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행운은 만렙이다-1화 (1/200)

< 운이란 것이 폭발한다(1) >

[세상의 끝]이라는 블록버스터 싱글 가상현실 게임.

요즘 가상현실 게임은 5배에서 10배까지 배속 플레이가 가능했고, ‘세상의 끝’도 마찬가지였기에 현실 시간으로 9년. 게임 시간으로 52년 만에 세상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영상 플랫폼 ‘튜브’에 해당 영상을 올리 며 스트리머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300만 이상의 구독자를 둔 유명한 스트리머다. 아니, 였다.

‘어쩌다 이런 일이······.’

여긴 현실이 아니다.

창밖엔 바퀴가 없는 반중력 자동차가 날아다닌다. 구름을 뚫을 듯 높은 건 둘째치고 비정상적인 구조를 갖춘 건물들. 더 찾아보지 않아도 여기가 2025년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걸 모를 수 없다.

이 모습을 보고 곧바로 생각나는 건 단 하나뿐.

‘세상의 끝.’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중 하나.

지구와 비슷하게 제작된 하나의 세계에서 수십억의 인공지능 NPC가 존재하는, 최단기 엔딩을 보기 위해서라도 게임 시간으로 10년 이상 플레이가 필요한 초거대 스케일의 가상현실 게임.

“빌어먹을.”

꿈인 건가 싶었다.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접속한 걸까?

그것도 아니다.

로그아웃이 되지도 않고 게임 접속을 해지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접속 최대 시간인 7일을 계속 이 방에 있었음에도 아무런 위험 경고가 뜨지도 않았고 강제 접속 종료도 되지 않았다.

‘게임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건가.’

모든 가능성을 제외하고 남은 하나는, 아무리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도 진실이라고 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곳에 갇힌 게 맞는 것 같았다. 7일을 먹고, 자고, 싸고, 웃고······ 울면서 실신까지 해 봤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금 남은 일은,

“이곳에서 어떻게 나가느냐. 아니, 살아남느냐다.”

52년을 플레이하면서 이 게임의 스토리를 죄다 꿰고 있다. 이대로라면 1년 안에 일어나는 몬스터 웨이브, 3년 안에 일어나는 대변혁, 5년 안에 일어나는 세계 전쟁.

그 뒤로 갈 필요도 없다.

운이 좋으면 몬스터 웨이브 정도는 피할 수 있겠지. 하지만 대변혁과 세계 전쟁에선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다.

‘아니, 튜토리얼에서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후, 추가로 일주일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상황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가정하고 확신하는데 1일. 이후, 52년의 플레이를 복기하는데 4일이면 충분했고 2일은 어떡하면 살아남고 이곳을 나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

강해지고, 세력을 얻고 힘을 키운다.

게임의 메인 스토리, 서브 스토리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고 넘을 수 없는 위험은 피하고, 이득이 큰 위험은 돌파하면 된다.

‘그래, 난 썩은 물을 넘어선 석유급 플레이어니까.’

52년이면 석유급도 넘어선 핵폐기물급이다.

게다가 이 게임을 클리어한 사람끼리만 모일 수 있는 [온리 원]이라는 축제. 그야말로 석유급 플레이어들만 모여 치르는 대회에서도 최상위 ‘랭커’로 기재된 플레이어가 바로 한성 자신이다.

후발주자 스트리머는 일반적인 플레이로 인기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위험하고 특이한 플레이를 많이 했던 덕분에 많은 걸 알고 있기도 했다.

게다가.

“인터넷.”

허공에 손을 저어 인터넷 창을 띄웠다. 시간은 멈춰 있고 업데이트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원하는 정보는 모두 검색할 수 있다.

한성은 튜브 사이트로 이동했다.

‘WIRO Studio’

위로. 위로 치고 ‘올라가자’와 ‘위험한 길’ 뜻을 지니고 외국인도 발음하기 편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다.

구독자는 300만 명이 넘었고 매달 2억 가까이 수익을 찍는, 그러니까 현실에서도 안락하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생각하니 더 화나네.”

툭 하면 데드 플래그가 세워지며, 어떻게든 플레이어를 죽이려는 ‘세계관’을 가진 이 ‘세상의 끝’에 떨어진 것이다.

한성은 아주 자연스럽게 녹화를 활성화했다.

습관일 뿐이었지만, 막상 틀고 나니 꽤 쓸만할 것 같았다. 허공에 떠 있는 녹화용 ‘드론 카메라’. 그리고 전송되는 ‘화면’은 플레이어만 볼 수 있다.

‘잘하면 정보 수집용으론 괜찮겠는데.’

평소엔 한성의 얼굴, 주변 상황을 녹화하기에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그런 건 시청자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말이다.

한성은 습관적으로 카메라 몇 개를 띄워놓곤 상태창을 살폈다.

아주 형편없는 능력치들.

참고로 말하면,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개복치’나 다름없다.

[상태창]

이름 : 이한성

능력치 : [근력 20] [속도 20] [민첩 20] [체력 20] [감각 20] [마력 20] [정신력 20] [지능 20] [매력 20] [행운 20]

잠재력 : 200/1,000

기본 능력치는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다.

아니, 이 세계관에서 일반인을 압도하는 능력치. 하지만 곧 한성이 가야 하는 지옥같은 세상에선 그야말로 ‘최하위 후보생의 후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 [능력]이 아무것도 없다.

“인벤토리.”

한성이 중얼거리자, 허공에 네모난 창이 떴다.

그 안에 있는 기본 아이템 하나.

[개복치를 벗어나고픈 어린 영혼의 염원]

설명 : 운영자가 개복치 플레이어에게 보내는 선물. 이것조차 없으면 당신은······٩(;﹏;)

구성 : 고유 능력 1개, 특수 능력 1개, 특성 1개.

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저 게임일 때에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았는데,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은?

화가 날 정도다.

그저 설명 때문이 아니다.

이 게임은 극악의 난이도를 가졌다.

[능력]이나 [재능]이 없을 때? 클리어는커녕 튜토리얼도 버티지 못할 게 뻔하다. 그런데 그런 초반 스킬과 재능을 ‘랜덤 박스’로 주다니.

물론, 방법은 있다.

“능력치 주사위.”

[능력치 주사위를 시작합니다.]

게임 시작 전, 튜토리얼을 시작하기 전에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초기에 받은 능력치를 랜덤으로 조정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기본 200으로 맞춰진 ‘개방된 잠재력’이 최저 80에서 최대 190까지 조정된다.

결국······ 노가다의 시작이라는 거다.

운, 매력, 감각 능력치 순으로 올리기 힘들어지니 그쪽으로 최대한 몰리게끔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운]

한성이 겪은 52년의 플레이에서 행운이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능력치였다. 특히, 시스템 상점에서 파는 ‘랜덤 박스’와 각종 확률이 기준이 되는 아이템에서는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한다.

거기에 ‘거의’ 올릴 방법이 없기에 더욱 소중했다.

딸칵.

따르르르르.

띠딩.

주사위를 클릭하면 주사위가 돌며 숫자가 조정된다.

1분이면 60번은 돌리지만, 실수로 넘겨버릴 수 있으니 40번 정도로 조정해 신중하게 돌린다.

1시간이면 2,400번. 10시간이면 24,000번이다.

중간에 화장실 갔다가 허기를 채우면 10시간에 20,000번은 한다. 잠도 자야 하니 하루에 15시간 30,000번을 채운다.

“하······ 미친.”

처음 게임 시작할 때는 이 짓은 하지 못했다. 즐기자는 게임이었기에 굳이 할 필요도 없었고 기본 능력치로 플레이하는 것도 다른 스트리머와 차별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이 달린 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루, 이틀, 삼일, 사일이 지났다.

[행운 89]

덜덜덜.

손이 떨렸다.

“······하.”

4일째, 12만 번을 채울 때까지 단 한 번이 나왔다.

능력치 80이라는 건 인간의 한계, 90은 초인의 한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잠재력 1,000이라는 것도 플레이어 특전인 거고, 웬만한 천재들도 900을 넘지 못한다.

“젠장.”

몇몇 스트리머도 이 짓을 했었다.

그는 운이 84였고 개방 잠재력도 140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운의 효과는 어마어마했지.”

자꾸 혼잣말이 나온다.

스트리머로 수십 년을 플레이했기에 생긴 습관이다. 적절한 혼잣말은 적적함을 날려주고 기본적인 정보 전달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 84라는 운을 지닌 스트리머는 [운]과 관련된 플레이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보였다.

“······어떻게 하나.”

아쉽게도 개방 잠재력은 130정도. 190에서 60이나 깎였지만, 감이나 정신력이 꽤 괜찮은 편이라 나머진 훈련을 통해 올리면 된다.

‘다시 하자.’

딸칵.

따르르르르.

띠딩.

“에라!”

욕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이번 운은 5였다.

그렇게 다시 노가다가 시작되었다.

[운]은 플레이 도중에 노력이나 여타 아이템으로도 ‘거의’ 올릴 수 없는 능력치였기에 더욱 몰리지 않았다.

일주일, 보름, 한 달.

다행히 튜토리얼을 시작하기 전엔 식량과 식수가 무한이고 스토리는 시작되지 않는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한성이 괜히 이 게임을 52년이나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썩은 물을 넘어서 석유급. 석유급을 넘어선 핵폐기물급 플레이어.

안 그래도 독기로 똘똘 뭉친 플레이어였는데, 이제 목숨까지 달렸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드디어 미친 것일까.

한성은 드러누워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운 능력치.

[상태창]

이름 : 이한성

능력치 : [근력 12] [속도 10] [민첩 10] [체력 8] [감각 11] [마력 18] [정신력 14] [지능 5] [매력 3] [행운 99]

잠재력 : 190/1,000

한계였다.

99라는 경이적인 ‘운’ 능력치는 한성도 본 적이 없었다. 육체적, 정신적 능력치가 90을 넘기는 것도 게임이 엔딩에 닿았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운이 99라니.

한 달 동안 미친 짓을 한 보람이 있었다.

한성은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2일. 48시간을 내리 잤다.

꾸준히 잠을 잤어도 누적된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  *  *

한성은 아침에 일어나 제대로 시작하기로 했다.

미뤄둔 튜토리얼 시작 창.

[튜토리얼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게임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까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고 14일이라는 시간과 한 달의 노가다 시간은 강제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시작한다.”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문구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스마트 워치에 알림이 울렸다.

- [PHASE #1] _ 최소한의 자격을 갖춰라!

- 한국 영웅 아카데미 서류 심사에 통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운이 좋았던 케이스. 당신은 실기 시험에서 상위권에 들지 않으면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없습니다.

- 성공 시 : 하급 무기 랜덤 박스 1개

- 실패 시 : 한국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 불가.

[영웅 후보생에 1차 합격하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세계 3대 영웅 아카데미인 ‘한국 영웅 아카데미’에서······.

“똑같군.”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겪었던 일이다.

그것보단 확실하게 현실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일단.

운을 시험해 봐야 한다.

“아이템을 사용한다.”

- [개복치를 벗어나고픈 어린 영혼의 염원]을 사용합니다.

- 비정상적인 [운]이 발동합니다!

- [잭팟! 잭팟! 잭팟!!]

- 고유 능력 [대상 개화(F/SSS)]을 얻었습니다.

- 특수 능력 [정보 열람(F/EX)]를 얻었습니다.

- 특성 [마력지배(F/SSS)]를 얻었습니다.

한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턱을 살짝 올리고 한 손으로 시스템 문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운이란 것이, 폭발한다.”

여기서 이펙트 몇 개 넣어주면 조회수 폭발할 ‘섬네일’ 하나 나오는 건데.

< 운이란 것이 폭발한다(1) >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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