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해의 시작 >
“뭐, 뭐야. 이게······.”
세르게이는 자신의 손을 넋 놓고 바라봤다.
이럴 순 없다.
이 상황이 말이 되는 건가.
분명 육체 능력은 자신이 압도적이었다. 중학생과 성인 정도랄까. 분명 검만 내려쳐도 팔이 나갈 정도의 격차였다.
물론, 그의 검술은 대단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의 육체의 격차까지 압도해버리다니,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이긴 거냐고?”
“······.”
칭찬을 좋아하고 푼수끼가 있지만, 검술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 진지하다.
검술이 성장할 수 있다면 자존심 따위는 내팽개칠 수 있을 정도로.
“경험. 검술의 완성은 경험이지.”
이전 플레이에서 세르게이가 한성에게 한 말이었다.
조금 찔리긴 하지만, 먼저 한 사람이 임자 아닐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어느새 존댓말은 사라져 있다. 통역이라 그런지 반말과 존댓말의 경계는 희미했다.
“나이가 비슷하다고 경험까지 비슷한 건 아니지.”
“나도 경험이라면 꿇리지 않아!”
아직 확실하게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이 진 게 실력 때문이지만, 그 외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마치 이능(異能)이라던가 말이다.
“경험······, 고작 토벌이나 결투?”
미안하지만, 검이 주가 되는 게임을 수십 년 이상 해 왔다.
게임은 게임이지만,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검과 무술 관련 박사 수백 명이 10년 이상 정립해온 이론을 알파고 다섯 번째 버전인 [가이아]가 1대 5만 비율의 시간 가속을 통해 만들어 낸 수십 개의 ‘무림’에서 그대로 뽑아온 것.
‘이 게임의 검술도 대부분 거기서 따 온 거지.’
그런 검술을 기반으로 제작된 여러 세상. 그곳에서 이뤄지는 전장에서 30년 이상 굴렀다. 고작 10년 검을 잡은 세르게이가 이길 수가 없는 상대인 거다.
물론, 세르게이는 2, 3년만 지나도 한성이 넘볼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갈 [재능]과 [이능]을 가지긴 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전장에서 살아왔으니까······, 꽤 긴 시간이었지.”
“······그럼 너는······.”
세르게의의 눈동자가 떨린다.
표정이 다채롭다.
‘뭐지?’에서 ‘설마?’를 너머 ‘경악’으로 넘어간다.
그렇지. ‘전장’이라는 키워드 정도면 충분한 경험의 증거가 되지 않을까.
“가끔, 대련이나 하자.”
한성은 곧 쓰러질 것 같기에 바쁘게 뒤돌아섰다.
그가 서 있던 대리석엔 셀 수 없을 정도의 자상(刺傷)과 세르게이의 목검이 반쯤 부러진 상태로 떨어져 있었다.
한성은 세르게이의 호감도를 확인하며 기숙사로 들어갔다. 전신이 부서질 것처럼 뻐근했기에 회복 포션과 잠이 절실했다.
* * *
‘여긴 웬일······ 아, 검이었지.’
성시연은 한성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몰래 따라왔다. 그림자를 타고 미행했기에 절대로 들킬 일은 없다. 웬만한 현역 ‘영웅’도 감지하기 힘든 고유 능력이니까.
‘훈련하는 모양이군.’
성시연은 어둠이 짙은 훈련장 구석에서 한성을 지켜봤다.
참 이상했다.
성시연도 남자에게 관심이 한창 있을 나이이긴 하다. 하지만 저런 사람은 아니었다.
17살짜리의 환상은 뻔하다.
키 크고, 잘생기고, 돈도 많으며, 살인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왕자님이 아닌가.
‘거기에 암살 내기할 수 있으면 좋고.’
그런데 저 앞에 못생긴. 아니, 사실 이목구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못생긴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조화가······.
“에라, 거기서 거기긴 하네.”
성시연은 그냥 얼굴은 포기하기로······.
“으아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성시연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죽이기 위해 관찰하는 거다.
그런데 이상형 생각이라니.
“후, 지켜볼 생각이면 조용히 좀 하지?”
“뭐, 뭐야!”
성시연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겁했다.
“다 들리겠네. 왜 내 옆으로 와서는.”
“한 별?”
“그래, 볼 거면 조용히 보자.”
“너도 한성?”
“······조용히 하면 안 될까?”
한 별은 나른한 듯 날카로운 눈으로 성시연을 바라봤다. 거만했지만, 부탁한다는 표정이라 성시연이 입을 움찔거리다 닫았다.
“오케이.”
한성과 세르게이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목검의 싸움이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검과 검이 직접 부딪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세르게이는 공격, 한성은 빗겨 치고 회전하며 당기는 이상한 검술을 사용했다.
자신감 넘치던 세르게이의 표정은 점점 창백하게 변했다. 그도 안 거다. 육체 능력은 자신보다 한성이 훨씬 떨어진다. 하지만 그 격차를 검술 자체로 메우고 있던 것이다.
“······대단한데?”
한 별이 무심코 뱉었다.
세르게이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성의 검술은 상상 이상이다. 검술에선 진한 혈향(血香)이 풍겼다. 완벽하게 ‘살인’과 ‘학살’을 통해 완성된 검으로 보였다.
한 별은 어렸을 때 이런 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 한성, 생각보다 강하다고.”
한 별은 그런 성시연을 이상하게 쳐다보곤 고개를 돌렸다. 딱히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대련은 점점 거칠어졌고 목검에 마력이 따르기 시작했다.
마력이 붙자 속도와 힘이 비상식적으로 강해졌고, 둘의 검은 부딪히지도 않는데 묵직한 파장을 형성했다. 초당 수십? 아니, 수백 번 이상 허공을 오갔다.
그리고.
세르게이의 검은 부서졌다.
한성은 부족한 육체 능력을 커버하기 위해 세르게이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보다, 검을 꺾는 것을 택한 거다.
“실력 차이가 꽤 큰데?”
“응. 한성이 육체 단련도는 상당히 낮은데, 검술은 말도 안 되게 정교하단 말이야.”
한 별은 혼잣말한 걸 후회했다.
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너, 한성을 잘 알아?”
“아니? 한 번 봤지 아마.”
“······근데 너 말투가 원래 그랬냐?”
둘은 친한 편이 아니다. 이곳에 입학하기 전, [영웅 특성화 학교]를 같이 나오긴 했지만, 몇 번 말 섞어 본 게 다다.
“내, 내가 뭘!”
한 별이 알기론 성시연의 성격은 개차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말엔 항상 욕이 섞여 있고 불평불만 투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또 거의 ‘미친개’였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죽이겠다고 다짜고짜 단검을 휘둘러댔으니까.
‘하긴, 아카데미 들어왔으니 바뀌긴 해야지.’
한 별은 이 팀장의 보고를 기억해냈다.
‘이한성 후보생.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별님의 보안등급으로 접근해도 [접근 불가]만 뜰 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한 별의 보안등급을 넘어서는 곳은 몇 없다. 그의 아버지이자 [정연]의 가주. 혹은 그에 준하는 최고위급 인물 몇몇이 전부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때, 한성과 세르게이의 대화가 들렸다.
‘고작 토벌이나 결투?’
‘전장에서 살아왔으니까······, 꽤 긴 시간이었지.’
토벌이나 결투가 ‘고작’이라고?
한 별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전장? 무슨 전쟁터에라도 있었나?”
성시연은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한 별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다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
정연의 보안등급으로도 열람할 수 없는 신분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한 별의 보안등급보다 높거나 같을 때.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그렇다는 건 세계 영웅 협회에서 파견한 인물이라거나, 세계 정부에 소속된 고위급 인물. 혹은 소수의 ‘초인’과 관련된 사람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전쟁고아······.’
인류와 몬스터는 오래전부터 전쟁 중이다.
아프리카와 아마존. 그곳에선 매년 수만 명의 생명이 태어나고 고아가 된다. 99%는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죽지만, 몇몇은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
전장에서 태어났으며, 전장에서 살아온 사람.
“칠드런 오브 블랙 필드(children of black field).”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신분은 없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신분은 만들어지고, 그 신분은 국가 기밀로 분류되어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다.
“······뭐?”
한 별의 중얼거림에 성시연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한 별은 대답 없이 조용히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
“뭐야.”
검은 땅의 아이들.
100년째 전쟁 중인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한 명의 전사로 키워진 이들을 지칭하는 말.
‘현세의 지옥.’
성시연은 4살이 되면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5살에 사람을 죽였으며, 6살에 갖가지 고문에 적응했고, 7살에 토벌에 참여했다. 그것도 몬스터가 아닌 ‘인간’ 토벌에.
그녀가 15살 때였을까.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곳은 ‘지옥의 땅’이라 불리는 곳이었고, 흑연의 차녀에겐 또 다른 도전의 장소일 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안 된다고 했다.
6살짜리 딸을 고문했던 부모님이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안 된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그곳에 가면······ 진짜 죽어.’
부모님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
그 지독한 훈련. 정말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훈련을 직접 시키면서도 심드렁하고 차가운 표정뿐이었던 부모님이다.
그런데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보였다.
아프리카는 그런 곳이다.
성시연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멋있잖아······.’
이 정도면 자격이 없지는 않다고······.
“아, 아아아! 내가 또 무슨 생각을!”
* * *
정말 쓰러지듯 잠들고 일어났을 때였다.
- 메인 캐릭터 한 명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 메인 캐릭터 한 명이 당신을 경계합니다.
- 메인 캐릭터 한 명이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 인지도 포인트 140이 상승하였습니다.
“오, 뭐야 이게.”
세르게이와의 대련 때문인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많은 양이다.
“호감도를 많이 올려서 그런 건가.”
한성은 커피를 내리고 빵 몇 개를 집어 먹었다.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대충 봐도 57평 아파트. 온통 대리석에 웬만한 저층엔 편의 시설까지 갖춰진 주상복합의 느낌이다.
- 좋은 아침입니다. 한성님.
“그래, 좋은 아침.”
한성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오늘 오전 수업은 없다.
“일단, 인지도 포인트는······.”
인지도는 남은 61포인트에 140포인트라, 딱 201포인트. 하급 랜덤 박스 하나를 사거나, 특정 분류 박스를 두 개 살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오늘은 급하게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건들지 않았다.
“편집이나 해야겠어.”
시간이 날 때, 영상을 만들어 놓기로 했다.
만약 이곳에서 나갔을 때.
최소 10년을 잡고, 현실에서 2년.
빈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선 많은 영상이 필요할 거다.
‘혹시, 누군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한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라이브든, 업로드든 다 해봤다. 조회수는 여전히 0이고 인터넷 세상은 멈춰져 있다.
이미 끝난 희망이다.
“그래도······.”
한성은 허리를 세우고 편집 모드에 들어간다.
다른 이에게 보이지 않는 유저 인터페이스가 주르륵 뜬다. 첫 녹화를 시작한 건, 이곳에 적응하고 나서였고 [능력치 주사위] 노가다를 넘어 ‘운이란 것이 폭발한다.’를 지나 어제의 결투까지 모조리 찍혀 있다.
한성은 손을 움직이며 편집을 시작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5개 정도. 약간만 자른 통짜 영상 몇 개.
띵동.
- 택배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아, 벌써 왔나?”
한성은 뻐근한 허리를 풀면서 현관에 놓인 택배를 가져왔다.
구매한 건 소형 드론 카메라 세 대. 게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화를 하기 위한 준비다. 누가 봐도 허공에 손짓하거나 혼잣말하는 건 수상하니까.
“이 카메라, 동기화 가능하지?”
-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시스템 카메라와 게임 속 드론 카메라를 같은 위치에 고정하고 한성이 손짓으로 카메라를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음······ 아무래도 튜브를 개설하는 게 좋겠지.”
이 세계관엔 현실처럼 튜브라는 영상 플랫폼이 존재한다.
인지도 포인트를 위해선 이 방법이 최고다. 게다가 카메라로 촬영한 게 있기에 업로드 된 증거가 있으면 더욱 좋다.
평생 해오던 일이다.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었다.
아카데미도 영웅 후보생의 이미지를 깎아 먹는 이상한 영상만 아니면 개인 방송을 권유하는 편이다. ‘후보생의 인기도는 아카데미의······.’ 뭐라뭐라 설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진실은 현실의 ‘튜브’와 협의한 PPL 비슷한 거다.
“시스템 UI가 보이는 건 시스템에 업로드하고, 드론 카메라로 찍힌 건 이쪽에 업로드.”
- 확인했습니다.
“초반엔 올리기 전에 검수받는 거 잊지 말고.”
헤일렌이 성장형 인공지능이고,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초기엔 많은 간섭이 필요하다.
한성은 편집을 끝냈다.
평소처럼 만든 영상은 현실 튜브에 올렸다.
게임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영상은 [세상의 끝] 세계관에 존재하는 튜브에 ‘WIRO’라는 이름으로 스튜디오를 개설한 후 업로드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영상은 ‘운이란 것이 폭발한다.(카지노 잭팟)’이라는 영상이었다. CG를 이용해 머리칼이 날리는 효과도 첨부했다.
‘깔끔하게 잘 뽑혔네.’
한성은 오후 수업 시간이 다가와 빠르게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 오해의 시작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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