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발하는 인지도. >
한 별은 테러 사건이 끝나고 아카데미 수업이 없는 동안 [정연]에 있었다.
“태야.”
한 별은 움찔 떨었다.
묵직한 음성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한 별은 잘 안다. 저 목소리가 가진 힘을. 그리고 아버지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네, 아버지.”
한 태는 한 별의 큰 형이다. 한 별과는 다르게 190에 다다른 키에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다. 정갈하게 챙겨 입은 개량 한복은 그의 두꺼운 목을 옥죄고 있었다.
“아직도 겉돌고 있느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양산박(梁山泊)은 마족의 태동에 중앙 구역에 들어가 있습니다. 최소 반년은······.”
“말이 길구나.”
“죄송합니다.”
양산박(梁山泊). 아프리카 유일의 ‘호걸(豪傑)의 땅’. 검은 땅에서 유일하게 악(惡)의 신격에 종속되지 않은 영웅들이 모인 곳.
이미 검은 땅에서 업적을 쌓고 있는 ‘한 태’. S등급 끝에 다다라 SS등급을 바라보고 있는 별의 큰 형도 양산박(梁山泊)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목표는 양산박에 드는 것이지만, 지금은 만나는 것조차 기약이 없다.
“한 곤.”
한 별의 작은 형. 삼형제 중 둘째인 한 곤이다.
첫째보다는 왜소하지만 절대 작은 몸집은 아닌 그도 전신이 온통 근육질이었다. 마도사 가문이지만, 모두가 영웅이기도 하다.
영웅 마법사는 마법뿐만 아니라, 육체 단련도 기본 소양이다.
거기에 정연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게 이능에 큰 재능이 없는 이 핏줄이 [정연]을 만들고, ‘대한민국의 수호 가문’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비결 중 하나다.
“네, 아버지.”
“이번 주에 서울 언더월드에서 경매가 있다고 들었다.”
“네, 잠재력 월드리그급 구울 두 개체가 올라옵니다.”
“그 날은 별과 같이 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유는 묻지 않는다.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니까.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도 정연의 핏줄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내야 한다.
“한 별.”
“네, 아버지.”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왜소하고 육체적 성장 잠재력이 낮다. 게다가 마법 쪽에도 두 형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 그나마 이능에 재능이 있으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거다.
“이한성이라는 친구가 보고 싶구나.”
“······예, 아버지.”
“이번 경매에 같이 오거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 무조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정연의 가주이자, 세 형제의 아버지인 ‘한구본’은 다시 수저를 들었다. 세 형제도 그제야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아무런 대화도 없는 딱딱한 식사 자리.
토가 나올 정도로 답답했지만,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다.
한 별은 머릿속에서 한성과 진 훈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 * *
한성은 수업이 끝나고 이정현 마도사를 찾아갔다.
“들어와요.”
“네, 마도사님.”
그녀의 강사실은 널찍하고 고급스러웠다. S등급에 맞는 대우랄까. 곳곳에 장식된 마법 물품 또한 눈여겨 볼만한 게 많았다.
이정현은 직접 차를 한 잔 타왔고, 한성은 자리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이한성 후보생님.”
“네, 마도사님.”
“사실 묻고 싶은 게 많아요. 솔직히 그런 결계 해체 실력은 상상해 본 적도 없어요. 보통의 영웅이 그렇고, 웬만한 마법사는 모두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런 걸 함부로 물을 수 없는 건 잘 아니까요.”
“그것도 그렇죠.”
이렇게 알아서 생각해주면 좋다.
“그것보다 결계 구성에 얼마나 참여해 줄 수 있느냐.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질문이죠.”
그녀의 눈빛은 말한다.
제발 알려달라고, 어떻게 그런 실력을 지녔는지.
직접 묻지는 못하지만, 알려줄 수 없겠냐고.
하지만 한성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제가 맡아야 할 부분은요?”
보통 대마법 방어진 같은 경우에, 10등분으로 나눠 작업한다. 가장 중요한 [보안]과 [구동]에 관한 부분은 교장이나 교감이 직접 하지 않을까.
“······이번엔 20등분으로 나누어 작업하기로 했는데, 그중에 [마력 효율 통제] 회로를 맡아주면 좋겠습니다.”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방어진을 해체할 때 큰 비중을 둔 부분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3년이면 졸업할 후보생에게 약점이 담길 부분을 맡기진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페이만 적당하다면 못할 것도 없죠.”
“1,000억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3명의 전문가가 똑같은 걸 만들 거고, 그중에 가장 효율적인 설계를 사용할 겁니다.”
“3명에게 1,000억씩 모두 주는 거군요.”
“네, 그리고 뽑힌 설계도의 주인에겐 1,000억이 더 지급되죠.”
보통 대마법 방어진은 이런 식으로 구성된다.
정말 믿을 만한 사람. 혹은 명망이 있는 사람은 단독으로 설계도를 구성하고 한 번에 수천억에서 수조 원까지 받아간다.
아카데미가 이번엔 제대로 만들려고 마음먹었는지, 20등분에 각 4,000억 이상으로 쓸 모양이다. 그것도 재룟값을 뺀 인건비만 말이다.
‘이 정도면 1년 후, 몬스터 웨이브에서도 멀쩡한 마법진이 나오겠는데?’
한성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네요.”
이정현 마도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보통 후보생이면 이런 일을 맡기지도 않겠지만, 뽑히지 않아도 만들기만 한다는 가정하에 1,000억을 준다는 소리에도 담담했다.
그러니 더 믿을 만했다.
게다가 제현 그룹에 명예 수석 연구원으로 뽑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속성 부여 킷]을 만들었으며, 이번 결계 해체 실력까지 직접 목격했다.
“그것보다 이번에 열리는 [후보생 세계 올림픽]에 출전할 생각은 없나요?”
[세계 후보생 마법 올림픽]
전 세계의 영웅 아카데미 후보생이 출전하는 축제다. 공격 마법, 방어 마법, 결계, 회로 등등 16가지의 종목이 존재하고, 혼자 최대 3개의 종목에 출전할 수 있다.
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참가할 생각은 있습니다.”
조기 졸업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곳을 거쳐야 한다. 한 종목 이상에서 우승한다면 최소 한 학기 정도는 줄일 수 있으니까.
“다행이네요.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참가자 모집 및 테스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준비해 주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한성은 강사실을 나왔다.
이정현은 묻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었지만, 한성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성은 근처 공터를 서성거렸다.
“······시연이한테 연락해 볼까.”
- 제 생각으로는 직접 통화해서 만나자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말이죠.
“······그렇겠지. 안 만나주지 않을까?”
- 그렇진 않을 겁니다. 그저 조금 서운한 게 있는 정도 같으니까요.
어차피 끝까지 함께 해야 하는 친구다.
다른 캐릭터는 몰라도 그녀만큼은 함께 해야 한다.
성시연의 호감도를 80까지 끌어 올린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단독적인 행보는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그 정도로 그녀는 ‘살인(殺人)’을 선(善)에 치우치게 사용한다. 그녀가 죽이는 사람은 죽는 게 훨씬 나은 사람이다. 암살 의뢰(依賴) 또한 ‘적(敵)’이나 악(惡)에 치우친 사람에 한해 가려 받는다.
또한, 자신의 사람은 무조건 지키려는 성향.
그 때문에 세계 존속(存續)에 도움이 된다.
현실에서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선(善)이다.
- 당장 전화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하, 이젠 AI에게 여자 상담을 받는구나.”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헤일렌의 말대로 할 필요성이 있었다.
“어, 여보세요?”
예상외로 성시연은 연락을 바로 받았다.
“나도 너한테 알려줄 것도 있고. 맞아. 대상 개화에 맞는 훈련을 해야지. 어······? 암살? 그거 괜찮은 거 있으니까 같이 하자고?”
생각보다 잘 풀린다고 좋아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암살. 나 그런 건 못하는데······. 암살이랑 살인이랑 다를 게 없다고? 아, 알았어······. 나야 고맙지. 그럼. 가야지 무조건.”
한성은 그렇게 통화를 종료했다.
따로 만날 필요도 없이 해결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다 암살 데이트까지 잡혀 버린 걸까.
* * *
한성은 언더월드를 가기 전, 기숙사에 들렸다.
“어이구, 하얀아. 잘 있었지?”
하얀이는 한성의 마력을 감지한 것일까, 신발 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크아아앙.”
보고 싶었다는 듯 앙증맞은 발로 뒤뚱뒤뚱 뛰어와 안긴다. 한성은 하얀이를 안아 들고 볼을 비볐다.
“크앙. 크아앙.”
간지러운 것인지 꼬리를 휙휙 휘두르며 발버둥 쳤지만, 한성은 놔 주지 않고 계속 괴롭혔다. 아주 볼 때마다 더 귀여워지는 것 같다.
- 종일 마법 물품 만드는 놀이를 하며 지냈습니다. 중간 언어도 가르치고 있고요.
헤일렌의 보고에 한성은 거실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엔 여러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와, 벌써 이 정도나 만들었어?”
요양하는 3일 동안 마법을 가르쳤다.
한성은 100여 가지의 마법을 알려줬다.
그 중엔 직접 발현하는 공격, 방어, 보조 등의 마법도 있었지만, 한성의 특기인 ‘크리쳐 제작’, ‘회로 각인’, ‘마법 물품 제작’ 등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얀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마법 물품 제작이었다.
한성은 잡동사니 중에 몇 개를 집어 들었다.
[막대한 마력이 잠든 진주 액체 괴물(마법)]
설명 : 진주, 샴푸, 풀 등이 주재료인 액체 괴물에 막대한 마력이 스며들어있다. 매우 쫀득하고 신축성이 좋아 10배까지 커질 수 있고 100m에 이르는 길이까지 늘어나는 액체 괴물.
* 만지는 동안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 만지는 동안 소량의 마력을 회복한다.
[병정 레고(마법)]
설명 : 사람 모양의 레고 세트에 수십 가지의 회로를 새겨 마법 물품으로 만들었다. 작은 크기의 레고이기에 집에 숨어든 쥐를 잡기에 적당한 병정 레고.
* 자동으로 마력을 충전한다.
* 능력치 평균 3 정도의 소형 동물 전용 병정이다.
“······우리 하얀이. 아주 잘했어요.”
한성은 바닥에 깔린 물품을 보며 하얀이를 칭찬했다. 지금은 아무 쓸모도 없는 마법 물품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질이 좋아질 거다.
“크앙? 크으응.”
하얀이는 그 칭찬이 좋은지 더 봐 달라며, 바닥에 있는 쓰레기······ 아니, 마법 물품을 직접 주워 줬다.
“이런 걸 만들었어? 잘했네. 우리 하얀이.”
미안하지만 오늘은 놀아 줄 시간이 없다.
언더월드에 들어가 봐야 하기 때문이다.
“헤일렌, 돈은 충분하지?”
- 네, 이번에 제현 그룹에서 들어온 돈까지 하면 총 700억 정도 됩니다.
300억이 추가로 들어왔다.
그것은 한성이 개량한 [마력 충전석]의 특허권을 사용한다는 ‘계약금’이었다. 이것 또한 판매 매출의 일정 비율로 받기로 했다.
제대로 돈이 들어오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700억 정도면 충분하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제현 무기공학연구소에 도장 깨기 하러 가야 하니까. 스케쥴 잘 맞춰놓고.”
- 알겠습니다.
길이현은 그날 이후, 매일같이 한성에게 연락했다.
그 도장 깨기라는 것.
제발 또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호현과 연구원들도 마찬가지로 한성에게 매달렸다.
평생을 회로와 마법 물품 제작에 매진한 사람들은 단순하다. 굴욕? 자존심?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깊은 학문, 대단한 기술력, 색다른 관점을 가진 한성의 마력 충전석을 분석하고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을 거다.
나중에 가서 얼굴이나 비춰줘야겠다.
- 한성님, TV에서 한성님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성은 헤일렌의 말에 TV를 틀었다.
뉴스에선 한국 영웅 아카데미의 테러 사건이 계속 올라오는 상황이었고, 한성의 말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TV 화면엔 익숙한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S등급 한도석 영웅이었다.
[네, 저희 강사진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딱히 한성의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지켜봤다.
[한도석 영웅님. 아까 말씀하신 후보생이 S등급 결계를 해체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S등급이라······ S등급이 최소 몇 주 동안 설치한 결계이니 SS등급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겠죠. 그걸 저희 이한성 후보생이 직접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해체했습니다. 제가 직접 봤죠.]
[와, 듣기만 해서는 믿을 수 없는 말이군요.]
[믿기지 않겠지만······.]
“저 인간은 왜 저기서 저러고 있어?”
- 한성님, 웃고 계신 거 다 보입니다.
“아, 티났어?”
한성은 실실 웃었다. 저 멘트가 나가는 순간 한성에게 들어오는 인지도 포인트 때문이었다.
한도석이 지나가고 진 훈의 인터뷰가 나왔다.
[현재 아카데미 2위에 랭크된 진 훈 후보생님.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 괜찮습니다.]
[이번에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1위에 랭크된 한 별 후보생님과 테러가 시작되자마자 치안대를 점령했다고 들었는데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한성 덕분입니다.]
[한성이라면······ 이한성 후보생입니까?]
[네, 제가 가장 붙어 보고 싶은 친구입니다! 제가 목표로 삼은 친구이기도 하고요. 사실 이번 테러는 그 친구의 오더가 가장 큰 역할을······.]
“헤일렌.”
한성은 무언가 화가 난 듯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헤일렌은 장난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네, 한성님.
“왜······.”
한성은 잠시 뜸을 들였다.
“나한텐 인터뷰가 안 온 거지······?”
- ······그때 하얀이를 안고 바로 집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피곤하다고. 쓰러질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런 거였나······. 아쉽네. 공중파 탈 기회였는데.”
한성은 그때 정말 죽을 뻔했다. 하얀이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도 급했지만, 몸이 더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관심은 언제나 짜릿하다.
직접 인터뷰했다면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았을 텐데.
한성은 무척이나 아쉬웠다.
< 폭발하는 인지도.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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