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조히스트(?)_(여기서부터 리메 전과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
한 별은 이한성의 표정을 완벽하게 기억한다.
‘망령.’
검은 땅의 참상을 보고도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검은 땅의 아이라면 이해가 간다.
추가 정보도 들어왔다.
‘한국 영웅 아카데미 신입생 중 검은 땅의 아이가 있다.’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정보만으로도 [정연]에 타격이 있을 정도로 많은 지출이 필요했으니까.
‘이한성이 분명한 거 같은데······.’
근데 튜브하는 걸 보면 보통 관종(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병적으로 높은 상태.)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 살다 와서 정신이 이상했던 건가?
“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야. 근데 넌 또 어디 가?”
주말에도 항상 훈련하던 친구다. 그런데 오늘은 셔츠에 슬랙스까지 챙겨 입었다. 외모가 훤칠해서 그런지 잘 어울린다.
“음? 아, 나도 튜브가 해볼까 하고.”
“튜브? 네가?”
“······응. 역시 이상한가?”
“브이 로그. 아니, 일상 올려서 취미생활 할 거면 상관없긴 한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야?”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이한성 하는 거 보고?”
“흐흐. 맞아. 너무 웃기지 않아?”
오우거를 상대하기 전, 이한성이 카메라를 보며 살포시 꺾은 손목을 흉내 낸다.
“웃기긴 했다만······.”
한 별은 진 훈이 당연히 며칠 못 하고 포기할 것 같았다.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훈련하는 녀석이 무슨 튜브를 한다고.
“그래, 한 번 해봐. 재미있긴 하겠다.”
너무 훈련만 하는 것도 좋지는 않다.
사실 진 훈 정도 되면 훈련실에서의 훈련은 효과가 미미하다.
‘나중에 [격]을 얻기 위해선 인지도도 꽤 필요하니까.’
‘업적’으로 ‘격’을 얻는다. ‘업적’은 홀로 수백 명의 사람을 구하거나, 학살하거나. 혹은 어떠한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할 때 얻기 쉽다.
하지만 그것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발동될 확률이 높다.
진 훈은 카메라를 사기 위해 시내로 나간다고 했다. 한 별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한 별은 카메라가 있었고 할 일도 있었기에 진 훈을 혼자 보냈다.
“만약, 이한성이 검은 땅의 아이라면······?”
한 별은 진 훈과 이한성의 관계를 막아야 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곳의 아이는 대부분 ‘종속’된 이들의 자식이며, 그 ‘종속’은 자식에게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악(惡)에 치우친 [격]에 언제든 다시 종속될 수 있다는 뜻.
한반도를 쓸어버릴 수 있는 위험한 시한폭탄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가 다시 아프리카로 가거나, 아프리카가 악(惡)에 점령당해 그곳에 갇힌 [격]들이 대륙을 나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한성은 진 훈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할 ‘트리거’가 될 수도 있었다.
절대로,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한 별의 눈빛엔 살기가 감돌았다.
* * *
모든 설명을 들은 성시연과 얜 샤를은 입을 열 수 없었다. [마력 계약]은 절대적이었기에 그들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만약 타의로 실토할 상황이 온다면 그 기억을 잃는다.
설정은 ‘마력은 생명의 어쩌고저쩌고’라고 하지만, 게임 시스템의 일부이기에 99%는 믿을 수 있다. 1%는 플레이어가 장난치는 ‘버그’의 일종인데, 이한성이 그럴 일은 없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확실하게 다 알 수는 없어. 하지만 샤를은 당장······은 아니고 조금 훈련을 거친다면 한 가지 고유 능력을 개화할 수 있을 거야.”
일단은 지닌 ‘미개화’ 능력 중. 가장 개화가 가까운 능력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고, 그것을 끌어 올리는 ‘이능’을 가졌다고만 했다.
하나에 1억짜리 ‘비밀 서약’ [마력 계약서]를 쓰면서 거짓말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정말?”
“응. 진심이야. 어차피 너희는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나는? 나는 뭐 있어?”
성시연은 재미있겠다는 듯 물었다.
한성은 조금 고민하다 성시연의 상태창을 살폈다.
[상태창]
이름 : 성시연
능력치 : [근력 23] [속도 34] [민첩 38] [체력 24] [감각 34] [마력 35] [정신력 37] [지능 18] [매력 40] [행운 42]
잠재력 : 325/904
고유 능력 :
그림자 타기(C/S), 사고 가속(미개화/A)
특수 능력 :
검은 가시(미개화/SS), ■■■(미개화/???)
특성 :
살인(B/A), 암왕의 길(미개화/SS), ■■■(미개화/???)
‘와우.’
이한성은 이래서 성시연의 상태창은 보지 않으려 했다.
특성이 무려 ‘살인’이다.
보기만 해도 살이 떨린다.
게다가 능력치도 상상 이상. 진 훈에 비하면 딸리지만, 걔가 터무니없이 높은 거고. 이 정도면 아직 8위인 게 이상할 정도다.
당장 개화할 수 있는 건 ‘사고 가속’인데 잠재력 A라서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았다.
“너도 하나 있긴 한 거 같아. 근데 시간은 꽤 걸릴 거야.”
“대박! 미친! 개쩐다!”
얜 샤를은 고민하는 눈치, 성시연은 신이 나 죽는다.
“······근데 우리가 뭘 해 줘야 해?”
얜 샤를이 묻는다.
당연한 물음이다.
이런 능력은 잘만 쓰면 돈과 명예를 쓸어담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이니까. 하지만 그런 것도 일단 살아있어야 가치가 있는 법.
일단 세계 멸망은 막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다. 과한 호의가 아닌 듯하면서 어찌 되었든 이득을 본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내가 만드는 매니지먼트에 들어오면 돼.”
가장 좋은 건, 완전한 한성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
하지만 그것도 한성이 그들보다 위에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은 작은 인연을 만들고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을 아래 두는 건 나중의 일이다.
“그 영웅 매니지먼트?”
영웅이 아닌 일반인이나 ‘영웅’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는 보통의 ‘헌터’는 각 길드에 회사처럼 입사하게 된다.
하지만 ‘영웅’은 그 자체로 동업자가 된다.
최소 2년에서 최대 10년까지 계약을 하며, 계약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던지 다른 길드에 들어가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기도 한다.
한성이 만들려는 ‘매니지먼트’는 그런 ‘영웅’을 전문적으로 보조하는 회사다.
“맞아. 알겠지만, 법적인 문제, 개인 훈련과 건강 문제, 던전 공급이나 사냥 후의 뒤처리 등을 맡는 회사야. 당연히 개인 매니저를 붙여줄 거고 개인 차량까지는 무리 없어. 수수료는 다른 매니지먼트와 다를 거 없이 8대 2이고. 계약 기간은 기본 2년으로 하고.”
설명이야 필요 없다.
영웅 후보생이라면 그 정도를 모를 리 없으니까.
문제는 누가 이득이냐, 손해냐 정도일 거다.
성시연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런 20%의 수수료와 매니지먼트에서 공급하는 각종 서비스를 성시연이 혼자 다 부담한다고 해도 년에 수백억. 거기에 보통 매니지먼트에 들면 계약금으로 받는 선금도 수백억.
하지만 잠재력을 하나 개화할 수 있다면 거의 헐값.
‘암살 임무 몇 번 하면 버는 건데.’
그거야 어차피 취미이지 않은가.
문제는 얜 샤를이었다.
원래 계산이 많은 건지 고민이 깊다.
“일단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돼. 졸업해야 들어올 수 있는 거고. 그때 가서 더 좋은 곳이 있어서 가겠다면 말리지 않겠어.”
“에이, 그건 아니지. 난 가입할래! 당장 하면 되나?”
“나, 나도 할래요!”
성시연의 적극적인 모습에 얜 샤를이 질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었다.
이거, 성시연이 있어서 더 잘 풀리는 기분이다.
‘뭐, 굳이 매니지먼트에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으니까.’
이걸 거래라고 생각하게 하는 게 중요했다.
어차피 이들은 한성의 곁에 없어도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싸울 사람들. 어차피 도와야 하는 인물들인 거고 한성에게 마음의 빚을 지웠다는 생각을 주는 건 옵션이다.
“정말이야. 일단은 졸업하고 생각하자고. 그때 마음에 들면 들어오고. 아니면 아닌 거야.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래, 더 착하고 자상하게.
그래야 미안한 마음이 들지.
“우린 친구니까.”
쐐기를 박았다.
얜 샤를은 깊이 고민했다는 게 미안한 표정이었다. 성시연은 ‘그러면 못 죽······.’ 어쩌고 중얼거리는 게 보인다.
한성은 고개를 갸웃하곤 입을 열었다.
“그럼, 미래의 호. 아니, 고객님. 정보 전달부터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운 좋으면 수백억의 계약금도 없이 수천억의 이득을 얻을 수도 있겠다. 이들이 꼭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지만, 들어오면 대박인 거다.
* * *
한성은 둘을 들여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대략적인 정보 전달은 끝냈고 다음 주 주말에 던전 공략하기로 했다.
“피곤하다.”
아카데미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하루 바쁘게 보낸다. 게임이었을 때도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목숨까지 걸려있기에 더욱 독하게 움직인다.
“끄응.”
육체 능력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 20대 초반이나 겨우 됐을까.
평소 바바리안의 검을 사용하는 건 상관없지만, 순위 시험이 관련되어 있을 때는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후보생용 무기를 써야 한다.
몸이 축축 처지지만,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한성은 터덜터덜 걸어 검술 훈련장으로 들어섰다.
“어! 한성!”
세르게이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가온다.
무척이나 밝은 얼굴이다. 검술로 대판 깨져 상심해 있을 줄 알았는데.
“세르게이. 훈련하고 있었어?”
“응. 영상 올린 거 잘 봤어. 한 삼십 번은 봤을걸? 이래서 영상이 좋아. 객관적인 제 3의 눈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좋다. 아주 좋은 증조다.
세르게이는 검술에 미쳤고 배움을 갈구한다.
성격이 굉장히 단순하고 좋은 편이라 전 플레이에서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래? 다행이네.”
“나 약점을 보완한 것 같다. 완벽하진 않지만······ 다시 한 번 붙어줄 수 있겠어?”
“어렵지 않지.”
한성이 몸을 풀면서 대답한다.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산개했다.
툭.
“뭐야. 성가시게.”
뒤에서 누군가 한성의 카메라를 툭 쳐서 떨어뜨렸다.
세르게이의 표정이 굳었고, 한성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나디아. 지금 뭐하는 짓이야!”
세르게이가 낮은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한성도 익히 아는 얼굴이다.
블라디미르 나디아.
러시아 출생. 어머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였고 아버지는 세계에서 손꼽히며 창사(槍士)다. 또, 전 러시아 스페츠나츠 사령관이었으며 지금은 러시아 최대의 PMC ‘시바휴즈’의 회장이다.
그리고 검성인 미하옐과 라이벌이기도 한 초인.
한 마디로 거물 그 자체의 딸인 거다.
“흥.”
이 소녀도 주인공급은 아니지만, 메인에 한 다리 걸치는 캐릭터고 러시아 특유의 외모에 어머니가 세계적인 배우이기도 했으니,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디아는 한성과 세르게이를 무시했다.
한성은 씨익 웃으며 나디아가 떨어뜨린 카메라르 다시 올렸다.
“꺄악! 놀랐잖아.”
한성은 그 말도 무시하고 얼굴 앞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뭐야! 당장 안 치워?”
나디아가 카메라를 손으로 치워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한성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카메라를 조정해 왔다. 아주 디테일하고 신묘한 카메라 무빙으로 나디아의 손을 피한다.
“악! 야!”
부우웅. 부웅.
나디아도 후보생은 후보생. 아버지의 뒤를 이은 창사이기에 굉장한 육체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한성은 드래곤을 잡을 때도 카메라를 직접 움직인 사람이다.
그의 카메라 무빙은 이미 신의 경지에 올라있다.
“야아아! 이 미친놈아!”
한성은 조금 더 괴롭히려다 카메라를 뒤로 물리고 나디아에게 다가갔다.
“뭐, 뭐야.”
“야.”
“뭐! 뭐, 왜!?”
“닥쳐.”
“······너, 너 지금······.”
블라디미르 나디아.
철없고 싸가지 없는 재벌 2세다. 재능도 충분하고 현 실력도 꽤 괜찮은 편.
하지만 문제라면 문제랄게 있었다.
‘아마 얘가 M이었지.’
마조히스트라는 거다.
맞다. 그거, 가학당함으로 쾌감을 느끼는 변태. 한성과는 상당히 상성이 좋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연기 해줄 의사는 충분했다.
아니, 생각보다 한성과 잘 맞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전 회차에서도 세르게이와 함께 오래 활동한 동료였으니까.
공략법이라면 확실히 안다.
< 마조히스트(?)_(여기서부터 리메 전과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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