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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운은 만렙이다-50화 (50/200)

< 준비(무료 마지막 편입니다.) >

흑연의 가주는 이한성 후보생의 전화를 직접 받지 않았다. 아무리 [마기 정화의 비약]이 탐나더라도, 최소한의 체면이 있는 법이다.

보통 가문이나 길드도 아니다.

[흑연(黑煙)]

세계 어떤 인물도 흑연이라는 곳은 두려워한다.

한 번 리스트에 오르면 절대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까.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리스트에 한 번 오르면 의뢰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흑연이 포기하던지, 의뢰자가 취소하던지.

둘 뿐이다.

물론, 암살 의뢰 자체가 쉬운 건 아니다. 대상의 인지도, 재산, 주변의 평가, 사회적 지위, 암살 이유 등등 모든 게 고려되어 금액이 결정되니까.

하지만 예방은 어렵지 않다.

첫 번째, 자신의 정보와 목에 돈을 걸어 놓는다. 만약 1억을 걸어 놓는다면 누군가 그를 암살하기 위해서 2억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두 번째, 흑연으로 들어온다.

아주 깔끔한 방법이다.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힘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몬스터라는 게 있기 전부터 똑같았으니까.

그런 세계의 가장 어두운 부분.

그 정점에 선 게 바로 [흑연]이다.

그런데,

“······가주님.”

“······그러니까. 나보고 전화를 안 받으면 정연이나 언더월드로 가져간다는 거지?”

“······그 말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대놓고 협박하는군.”

흑연의 가주, 소이연은 통화를 받았다.

- 하하, 안녕하십니까.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군요.

소이연은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네요. 반가워요.”

- 제가 35%짜리 비약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흑연, 정연, 언더월드 중에 하나만 팔 거고요.

“허······.”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언제였던가.

단순히 권력, 영향력, 돈, 힘. 그뿐만이 아니다. 흑연이라는 가문은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다는 잠재적인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당당하다고?

- 정연의 가주, 한구본. 언더월드의 왕 심우주. 모두 직접 나온다고 했습니다.

“······직접?”

- 네, 전 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아마 가주님이 직접 나와야 거래가 가능할 것 같아서요. 괜히 아랫사람 보냈다가 허락받겠다고 시간 끄는 사이 다른 쪽에서 채가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자신감일까.

소이연의 얼굴엔 황당함이 사라지고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로 가면 되죠?”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성시연이 남자를 따라 다닌다고 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결코, 그런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보고를 받다 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바로 이 이한성이라는 후보생이다. 지켜보다가 별 볼 일 없는 놈 같으면 일찍이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배포는 있어 보인다.

한 번쯤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그때 보죠.”

*  *  *

‘분명, 그랬는데.’

그저 한 번쯤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제안을 받고 있었다. ‘이 조건에 살래? 싫으면 안 팜.’이라는 식이다. 소이연은 이런 식으로 거래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도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소이연만 그런 게 아니었다.

셋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확실히 쉬운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도 없다.

게이트 건설 허가권은 정부와 연관성이 높은 정연이 힘을 쓰고 흑연과 언더월드가 살짝만 도우면 된다. 직접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허가권 정도면 어렵지 않다.

‘그것보다······ 허가권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는 건가?’

현대의 워프 게이트는 인류의 발전에 아주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만큼 만들기 어렵다.

마법으로 공간과 시간을 조율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마법이 기반이 되는 [장거리 워프 게이트]는 마탑. 혹은 대형 길드나 대형 가문이 전력을 다해 달라붙어야 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검은 땅으로 통하는 게이트?

다른 안정적인 지역보다 배는 어렵다.

하지만 이한성 후보생의 눈엔 한치의 걱정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만 잔뜩 붙어있을 뿐이었다.

‘마지막도 어렵진 않다. 오히려 너무 쉬울 정도.’

[비상 지원 요청권]

고작 후보생 하나가 위기에 처하면 얼마나 처하겠는가. 정말 만약의 상황에 감당할 수 없는 지원 요청이 오면 거절할 수도 있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이건······.’

제 31번 구역의 소유권.

이것은 상당히 애매하다.

31번 구역은 검은 땅에서, [흑연], [정연], [언더월드]의 영향력이 애매하게 섞여 있기도 했으며, 서로 간의 중요 전략적 요충지였으니까.

그 말은, 여기 앉아 있는 세 명이 동의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다.

셋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역학 관계를 알고 제안한 것일까?

보통이 아닌 후보생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아카데미 테러, 비약의 제작, 강원 공항에서의 활약. 거기에 이러한 역학 관계를 알고 제안한 것이라면, 그저 후보생의 치기 어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의 제안은.’

검은 땅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저 파견이나 지원이 아닌, 자리를 잡기 위해서.

셋은 빠르게 이한성에 대한 평가를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제 31번 구역이······ 어떤 곳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요?”

소이연은 정말로 궁금해했고.

“아무리 우리 지원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쉽게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구본은 [비상 지원 요청권]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맞습니다. 그곳은······ 마계 영역의 최전방. 웬만한 전력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곳입니다.”

심우주는 한성을 걱정할 정도였다.

한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걸 하나씩 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방어에 실패한다면 다시 가져가시면 됩니다.”

소이연은 저런 자신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아크 리치를 처치했고 S등급 폴 홀렌드를 잡은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검은 땅은 전혀 다른 곳이다.

S등급에 이른 영웅도 ‘악의 신격’에 종속되지 않으면 대부분 버틸 수 없는 곳. 그런데 고작 후보생에 불과한, 등급으로 따지면 C등급이나 되었을 법한 후보생이 그곳을 지키겠다고?

“어려울 거 없습니다. 제가 밀려나면 다시 찾으시면 됩니다.”

셋은 한성의 자신감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래에는 자신감이라는 것이 무게추가 되진 않는다.

심우주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가격으로 따져서 3조에서 5조 정도 되는 비약 하나를 재료까지 공수한 상태에서,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우리가 너무 밑지는 장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한성은 그 질문에 미소를 띄웠다.

원하는 질문이 나왔다.

“그렇죠. 그래서 제가 만드는 게이트의 사용 횟수를 조금씩 나눠드릴까 합니다.”

게이트는 일정 기간에 오갈 수 있는 횟수의 제한이 있다. 최상급 워프 게이트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검은 땅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 왕복, 인원과 무게까지 제한이 있다.

정연이나 흑연. 그리고 언더월드에도 검은 땅으로 향하는 게이트는 많아야 두 개가 전부다.

이 정도면 셋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가주와 왕이 한성의 숨은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하, 이런 뻔뻔한.”

“후후, 아예 31구역에 상주하면서 지켜달라고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금 분위기가 풀렸다.

한성이 31번 구역에 게이트를 만들어 놓으면, 그들의 파견 영웅들이 31번 구역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하하, 그리고 31번 구역에 마기 정화의 비약을 만드는 상점을 하나 차릴 겁니다. 각종 마법 무구도 들여올 거고요. 아마 지금까지 없던 것들일 겁니다.”

이번엔 그들도 쉽게 웃을 수 없었다.

한성의 의도를 눈치챘다.

한성은 이 구역을 직접 모두 방어할 생각은 없었던 거다. 흑연, 정연, 언더월드의 구역 사이에서 완충 지대를 구성하며 자연스럽게 떠돌이 용병을 모을 생각인 거다.

그들이 이 구역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알아서 방어할 수 있도록.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자, 이렇게까지 했는데 거절할 수 있을까?

한성은 다시 한 번 웃었다.

“아, 그 전에. 저희 셀카 한 번 찍을까요?”

이런 좋은 섬네일을 놓칠 순 없었다.

당장 이 대화를 노출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간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섬네일이다.

*  *  *

한성과 세 왕이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

밖에서는 난리가 났다.

[무기술 시연]과 [순위 대련] 등의 시험이 끝나면 길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보통 길드장도 오질 않는데, 두 가주와 한 명의 왕까지 직접 행차했다고?

“······이 녀석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

세르게이가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진훈도 고개를 저었고, 방금 도착한 한별과 나디아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별아, 너희 아버지가 원래 이런 곳에 왔었어?”

진훈이 물었다.

“아니, 전혀.”

절대로 이런 곳에 행차할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경매장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과장 하나 안 하고 대통령이 초대해도 아랫사람을 보내는 사람이다.

“어? 시연이도 왔네.”

성시연과 얜 샤를이 옆으로 다가왔다.

뒤로 슬쩍 안혜림까지 왔는데, 이번에 강원 공항에서 같이 싸웠던 것 때문인지 서로 친해진 상태였다.

그때, 단체 면담실이 열렸다.

가장 먼저 나온 건 언더월드의 심우주.

양옆으로 주르륵 인파가 갈라진다.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 하나하나 A등급에 가까운 엘리트 영웅들이었지만, 이들의 길을 막을 배포는 없었다.

심우주는 그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한구본은 한별에게 다가갔고, 소이연은 성시연에게 다가갔다.

“별아, 강한 친구를 뒀구나. 약간은 날강도 같기는 해도.”

“······감사합니다.”

좋은 좋지 않든, 아버지에겐 깍듯해야 한다.

한별이 평생 육체와 영혼에 새긴 정답이다.

그 뒤에 있던 한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때,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시연아.”

“네, 어머니.”

“좋은 남자친구를 뒀구나.”

“······?”

“나중에 정식으로 초대해라.”

“······네? 그, 그게 아닌······.”

성시연은 한성과 자신의 어머니를 번갈아 보며 아니라고 말하려 했지만, 소이연은 이미 등을 돌려 걷고 있었다.

“······뭐야뭐야. 지금 이게 뭐야.”

“오호. 둘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진훈과 세르게이가 딱 걸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옆에 있던 얜 샤를도 깔깔 웃었다.

“하하하. 성시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아, 아니거든!”

성시연은 어머니를 잡으려다 친구들의 놀림에 얼굴이 붉게 올라왔다. 한성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17살은 17살이다.

한성은 적당히 자리를 피했다.

괜히 같이 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  *  *

한성은 기숙사로 돌아왔다.

일단 큼지막한 일은 끝냈다.

당장 중요한 건 며칠 이내에 벌어질 [메인 스토리] 퀘스트다. 보통 플레이어들은 ‘시나리오’라고 부른다. 하나의 스토리를 담은 퀘스트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끝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쉽게 끝나진 않을 거다.

“헤일렌, 메인 스토리 공략 프로젝트.”

“알겠습니다.”

헤일렌이 육체를 지니긴 했지만,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거기에 ‘해킹’이라는 능력까지 지니게 되면서 활용도는 더욱 커졌다.

벽면에 널찍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그곳엔 시나리오에 대한 정보. 그리고 한성이 지금까지 준비한 내용이 떠올랐다. 분량이 상당히 많았기에 벽면을 넘어선 상태였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극악한 난이도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완벽할 순 없더라도, 완벽에 가깝게 클리어해야 한다.

한성은 오늘도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엔 [마기 저항 포션]을 만드는 거다. 이미 침식된 몸을 회복할 수 없지만, 당장 마기가 눈앞에 있다면 침식을 막아줄 순 있다.

당연히 이것도 시중에 없는 거다.

시간만 충분했어도 몇 개를 판 후에 실전에 사용했을 테지만, 이번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노가다네 노가다.”

대부분의 고인물이 재능으로만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상식이다. 진정한 고인물은 [재능] + [노가다]가 함께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이것뿐만이 아니다.

몇 주 내내, 시간만 있으면 아카데미 곳곳을 돌아다니며 작업해 놓은 게 있었다. 당연히 메인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제 진짜 금방이다.

빠르면 내일, 늦어도 5일 이내.

“이걸 완벽하게 클리어해야, 검은 땅에서 할 ‘사업’이 문제없이 진행될 텐데.”

거래는 어렵지 않게 성립되었다.

이제 밥상은 구했다는 거다. 이제 한성이 밥과 반찬을 차려 맛있게 하나하나 먹어주면 된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또 먹어서 살을 디룩디룩 찌울 거다.

그래야 [길성현의 공략]과 언더월드에서 얻을 수 있는 [왕의 길]이라는 것까지 포함하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테니까.

한성은 늦게까지 작업하다 잠에 빠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다.

< 준비(무료 마지막 편입니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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