무난하게 버틸 수 있다. 그 말은 이 방어선을 직접 지킬 수 있는 전력은 아주 소수라는 것이다.
“하, 답답하네요.”
옆에 있던 이정현이 중얼거렸다.
사방에선 방어선을 쌓겠다고 마법 결계를 설치하고 바리케이트를 올리는 중이다. 그중에 이정현의 역할은 아주 컸고 한도석도 마력을 빌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둘은 한성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믿었다. 그렇기에 당장 한성을 구하러 가기보다는 결계 형성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3분이 지나고 기본 방어 결계는 완성되었다.
“마족 하나가 나왔습니다.”
작은 키의 마족이다. ‘하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그들의 무력 등급은 ‘A’부터 시작된다. 당연히 하나하나 강력한 힘을 보유했고 뿌리는 마기 또한 독보적이었다.
두두두두두두!
등장하자마자 모든 포탑은 하급 마족을 공격했다.
하지만 큰 효용이 없는 모양인지, 하급 마족은 빛살처럼 움직여 포탑을 공격했다. 마기가 줄기줄기 올라오는 손톱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포탑이 사라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마족도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조금은 버티는군요.”
한도석의 눈은 붉게 물들었다.
저 앞에 이한성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함인지 도서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런데 한도석 자신은 그들을 당장 구하러 가지 못하고 지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믿는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 믿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의 힘이 부족해서 생긴 일임은 분명했다.
“업적이 부족해.”
생과 사를 오가는 업적.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 마족을 압도적으로 쓸어버리는 업적. 그런 것들이 없기에 S등급 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계약을 통해 ‘격’을 얻었지만, 진정한 ‘격’은 업적에서 나온다.
결국, 한도석은 반쪽짜리 격이라는 것이다.
그는 직접 후보생을 가르쳐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당장 눈앞의 후보생을 지키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
“한도석님. 마족이 더 나오기 시작합니다.”
한 마리, 한 마리 나오기 시작하던 하급 마족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법 포탑은 모두 무너졌고 마수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모두 전투를 준비합니다!”
게이트가 등장하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지원은 도착하기 시작했지만, 아주 일부일 뿐이다.
이곳에 모인 전력으로는 한 시간. 아니, 몇 십 분 버티는 게 전부일 거다.
‘게이트의 주인이 나오게 되면······.’
아마 한도석과 이정현. 그리고 아카데미의 모든 강사가 모여도 힘들 수 있다. 아니, 힘들 게 분명했다.
그 전에 지원이 와야 한다.
한도석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지척까지 도착한 마수 수십이 동시에 쓰러졌다. 결계를 설치했지만, 마기의 침투를 완벽하게 막을 순 없다. 그래서 완전히 접근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
콰과과과!
시퍼런 검강이 실린 그의 검은 사정없이 적을 베어냈다. 마수면 마수. 마족이면 마족. 아직 A등급에 불과한 적일 뿐이다.
하지만 적은 죽으며 피와 마기를 뿌려댔고 방어선은 점점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약하다. 일반 몬스터였다면 진즉에 끝냈을 전투. 하지만 이 전투는 지속하면 할수록 아군의 피해는 커졌다.
“한도석님! 마기가 너무 강해요!”
“뒤로 더 물려야겠어. 이대로는 피해가 너무 커!”
적은 점점 늘어났다.
이게 게이트의 무서운 점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끝없이 쏟아지는 마수, 그에 못지않을 정도로 많이 불어난 하급 마족.
이제 간간이 중하급 마족이 보일 정도였다. 격은 없지만, S등급에 이르는 육체 능력을 보유한 마족. 그게 바로 중하급 마족이다.
“긴급 연락입니다! 동쪽 방어선이 뚫렸다고 합니다!”
“북측 방어선도 뚫리기 직전입니다. 지원군은 도착했지만, 이미 마기의 영역이 너무 넓어져서 마수가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게이트에선 비행형 마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방어선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는 시점. 당연히 저것까지 막을 여력은 없었다.
그때였다.
오소소.
한도석은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솜털이 일어섰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금이 저려온다. S등급인 한도석에게 이 정도 압박을 줄 수 있는 것?
단 하나의 존재.
바로 이 게이트의 주인.
아니, 게이트와 연결된 ‘마계의 땅’ 중 한 곳의 주인인 것이다.
콰아아.
무엇인지 실체가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검은 무언가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냥 마기가 아니다. 검은 악마. 지독할 정도로 끔찍한 형상의 악마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도석은 이걸 경험한 적이 있다.
저건 유형화된 기세다.
진짜 악마는 아직 발을 내딛지도 않았을 거다.
단순히 격을 숨기지 않는 것만으로 이런 압박감을 선사한다.
한도석은 이정현과 함께 중앙으로 뛰어들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방어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이트의 주인이 왔다면 어차피 막을 수 없다.
주변으로 마수가 흩어지며 수만의 시민이 죽고, 일대가 마기에 침식당한다고 해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저 중앙의 존재니까.
콰아아아.
지금 이 상황에서도 중앙에서 뿜어지는 살기는 마수와 마족에게 버프를 선사했고, 아군에게 사기 저하, 마력 결핍, 능력치 하락 등의 디버프를 뿌리고 있었다.
한순간에 곳곳의 방어선이 뚫렸으며, 아군은 마족의 손톱에 사지가 잘리고 머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이었다. 전력의 차는 그 정도로 압도적이었고 마기는 치명적이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
뒤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한도석이 고개를 돌렸을 땐, 큼지막한 수송기가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군의 지원인가······?”
하지만 수송기는 착륙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기가 뿌옇게 올라온 지역 위를 향해 계속 날았다.
“안 돼!”
한도석이 외침이 들릴 리 없었다.
그때, 수송기의 뒷부분이 열리며 누군가 보였다. 특수 마법 처리가 된 방독면과 허공에 뜬 하얀 링거를 달고 있었다.
한 명이 아니었다.
같은 방독면을 쓰고 같은 링거를 달고 있는 수십 명의 인원이 마수와 마족이 가득한 적진에 뛰어내렸다. 그들은 사뿐하게 착지하며 마수와 마족을 터뜨렸다.
한도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가 S등급 영웅이 아니라면 마기 안에서 멀쩡할 수 없다. 그런데 저들은 무엇인가. 모두 S등급?
절대 아니다.
하지만 저들은 아주 편한 상태였다. 아니, 오히려 마족과 마수가 저들을 피하는 느낌마저 있었다.
‘누구지?’
덕분에 전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 * *
한성은 별관으로 들어왔다.
끔찍할 정도로 진한 마기가 몰려들었다. 한성은 마기 저항의 포션을 링거로 달고 있었지만, 이 마기만큼은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한성은 품에서 [마기 방독면]을 꺼냈다.
[마기 정화의 비약]에 비하면 [마기 저항 포션]과 [마기 방독면]은 재룟값도 싸고 손도 덜 든다. 물론, 그렇다고 절대로 쉬운 건 아니었다.
한성도 꽤 많은 실패 후에 완성할 수 있었던 거니까.
길이현을 닦달해 재료를 뽑아냈지만, 재료 원가만 수십억 이상이다. 아마 이걸 만들어 팔면 수백억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
두두두두.
포탄의 종류가 바뀌고 포탑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린다. 페이즈 2가 시작된 것이다. 하급 마족이 등장하며 방어선이 밀리기 시작할 거다.
“젠장.”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짜 놨어도 위험할 수밖에 없는 작전이었다. ‘게임의 무작위성’이라는 것 때문에 변수는 많고 위기는 더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현상이다.
[부분 마계화]
게이트의 주인이 등장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었지만, 성시연이 그 안으로 갇혀버릴 줄은 몰랐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이 게임의 ‘위험도’는 플레이어의 ‘인지도’와 ‘능력치 상승’에 비례한다. 게다가 한성이 [역사를 쓰는 자]를 진행하는 중이기에 더욱 그랬다.
“난이도 상향이 이런 식으로······?”
멈칫.
한성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함했다.
순간 욕지기가 울컥 올라왔다.
이 게이트의 주인은 [릴리스]
대악마의 아내이며 태초에 아담에게 사과를 먹게끔 유혹한 [신화]의 존재. 남자의 정기를 즐기며 갓난아기의 장기를 먹기도 하는, 몽마(夢魔)이자 마녀(魔女).
당연히 그 존재가 직접 올라오진 못한다.
이곳에서 죽는 마수, 마족, 인간의 시체로 화신체(化身體)를 만들어 [격]의 ‘아주 일부’를 소환해 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플레이 초반에 [극악]이라 불리는 지옥의 난이도가 된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있냐.”
그 화신체를 만드는 부화장에 성시연이 갇혀 있었다. 그저 화신체의 재료가 되는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채로 화신체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건 난이도 상향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그녀의 몸 곳곳은 마족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반드시 잃어야 한다.’
한성은 그 문장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유 모를 감정이 가슴 속에 들끓었다.
< 누군가는 반드시 잃어야 한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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