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유료 시작편입니다.) >
오늘은 [순위 대련]이 있는 날이다.
자신보다 상위의 후보생과 대련하면, 이기든 비기든 지든 점수를 얻게 된다. 물론, 점수는 이길 때가 가장 크다. 하지만 자신보다 하위의 후보생과 대련하면 이겨도 점수를 잃을 수 있다.
순위마다 배분되는 점수는 다르다.
대부분 순위에 집착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이한성! 나랑 붙자!”
“아니, 싫다니까!”
“왜에! 좋은 기회잖아! 랭킹 쭉쭉 올려야지!”
“그래도 너랑은 아닌 것 같아. 너무 상성이 안 좋다고.”
한성은 진훈과의 ‘우정도’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대련을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못 이길 것 같아서 걱정인 거다.
이것저것 준비한답시고 육체 훈련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메인 시나리오의 시작이······ 금방인데.’
주변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하고 몇몇 전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전에 아카데미 결계 구성에 참여하면서 심어놓은 마법 덕분에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 화장실 좀.”
진훈의 옆에 계속 붙어있으면 계속 떼를 쓸 것 같아서 일단 자리를 피했다.
‘오늘이라면, 시험이 있기 전에 일어나는 게 좋은데.’
이 시험은 체력을 아끼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이왕이면 체력이 붙어있을 때 일어나는 게 좋다.
이번 메인 시나리오는 끔찍하다.
미리 안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약간의 대비를 하는 것이 전부. 게다가 친구들에게 미리 말한다? 이번엔 아카데미 테러를 미리 준비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심을 받을 거다.
한성은 조용히 시험을 기다렸다.
저 앞에서 2m의 키를 지닌 이기홍 진훈에게 도전하는 것이 보인다.
진훈은 웃으면서 받았다.
겨우 20cm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앞뒤 부피를 생각하면 거의 1.5배는 차이가 나 보인다. 하지만 진훈은 이미 육체의 한계를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쿠우웅.
둘의 주먹이 부딪혔다.
분명 사람이 뼈와 가죽이 부딪혔는데, 거대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서로의 근력을 시험하듯 서로 깍지를 끼고 버티기 시작했다. 더 작은 진훈이 서 있던 바닥이 갈라지고 발목까지 잠겼다.
투두둑.
하지만 이내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경기가 끝났다. 이기홍의 두 팔이 부러져 버린 것이다.
“무슨 경기가 이런 식으로 끝나냐.”
어떻게 보면 싱겁고, 어떻게 보면 끔찍하다.
저걸 대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훈이야 원래 그렇지.”
옆으론 한별이 앉아 있었다.
한성에게 한별은 큰 고비였다. 한구본 앞에서 한별을 공략해야 안정적으로 그의 경계심을 무너뜨릴 수 있었는데, 아주 작은 실수만으로도 한성의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된 지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
한별은 한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어?”
“내가?”
“응. 완전 다 티 나는데?”
확실히 한성은 걱정하고 있다.
뒤쪽에 앉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세르게이도 입을 열었다.
“그런 거 같아. 항상 여유 넘치던 모습이었는데.”
“······.”
한성은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감이 안 좋아. 전에 있던 테러 사건처럼.”
“테러 사건?”
“말했잖아. 너희도 눈치채고 파고들었으면 충분히 조사할 수 있었다는 거.”
당연히 뻥이다.
한구본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조사를 중지시켰다. 그곳에서 한별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난 그때 감이 안 좋았고, 조사를 시작했기에 알 수 있었지.”
“······그래도 지금 그때처럼 감이 안 좋다고?”
한별과 세르게이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이능과 별의별 특성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마법도 있고 괴물도 있는데 이런 감이 있다는 걸 못 믿을 이유는 없었다.
“······그때보다 몇 배는 안 좋아.”
실제로 몇 배는 더 끔찍한 퀘스트다.
한성의 말에 둘은 놀라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한성도 입을 다물었다. 밑밥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성이 이 사건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드러났을 때의 변명.
그리고 그 밑밥을 사용해야 할 시간은 금방 다가왔다.
- 위이이잉!
아카데미 전체에 경보가 울렸다.
- [Main Story – 02]
- 아카데미 중앙에 마계의 입구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빠르게 대응하여 메인 캐릭터를 보호하고 아카데미의 붕괴를 막으십시오.
- 성공 시 : 메인 캐릭터 생존, 아카데미의 붕괴 지연.
- 실패 시 : 메인 캐릭터 중 1명 무조건 사망, 아카데미 붕괴, 서울의 10% 이상 마계화.
- 플레이어의 상태에 따라 퀘스트의 난이도가 변경됩니다.
- [역사를 쓰는 자]를 진행 중입니다
- 퀘스트의 난이도가 상향됩니다.
- 기이한 [운]이 발동됩니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가 발동됩니다.
- 상향된 난이도만큼, 보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범위도 커집니다.
슬슬 시작된다.
이 게임이 극악의 난이도라고 불린 이유.
끔찍할 정도로 어려운 퀘스트가 시작되지만, 보상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다. 게다가 실패했을 시엔?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몰아닥친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라는 건, 사실상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이 퀘스트 자체가 재앙인데 기회는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한성!”
한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단순히 경보 때문만이 아니다.
이쪽에서 500m. 대략 도서관이 있는 곳에 끔찍할 정도의 마기와 살갗을 에는 듯한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게이트 생성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아카데미의 [마계의 입구]라는 ‘게이트’가 생성되는 것은 1년 후에 있을 [몬스터 웨이브]라는 대재앙(大災殃)의 전조였다.
한성은 헤일렌을 통해 게이트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했다.
- 한성님, 지금 도서관 앞에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반경 500m 밖으로 방어선이 형성되는 중입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 도서관에······ 300명의 후보생이 있으며, 그중 얜 샤를과 성시연이 섞여 있습니다.
“젠장할.”
이 퀘스트의 게이트 생성 지점은 무작위다. 시기만 특정할 수 있는 퀘스트인 거다. 게다가 생성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희생될 친구도 무작위다.
그것도 한성과 관계가 좋은 친구 중에서.
“별, 세르게이. 도움이 필요해.”
“······?”
“친구들을 모아줘. 동쪽 끝 방어선으로.”
한성의 머뭇거림 없는 말에 한별은 다시 한 번 멈칫했다. 설마 이것까지 미리 알았다는 것인가? 의심과 두려움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사실, 난 미래에서 왔어.”
“······!?”
한별과 세르게이가 정말 벼락을 맞은 듯 놀랐다.
“······당연히 뻥이지. 멍청아.”
“아씨.”
이런 상황에 이런 장난을 친 것은 정말 미안하지만, 근질거리는 입을 참기 힘들었다.
지금 둘의 표정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흐흐. 미안, 근데 나 이 영상 써도 되냐?”
“아니, 지금 이 상황에 이걸 찍고 있었다고?”
“그냥 24시간 녹화하는 데 우.연.히. 찍힌 것뿐이야.”
당연히 의도한 거다.
삶 자체가 튜버인 관종의 기본 소양이랄까.
“······근데 방금 도서관에 누가 있다고 들었는데?”
“성시연하고 얜 샤를.”
“그럼 넌?”
“난 도서관으로 갈 거야.”
“······.”
“나 혼자 가야 피해 없이 데려올 수 있어.”
이건 진심이다.
강원 공항까지는 같이 갔었다. 하지만 그건 데려간 모두를 생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한성 본인은 살 수 있지만, 다른 친구들까지 지켜주지는 못한다.
한성의 모습에 세르게이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어?”
“······.”
한별은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안전, 의심, 경계, 불신. 이것들은 평생 한별을 쫓아온 습관이자 삶이다. 한성은 이걸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아니야. 혼자가 편해.”
한성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한별은 그건 아니라는 듯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현명해.”
“난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
“내 친구들이니까.”
한성은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렸다.
그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한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우리도 그렇게 구하러 와 줬을까?”
“당연하지.”
한성이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한별이 대답했다.
“알겠어, 동쪽 끝 방어선. 그곳으로 갈게.”
완벽해야 한다. 이 퀘스트는 [반드시 잃어야 하는 사람]이 키워드다. 한성은 그 키워드를 절대로 따라 줄 생각이 없다.
이제부터 시작인 거다.
정말 세상의 끝으로 향하기 시작하는 [세상의 끝]을 단 하나의 코인으로 클리어해야 한다. 즉,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 * *
일련의 과정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카데미 주변 마력의 흐름은 극도로 불안정해졌으며 80% 이상 시공이 완료된 결계 또한 반쯤 부서졌다. 동시에 아카데미 중앙에 위치한 도서관 앞 공터 바닥이 갈라지며 무언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쿠우웅.
강한 진동과 함께 위로 200m가 넘어가는 거대한 기둥이 솟아올랐다. 아직 점심때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이미 검게 물들었다. 먹구름이 빽빽하게 껴들었고 곳곳에서 천둥이 내려쳤다.
아카데미는 비상을 울리고 후보생과 일반인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모든 강사는 게이트 주변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 및 주변 길드에게 긴급 지원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한 법이다.
이미 게이트는 솟아올랐고, 기둥은 두 개로 나뉘며 마계의 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시커먼 마기는 순식간에 일대를 감염시켰다.
지나가던 민간인은 한 마리의 괴수가 되었고 후보생과 강사는 잠깐 버티는 게 전부였다. 그들은 마기의 영향권 안에서 탈출하는 30초 만에 정신을 반쯤 잃고 쓰러졌다.
끼야아아아.
기괴한 비명과 함께 네 발로 바닥을 기는 마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오어어어.
4m가 넘어가는 오우거처럼 생긴 마수가 간간이 걸어 나오며 움직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육체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무서운 건 그게 아니다.
존재 자체에서 뿜어지는 마기.
그것만으로도 마수와 마족은 치명적이었다.
마기에 닿는 생명체는 으스러지며, 자동차는 순식간에 녹슬어 제 기능을 잃었다. 건물은 마기에 물들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게 마기의 힘이다.
괜히 S등급 이상의 영웅이 침식되어 죽음으로 향하는 게 아니다.
한도석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도서관 일대는 포기했다.
뒤로 물려 방어선을 구축하고, 이 이상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도서관 위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이상한 포즈를 취한 것으로 봐서 누군지 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한성?’
저곳은 위험하다.
도서관에 생존자가 있는 건 확인했다.
이미 몇몇 S등급 영웅과 A등급 영웅을 파견해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전부 구할 수는 없다. 몇몇을 위해 모든 A등급 이상의 영웅이 구조에만 신경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당연하게도 마수들은 게이트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전 방향을 방어하지 않으면 수천, 수만 명의 시민이 위험해진다.
이곳은 2천만이 사는 서울이니까.
“젠장.”
하지만 한도석은 고민했다.
생명의 무게.
예전엔 그런 것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전쟁의 시대에서 그런 생각은 오래갈 수 없었다. 다른 수십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인류를 구하는 것은 한성과 같은 재능있는 후보생 한 명이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이며, 처절하게 경험한 현실.
한도석은 이정현에게 자리를 맡기고 이한성 후보생을 구출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우우웅. 우우웅.
한성이 서 있던 곳 근처.
게이트를 중심으로 100m 안에 알 수 없는 마력의 유동이 생겨나고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과밀한 마력이다.
그 마력은 아카데미를 둘러싸고 있는 결계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몇 번의 가공 과정을 거치고 몇 개의 마법진과 회로를 구성하더니 ‘탑’의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뭐지?”
한도석은 마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옆에 있던 이정현을 바라봤다.
“······서, 설마.”
이정현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렸다.
“뭔지 아십니까?”
한도석은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한성을 구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정현은 한도석의 팔을 잡았다.
“위험해요.”
“······?”
설마, 한도석이 경험해 보지도 못한 대재앙(大災殃)의 전조인 것인가? 그렇다면 도서관은 물론이고 이 방어선까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위험해요.”
“뭐가 위험하다는 건가요?”
한도석은 답답한 마음에 다시 한 번 물었다. 하지만 이정현은 하늘을 뒤덮는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도석이 다시 한 번 부르자 제대로 입을 열었다.
“마수들이 위험해요.”
“······?”
우우웅.
피유우웅. 두두두두!
콰과과과광!
그때, 그들의 눈앞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게이트 중심으로 생겨난 5개의 기둥은 하나의 ‘탑’이 되었고 그 위에 ‘포탑’으로 보이는 마법진들이 보였다. 그리고 모든 ‘포구’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포탄’이 괴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말을 잘못 했네요.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한 건가? 하여튼 저 포탑은 미리 준비된 마법진이 분명해요. 아카데미 내에 언제 저런 걸 언제 만들었는지······.”
한성은 아카데미 내의 결계에 직접 관여할 기회가 있었다. 게다가 그의 마법 실력이라면, 충분히 준비할 능력이 되었겠지.
이정현은 도서관 위의 한성을 바라봤다.
“아마 저 도서관 위에 자리 잡은 이한성 후보생이 만든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합니까?”
“아예 못할 건 없어요. 정말 실력이 좋고 운까지 좋다면요.”
“······.”
“하지만······ 이 게이트 사태를 미리 알고 있는 느낌은 지울 수 없네요.”
이정현은 의아했고 한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테러 사건에 보여줬던 그의 정보력이라면 꼭 이해가 가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운’이 좋은 상황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도석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꼭 그거 같네요.”
“네?”
“그 게임 있잖아요. 막는 거.”
“······디펜스요?”
“맞아요. 그거, 포탑 디펜스.”
5개의 마법 포탑에서 쏟아지는 공격들은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마수를 하나씩 차근차근 공격해 제거하고 있었다. 아직 초기라 약한 마수들이라고 하지만, 이건 한도석의 상식을 벗어난 장면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정말, 진심으로 궁금했다.
<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유료 시작편입니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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