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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구성에 기본이 되는 마력 회로학 개론]
한성이 편 책의 이름이다.
마법진이 직접 사용하는 마법이라면, 회로는 어딘가에 새기거나 구성함으로 마법을 부여하는 것. 엄연히 다르지만, 사용처가 겹치기도 한다.
마력으로 회로를 구성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가령 마력 밀집, 몬스터의 소환, 함정 설정, 미로 및 환영 결계 등등.
이 책은 [마력 회로] 기초 중에 기초다.
던전은 대부분 ‘포자의 조각’을 중심으로 마력의 흐름이 만들어 낸 자연물이다.
하지만 인공 던전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강남에 모여있는 10대 길드의 본관이 있습니다. [대규모 마법 방어진]을 기본으로 [공간 확장]과 [마력 밀집] 등 수백 개의 마법을 회로로 구성한 현대 인공 던전의 정점이라 할 수 있죠.”
땅값을 제외한 재룟값만 8,000억 정도 되고 인건비까지 합하면 2조 정도 된다는 어마어마한 건물들이다. 대한민국에 핵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 건물만큼은 멀쩡하다고 할 정도.
“물론 방어력에만 특화되어 있기에 마법사가 직접 해체한다면 말은 달라집니다······.”
한성에겐 하품이 나올 정도로 쉬운 내용이었다.
마력 회로는 오래전에 마스터했다.
특히, 저런 건물들? 무지막지한 노가다를 요구했지만 쏠쏠한 용돈 벌이였고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컨텐츠였기에 꾸준히 하기도 했다.
“자, 한 번 간단하게 설계도를 그려 보겠습니다. 다음 주에 쪽지 시험을 볼 예정이니, 이번에 정확히 알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간단한 예시다.
‘미지의 땅을 탐험 중에 작은 동굴을 찾았다. 부상자와 함께 이곳에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중급 마력석 1개로 버틸 수 있는 5개의 마법을 선택하고 최적의 설계도를 작성하시오.’
한성은 꽤 흥미롭다는 듯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건 재미있다.
스스슥.
강의실엔 연필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이거 너무 어려워······.”
진 훈이었다. 한 별이 옆에서 어떻게 하라고 알려준다. 시험이 아니기에 누굴 알려주는 건 문제 없다.
“으음.”
한성은 집중해 설계도를 그리다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왼쪽엔 세르게이, 오른쪽엔 얜 샤를. 뒤엔 성시연이다. 어쩌다 자리가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마법이나 회로 쪽엔 아주 기초만 아는 친구들이다.
톡톡.
뒤에서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한성은 무시했다.
그러자 등가죽이 삐죽 설 정도로 날카로운 감각이······.
“······크흠. 나 불렀어?”
한성이 돌아보자 성시연이 품으로 단검을 감추고 있었다. 살벌하게 왜 자꾸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거 알려줘.”
성시연의 자신의 종이를 내밀었다.
슬쩍 보니 큰 그림은 그려뒀다. 마법과 마법의 연계점. 그리고 동력의 분배 등이 어려운 모양이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하냐면······.”
절대로 성시연의 단검이 무서워서 알려주는 게 아니다. 그저 ‘친구’이기에 알려주는 거다.
한성의 설명에 얜 샤를과 세르게이가 옆으로 다가와 귀를 쫑긋 세운다.
한성은 강사의 눈치를 살짝 봤다.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한성은 아예 몸을 돌려서 셋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는 마력을 1대 1대 1로 나눠야 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분배 마법?”
“아니지, 그렇게 하면 마법 하나를 써 버리게 되잖아. 이럴 땐 자연스럽게 분배되도록 마력 연결 회로를 조금씩 다르게 설정하면······.”
세르게이, 성시연, 얜 샤를.
모두 친해져야 한다. 친구여야 하고 세계를 구할 영웅이 되어야 한다.
이 세계는 절대로 혼자 클리어할 수 없다.
플레이어가 아무리 먼치킨이 된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 이 주인공급 캐릭터를 모조리 데려간다고 해도 한 번도 죽지 않고 클리어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뭐야, 쟤네들끼리만 공유하는 거야?’
‘나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역시 이한성인가.’
‘근데 원래 더 못생기지 않았었나?’
‘어? 좀 변한 거 같은데······ 그래도 못 생기긴 했지.’
한성은 헛기침을 해댔다.
남의 외모를 가지고 뭘 그렇게 말하는지.
그래도 매력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 최소 20까지는 올려야 나쁘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거고. 40만 되어도 튜브에서 굉장한 장점이 될 텐데.
- 메인 캐릭터에게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 인지도 포인트가 5 상승합니다.
- 서브 캐릭터에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 인지도 포인트가 3 상승합니다.
이렇게 활동할수록 인지도 포인트가 오른다.
하지만 튜브를 제대로 시작하자, 이런 자잘한 포인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미 모은 포인트가 2,000을 넘겼다.
이 정도면 [중급 매력의 비약]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한성은 기본적인 설명을 끝내고 쇼를 조금 보여주기로 했다. 기본적인 회로가 잔뜩 쓰인 거라 공부하기도 좋을 거다.
카메라도 잊지 않았다.
“이것 봐.”
한성은 새로운 종이를 꺼냈다. 마력석 가루가 섞인 잉크 펜을 꺼내 마력을 모았다.
기이잉.
아주 적은 양. 하지만 한성의 미세한 조정에 펜으로 스며든다.
스스슥.
한성의 펜을 통해 가공된 마력은 몇 개의 회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12개의 어절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도형. 그 도형과 도형을 연결하는 3개의 어절. 총 15개의 어절은 5개의 문장이 되었고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자, 이게 간단한 마력 응집 회로.”
한성의 말이 끝나자 종이 위에 다른 곳보다 최소 세 배는 많은 마력이 모여서 천천히 회전하는 게 보였다. 모두 가공된 마력이다.
“와, 대박. 저게 가능해?”
“검사 아니었나? 이 정도면 거의 프로 마법사급인데?”
“미쳤다. 지금 촉매도 없이 마력 응집 활성화한 거야?”
“아예 없는 건 아니지. 마력석 가루 섞인 잉크니까.”
“에이, 그건 촉매라고 할 수 없잖아.”
한성은 후보생들의 말을 들으며 회로를 마저 완성했다.
마력을 모았으니 마법을 입혀야지.
뭘 만들까 하다가 손을 놀렸다.
‘참, 처음에 이거 배우려고 엄청 고생했는데.’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는 엄두도 못 냈다. 초거대 스케일인 건 알겠는데, 무슨 게임에 이렇게 체계적인 학문 자체를 만들어 놨을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중요한 거였다.
이렇게까지 만들어 놨다면 뭔가 있는 거 아닌가?
어차피 다른 튜버가 안 하는 걸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사냥이나 퀘스트는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게다가 게임 시간으로 10년 넘게 마법사를 했는데, 공략의 길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시작했던 마법 공부.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구독자들도 좋아했다.
레고를 만지거나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느낌이었다.
“자, 이렇게 하면.”
한성이 마지막 한 어절을 적었다. 교묘하게 다섯 개의 문장을 겹쳐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화악.
종이 위에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다.
빨강, 주황, 노란, 푸른 빛까지. 마치 바다 위 노을을 보는 듯 잔잔하며 화려한 빛을 뿜는 작은 새가 허공을 유영했다.
“와······.”
감탄사는 그게 전부였다.
후보생들은 물론이고, 강사까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마력으로 마법이나 회로를 구성해 공격, 버프, 방어 등을 구성하는 건 이 대전쟁의 시대에 당연한 거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응용은 생각해 본 적이나 있을까.
정말 한량이거나 천재나 가능한 거다.
한성도 이 마법 회로에 빠져 컨텐츠를 만들다 보니, 할 게 점점 사라져 몇 년이나 걸쳐 개발했던 거다. 정말 얼마나 할 게 없었으면 이러고 놀았겠는가.
‘그게 진정한 고인물이지.’
프로 즐겜러, 변태 관종, 핵폐기물 플레이어.
모두 한성을 부르는 말이었다.
- 강사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 후보생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 인지도 포인트가 30이 상승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시스템 자체가 ‘관종’을 유도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정도면 게임 이름은 [세상의 끝]이 아닌 [대관종의 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좋네. 컨텐츠도 하나 뽑았고.’
슬슬 메인 컨텐츠를 정할 때가 왔다.
솔직히 [폭발] 시리즈는 가끔 올려줘야 재미있는 컨텐츠다. 메인으로 쓰기엔 사실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걸로 해볼까······.’
한성은 손을 들어 새를 불러들였다.
팡.
살갗에 닿는 순간 마력으로 화해 사라진다.
당연하게도 이건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에 불과하다.
“아······.”
곳곳에서 아쉬운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반 전체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이능 하나만 얻어도 상당히 괜찮은 크리쳐를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이쪽에 시간을 투자한다면 전투가 가능한 마력형 인공 생명체까지 제작할 수 있다. 그걸 끝까지 키운 사람도 없기에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마력 지배]와 한성이 쌓은 마법 지식.
그리고 몇 가지 이능이 결합되면······?
한성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한성은 밤이 되고 식사를 하자마자 검술 훈련장에 왔다.
마법이야 마력 능력치를 올리고 [마력 지배]의 숙련도를 올리면 절로 전성기의 실력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검술은 육체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주무기가 검이기에 아카데미 내에서는 검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여어, 세르게이.”
멀리 나디아와 세르게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게 보였지만, 한성은 세르게이만 불렀다.
아직 나디아와 부딪히면 안 된다.
공략 방법 중 하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라.
그렇다고 아예 접촉이 없으면 안 된다. 가끔 괴롭혀주고, 관심 아닌 관심을 주고. 그렇게 끊임없이 눈에 걸리게 만드는 거다.
“엇, 한성!”
세르게이는 한성을 보자 인사했고, 나디아는 고개를 획 돌렸다.
보기 싫다는 듯 말이다.
그런데도 옆에서 안 떠나는 걸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있기도 한 것 같다.
“세르게이. 대련이나 한 판 할까?”
“좋지. 어제는 어쩌다 못하게 돼서 엄청 아쉬웠다고.”
세르게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디아를 슬쩍 바라봤다.
나디아는 슬금슬금 한성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세르게이. 저 옆으로 가자.”
다 받아주면 안 된다.
자신이 밑이고 한성이 위라는 걸 각인시켜줘야 한다.
나디아가 어색하게 발을 떼며 다가오려다 머뭇거린다. 아무래도 마지막 그 말이 컸던 모양이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직접 연락해서 그 말을 전했겠지.
“나디아.”
“으, 응?”
“방해하지 말고 꺼져.”
“······.”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빨갛게 변한다. 남들이 보면 화가 잔뜩 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수치, 부끄러움, 당황, 저릿한 마음.
그리고······ 찌릿찌릿까지.
아마 상당히 싫으면서 중독성 있는, 이상한 기분일 거다.
‘잘 전했을까?’
안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의 상처를 검으로 후빈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그 때문에 완벽하게 믿을 거다. 그리고 그걸 전달한 나디아도 한성에게 함부로 할 수 없겠지.
그렇다고 안톤이 직접 움직일 수 있을까?
한성은 고개를 저었다.
검은 땅의 [양산박(梁山泊)]은 ‘창신(槍神)’이라 불리는 안톤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그런 곳이니까.
세르게이도 나디아의 저런 모습을 보며 괴리를 느낄 거다. 자신의 아버지와 라이벌이며 영웅들의 정글과 같은 러시아에서 최강자를 다투는 안톤의 딸이 저렇게 맥을 못 추다니.
세르게이는 새삼 존경스럽다는 눈으로 한성을 바라봤다.
“세르게이. 가자.”
한성은 세르게이만 데리고 한쪽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목검 대련이다.
“이번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 정말 열심히 노력했거든.”
“이거 벌써 무서운데?”
세르게이가 검을 곧게 세웠고 한성은 늘어뜨렸다.
훅.
찰나의 순간.
둘의 발은 바닥에서 떨어졌고 신형은 사라졌다.
쾅!
중앙에서 시작된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곳곳에서 마력의 소용돌이가 생성되었고 구경꾼은 점점 늘어갔다.
< 새로운 컨텐츠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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