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12화 (12/200)

< 도서관, 비밀의 방. >

태양을 잃은 검은 땅의 하늘은 회색이다.

중심엔 [지옥]과 동화된 ‘악마의 탑’이 존재했고 곳곳에선 괴수와 인간의 전쟁으로 굉음과 비명이 가득하다. 진득한 피의 비릿함과 먼 곳에서 불어오는 누린내는 방심하지 말라는 듯 정신을 번쩍 깨운다.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종]

악에 물들어 언데드화 된 [몬스터]

마계에서 소환된 [마족]과 [마물]

그리고,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사람들.

인간이길 포기해야 했으며, 영혼을 내놔야만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아프리카란 그런 곳입니다. 앞으로 ‘영웅’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여러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찰칵.

화면이 변한다.

아프리카의 전경에서 악마, 마족, 악에 물든 몬스터의 모습. 그들과 맞서는 영웅. 아니, 괴물들.

“인간의 힘만으로는 악마와 마족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영혼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강사의 말에 누군가 손을 들었다.

“네, 말해보세요.”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건가요? 그들은 사람이······

맞는 건가요?”

어느 학생의 말에 강사는 입술을 달싹이며 머뭇거렸다.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망령······.”

이한성이었다.

그 말에 길성현, 진 훈, 한 별, 성시연, 얜 샤를의 시선이 꽂혔다.

“망령. 맞습니다. 그 말이 적절하네요.”

“망령이요?”

“네, 그들은 그 땅에 묶인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죽이기 위해 영혼을 팔아 강력한 힘을 얻었죠.”

“어디에 영혼을 판 거죠?”

이번엔 다른 학생이었다.

“신격. 혹은 그에 준하는 ‘격’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 격의 존재는 저희도 나중에 계약을 맺는 존재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계약’과 ‘종속’은 다르죠.”

이 세계관엔 ‘격’이라는 게 있다.

대략 [역사], [전설], [준신화], [신화], [신격] 순의 위계를 지녔으며, 그들은 말 그대로 인간과 [격]이 다른 존재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인지.

이 세계관에서는 ‘이한성’이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그게 밝혀지는 건 엔딩에 다다랐을 때니까.

“이곳에 모인 후보생들은 [1차 각성]을 했거나, 자신의 특능이나 이능을 파악했으니 입학할 수 있었을 겁니다.”

평범한 인간이 자신의 상태창을 보고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게 [1차 각성]이라 한다.

“끊임없는 훈련과 실전. 그리고 죽음을 넘나드는 ‘경험’은 ‘업적’을 만들고. 그 업적으로 [희귀] 등급의 ‘격’을 얻는다면 그 존재들과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특수 능력, 고유 능력, 특성에 관련해서 대대적인 진화와 성장을 겪게 되고 새로운 능력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계약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었죠.”

후보생들은 침묵했다.

TV로 가끔 접하겠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침통할 수밖에. 그들 중에 전투에 미쳐 그곳에 빠져든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인류를 지키겠다는 일념에 자신을 버린 거다.

강사는 영상 하나를 틀었다.

아주 먼 곳. 위성에서 찍은 영상이다.

사방이 번쩍이며 화염의 폭풍이 대지를 쓸었다. 그뿐이 아니다. 번개, 얼음, 마력 등. 일개 도시는 순식간에 폐허가 될 어마어마한 마법이 마구잡이로 난사된다.

거검, 도끼, 해머를 든 영웅이 화염을 뚫고 몬스터와 부딪힌다.

콰아아앙.

단순한 물리적 충돌은 수십 미터의 크레이터를 남겼다.

강하다. 그리고 멋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하지만 후보생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눈엔 생기가 없었다.

마치 기계처럼, 아무런 의욕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육체는 터질 듯 단단했지만, 곳곳이 검게 썩고 있었으며 마족에게 찢겨 죽어도 신음하나 흘리지 않았다.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빛이 떨어지며, 주변의 모든 몬스터와 마족. 인간까지 모조리 타버렸다.

그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공허한 눈빛으로 자신이 죽였어야 할 마족들을 바라볼 뿐.

영상은 그것으로 끝났다.

몇몇은 그 모습에 구역질을 해댔고 몇몇은 시선을 피해 눈물을 보였다. 이곳을 벗어나 도망친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이게 영웅의 현실입니다. 아니, 아프리카. 검은 땅의 현실이에요. 피하지 마세요. 영웅은 이걸 피할 자격도, 권리도 없으니까요.”

아직은 어린 17살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영웅 후보생이다. 후보생 신분은 그들을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으로 인정한다. 그건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책임도, 그 권리도 본인의 손에 있다는 말이다.

“이한성 후보생.”

“네.”

“상당히 담담하네요.”

하긴, 여기서 저런 장면을 멀쩡하게 보는 사람은 몇 없다. 진 훈은 화가 나 보였고, 길성현도 미간을 찌푸린다. 그나마 잘 보는 사람은 성시연과 한 별이다.

한성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 플레이에서도 아프리카에 10년을 넘게 있었고, 틈만 나면 아프리카로 가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아주 멀쩡한 건 아니었다.

전엔 게임이었고, 이젠 현실이니까.

“저흰 영웅 후보생이니까요.”

아주 모범적인 답안이다.

한성은 시선을 느꼈다.

‘성시연?’

그리고 당황했다.

이런 상황에, 저 아이의 눈엔 ‘하트’가 보이는 것일까.

‘역시나 싸이코패스는 다른 건가.’

왜 시선이 한성에게 향하는 것인지는 몰랐으니, 이럴 땐 눈빛을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그렇군요. 맞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그냥 학생이 아닙니다. 영웅 후보생이고, 영웅이 될 학생들인 겁니다. 이걸 피한다면······ 영웅이 될 수 없을 겁니다.”

그것으로 수업은 끝났다.

이번에도 꽤 많은 시선이 느껴졌지만,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오늘도 육체 성장 포션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 위해 육체 단련을 극한까지 해야 했다.

*  *  *

“하암.”

상당 육체 단련을 너무 격하게 한 것인지, 몸이 뻐근했다. 거기에 바로 자지도 않고 영상 하나를 편집해 올리느라 늦게 잤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 주에 느꼈다.

이능의 필요성을.

그저 [육체 강화]나 [초고농도강기]와 같은 서브 이능이 아닌, 본질에 가까운 개별적인 이능이 있어야 한다.

한성은 딱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도서관, 비밀의 방.”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지만, 착각일 거다.

아카데미에도 당연히 도서관이 있고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전 세계의 모든 책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대했으며 수준 또한 높았다.

당연히 많은 히든 피스가 잠들어있기도 했다.

“대상 개화를 사용할 때가 오기도 했지.”

얜 샤를. 한성의 첫 번째 동료가 되어야 한다.

딸랑.

카페 문이 열리며 얜 샤를이 들어왔다.

“어, 여기!”

한성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동안 계속 인사하면서 친해진 상태였고, 오늘은 던전 공략 제의를 하며 약속을 잡았다.

“안녕.”

얜 샤를은 아직 어색한 듯했다.

“커피 먹을래?”

“나? 아니 됐어. 커피는 별로······.”

한성은 공략 글을 떠올렸다.

‘얜 샤를은 자존감이 낮다. 이능, 재능이 남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걸 깨닫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마저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큐브]를 구하는 것에 집착하는 편인데, 그냥 주는 것은 조심스러운 그녀의 성격상 경계를 불러일으키고······.’

그리고 커피를 못 먹고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까지.

특히.

“그럼 핫초코?”

“하, 핫초코?”

불쑥 좋다고 하기엔 민망한 모양이었다.

한성은 살짝 웃으며 계산대로 향해 음료를 주문했다.

“던전. 아니, 히든 던전을 찾았어.”

“히든? 그냥 공개 던전 아니었어?”

“그런 거라면 굳이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았을 거야.”

얜 샤를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563위이면서 역대급 신인이라는 3인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한성이다. 특히, 엊그제 있었던 오우거와의 전투는 모든 학생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럼 내가 왜 필요한 건데?”

“너의 그 이능과 상성이 잘 맞거든, 그리고.”

일부러 뜸을 들이고 커피를 들이켰다.

얜 샤를도 핫초코를 마시곤 생각보다 단맛에 정신이 확 드는지 눈을 크게 떴다.

“마, 맛있어.”

“토핑 추가했거든. 단 거 좋아하지?”

얜 샤를이 고개를 불쑥 든다. 놀란 얼굴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굴을 붉힌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하긴, 매력이 이제 4가 되어가는 한성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다는 건 말이 안 되긴 했다. 정말 미쳤거나······ 비정상적인 여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능이 담긴 [큐브]가 있다는 정보야.”

“이능?”

“그래, 이능.”

이능이 담긴 큐브는 못해도 10억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얜 샤를에겐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큐브를 나누자. 서로 맞는 걸 찾아야 하잖아.”

“일단, 그건 좋아. 그런데 위험하지 않겠어? 그것보다 공략에 성공할 확률은 있고······ 꺄아!”

불쑥.

누군가 고개를 들이미는 것에 얜 샤를이 놀랐다.

“나도 할래.”

“성시연?”

“안녕.”

“······여긴 언제 왔냐.”

“그냥 오늘 주말이잖아. 카페 놀러 왔지.”

천하의 성시연이? 굉장히 비논리적이고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 할 순 없었다.

“그것보다, 나 지금 얘기 중이거든? 조금 이따가 얘기하자.”

“······지금 나 까인 거?”

“응, 맞아.”

태연한 한성의 말에 성시연이 째려봤다.

한성은 순간 섬뜩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나가야 한다.

“······그냥 죽일까······.”

“뭐라고?

“아니야. 하던 얘기 해.”

성시연이 얜 샤를을 쳐다보며 팔짱을 꼈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왜, 하던 대화 하라고.”

“······알았어.”

한성은 얜 샤를을 바라봤다.

“같이 할래? 적합한 큐브가 있다면 무조건 넘겨줄게.”

“그 큐브가 너랑 겹쳐도?”

“어떤 큐브인지에 따라 다르지.”

“하긴, 나도 그것까지 받는다고 할 정도로 염치없지는 않으니까.”

히든 던전이다보니, 정보를 가져온 사람의 지분이 클 수밖에 없다.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건 성공 가능성이잖아.”

“그렇지. 사실 난이도는 그렇게 높지 않아. 나 혼자라도 꽤 오래 걸리겠지만, 못 깰 정도는 아니고.”

“내가 끼면 달라진다는 거고?”

“거기에 나까지 끼면 완벽하겠네.”

성시연이 갑자기 끼어들었지만, 나쁘지 않다.

“정말 낄 거야?”

“응.”

“그렇다는데?”

한성은 성시연에게 향했던 시선을 얜 샤를에게 돌렸다.

그 시선에, 얜 샤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에 학교에서도 학생끼리 하급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성시연과 이한성이 함께한다.

끼워주지 않는다고 해도 떼를 써야 하는 상황인 거다.

한성도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큐브는 각자에게 맞는 게 있는 법.

‘내가 원하는 건 하나니까.’

아마 일주에서 이주면 [메인 스토리]가 시작될 거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 이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한성은 [마력 계약서]를 꺼냈다.

그걸 본 성시연과 얜 샤를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계약을 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가장 싼 [비밀 서약] 마력 계약서 하나가 1억이 넘어간다는 거다.

‘이거 사느라 등골 좀 빠졌지만.’

그래도 꾸준히 카지노에 다니면서 10억 넘게 벌어뒀고, 5억은 몇 가지 주식에 넣어뒀다. 게임이기에 매회 곁가지 스토리는 달라지지만 큰 틀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다.

“참여하고 싶다면 서약해 주겠어?”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대상 개화]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마력 계약서]가 있기에 보안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받아들이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 도서관, 비밀의 방.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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