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게 거저 먹기다. >
함정임이 확실한 정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특히, 목숨이라는 게 걸려있다면 그 간절함은 말로 할 수 없다.
그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한성은 그걸 건든 것뿐이다.
20년 전, [악신의 발바닥]이라 불리는 사건이 있었다.
말 그대로 악신이 발목까지 소환되었던 일이었다. 그 일을 꾸몄던 검은 땅에서 온 용병 30명은 사살되었지만, 소환되었던 발은 미국 국토의 1/5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때 엘 포른의 딸이 마기에 감염되었고, 엘 포른은 평생을 딸을 위해 살아간다. 그렇기에 [황혼의 늑대]라는 길드는 엘 포른에 의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악(惡)에 가까운 길드가 되어 버린 것.
한성의 계획은 완벽할 수밖에 없었다.
엘 포른은 이 비약을 위해 평생을 바쳤으니까.
[마기]라는 것은 모든 최고위급 영웅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흔한 약점이다.
그걸 해결할 수 있다면?
스스로 [전설]급 격에 오른 강자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거다. 고작 한 명의 후보생에 불과한 이가 말이다.
“저는 별과 나가보겠습니다.”
한성은 별의 어깨를 짚고 말했다.
한구본은 고개를 끄덕이며 격을 개방했다. 동시에 언더월드의 왕도 격을 개방했으며, 침략자에게서도 거대한 격이 방출되었다.
한성은 숨이 턱 막혔다.
별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격을 얻지 못한 이들은 저 격을 견딜 수 없다. 한성이 아무리 고인물이라도, 저런 전투에 참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가자.”
한성의 말에 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구본은 엘 포른을 잡기 위해, 심우주는 언더월드를 지키기 위해.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엘 포른이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왔다고 해도, 저 둘을 동시에 상대하긴 벅차다.
예상대로 그들은 [마기 정화의 비약(전설)]만 노렸다.
하지만 이 경매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성은 미련 없이 별의 어깨를 잡고 [공간 이동]을 펼쳤다.
휘릭.
팟.
둘의 몸은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 * *
“별.”
한성은 도착한 곳에서 별을 불렀다.
별은 묘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중이다.
“나에게 선물을 준다고 했지?”
“······그랬지.”
“그거, 지금 받아야겠어.”
한성은 별에게 당당히 요구했다.
이제는 그래도 된다.
“알겠어.”
별은 무엇인지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 말은 어떤 것이든 들어준다는 뜻이다. 정말 훈을 향한 칼이나 자신의 가문을 향한 칼이 아니라면 말이다.
“날 도와줘야겠어.”
한성은 별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마기 정화의 비약]은 이대로 버릴 수 없다. 아무리 당장 큰돈에 연연하지 않는 한성이지만, 4조가 넘어가는 물건이고, 앞으로 공지 후 제대로 경매를 시작한다면 가격은 더 올라갈 거다.
게다가 투자한 재료와 시간도 있다.
‘당연히 포기할 순 없지.’
분명 전투는 [언더월드의 왕]과 [현세마왕]이 이길 거다.
‘둘이 이때다 싶어서 막 싸우지만 않으면.’
한구본과 심우주는 언제든 한번 싸우고 싶어 했으니까. 이 자리에서 엘 포른이 죽는다면 좋겠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물건은 엘 포른이 완벽하게 빼낼 수 있다. 그는 검을 쓰지만 [오브젝트 워프]라는 특이한 이능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안 되지만, 물건을 워프할 수 있는 능력.
그 때문에 어떠한 물건을 훔치는 것에 있어서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 옆에 붙어 다니는 ‘알렉스’는 분신과 변장에 관련된 압도적인 이능까지 지니고 있으니 탈출에도 큰 문제는 없다.
전투는 지지만, 물건은 빼돌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워프엔 거리 한계가 있다.
거리, 장소, 정연의 지원군, 언더월드의 영향력 등을 생각하고 이미 공개된 워프 장소를 제외하면 남은 건 총 5개 정도다.
여기서 더 좁히는 건 힘들다. 이것도 한성이니까, 이미 클리어했던 게임이기에 알 수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믿었다.
“여기가 맞을 거야.”
만렙에 다다른 한성 본인의 운을 말이다.
하지만 별은 그걸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잖아?”
당연한 의문.
하지만 아무리 철저해도. 아니, 그렇게 철저하니까 한성이 예상할 수 있는 거다. 이곳은 엘 포른이 최후까지 아껴두었던 장소······ 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성이 가진 운의 작용이 클 거다.
그걸 별에게 설명할 순 없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순 없잖아?”
그제야 별이 끄덕인다.
한성은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헤일렌과 하얀이를 소개했다. 그리곤 한 명씩 불렀다.
“하얀아.”
“크앙?”
“헤일렌.”
“네, 한성님.”
“별.”
“······왜.”
여전히 뚱하다. 그래도 전처럼 날이 선 모습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한성은 정면에 보이는 작은 폐공장을 가리켰다. 그리곤 마법으로 화면을 만든 후, 적외선 감지를 발동해 투영했다.
그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빙고.’
인원은 총 5명 정도.
S등급 한 명, 다수의 A등급이 존재할 거다. 그 정도는 되어야 [마기 정화의 비약]을 호송할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맞출 수 있었으면 미리 마법진을 설치해 두는 건데.’
그런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엘 포른이 바보도 아니고 함정이라고 생각한 곳에 들어가면서, 워프할 장소를 쉽게 골랐을 리 없다.
철저한 검증을 거쳤을 거다.
“보이지? 5명. 이 정도면 여기가 확실해.”
“······그렇긴 하네.”
별은 꽤 놀란 표정이다.
장소를 정확히 맞췄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이 근거리에서 한성이 펼치는 마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그러니까 S등급 용병이 있을 거라 예상되는 곳에서 마법을 펼친 거겠지.
‘이번 숙련도 작업으로 마력 지배가 A등급으로 오른 게 크지.’
그뿐이 아니다. 헤일렌의 [양육]과 육체 성장의 비약 등으로 한성이 지닌 육체 능력은 크게 상승했다.
“작전은 간단해.”
한성이 지닌 [공간을 담은 상급 마력 포션]으로 마력을 결집하고 [마력 동결] 마법을 이용해 폐공장 안쪽의 모든 마력을 동결(凍結)할 거다.
“그게 가능해?”
별이 물었다. 공간을 담은 ‘어쩌고저쩌고’의 아이템을 사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정 공간을 동결하는 마법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준비하는 시간 동안 걸릴 수밖에 없다.
“시간은 걸려. 하지만, 우리는 S등급 용병의 공격을 한동안 막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지.”
한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르르응.”
한성의 손길이 좋은지 고양이가 낼 법한 소리를 냈다.
이번 마력 컨트롤 훈련과 한성의 대상개화, 헤일렌의 양육 등의 영향으로 하얀이가 [가드니스의 권능]을 개화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하얀이의 부(父)인 백색 드래곤 [케이플람 가드니스]의 고유 권능이다. 그는 [방어]에 관련해서 그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지녔다.
지금 하얀이가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은 [방벽]이 전부지만, 그것만으로도 S등급의 공격 한 번은 충분히 막고도 남았다.
별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한성은 부연 설명 없이 계획을 전부 토해냈다.
“······가능한 거야?”
“가능해.”
별은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그런 계획을 세운 것. 이러한 장소를 알아낸 것. 그리고 드래고니안이라는 전설 속의 신수를 데리고 있는 것. 게다가 헤일렌이라는 구울의 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
거기에 원래 알고 있었던 한성의 마법 실력. 하지만 경매장에 올린 그 비약과 지금 보이는 마법 실력은,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사람은, 어떻게 볼 때마다 놀라게 하는 것일까.
별은 잠시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한성이 별에게 보여준 모습에, 별은 한 번쯤 마음을 열어보기로 한 거다.
* * *
폴 홀렌드는 길드장의 명령으로 [오브젝트 워프]를 받고 장소에 파견되었다. 극비리로 이루어진 이 파견은 제임스 린과 샤오링 룽도 알지 못했다.
오직 길드장만 아는 사실이라는 거다.
그런데도 S등급인 폴 홀렌드 자신과 휘하 A등급 용병을 다수 보냈다.
“길드장은, 철저한 것도 도를 지나친다니까······ 뭐, 당연한 거지만.”
하지만 그렇게 철저했다가 아카데미에서 한 번 당했던 게 있는지라, 폴 홀렌드는 머쓱하게 주변을 살폈다.
이곳으로 ‘물건’이 도착할 거다.
[황혼의 늑대]가 공간 관련 이능력자가 없는 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엘 포른을 포함해 모든 인원을 데리고 대피할 수 있다.
문제는 상대도 공간 관련 이능력자가 있다는 거다.
그 말인즉슨, 추적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추적이 불가능한 엘 포른의 [오브젝트 워프]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우웅.
우우웅.
폐공장 중앙에 설치된 마법진이 작동했다.
반대편에서 워프를 시작했다는 신호다.
“자, 준비해라.”
폴의 말에 휘하 용병들이 수송 차량을 열고 큼지막한 특수한 보관 박스를 여러 개 준비했다.
메인 물품은 [마기 정화의 비약]이었지만, 그것과 동시에 몇 가지 물건이 더 올 수도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번쩍.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첫 번째 물건이 도착했다.
역시 첫 번째는 [세이렌]이라는 월드 리그급 구울.
이후로 몇 개의 물건이 더 도착했다.
세이렌을 포함해, 수천억 원에 이르는 물건 총 5개.
그리고 여섯 번째에 [마기 정화의 비약]이 도착했다.
“됐다. 바로 이동 준비······.”
폴이 말을 끝내기 직전이었다.
팅.
주변에서 몇 개의 청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후욱.
우우우웅.
순간적으로 시야가 꿈틀거린다. 속이 울렁거리며 과도한 마력의 폭풍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폴은 빠르게 몸을 빼려 했다.
욱.
순간 욕지기가 올라온다.
‘마력만이 아니다!’
공간이다. 저항하기 까다로운 이능. 하지만 폴은 S등급 용병이다. 이런 경험이 무수히 많다. 그렇기에 격을 얻은 것이고 말이다.
S등급은 괜히 S등급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폴은 격을 방출해 구속을 풀었다. 하지만 다른 용병은 힘을 못 쓰고 있었다. 폴은 빠르게 폐공장의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콰직.
허공에 붕 뜬 폴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고.
몇 명의 사람을 발견하곤 그대로 쇄도했다.
허공에 긴 잔상을 남기며, 폴은 순식간에 그들에게 도달했다.
그런데.
콰아아앙!
폴의 몸은 무언가의 부딪혔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한 ‘방벽’이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혹시 S등급?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강도를 지닐 수 없다.
이 상황에서 S등급을 만난 거라면 이길 수 없다.
그런데 폴의 눈에 들어온 건 한성이었다.
“이 새끼가?”
폴은 무언가 이상했다.
이한성이라는 후보생은 고작해야 C등급이나 되었을까. 아직 후보생일 뿐이다. 마법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격’이라는 게 있고 ‘능력치’의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래 준비한 ‘결계’도 아니고 고작 ‘방벽’ 마법으로 이 정도의 강도를······?
그때, 폴 홀렌드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 실드의 주인은 한성이 아니었다.
시선을 돌리자마자 하얀 비늘이 보였다.
쿵.
심장이 떨어지듯 가슴에 둔중한 충격이 전해졌다.
“뭐야.”
한성이 입을 열었다.
“폴 홀렌드잖아.”
한성은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많은 S등급 용병 중에서 하필이면 폴 홀렌드라니, 그러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드래곤의 시선, 울음, 존재 자체가 약점이 되는 사람이니까.
“하얀아.”
“크앙?”
“울어!”
“크릉? 크아아아앙!”
하얀이는 한성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 재미있다는 듯 한성의 어깨로 올라와 입을 크게 벌려 소리쳤다. 한성에게는 단순히 애교 섞인 울음으로 들린다.
하지만 별과 헤일렌은 조금 괴로운 표정이다.
그리고 앞에 폴 홀렌드는?
눈이 하얗게 뒤집히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만.”
“크앙. 크응.”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 죽는다고 한성에게 남는 것은 없으니까. 이대로 포박해서 현상금이나 받아야겠다. 아마 [정연]이나 [흑연]에 데려가면 격하게 환영할 거다.
한성은 계속 준비하던 마법을 발동했다.
[마력 동결]
한성의 마법은 폐공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그극.
바닥에서부터 퍼져나간 ‘동결’ 작용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날뛰는 마력과 공간이 가득한 폐공장으로 향했다. 한성이 과도하게 밀집된 마력에 반응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력은 푸른 결정(結晶)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한성의 [공간이 담긴 ‘상급 마력’ 포션]과 일대 전체의 마력을 ‘동결’했다. A등급 용병도 힘을 쓸 수 있는 상태는 절대 아니었다.
“자, 들어가서 회수해 볼까?”
“네, 알겠습니다.”
“크앙!”
헤일렌과 하얀이는 태평하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별은 아직 어색한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S등급 한 명과 A등급 4명이었다.
절대로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 전투.
사실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혹시나 한성의 계획이 딱딱 들어 맞는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했다.
상대가 S등급이고 A등급이다.
별의 결심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뭘 해보지도 못하고 끝냈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한성은 너무나 태연했다. 별은 혼란을 느꼈다. 자신이 이상한 것인가 앞에 저 셋이 이상한 것인가.
별은 오늘 내내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 이런 게 거저 먹기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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