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36화 (36/200)

< 헤일렌의 육체 >

한성은 다음 날 찾아갔다.

이번엔 족발 앞다리 하나와 소주 몇 병을 사서.

“어서오세······ 요.”

이종칠이 한성을 보고 멈칫했다.

“안녕하세요.”

“네······ 그 이한성 선생님.”

“편하게 한성씨라고 불러도 됩니다.”

순간 ‘대장’이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한성은 원형 테이블에 족발을 올렸다. 소주를 꺼내 하나를 열고 종이컵 두 개를 꺼냈다.

“아직 식사 안 하셨죠?”

“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하죠.”

“앉으세요. 편하게 한 잔 먹으면서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요?”

전 회차의 이종칠은, 족발과 소주를 가장 좋아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다고 영업시간에 술을 먹는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건조된 두 마리의 구울을 확인했고 한성의 신분을 알면서도 앉지 않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한성은 능숙하게 족발 포장을 벗기고 소주를 따랐다.

“투자 쪽은 생각해 보셨어요?”

“······그 전에.”

“네, 말씀하세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뭐가요?”

한성은 생글생글 웃었다. 당연히 말해 줄 수 없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이종칠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고 한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왜요. 둘 다 괜찮은 구울이에요?”

“괜찮고 말고를 떠나서. 그런 구울은 저도 처음 봅니다. 제가 만든 게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이젠.”

“그렇군요. 이번에도 제 감이 맞았네요.”

“감이요?”

한성은 나무젓가락으로 족발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 입에 넣었다. 짭조름함과 동시에 쫄깃한 비계가 씹혔다. 거기에 소주 한 잔.

“크으. 좋네요.”

“······.”

“제가 운이 굉장히 좋아요.”

그건 사실이니까.

“게다가 감도 좋고요.”

뭐, 그것도 맞는 말이다. [정보 열람]에 의한 선택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게 말이 된다고······ 아니,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설명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 두 개는 제가 산 거고. 제가 감이 좋다고 했고. 그게 전부예요. 그걸 이종칠씨. 당신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고요.”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한 잔 드세요.”

한성은 자신의 잔에 한 잔을 더 따르며 말했다.

이종칠은 족발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소주를 마셨다.

“제가 감이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 감이 당신에게 투자하라고 하네요. 투자만 있으면 분명 잘 될 거라고.”

“그런······ 가요.”

“정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예요.”

“······.”

이종칠은 소주병을 들었다. 한성은 그걸 빼앗아 직접 따라줬다.

“족발도 먹으면서 마셔요.”

“네, 감사합니다.”

이종칠이 잔을 들자, 한성도 잔을 들어 건배했다. 둘 다 소주를 마시고 족발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얼마나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엘프에 비어 드래곤 근육 들어간 구울 있죠?”

그 정도는 설명에 다 적혀 있던 정보다.

“네, 그게······ 잠재력 800 정도가 나왔습니다. 이능도 두 개 정도 있다는 추정입니다.”

보통 제작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구울의 정보는 이 정도다. 한성처럼 세세한 수치나, 이능의 이름까지 알 수는 없다.

“그걸 투자금으로 드릴게요.”

“······당장 팔아도 최소 350억은 나올 겁니다.”

“얼마 안 되네요.”

“······지분은······.”

“30%만 주세요.”

“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솔직히 그거에 절반을 받아도 50% 이상은 드려야 맞는 계산입니다.”

확실히 그건 맞다.

하지만 한성이 사고 싶은 건, 이런 매장 따위의 지분이 아니다.

전 회차에서처럼.

한성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이종칠에 대한 빚.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어 달라는.

이기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제가 원하는 건 없어요. 그 금액에, 그 지분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제 감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한성은 족발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저녁을 따로 안 먹고 왔더니 배고프다.

게다가 이종칠이 앞에 있으면 입맛이 더 돈다. 특히, 소주와 함께 먹는 족발이라면 더욱.

“흐흐, 배 아프지 않습니까?”

“네?”

“제가 밑에서 골랐던 건, 잠재력이 얼마나 됩니까.”

“······900 중반입니다. 잘 성장만 하면 월드리거급. 이능에 대한 재능도 있는 것 같은데······ 못해도 세 개는 있는 것 같고요.”

“가격으로 따지면 얼마입니까.”

“못해도 3,000억. 이능만 괜찮은 게 밝혀지면 순식간에 5,000억 이상으로 올라가겠죠. 사실, 제대로 된 훈련 기관에 맡겨 2년 만 제대로 키운다면 얼마나 갈지 상상도 안 되네요.”

“배 안 아픕니까?”

“······하하.”

이종칠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생각하겠지.

‘이 새끼는 또라이다.’

한성 같아도 똑같은 생각을 할 거다.

“구울 좀 보고 싶네요.”

“지하실에 있습니다.”

한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종칠도 따라 일어나며 길을 안내했다.

한성은 고민했다.

어디까지 보여주고,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보통의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다. 믿을 건 [정보 열람]에서 오는 호감도와 신뢰 정도일까. 하지만 이종칠은 이제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한성은 안다.

그의 성정을.

그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신뢰를 보여야 한다.

“이 녀석입니다.”

딱딱한 철제 침대 위에 올려진 구울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 헤일렌의 목소리처럼, 여성의 몸이다. 그렇다 해도 생식기는 전혀 없다.

여성의 상징인 가슴조차도 그저 볼륨이 전부다. 옷을 입혀 놓고 피부만 덮으면 전혀 알 수 없을 테지만, 이렇게 보면 전혀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성은 정보를 열람했다.

[상태창]

이름 : 구울 AH- 10035(E/W)

능력치 : [근력 20] [속도 20] [민첩 20] [체력 20] [감각 30] [마력 40] [정신력 35] [지능 30] [매력 12] [행운 32]

잠재력 : 259/932

고유 능력 : 활강(미개화/B)

특수 능력 : 정신 방벽(미개화/A)

특성 : 양육(미개화/S)

한성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특성은 또 처음이다.

[양육]이라는 것은 곁에서 보살피는 대상의 잠재력 혹은 이능 개화의 촉진을 불러일으킨다. 헤일렌이 이 육체에 들어간다면 하얀이와 한성의 성장에 관여할 거다.

한성도 [대상 개화]라는 게 있다.

하얀이는 중첩 버프를 받게 될 거고, 이 육체 또한 한성에게 버프를 받을 거다.

‘거의 돌려막기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잠재력이 932나 된다는 거다.

어젠 분위기 때문에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행운은 올릴 수 없으니 다른 모든 능력치를 100까지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이 정도 능력치면 월드 리그에서도 최상위에 드는 구울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능과 특성. 한성이 괜찮은 큐브 몇 개만 구한다면 월드리그 정도는 씹어먹을 개체가 될 거다.

이 정도면 헤일렌의 육체로 딱이다.

[고대 기간트의 심장]도 충분히 제 효율을 다 할 거고 말이다.

“이종칠씨. 잠시 작업 좀 해도 되죠?”

“네, 괜찮습니다.”

한성은 일부러 지켜보게 했다.

실력 행사이기도 하다.

“헤일렌. 동기화 시작해.”

- 알겠습니다.

헤일렌의 의지가 구울에게 접속하는 작업이다. 헤일렌의 본체는 시스템 카메라지만, 한성과 너무 멀리 떨어진 게 아니라면 카메라와 구울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닌, AI이기에 가능한 일.

-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한성은 한성만의 일을 시작한다.

품에서 [고대 기간트의 심장]을 꺼냈다.

겉모습은 변환해 놨다. 기간트의 심장의 강대한 힘을 직접 마주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말이다.

우우웅.

심장은 존재 자체만으로 대기의 마력을 진동시켰다.

이종칠은 그 힘에 움찔 떨었다.

그래도 구울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라고 재료가 가진 힘을 가늠할 줄 알았다. 상상도 못 했던 [전설] 등급의 재료. 한성은 그걸 구울에 담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종칠의 눈빛은 장사꾼에서 한 명의 학생으로 바뀌었다.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성은 일부러 과정을 보였다.

*  *  *

세 시간이 지났을 때.

이종칠은 감격, 경악, 공포, 허탈, 공허.

각종 감정으로 점철되어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 한성의 명함을 받았을 때,

그를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당연히 나왔다. 튜브에서 유명했고 최근 뉴스에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으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런 직함을 받았을 테지.

그런데 그가 고른 두 구울을 건조하고 의심이 들었다.

누군가의 음모인가?

거기에 투자까지.

당연히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는 족발과 소주를 들고 왔다.

털썩 앉더니 갑자기 배가 안 아프냐고 묻는다.

‘이거 완전 또라인데.’

그런 생각은 했다.

사실 그런 생각을 안 한다는 게 이상한 거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건 상상 이상이다.

그런 [전설] 급 재료를 가져와서는, 구울에 융합한다. 말은 쉽다. 하지만 절대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행한 마법, 회로, 융합술.

그의 마법은 극한의 경지에 다다랐고, 회로와 융합술은 이종칠의 이해력을 아득히 넘어섰다. 그리고 그가 완성한 구울은, 그냥 구울이 아니었다.

소문은 들은 적 있다.

검은 땅에서 활동하는 구울.

그것은 더 이상 구울이 아니다.

인간을 대신하고 영웅을 대신한다. 월드 리그니, 월드 리거니 하는 TV에서의 등급은 검은 땅에 가면 한낱 제물이 될 뿐이라고 했다.

그건 믿지 않았다.

아무리 격이 없더라도 모든 능력치가 90이 넘어가는 압도적인 힘을 갖춘 게 월드 리거 구울의 힘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종칠의 두 눈에 환한 빛이 터지고, 거대한 힘을 갖춘 재료가 구울에 융합되면서 알 수 있었다. 그 범접할 수 없는 힘의 크기를.

“난 정말······ X밥이었구나.”

이종칠은 새로운 세계를 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한성의 투자를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구울을 곁에서 볼 수 있고, 한성의 실력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무조건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

이종칠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던.

가슴 속 뜨거운 무언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  *  *

한성은 언더월드를 나왔다.

옆에 [헤일렌]으로 바뀐 구울을 데리고.

“어때, 동기화는 잘 됐어?”

“네, 완벽합니다.”

이종칠이 서비스도 제대로 챙겨줬다. 기본 의상과 구울이 현실에 나가 착용해야 하는 팔찌까지.

“팔찌도 동기화 잘해 놓고.”

“알겠습니다.”

팔찌는 구울과 인간을 구분하는 장치 중 하나다. 얼굴 피부색만 봐도 구분은 되겠지만, 그걸로는 모자란 것인지 [추적] 및 [신호] 관련 마법이 걸려 있었다.

최소한 서울과 아카데미 내에선 구울의 위치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네가 할 일은, 하얀이의 보모. 그리고 육체의 훈련이야.”

“알겠습니다. 한성님의 [대상 개화]에 힘입어 완벽하게 개화해 놓겠습니다.”

헤일렌의 육체는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기간트에 심장이 제대로 흡수되면서 특성에 [고대 기간트의 심장]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박힌 것.

아류(亞流)에 지나지 않지만, 최소 드래곤 해츨링 정도의 마력은 유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잘 성장하여 능력치 성장이 한계에 온다면, [격]을 보조해 한계를 뚫을 동력원이 되어 줄 거다.

‘이 정도 전력이면 나쁘지 않군.’

제대로만 성장한다면, 이곳을 조기 졸업하고 언더 월드의 왕이 되는 길에 큰 도움이 될 거다. 또한, 검은 땅에서 [양산박(梁山泊)]을 차지하는 것도 아주 먼 일은 아니게 되겠지.

‘이종칠도 거의 넘어왔고.’

일단 투자는 받는다고 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들려서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이상한 조건이지만, 한성도 나쁜 건 아니었다.

어차피 [언더월드의 왕]이라는 퀘스트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할 일은 많으니까.

“한성.”

한성은 기숙사 앞에서 한 별을 만났다.

진 훈도 없고, 다른 인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잔뜩 긴장했다.

“별이구나. 무슨 일이야.”

“······테러 사건. 듣지 못한 게 있으니까.”

한 별은 자신의 의심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한성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라면 검은 땅의 아이라는 오해를 줄일 수도 있을 거다.

“말했잖아. 라인이 있고······.”

한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헤일렌을 바라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운이 좋게, 단서를 미리 입수한 것뿐이야. 정연이나, 흑연이나. 미리 단서를 얻었다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문제는 그 단서를 어떻게 입수했느냐지.”

“너희는 언더월드에 끈이 없잖아.”

[정연]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영향력을 펼칠 수 없는 게 [언더 월드]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흑연도 아무 단서를 얻지 못했어. 제현 그룹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아카데미와 정부까지? 그 어떤 곳도 몰랐던 단서를 네가 잡은 거야.”

한성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강하게 말을 이었다.

“정연이 못 잡은 단서를 다른 곳에서 잡는다고?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괜히 날 시험하지 마.”

한성은 한 별에게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눈빛만 보냈다. 정부는 당연히 언더월드에 영향력이 적고, 제현 그룹은 정연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

그나마 비슷한 정보력은 흑연.

하지만 한 별도 흑연이 무슨 정보를 가진지 확인할 순 없다.

“그리고, 왜 흑연이 몰랐을 거라 확신하는 거지?”

한성은 그렇게 말하곤 웃어줬다.

한 별은 그 말에 미간이 좁아졌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한성은 헤일렌과 함께 기숙사로 걸었다. 한 별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지만, 입을 열지 못했다. 한성은 이때다 싶어 더 빨리 걸었다.

여유 있는 척. 당당하게.

그때, 한 별이 한성을 불렀다.

“잠깐만.”

욕 나올 뻔했다.

갑자기 잘 나가다 왜 붙잡는 걸까.

“······왜?”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아직 모르겠는데.”

강하게 나가고 싶었는데, 점점 약해진다.

“내가 오해한 것도 있고······ 선물도 할 겸······. 아니, 솔직하게 얘기할 게.”

한 별이 이러니까 더 불안하다.

한성은 가만히 있었고, 한 별은 잠깐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가 한번 보고 싶다는데.”

XX. 제대로 욕 나왔다.

한구본.

정연을 대한민국의 수호 가문으로 끌어 올린 장본인. 전 세계에서도 그의 상대는 몇 없을 정도의 강자. [현세마왕(現世魔王)]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식언을 지녔으며, 스스로 [전설]급 격에 오른 자.

‘나, 진짜 울까?’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왜인지 물어도 되냐.”

“······.”

한 별이 대답이 없다.

그 말은 한 별도 모른다는 뜻이다. 한성이 한구본을 모를 리 없다. 그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는 한성의 뇌리에 똑똑히 박혀 있다.

“알았어. 뭐, 그게 어려운 거라고.”

“······괜찮겠냐?”

“아, 오해한 거 때문에 선물 준다고 한 거. 진심이냐?”

“······그건 진심이다.”

“그럼 됐다.”

한성은 다시 뒤를 돌아 기숙사로 향했다.

그러다 멈칫 섰다.

“별.”

“······?”

“믿을진 모르겠지만, 난 검은 땅의 아이가 아니다.”

별은 아무 말 없었다.

한성은 그대로 걸어, 별의 시야를 벗어났다.

이것으로 별이 한성에 대한 오해를 풀 거란 생각은 안 한다. 하지만 나중을 위해 ‘그건 진심이었어.’라는 밑밥 정도는 될 거다.

남아있던 한 별은 무수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한성은 정연의 가주가 누군지 알고 하는 말인가. 저렇게 태평하게 갔다가, 아버지가 장난으로 죽이면 어쩌려고 저러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 자신감이 있는 걸까

[정연]의 가주 앞에서 당당할 자신이.

한 별은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 훈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가져본 적이 없는 마음이었다.

< 헤일렌의 육체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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