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
- 기숙사가 공격당했습니다!
이제 거의 하얀이의 보모가 된 헤일렌의 외침이었다.
하얀이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다.
아무리 S등급 둘이 있다고 해도 하얀이는 만만한 드래곤이 아니니까. 보통 드래고니안도 아니고 드래곤과 드래고니안의 혼혈이다.
잠재력이나 여타 특성을 보면, 절대로 쉽게 다치진 않을 것이다. 상대도 드래곤이라는 것을 안다면 결코 쉽게 덤비지 못하겠지.
“오케이, 금방 간다.”
눈앞에 거대한 결계. 이것 또한 S등급 이상의 마법사가 펼친 마법과 회로의 조합. 그래도 오래 공을 들인 건 아닌지, 어렵지 않게 해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정현도 앞을 막아서는 S등급 테러리스트가 없었다면 세 시간이면 해체할 정도. 아니, 5분과 세 시간의 차이는 좀 큰가?
하지만 한성은 몸도 정상이 아니고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중심에서 해체에 집중할 순 없다.
믿을 건······.
“나 좀 엄호해줘!”
한성의 외침에 세르게이, 성시연, 얜 샤를, 진 훈까지. 상대하던 몬스터를 물리고 한성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모습에 나디아와 한 별도 천천히 다가왔다.
모두 주저하지도 않고 한성의 말에 따라준다.
그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한성에게 신뢰가 생긴 거다.
친구들은 철저하게 방어진을 구성했다. 몬스터의 돌진을 막고, 방어에 치중하며 공격을 최소화한다. 오직 한성만을 위한 구성이라는 것이다.
“고맙다.”
“이번 일 끝나기만 해봐! 나랑 주 5일 대련이야!”
세르게이가 그렇게 외쳤고 진 훈이 이때다 싶어 소리쳤다.
“나도 무조건 해 줘야 해! 이번 주말에 시간 비워놨으니까!”
“나도 주말에 시간 비는데!”
마지막 성시연의 말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결계는 제작자만의 방식이 있다. 당연히 누군가 해체하지 못하게 꼬아 놓고 취약점이 보이지 않게 막아 놓는다. 함정을 만들 수도 있고, 미로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설치하는 것보다 해체하는 게 수십 배는 어렵다.
‘결계를 파악하는 게 일 순위.’
하나의 완성된 프로그램이 있다고 치자.
그걸 없애기 위해선? 그냥 통째로 삭제하면 된다. 관리자처럼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말이다. 그게 아니면? ‘버그’를 찾거나 ‘취약점’을 찾아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하면 기능을 멈춘다.
물론, 그게 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오랜 경험과 공부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한눈에 파악하는 ‘통찰력’을 주곤 한다.
바로 이한성처럼.
“됐다.”
위우우우웅.
철벽처럼 단단해 보이던 차단 결계는 한성의 손에 의해서 겨우 5분이 지나지 않았을 때, 그 기능이 정지했다.
그리고 뛰었다.
어차피 한도석과 이정현은 움직일 수 없다. 다른 친구도 곧장 뛰진 못했다. 뒤로 몰려오는 수많은 몬스터 때문이었다.
“부탁할게!”
한성은 혼자였다.
그가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수많은 환영 마법이 가득했고 그 중앙엔 하얀이로 밖에 볼 수 없는 작은 소녀가 서 있었다.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무의미한 걱정이었다.
하얀이는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마력을 방사해 환영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팡! 팡야!”
후욱.
콰아아아.
저 거대한 마력의 폭풍.
하얀이에게는 그저 ‘방사’에 불과한 장난이었다. 마력을 가공하고 마법을 구성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몸에 있는 마력을 뿌리는 것만으로 이런 파괴력을 낸다는 것.
역시 드래곤의 피는 대단했다.
그때, 멀리서 무언가 날아왔다.
작은 유리병에 황색 액체가 출렁인다.
한성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무리 이 게임의 스케일이 크더라도 저 정도 고가의. 아니,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물건을 못 알아본다면 고인물이라고 할 자격이 없지 않겠는가.
주변에 그려진 마법진을 보니 이 근처에서 터뜨리려 하는 것 같았다.
“으차.”
한성은 점프해서 [디스펠]과 동시에 병을 받았다.
“선물 고맙습니다.”
이것도 [운]의 영향인 건지,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다. 심지어 운으로 나온 [하급 드래곤 진정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까지 왔다.
운이 폭발한다면 이럴까.
한성은 뿌듯한 마음으로 하얀이의 ‘마력 방사’를 지켜봤다. 뒤로 B등급 정도로 보이는 테러리스트가 꽤 있었지만, 하얀이 때문인지 사방으로 도망가기 바빴다.
그러다 시선이 한성에서 멈췄다.
“아바?”
아바. 아빠라는 뜻인가?
한성은 웃으며 하얀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하얀이가 하얀 꼬리를 흔들면서 달려와 안겼다.
“아빠아아!”
“어구, 귀여워라. 잘 있었어?”
“으응! 재미있어쪄!”
말을 참 잘한다.
작은 충격이 있었던 것인지 이르게 본모습을 찾았다.
드래고니안은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첫 번째는 드래곤의 모습.
가장 강한 ‘힘’을 지녔지만, 인간성이 떨어지고 인간의 말을 ‘아직은’ 못 하는 상태다. 몇 년 정도 성장한다면 달라지겠지만.
그것은 완전한 드래곤이 아니었기에 생기는 [제약]과 같은 것이다.
하얀이가 이 모습을 더 편해 하는 것으로 봐서 인간보다는 드래곤의 피가 더 진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명에도 드래고니안과 드래곤의 혼혈이라고 하지 않는가.
두 번째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
가장 약한 힘을 지녔고, 가장 월등한 인간성까지 갖는다. 하지만 역시나 [용언(龍言)] 등의 드래곤 고유의 권능이 제한된다.
세 번째는 인간과 드래곤이 합쳐진 지금 이 모습.
강대한 권능과 뛰어난 인간성을 동시에 갖춘. 완벽한 드래고니안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 이 모습으로는 오래 있을 수 없다. 그만큼 많은 기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아빠아아. 어디 가따 왔어어?”
“일하고 왔지요. 우리 딸.”
귀엽다. 무지하게 귀엽다.
이래서 딸바보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의 모습도 이렇게 앙증맞고 귀여운데 하얗고 작은 뿔에 두꺼운 꼬리라니! ‘씹덕사’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툭.
그때 뒤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봤을 땐, 뒤를 막아주던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다. 한도석과 이정현도 다른 강사의 힘으로 해결하고 온 것인지 같이 있었다.
무언가 떨어졌던 건······.
“성시연?”
한성이 강화해준 성시연의 검이 떨어져 있었고 정작 성시연은 사라져 있었다.
어디 급하게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너 유부남이었어?”
진 훈이었다.
한성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옆에 있던 한 별도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다는 듯 설명했다.
“얼굴을 봐라. 어떻게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한성이 딸이냐?”
“하긴, 거기에 나이도 말이 안 되잖아.”
“아니! 여기서 왜 얼굴이 나오는데! 여기 뿔하고 꼬리 안 보여?”
한성의 말에 모든 시선이 꽂혔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거다. 그래, 놀라라. 너희가 아는 그 드래고니안이다. SS등급 이상, 전설 속에서나 볼 법한 영물이며 하늘 위의 중재자가 될······.
“······그럼 형수님이 용족분?”
“아니! 그게 아니잖아!”
이 어처구니없는 질문은 진 훈이다.
근데 한성도 아니라고 딱 끊어 말하기가 애매했다.
‘하얀이가 보는데, 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신수나 펫은 더욱 상처받을 것 같다.
한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딸은 딸인데······.”
그 말에 친구들이 다시 기겁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뿔과 꼬리를 보면서도 진짜 아빠라고 믿는 이 친구들이 정상이 아니지 않은가.
“아빠아아?”
한성을 바라보는 하얀이의 동그랗고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내가 얘 아빠다.”
아니, 아빠니 딸이니 하는 것보다. 드래고니안이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캐릭터들이다.
진심으로.
* * *
성시연은 계속 걸었다. 무너진 건물을 보수하고 다친 민간인이 실려 가는 모습이 보였다. 벌써 해가 사라지고 달이 뜬 시간임에도 복구 작업은 계속된다.
사실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늘의 한성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특히 안혜림이라는 친구와 [무기공학연구소] 앞에서 싸우던 모습은 성시연이 딱 바라던 이상향이었다. 손짓 하나로 머리를 터뜨리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 그 무심함.
예술의 경지에 오른 살인(殺人).
아쉬움은 있었다.
안혜림이라는 친구가 아닌, 자신이 옆에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그런데 그가 이미 아빠라는 사실에 사소한 아쉬움은 까맣게 잊었다.
아빠였다니.
아이는 5살이나 되었을까.
그렇다면 12살에 애를 낳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문란한 놈.”
물론, 검은 땅의 아이가 맞다면 17살이 아닐 수 있다. 출생이 기록되는 건 정상적인 국가에서나 믿을 수 있는 거니까. 생긴 걸 보면 20대 중반일지도 모른다.
“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울렁거린다. 답답하기도 하고 뭔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하기도 하다.
이 느낌이 뭔지 모르겠다.
죽이면 깔끔할 텐데, 죽일 수도 없다.
아니,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게 맞을 거다.
‘죽이면 다시 볼 수 없으니까.’
성시연은 자리에 우뚝 섰다.
편의점이 보인다. 한성의 기숙사 바로 앞. 그때 한성과 소주를 먹었던 곳이다. 기숙사는 한쪽이 무너졌지만, 이 편의점은 멀쩡했다.
딸랑.
성시연은 편의점에 들어가 ‘신선한’이라는 소주를 집고 포도 맛 젤리도 하나 들었다. 그때 먹었던 오징어보다 이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컵 드릴까요?”
“컵이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이거 원래 컵 없이 먹는 거 아니었나.
문득 이한성이 생각난다.
그 못생긴······ 이제는 조금 괜찮아진 얼굴이 왜 생각나는지는 모르겠다. 밥 먹다가도 생각나고, 길을 걷다가도 생각나고, 누군 죽이다가도 문득 생각나기도 한다.
‘유부남인가······ 애만 있는 건가.’
벌컥벌컥.
알싸한 맛이 식도를 타고 위장을 헤집는다. 마치 칼로 긁어내리는 기분이다. 이런 고통을 즐기는 게 바로 술인가?
“크. 이 맛에 먹는구나.”
포도 젤리를 먹으니 입안이 개운하다.
다시 소주를 들이켜고, 젤리는 씹는다.
“하······ 보고 싶······. 으아아아! 아니야. 지금 내가 무슨······!”
그 사람이 보고 싶다니, 그게 무슨 징그러운 말인가.
이미 임자가······ 아니다. 요즘 혼자 애 키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꼭 여자가 있다고 확정할 순 없다. 몇 주 지켜본 게 전부지만, 그의 여자라고 추정되는 사람은 없었다.
있다면······ 죽이면 되니까.
성시연은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시야가 흔들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소주를 한 병 더 샀다.
- 야, 뭐하냐.
- 몸은 괜찮냐?
- 그 애는 누구 애······.
“이건 좀 아닌가.”
개인 메시지를 보낼까.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아니야······ 단체 방에.”
- ㅋㅋㅋㅋ이한성 너 사람 잘 죽이더라.
- 나도 너한테 배울 게 있는 거 같던데? 더 효율적으로······.
너무 긴가. 쓸데없는 말인 건가.
보낼까 말까 고민할 때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어? 성시연?”
익숙한 목소리에 메시지를 빠르게 지웠다.
“······한성. 여긴 무슨 일이냐.”
“내가 묻고 싶은데, 왜 혼자 술 먹고 있어?”
한성은 옆으로 털썩 앉았다. 이미 반이나 먹은 술병을 집어 올려 들이켰다.
“크으. 맛 좋다. 이렇게 몸이 힘들 때 한잔 해주면, 푹 잘 수 있지.”
“······그 애는?”
“애? 아아. 하얀이? 기숙사 무너져서 임시 숙소에 있어. 본체로 변신했다고 계속 자네. 그리고 너 이 단검 떨어뜨리고 갔더라.”
“······변신?”
“드래고니안 알! 에서 부화한 지 얼마 안 돼서, 본체로 있기는 부담이 꽤 크거든. 나의 신수! 라고 할 수 있지만, 딸처럼 생각해서 딸이라고 부르고. 걔도 내가 아빠인 줄 아니 아빠라고 부르는 거지.”
한성은 숨이 찰 정도로 길게 설명한다. 특정 단어도 좀 강조해주고. 도대체 어떻게 왜 그런 오해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잡을 건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
성시연은 한성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듯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에휴.’
하얀이가 잠들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확실한 진실을 전달했다. 진 훈은 끝까지 안 믿는 눈치였지만, 한 별이 알아서 전달해 줄 것 같아서 넘어갔다.
‘아무리 미쳐버린 세상이라지만, 이런 걸 오해하는 게 말이 되는 건가.’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설명하는 것도 힘들다.
한성은 남은 소주를 마저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은 적당히 먹고. 난 바빠서 먼저 간다.”
성시연은 한성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아아아! 부끄러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오해를 한 건지. 정신없어서 뿔과 꼬리를 보지 못했다곤 하지만······ 아니, 그게 있어도 용족이랑 결혼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떡 하니 드래고니안이라는 종족이 있는데.
“아니, 잠깐······ 드래고니안을 키운다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그거였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성시연은 다시 한성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 * *
전 세계는 그 뉴스로 뜨거웠다.
세계에서 세 손가락에 꼽는다는 [한국 영웅 아카데미]다.
그런데 그곳의 보안이 완벽하게 뚫렸다. S등급 마법사가 몇 주는 자리 잡고 만들었어야 하는 결계, 순식간에 습격당해 아무런 대비도 못 한 치안대와 본부. 아카데미 내에 소환된 몬스터. 밖과 단절된 대단위 마법진 등등.
한국 영웅 아카데미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영웅 아카데미가 무능한 것인가. 아니면 테러리스트가 뛰어났던 것인가.]
그러한 논란 속에서.
아카데미의 대처는 어떤 사례와 비교해도 절대로 뒤처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 정도로 테러의 계획은 완벽했음에도 아카데미의 피해는 적었으니까.
일각에선, 일부러 습격을 관망했다는 소리도 있었다.
적의 꼬리를 잡아 몸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직접 움직일 때까지 지켜보다가 완벽하게 공략한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있었다.
[고대 기간트의 심장]이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어우, 뉴스 볼 때마다 양심이 찌릿하네. 아주.”
한성은 그렇게 말했지만, 한 손으로 [고대 기간트의 심장]을 들고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아마 이번 습격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한성일 거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시나리오 클리어 보상까지.
< 아빠?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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