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쓰는 자 >
전투는 처절했다.
리치는 A등급 마법사와 같은 수준이고 데스 나이트는 A등급 검사와 같은 수준이다. 다행인 건, 한성의 충고 덕분에 대폭 충원한 경호원이다.
길이현과 몇몇 마법사가 리치의 마법을 방어해 냈고, 김태균과 나머지 경호원이 드레이크와 데스 나이트를 막아섰다.
C등급 이하는 민간인을 보호하며 대피시키는 중이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길이현의 마력의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한성이 대폭 상향해준 마력 충전석이 있었으니 지금까지 버틴 거다.
그것은 김태균 경호 실장과 여타 경호원도 마찬가지였다.
한 명씩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젠장!”
길이현이 소리쳤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의 두려움을 몰아내는데 바빠서 품 안의 사람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 사람도 지키지 못하는데······.’
이 많은 사람을 지킨다는 것은 욕심이었을까.
길이현의 가슴은 무력함과 죄책감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상무님!”
그 찰나, 거대한 불덩이가 길이현의 눈앞으로 몰아닥쳤다.
대비할 수 없는 속도였다.
하지만 옆에 있는 경호원이 그걸 가만두지 않았다. 직접 몸을 던져 막았으며, 한 줌의 재로 사그라드는 것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1초는 길이현이 마법을 펼치기 충분한 시간이었고, 한 사람의 희생으로 길이현은 불덩이를 막아냈다.
콰아아앙!
길이현은 이유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미안함. 그리고 무력한 스스로에게 쏟아내는 분노.
길이현의 심장은 싸늘하게 굳어갔다. 거칠게 뛰던 심장은 급격히 느려졌고 그의 뜨거운 마력은 차갑게 변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마법을 쏟아냈다.
마력의 용적이 한계에 다다르고.
육체의 과부하가 극한에 이르고.
그녀는 생명을 바쳐 강대한 마법을 발현했다. 그녀의 신념과 분노. 그리고 생명이 깃든 마법은 드레이크를 분쇄했고 리치의 마법을 파훼하기 시작했다.
“죽어.”
그녀의 말에 주변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극로도 정제된 빙(氷) 속성 마력.
- 특정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 [동결(凍結)(F/S)]이 개화합니다!
- 마력을 매개로 상대를 동결할 수 있습니다. 정신력을 기준으로 발현되며 사용자의 분노와 차가운 이성에 반응합니다.
그그극.
길이현에게서 퍼진 냉기는 정면의 드레이크와 데스 나이트. 그리고 리치까지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이 기세를 몰아 아군은 적을 하나씩 불태우고 베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의 수는 끝이 없었다.
길이현의 힘은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김태균 실장님.”
“네, 상무님.”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김태균은 길이현 옆을 지켰다.
“사람들을 데리고 벙커로 이동하세요.”
“······안 됩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건 명령이라도 안 됩니다.”
길이현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개화한 이능이 있지만, 이미 그녀의 몸과 정신은 한계였다.
적의 반수를 죽였지만, 그만큼의 적이 다시 나타난다. 저 리치의 영역에서 언데드는 계속 생산되는 것이다.
더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때였다.
번쩍.
하늘 높은 곳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미친 새끼들으으을!”
수십 개의 마력의 창이 쏟아져 내렸다. 길이현은 목소리를 듣고 알았다. 길성현이다. 마법 복제를 이용해, 전력을 다한 공격.
하지만 그걸론 부족하다.
적은 A등급 수십 마리.
길성현은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하지만, 등급으로 따지면 C등급도 되지 못한다. 이능을 포함해도 B등급을 결코 넘지 못한다.
등 뒤에 마력석으로 보이는 무언가 주렁주렁 달린 게 보인다. 몇 개는 마력 충전석, 몇 개는 처음 보는 것들이다.
‘이한성님의 작품인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성현이 혼자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휘이이이잉.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언가.
그 빛줄기는 드레이크를 탄 데스 나이트에게 향했다.
데스 나이트는 검은 오라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빛줄기는 검을 부수고 데스나이트를 부쉈다. 그리고도 멈추지 않고 드레이크의 두개골까지 박살 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강력한 충격파.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진훈이라는 친구였다.
그는 전신에서 황금빛 오라를 뿜어내며 어깨를 풀고 있었다. 단 하나의 무기 없이, 오로지 주먹으로 이뤄낸 신기(神技)였다.
뒤이어.
허공을 짓누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한별이라는 친구가 등장하며 날고 있던 드레이크는 모조리 추락시키며 리치를 구속했다.
옆으로 번개의 창을 든 얜 샤를이 드레이크를 날개를 찢을 때, 기다란 섬광이 그녀의 옆을 스쳐 갔다. 푸른 오러 블레이드를 줄줄이 뿜으며 등장한 세르게이와 그의 옆에서 크고 두꺼운 창을 빛살처럼 휘두르는 나디아가 보였다.
믿을 수 없는 위력(威力)이었다.
그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면, 어떠한 소모성 아이템을 몸에 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것들 덕분인가.’
길이현의 시선은 중앙으로 향했다.
이한성이 보였다.
그의 눈은 짙은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다와 같은 어마어마한 용적의 마력이 넘실거린다. 극한으로 운용하는 마력 지배의 흔적이었다.
그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떠오르며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몇 개의 마법진은 서로 섞이고 조합되었다.
아름다웠다.
그저 그 자리에 부유한 상태로 넘실거리는 마법을 조합하고 또 조합하는 것뿐이다. 푸른 빛으로 빛나는 눈동자, 휘날리는 머리칼과 옷가지.
작은 태풍은 단단했지만, 경이로웠다.
길이현은 넋을 잃고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거대한 마력의 파동을 감지한 리치과 데스 나이트가 이한성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 마리의 검은 재규어처럼 어둠을 헤집으며 하얀 안광만 비치는 성시연이 그의 곁을 지켰고, 다시 한 번 노란 표범이 된 붉은 안광의 안혜림이 있었다.
한성의 마법진은 점점 커졌다. 작은 마법진이 섞이고 조합되면서, 하나의 건축물을 올리듯이 점점 거대해 지고 있었다. 그는 부족한 [격]을 마력과 마법진으로 이뤄진 하나의 ‘성’을 쌓아 대신하고 있었다.
길이현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뒷걸음을 쳤다.
같은 마법사라면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옅지만 [격]이라는 게 느껴졌다.
단순히 마법이 수준급에 오른다고 가능한 마법이 아니었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성은 해내고 있었다.
‘저건······?’
한성의 등 뒤에서 마력을 전해주고 있는 하얀이라는 드래고니안과 헤일렌이라는 구울이었다. 한성의 부족한 마력을 그들이 보조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닌데?’
저건 겨우 C등급에 이른 능력치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훈이야 [과부하]라는 능력치 증폭 이능이 있고, 한별도 비슷한 게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일시적으로나마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지.
하지만 한성은 아니었다.
그 순간, 짙은 어둠이 사라졌다.
한성의 머리 위.
거대한 빛줄기가 땅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퓨리어스 오브 더 헤븐]
전격계 최강이 마법. 온전한 [격]을 보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희미한 격은 흉내 낸 듯하다.
그 마법은 일대를 광활한 천국처럼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이미 수백 마리로 불어난 드레이크와 언데드를 일순간에 태워버렸다.
콰아아아아아!
* * *
- [긴급 퀘스트 : 길이현을 구하라.]
한성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시스템 문구를 치웠다.
한성은 길이현의 연락을 받자마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건 혼자로 안 된다.
하얀이와 헤일렌이 있어도 힘들다.
그렇다고 제현 그룹까지 들리거나 다른 길드에 힘을 보태라고 설득할 시간도 없었다.
한성은 [공간 조종]을 이용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거리는 길지 않지만, [정신 회복 포션]을 복용하면 다수를 데리고도 20분이면 간다.
워프 마법은 최상위급 난이도를 가진 마법이다. 웬만한 마법사는 흉내 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SS등급 이상에서나 사용 가능한 마법.
지금 그곳까지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한성뿐이라는 거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친구들뿐이었다.
한도석과 이정현은 이미 방어선을 도우러 출발했을 거다. 그들에겐 길이현을 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서울 시민을 보호하는 게 중요하니까.
한성이 처음에 전화한 상대는 길성현이었다.
“길성현. 지금 강원 공항에 갈 준비 중이지?”
- 지금 전화할 시간 없어.
“나도 갈 거야. 그리고 공간 이동도 가능해.”
- ······.
“20분 컷. 넌 제현 그룹에 들렸다가 함께 가면 못해도 40분 이상은 걸려. 아마 나보다 잘 알겠지.”
- 진심이야?
“응, 무조건 20분 안에 간다.”
- 그래 봤자 도움이 안 돼. 거기 전력은······.
“진훈, 한별. 친구들 다 같이 갈 거야. 내 하얀이라는 드래고니안도 있어.”
이 정도면 길성현이 안 올 수가 없었다.
20분과 40분. 당연히 빠르게 가는 게 났다. 제현 그룹은 길성현이 안 가더라도 40분이면 도착하고, 제휴 길드에서는 60분이면 도착한다.
“우리라면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은 끌 수 있어.”
그 말에 길성현은 결정했다.
다른 친구들은 어려울 게 없었다. 진훈을 꼬시자 한별은 자연스럽게 넘어왔고 성시연과 안혜림. 그리고 얜 샤를까지 한 걸음을 달려왔다. 세르게이도와 나디아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나디아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세르게이와 함께 온다고 했다.
한성은 시계를 바라봤다.
시간이 없다.
“상급 마력석······.”
무지하게 아깝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경매를 끝내면 얼마든지 또 살 수 있다. 거기에 길이현에게 청구해도 되고.
한성은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숨겨왔던 소모성 마법 물품을 어느 정도 풀어야 했다.
첫 번째, [마력 충전석]
최소 50% 이상은 가져가야 한다. 그래야 방어전에서 마력이 고갈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두 번째, [과부하 완충석]
이 완충석을 사용하면 과도한 이능 사용 및 마력 사용이 주는 부담을 대신 받아준다. 진훈의 [과부하]와 같은 능력치 뻥튀기 이능의 사용 시간을 늘리고 부작용을 줄여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세 번째, [AT 필드]
말이 AT 필드지 물리 및 마법 저항을 욱여넣은 자동 방어막 생성 장치다. 어떤 덕후 튜버가 만들었었는데, 생각보다 방어력도 좋고 자동 생성되는 시스템도 좋아서 따라 만들었었다.
그래도 A등급 몬스터에서 나오는 상급 마력석을 통째로 쓴 거다. 급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A등급을 상대로 어느 정도는 버텨줄 거다.
이렇게 세 개.
하지만 인원이 있는 만큼 넉넉한 양이 필요했다.
시간은 없었지만, 옆에 하얀이와 헤일렌이 있다면 그 시간 정도는 줄일 수 있다. 이런 자잘한 소모성 물품은 전 회차에 반평생을 만지고 살았으니까.
한성은 오래 지나지 않아 물품을 모두 만들었고 인원이 모이자 바로 출발했다.
그들이 선 공간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한성은 중간에 몇 번을 걸쳐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머리가 핑핑 돌고 손발이 저릿했지만, 중간에 1분씩 쉬는 게 전부였다.
한성이 도착했을 땐, 상황이 심각했다.
이성을 잃은 길성현이 먼저 뛰어들었다.
“난 마법을 준비할게.”
한성은 자연스럽게 오더를 내렸다. 성시연와 안혜림에게 엄호를 맡기고 나머지는 앞으로 나가라고. 그리고 하얀이와 헤일렌의 마력 전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한성은 드론 카메라를 올렸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생방송이다. 시청자는 이미 5만 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에서 강원도 게이트 사태가 속보로 올라갔고, 한성이 올린 제목 [강원도 게이트 사태, 친구를 구하러 갑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채팅창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멈추지 않으면 채팅이 보이지도 않았다.
- 5만 명이 당신에게 집중합니다.
- 당신의 간절함이 6만 명의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 그들이 당신에게 동조합니다.
- [관종이 삶]이 발동합니다!
- 당신의 행동은 예술로 승화됩니다.
- 7만 명의 힘이 당신에게 전달됩니다.
-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150%로 상승합니다.
- 매력 능력치 3이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한성은 몸에서 끌어 오르는 힘으로 마법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마법. 하지만 이 정도가 아니면 이 모든 몬스터를 정리할 수 없다.
부웅.
콰아아아.
한성은 단순히 마법을 준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동으로 몸이 떠올랐고 눈동자와 전신에 마력이 넘실대기 시작한다. 하얀이와 헤일렌에게 받는 마력이 과도해서 그런 부분은 있다.
하지만 이건······.
‘허세 포즈의 극치인데.’
[관종의 삶]이 패시브로 작용하는 듯, 한성은 자연스럽게 관종이 자세를 뽐냈다. 그의 마법 구성은 더욱 아름다워졌고, 그의 손짓, 그의 눈빛엔 경이로움이 담긴다.
- 8만 명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 9만 명이 당신의 아름다움에 취합니다.
- 10만 명이 당신에게 빠져듭니다.
- 매력 능력치 2가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200%로 상승합니다.
- 수많은 시선 속에 옅은 [격]을 일시적으로 얻습니다.
거의 비트코인급 상승세였다.
아쉽기는 했다. 딱 5분. 아니, 1분만 있어도 100만은 찍을 기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상의 ‘관심’은 과했다. 한성은 [격]이 없기에 육체를 넘어서 영혼이 버티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이 폭발하는 관심은.
한성의 격으로 흘러들어왔다.
아무리 일시적이라지만, [격]을 획득했다는 건 A등급을 아래로 바라볼 힘이 생겼다는 거다.
한성은 모든 힘을 다해 마법 구성에 성공했다.
순간, 일대의 모든 어둠이 물러갔다.
콰아아아아앙.
상상할 수 없는 위력으로 일대의 몬스터를 한 번에 몰아낼 수 있었다.
- [긴급 퀘스트 : 길이현을 구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 믿을 수 없는 활약입니다.
- 현재 C등급 능력치의 한계를 뛰어넘는 활약. 수만 명의 시선이 당신에게 닿아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활약을 기억할 것이며, 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입니다.
- 그들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 클리어 등급 : SSS
- 완벽한 클리어입니다!
- 업적을 이뤘습니다!
- [마기를 태우는 천벌(天伐)]
- 등급을 판정합니다.
- 업적 등급 : [역사]
- 역사에 기록될 만한 업적입니다!
- [역사를 쓰는 자]가 발동됩니다!
- [역사] 등급 업적 3개를 이뤘습니다.
- 업적.
: [각성한 포쉘을 일검에 쓰러뜨린 자]
: [세계 역동(逆動)의 시작을 밀어낸 자.]
: [마기를 태우는 천벌(天伐)]
- 역사의 격을 얻기 위한 시련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앞으로 모든 퀘스트 및 업적이 [역사] 등급의 난이도로 상향됩니다.
- 역사 등급 업적 : 3/7
- 모든 역사 등급 업적을 쌓으면, 최소한의 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역사를 쓰는 자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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