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기 시험(1) >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지구의 미래이며, 인류의 희망이 되어 몬스터의 위협에서 우리의 땅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이야 말로······.”
슬슬 연설이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는다.
이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흥미진진한 이 역사를 빠져들어 들었다.
이곳의 다른 학생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성은 이 세계에서 52년을 살았다. 직접 살던 세상, 일반인들은 모르는 깊숙한 곳까지 모조리 경험했던 한성에게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자자, 그럼 이제 실기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합격해서 쭉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담당 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하나둘 일어났다.
한성도 그중에 하나였다.
‘으흠, 저놈은.’
눈에 띄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
길성현.
진 훈, 한 별과 대등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영웅 후보생 중 한 명이다.
중립적이며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선(善)보다는 악(惡)에 가까워진다. 재벌가의 후계자라는 배경에서 오는 오만함과 권위적 사고. 거기에 출중한 마법적 재능까지.
그런데 훈과 별에게 밀려 떨어지는 순위.
추후, 그에게 다가오는 악 캐릭터들.
그 모든 게 합쳐져 악(惡)으로 향하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악 성향의 플레이를 통해, 저놈과 한편이 되는 건 배드엔딩의 지름길이었지.’
여러모로 피해야 할 인물 중 하나였다.
살 떨릴 정도로 긴장된다.
미쳐버린 운영자들은 플레이어를 말도 안 되는 천재들 사이에 두고 [재앙(災殃)]이라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내린다. 10년짜리 최단기 클리어를 하기 위해선 132번 정도 죽어야 한다는 통계가 있다니, 말 다 한 거다.
‘하지만 이젠 다를 거다.’
당연하게도 한 번 정점에 올랐던 플레이어였고.
이 ‘운빨좆망겜’에서 최고의 미친 [운]을 가졌으니까.
* * *
총 잠재력 1,000.
능력치의 종류 10개. 각 하나의 능력치를 100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각자의 체질과 재능. 그리고 [특성]에 의해 총 잠재력이 남아있어도 특정 능력치를 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기본 능력치 5에서 10은 일반 성인이라고 보면 되고 극도로 단련한 운동선수라도 15를 넘진 못한다. 후보생은 최소 20 이상. 신입이라도 엘리트들은 30에 다다른 이들도 있을 거다.
‘다른 능력치에 너무 신경을 안 썼나.’
약간이라도 삐끗하면 그대로 끝인 거다.
하지만 52년이라는 경험. 그것도 평범한 경험이 아닌 ‘정점’이라 불렸을 정도의 경험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이한성 학생. 앞으로 나오세요.”
축구 경기장만 한 돔이다. 밖에서 봤을 때보다 수 배는 커다란 공간이다. 그런 곳을 이곳의 캐릭터들은 ‘체육관’이라 부른다.
수십 개 조로 나뉘어 순위 측정을 진행한다.
“네, 알겠습니다.”
“순위 측정 실전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높이가 3m는 될법한 게이트가 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F등급 몬스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다. 마치 하나의 게임처럼 포인트를 올려 다른 신입생들과 겨루는 거다.
긴장된다.
어쩔 수 없다.
전에는 게임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이니까. 아니, 이게 게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한성에겐 현실과 다를 바가 없다.
‘입학. 그리고 화려한 데뷔.’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해야 한다.
한성은 한쪽에 진열된 무기를 바라봤다.
특별한 마법이 걸려있지 않은 후보생용 무기다. 누군가 자신의 실력을 아티팩트로 숨겨 입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
사실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한성에게만큼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전 플레이와 다른 플레이를 시도한다는 결심이다.
“난······ 검.”
한성의 육체 능력치는 형편없다.
하지만 검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한성은 이 ‘세상의 끝’이라는 게임만 했던 게 아니다. 무협이 배경이었던 게임, 중세 시대가 배경이었던 게임 등.
게임 시간으로만 수십 년 이상 검을 다뤘었다.
거기에 특성 [마력지배]와 폭발하는 [운]이라면 부족한 육체 능력치를 채우고도 남을 거다.
이번 플레이에서 검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역시나 검이라는 무기가 ‘템발’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이다.
많은 게임이나 소설에서 그렇듯이 ‘검’은 강하다.
검(劍)의 역사는 깊고, 단단하며, 끝없이 넓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신화와 전설로 불리는 ‘검’은 고고하게 정점을 지켰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는 많은 게임 속 설정으로 사용된다.
그것은 이 [세상의 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성은 이전 플레이에선 ‘마법’을 선택했고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이 세계관에서 ‘마법’은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주류는 ‘이능(異能)’이었고 이능 없이는 이 세계의 끝을 보는 건 요원했다. 마법은 이능이 관여할 여지가 굉장히 낮고 검은 이능과 상성이 굉장히 좋으니, 마법은 더 비주류가 된 것이다.
한성은 5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도 그 이유가 컸다.
‘하지만 검이라도 하나론 부족하지.’
한성은 검과 마법. 둘 다 잡을 생각이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였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마법 혹은 검. 두 부류는 상극이며 한쪽의 숙련도를 올리는 것조차 클리어 직전까지 정진해야 겨우 끝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성은 상황이 다르다.
[마력지배]라는 재능은 마법에 가장 적합한 재능이지만, 검과 활. 모든 무기와 육체 움직임에 사용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마법은 한 번 끝에 다다랐던 능력.
검과 이능은 한성이 가진 최대의 장점인 ‘정보’를 이용해 [재능]과 [능력]을 얻는다. 그리고 [무구]의 질로 수준을 바짝 끌어 올린다.
아직은 머릿속의 계획일 뿐이다.
상상만으로도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해야 했다.
단 한 번도 죽지 않고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이 [세상의 끝]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래야 했다.
한성은 검을 단단하게 잡곤 테스트용 게이트로 발을 디뎠다.
* * *
보통 실기 시험은 11시쯤 시작해서 최소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까지 진행된다고 보면 된다.
처음 등장하는 몬스터는 평균 능력치 10대의 F등급 몬스터. 3마리, 5마리, 10마리까지 등장하지만, 세계 최고라 불리는 [한국 영웅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10분이면 충분하다.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건 다음 단계.
평균 능력치 20대의 E등급, 30대 D등급 몬스터······ 이런 식으로 계속 상승한다.
“뭐야, 아직도 안 나온 애들이 있어?”
“그런 가봐. 그 제현 그룹의 길성현이야 천재니까 그렇다고 쳐도. 다른 애들은 뭐야?”
“그냥 버티고만 있는 거 아니야? 탱커형 재능이라던가.”
“시간제한이 있으니까 그렇지. 벌써 두 시간이야. 제한시간 생각하면 D등급 몬스터랑 붙고 있어야 한다고.”
그때, 하나의 게이트가 꺼지면서 후보생 한 명이 나왔다.
“젠장! 그것만 피했으면.”
게이트라고 해도 가상현실과 비슷한 원리라, 육체가 직접 다치진 않는다. 그래도 마력이 역류하고 큰 충격을 받으면 내상을 입기도 한다.
방금 나온 후보생은 ‘성시연’. 암습에 특화된 ‘그림자 타기’가 고유 능력이자 [영웅 특성화 학교]에서 전국 9위였던 엘리트다. 긴 머리칼은 여성스럽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제대로 타격을 입은 건지 얼굴이 창백했다.
- 후보생 성시연 855 Point -
“이야, 성시연 쟤 9위 아니었어? 이번 시험이 5등이면 순위 좀 오르겠는데?”
“아직은 모르지. 숨어있던 건지, 죽인 건지에 따라 포인트가 다르니까. 그래도 855면 한 마리 정도는 죽인 것 같은데?”
“어? 근데 왜 4명이지?”
“······남아있는 거 진 훈, 한 별, 길성현······ 저건 누구야. 이한성? 아는 애야?”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부터는 신입생 수준이 아니다.
길성현, 진 훈, 한 별은 [영웅 특성화 학교]에서 워낙 대단했다. 셋이 앞다퉈 전국 5위 안에서 놀았으니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저건.
“근데 저쪽 구역이면 네 자리대 아니야?”
5,000명의 학생이 시험 보는 구역이고. 사전 스펙으로 구역을 구분한다. 특성화 학교의 성적, 서류의 점수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저긴 최소 1,000위.
사실상 4,000위 후반이어야 맞는 구역이다.
“에이, 설마. 그게 말이 돼?”
“꼭 안 될 건 없지. 늦은 나이에 이능을 얻었거나 재능이 발견되었을 때는.”
“그래도 그렇지 이건······.”
그렇게 후보생이 떠들고 있을 때 게이트 하나가 꺼졌다.
“이거 좀 어려운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오는 진 훈이었다.
최고의 주인공급이긴 하지만, 초반엔 성장이 느린 캐릭터. 그런데도 3학년급 무력을 보이는 이레귤러이기도 했다.
그 증거로.
- 후보생 진 훈 988 Point -
“와! 대박! 저 점수는 역대급 아니야? D등급 몬스터 한 마리 빼고 모조리 잡은 거 같은데?”
“운이지 운. 육체 특화니까 이런 시험엔 유리할 수밖에.”
“에이, 그래도 D등급 5마리 잖아. 거의 C등급에 맞먹고 육체 특화는 이 가상현실 테스트에서 약하기도 하고.”
진 훈은 가진 무력에 비하면 굉장히 저평가되는 편이다. 아니, 아직은 그게 객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다. 초반 진 훈은 ‘마력’과 ‘정신’ 관련 공격엔 무력하니까.
1,000위의 ‘정신 공격’ 관련 이능을 가진 후보생도 진 훈을 이길 수 있을 거다. 물론, 그 전에 들켜 머리가 박살 나겠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길성현이 나왔다.
- 후보생 길성현 932 Point -
길성현은 신경질적으로 기본 지급 무기였던 ‘완드’를 집어 던졌다.
진 훈의 기록과 자신의 기록을 비교한 직후였다.
“더 오래 있었는데, 포인트가 적네.”
“아무래도 마법 쪽이니까. 지금까지 버틴 것도 대단한 거지.”
“하긴, 아무래도 이 시험은 마법사한테 불리한 것 같다니까.”
“꼭 그렇지도 않지, 벙커 지형도 있는데.”
“근데 남은 두 명은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는 건가?”
“에이, 다음은 C등급 몬스턴데? 그것보다 저 네자리 후보생이 D등급 몬스터를 다 죽였다고? 말이 되나.”
그때였다.
또 하나의 게이트에 불이 꺼졌다.
- 후보생 한 별 1021 Point -
“와아아아! 일천 포인트를 넘겼어! 역시 한 별인가.”
“대박! 한 별이면 우리나라 수호가문이자 세계에 손꼽히는 마도사 가문, ‘환웅(桓雄)’을 모시는 [정연(井沿)]의 막내 아니야?”
“맞아. 그런데도 마법이 아닌 이능의 천재라 불리잖아.”
환호는 잠시였다.
아직도 꺼지지 않는 네 자리대 구역의 게이트 때문이었다.
길성현은 물론이고 진 훈, 한 별까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게이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혹은 정말로 아직도 생존해 있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야?”
“교관님, 교관님 불러와야 할 것 같은데?”
그때, 게이트에 불이 꺼지며 포인트가 공개되었다.
- 후보생 이한성 1201 Point -
그곳에서 나온 이한성은 당당하게 걸어 나왔고, 우르르 몰려있던 후보생들은 길을 터줬다.
옆으로 길성현의 찡그린 얼굴이 보였고 호기심 가득한 진 훈, 의심 가득한 한 별의 얼굴이 차례로 지나갔다.
그렇게 한성이 체육관을 나가자마자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미친, 저게 뭐야.”
“겁나 멋있잖아. 간지 폭발.”
“지금 길성현 무시하고, 진 훈 깔보고, 한 별 비웃은 거 봤지?”
“대기업에서 키운 영웅 후보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천재? 뭐야뭐야. 도대체 뭐야!”
“근데 진짜 못생겼어.”
“맞아! 뭔가 이상하다 했는데, 멋있는데 못생긴 거였어! 대박! 어떻게 저렇게 생겼지?”
환호 속에서 눈이 마주친 세 명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실기 시험(1)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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