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35화 (35/200)

< 구울의 왕 >

[구울]

보통은 최하급 언데드를 말한다.

하지만 현대 구울의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 100년 동안 발전해온 마법, 이능, 과학 등 각 기술의 정수(精髓)를 결집해 만든 이 시대 최고의 발명품이다.

구울은 하나의 인공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몬스터형]과 [인간형]이 있고 그 안에서 [자연물]과 [인공물]의 종류로 또 나뉘고 잠재력 수치나 이능의 유무로 위계(位階)가 정해진다고 보면 된다.

“싸고 좋은 물건만 찾으면 되는데.”

- 어느 정도 급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정말 좋은 물건이라면 이런 언더월드가 아닌 [월드 리그]에 속한 [검투] 프로팀으로 가거나 세계 유수의 [용병단]으로 가서 실전에 능숙한 구울을 찾는 게 좋다.

“개인에게 팔지도 않겠지만, 그런 건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그 정도는 너무 과분한 것 같습니다.

이 구울은 헤일렌의 육체가 될 거다.

하얀이의 보모가 되면 한성의 비서가 된다.

괜찮은 잠재력을 지닌 구울에 [고대 기간트의 심장]을 이식한다면 종장······ 까지는 무리겠지만,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가정하에 정말 괜찮은 전력이 될 수도 있다.

헤일렌은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영혼] 등급.

전혀 과분하지 않다.

하지만 월드 리거 급은 돈으로 사더라도 최소 조 단위부터 시작한다. 눈을 낮추고 낮추면 [전국 리그] 정도를 수백억 정도를 구매할 순 있을 거다.

“그 정도로 만족하기도 아쉽고.”

그래서 찾은 게 이 언더월드다.

아직 [건조]되지 않은. 그러니까 만들어지고 ‘주인 의식’을 마치지 않아 ‘잠재력’이나 ‘이능’에 관련된 재능이 밝혀지지 않은 미성장 구울이 잔뜩 있는 게 바로 이곳이다.

그 말은 아주 싼 값으로 ‘유망주’를 발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는 거다.

“이 광경은 언제 봐도 이상하다니까.”

양옆으로 주르륵 나열된 상점들엔 각종 구울이 전시되어 있다. ‘건조’되지 않아 원통에 담긴 것들부터, 건조되어 잠재력 측정을 했다가 말아먹어 싸게 내놓은 것들까지.

어린아이, 남성, 여성의 모습.

피부가 회색빛을 띠고 생식기가 전혀 없기에 아주 크게 거북스럽진 않다. 하지만 52년을 살아오면서 별것을 다 봐 왔어도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구울을 구매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건조되지 않은 구울의 잠재력은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인데.

“나에겐 다른 이야기지.”

규격 외 특수 능력인 [정보 열람]

이거라면 ‘도박’이 아니라 ‘선택’일 뿐이다.

“찾는 게 일이네 일.”

벌써 한 시간째 [구울]을 판매하는 7번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따금 쓸만한 것도 보였고 정말 탐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딱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그러다 들린 한 곳.

평균적인 잠재력이 준수한 구울이 많이 보였다.

“와, 이건 괜찮은데?”

[상태창]

이름 : 구울 AH- 10023(E/B)

능력치 : [근력 10] [속도 10] [민첩 10] [체력 10] [감각 10] [마력 20] [정신력 15] [지능 10] [매력 12] [행운 42]

잠재력 : 149/810

고유 능력 : [반동 제어(미개화/B)]

특수 능력 :

특성 : [마력 관여(미개화/A)]

이름과 설명을 보면 엘프의 DNA와 비어 드래곤이라는 B등급 몬스터의 근육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5,000만 원이면 꽤 괜찮은 가격.’

보통 건조되지 않은 구울의 판매 가격은 재료와 만들어진 겉모습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이 구울이 지닌 잠재력과 이능은 보통이 아니었다. 810이면 월드리거는 아니더라도 전국구 최상위 검투에서 요긴하게 쓰일 정도.

거기에 마력 관여라는 마력에 특화된 특성까지 있다.

이 정도는 헤일렌이 직접 쓰지 않더라도 사고 봐야 한다. 헤일렌의 몸체가 되기에는 부족했지만, 건조만 해서 팔아도 최소 300억 이상은 받을 수 있으니까.

겉보기론 허름한 상점인데 쏠쏠한 물건이 많았다.

주인은 배가 잔뜩 나오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이종칠······?”

“······나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한성은 전 플레이 때 10년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한국 언더월드의 왕으로 불렸다. 물론, 게임을 시작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현재 이종칠은 서른 초반. 전 회차 때는 40이 넘어서 만났으니까. 8년은 일찍 만난 거다.

그런데도 한성은 [구울의 왕]을 단번에 알아봤다.

그때 벗겨져 있던 머리가, 지금도 똑같이 벗겨져 있었다. 게다가 한성과 10년 넘게 전장을 함께 했던 전우였다가 결국 끝에선 함께하지 못했던 캐릭터.

그러니 더욱 기억에 남을 수밖에.

이 시기엔 이러고 살았구나.

한성은 눈엔 아련함이 담겼다.

*  *  *

검은 땅의 하늘은 검다.

일주일에 하루, 붉어질 때가 있다. 지평선 넘어 타오르는 해가 마기(魔氣)에 젖은 구름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검은 땅의 신비(神祕).

이 땅에 선 이들은 그걸 [피의 시간]이라 불린다. 마기(魔氣)에 잠식된 모든 생명체가 이성을 잃고 극도의 흥분 상태로 돌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몬스터 뿐만이 아닌, 용병들 또한 마기에 잠식당한 상태라는 것. 열에 아홉은 악(惡)의 신격에 종속된 곳이 바로 여기다.

그렇기에 [피의 시간]엔 아무도 밖을 나오지 않는다.

그때는, 마족조차 꺼리는 광란(狂亂)의 시간이니까.

“이곳은 참 아름다워.”

“그렇습니까.”

검은 땅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늘 끝에서부터 서서히 적셔오는 혈흔(血痕)은 세상을 삼키려 꿈틀거린다. 그것은 느린 듯 빠르게 검은 땅을 덮쳐온다.

“종칠아.”

“예, 대장.”

머리가 거의 벗겨진 이종칠은 전신에 패인 상처들로 가득했다.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근육은 강철보다 단단했고 그의 눈빛은 어떤 짐승보다 거칠었다.

“넌 나 같은 놈을 왜 따라왔냐.”

“살려고 쫓아오지 않았겠습니까.”

흔들림 없는 한성의 시선 끝엔 10만이 넘는 마족의 군단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앙엔 철저하게 포박되어 정신을 잃은 ‘세르게이’와 ‘나디아’가 보였다.

“친구 하나 못 지킨 머저린데.”

“클클, 어차피 구해올 거지 않습니까.”

명백한 함정. 대놓고 아가리 속으로 들어오라고 외친다. 올 수 있으면 와서 데려가라. 벌리고 있는 아가리? 찢어 버리고 이빨 몽땅 뽑아버리면 되지 않느냐.

지금까지 네가 했던 것처럼.

마족의 군단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흐흐, 내가 이래서 멈출 수가 없어.”

이종칠은 말없이 씨익 웃었다.

“종칠아.”

“예, 대장.”

“가자.”

“예, 대장.”

한성은 걷기 시작했다.

그를 따르는 것은 이종칠을 포함해 3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중에 반 이상은 [구울]이다. 이곳의 전력은 대부분 악(惡)이 신격에 종속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재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이 이게 전부.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전혀 무겁지 않았다.

되려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발을 내디뎠다.

*  *  *

“죄송합니다. 그냥 오다가다 들었는데 저도 모르게······.”

옆집 구울 아줌마와 소리를 질러 소통하는 사이니, 이 골목 사람들은 다 알 거다. 이종칠도 그러려니 하고 한성을 바라봤다.

‘오랜만이구나 종칠아.’

그는 C등급 용병이었다.

20대 초반에는 던전이나 필드를 전전하면서 먹고 살았다. 그러다 구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오는 몬스터 재료로 구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괜찮은 구울이 상당히 많네요.”

“이 근방에 제 구울 퀄리티를 뛰어넘는 곳은 없습니다.”

자부심이 한가득 담긴 음성이다.

하지만 정말 대단했다면 이런 허름한 가게에 있지 않았을 거다. 이종칠은 구울 제작과 관리에 재능이 있지만, 제대로 된 이능이 개화하는 건 몇 년 후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재능은 있기에, 근거 없는 자부심은 아닐 거다.

“이건 1,500만 원. 이건 1,900만 원······. 가격도 상당히 있고요.”

“그 재능에 딱 맞는 가격입니다. 에누리할 것도 없이, 바로 옆집만 가도 이것보단 비쌀 겁니다. 아, 옆집엔 이런 물건이 없겠지만요.”

“뭐시여? 이종칠! 다 들리니까 아구창 씹어먹기 전에 아가리 닫아라!”

“에라, 저 여편네. 또 엿듣고 있었네.”

한성은 피식 웃었다.

그는 알까. 나중에 저 여자와 결혼해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된다는 것을.

“아이고, 죄송합니다. 손님을 두고. 옆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벽이 천막이라, 소리가 그대로 들리네요.”

“괜찮습니다. 저는 건조되지 않은 구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저희 가게엔 건조되지 않은 구울은 많지 않습니다.”

구울을 건조하게 되면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건조한 구울 중 80% 이상은 기존 재료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대부분의 구울이 건조를 거치면 재룟값도 못 받을 확률이 높다는 거다.

‘손해 볼 확률이 높지만, 간혹 0.1%의 대박 확률이 있으니까.’

한성이 아까 발견한 것처럼, 정말 가끔 대박이 나온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구울 판매 점포는 50%의 구울을 건조한 상태로, 50%는 건조하지 않은 상태로 진열해 두며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한다.

그렇다고 몽땅 건조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일반 사람 중에는 건조되어 자신이 필요한 구울을 찾는 사람이 굉장히 많으니까.

이렇게 이종칠처럼 건조되지 않은 구울이 대부분인 가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도박꾼.

하나는 자신의 구울에 자신이 있는 전문가.

“그래도 없지는 않지 않습니까.”

“조금은 있습니다. 혹시 얼마나 되는 구울을 사실 예정이십니까?”

돌려서 묻는 거다.

돈 많은 졸부가 하는 짓인데 일명 ‘구울 도박’이라고도 한다.

좋은 구울 하나를 찾기 위해 대량으로 매입해 다 건조하면 하나 정도는 좋은 게 나오니까. 그러다 정말 운이 좋다면 천만 원에 산 구울이 수백억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종칠이 구울에 갖는 애정이다.

정말 정성을 들여 구울을 제작하고 관리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구울이 불법 투기장에서 의미 없이 찢겨 죽는 건 극도로 싫어한다.

그렇게 팔려나간 구울 중 ‘대박’이 아닌 99.9%의 구울은 불법 투기장으로 팔려나가니까.

이종칠이 이런 허름한 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딱 한 마리 살 겁니다. 상태가 좋은 게 있다면 두 마리는 사도 괜찮을 것 같고요.”

한성의 [정보 열람]이라면 구울로 장사를 해도 된다. 아마 순식간에 부자가 되겠지, 하지만 이런 곳에서 오랜 시간을 쓸 정도로 돈이 궁한 건 아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종칠은 한성을 지하실로 안내했다.

구울을 만들고 배양하는 장소.

“와, 엄청나네요.”

이 구울을 팔아 번 돈을 모조리 이곳에 쓴 모양이다. 공간 확장 마법을 설치한 것인지 생각보다 넓었고 고가의 장비들이 즐비했다.

“총 302마리가 있습니다. 안쪽으로 갈수록 배양 기간이 많이 남은 것들인데, 가장 안쪽은 1년이고 앞에서 세 라인 정도가 당장······.”

한성은 이종칠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정보 열람]으로 찾기만 하면 된다.

한성은 하나씩 찬찬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다들 상태가 좋아 보이네요.”

“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직접 만든 겁니다. 몬스터의 재료도 직접 구입하고, DNA 샘플도 직접 고르죠······.”

이종칠의 말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종칠의 말은 모두가 사실이고, 그 어떤 구울 제작자도 이렇게 하지는 않으니까.

“혹시 투자 같은 것도 받습니까?”

“투자요······?”

“네,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구울이 많아서요.”

이종칠은 잠시 말이 없었다. 투자 제의를 받은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모두 건조되지 않은 어린 구울을 주기적으로 제공하라는 조건이 붙어있었기에 바로 거절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성은 전 회차 때 이종칠을 지키지 못했다.

‘이번엔 그냥 둬 봐?’

평화롭게. 아니, 나중에 죽더라도 평범하게 사는 게 그에게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

게임일 뿐인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제 한성에게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까.

“천천히 고민해 보세요. 전 건조되지 않은 구울을 공급하라거나, 제작에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이런 좋은 판매점이 더 넉넉하게 구울 제작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니까요.”

“······.”

이종칠은 여전히 말이 없다.

이것도 믿기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같이 하는 게 낫겠지.’

어차피 이 세계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여긴 멸망한다. 그럴 바에 같이 함께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일단은 친해진 후에 그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한성은 구울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밖에서 봤던 구울까지 총 두 개체를 구매했다.

“결제해 주세요. 언제까지 찾아오면 될까요?”

“총 1억8천만 원입니다. 건조는 하루면 충분합니다.”

700억을 준비했는데, 2억도 안 되는 돈으로 좋은 물건을 구했다.

“알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찾아올게요.”

한성은 명함을 건넸다.

제현 그룹에서 받은 명함이다.

무기공학연구소의 [명예 수석 연구원]

PMC의 [명예 고문관]

그리고 [한국 영웅 아카데미] 후보생.

이 정도면 믿을 만한 신분이 아닐까. 이종칠의 눈이 과도할 정도로 커졌지만, 한성은 바로 등을 돌려 그곳을 나왔다.

당장 족발 하나 사서 소주를 한 잔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참는 게 맞는 것 같았다.

< 구울의 왕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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