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최종장(3)
리비아의 성도 내에 자리한 왕실 도서관.
“왔니?”
마침내 그곳에 도착한 나를 순백의 미녀가 맞이했다.
내 움직임을 쫓지 못한 유리나와 실비아는 이미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이리나. 정말로 지저 세계로 향하는 입구를 찾으셨나요?”
“오자마자 본론이니?”
“시간이 없으니까요.”
“…흐응~ 뭐, 좋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찾았어.”
“……!”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 즉시, 나는 후다닥 그녀에게 다가붙었다.
“뭐, 뭐야?”
“어딘데요, 거기가?”
코앞까지 접근한 나를 보며 묘하게 얼굴을 붉힌 이리나가 이내 헛기침을 했다.
“이, 일단 좀 떨어져.”
“길만 알려주세요. 가는 건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딱히 이동할 필요는 없어.”
“…네?”
멍하니 반문하는 나를 일별한 이리나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잘 봐.”
우우우웅!
그리곤, 갑작스레 제 마나를 움직였다.
대륙 그 어떤 존재보다 농도 짙은 그것은, 이내 도서관 아래의 대지 깊숙이 스며들었고.
쿠구구구구구궁!
이윽고 주변의 환경마저 변화시켰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깨어진 유리잔처럼 ‘쩌적’ 하고 번져 가는 실금들은,
“……!”
곧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입구는 네가 발을 딛고 선 바로 이곳이거든.”
“그, 그럼 도서관이 지저 세계로 향하는 입구였다는 뜻이에요?”
“아니. 정확히는 이 도시 전체가 입구라고 해야 할걸?”
“…….”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걸 발견해 낸 이리나도 새삼 대단해 보였기에.
“다만, 문제는 따로 있어.”
“무슨…….”
“발밑에 마법진 보이지? 이게 지금 봉인된 상태거든. 해제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술식들을 모조리 풀어내야 하는데…….”
찰나, 말끝을 흐리던 이리나가 곧 발을 들어 지면을 통, 통 찧어댄다.
“이게 은근히 복잡한 작업이라는 말이지.”
“그깟 술식 쯤이야, 이리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요?”
“당연히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직접 해제해 보려고 했는데. 그리 간단한 술식이 아니더라고? 강제적인 힘이 조금만 개입되어도 곧장 진 전체가 파괴되도록 설계되어 있더라.”
“하면…….”
“이건 나도 못 풀어.”
“……!”
내 입이 절로 멍하니 벌어졌다.
맙소사.
드래곤도 못 푸는 술식이 세상천지에 존재할 줄이야.
그럼 이걸 대륙의 누가 해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는 하는데, 뭐, 그 시절의 인간들은 우리 드래곤들도 인정하던 바였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인간들의 역사서에도 나와 있지 않니? 그 시절의 인간들을 누가 멸망시켰는지 말이야.”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잖아요. 감히 해츨링을 건드렸으니…….”
“그거야 표면적인 이유고.”
“……?”
바로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리나의 말은, 실로 충격적이기 그지없었다.
“우리를 꽤나 우아한 종족으로 봤나 본데,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그 어떤 생명체보다 이기적인 존재가 우리 드래곤들이야.”
“…….”
“일족들은 인간의 잠재력과 번식력을 봤을 때, 머지않아 중간계를 지배하는 주체 자체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판단했지. 그래서 당대 로드가 결정한 거야. 이참에 인간들을 완전히 쓸어버리자고.”
“……!”
숨겨진 대륙의 비사였다.
이건 아이리스의 지식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 나조차 기억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 내 눈빛을 읽어낸 것일까?
“역시 모르고 있었구나? 하긴, 그때 아이리스는 수면기였고, 로드는 그를 후계로까지 생각할 정도로 무척이나 아꼈으니… 모를 만도 하겠네.”
“대체 누군데요? 그 시절의 로드가.”
“전대 로드라면, 네 눈으로도 이미 직접 봤지 않나?”
움찔.
거짓말처럼 내 움직임이 멎었다.
“설마…?”
“그래, 아이젝이야.”
“……!”
“너도 조심하는 편이 좋을 거야. 지금은 아군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라크제만큼이나 아이젝을 믿지 않거든.”
“그, 그래서 이그드라실 쪽에 합류하지 않은 거예요?”
“응. 이게 아이젝의 진심을 확인할 유일한 방법이니까.”
“…….”
이제야 상황이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그려졌다.
당장 마계의 존재들이 중간계로 넘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왜 이리나가 손을 거들지 않았는지.
혹여나 그곳에서 뒤통수라도 맞았다간,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그보다, 너는 이제 어쩔 셈이야? 너랑 함께라면 나 또한 이그드라실로 가줄 수는 있는데?”
“…말씀은 감사하지만, 일단은 지저 세계부터. 거기가 먼저예요.”
이리나가 퍽이나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심이야? 당장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데?”
“거기에는 제노스 녀석도 있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아이젝의 진심을 확인해 보고 싶거든요.”
“…즉, 너는 일족의 로드보다 여기 있는 나를 더 믿는다는 뜻?”
“물론이죠.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이리스가 아니라 세타 쿤 이그니스니까요.”
“…흐응~”
“제 입장에서는 기억의 잔재에 불과한 로드보다, 오히려 그간 깊은 유대 관계를 이어온 이리나 님이 더 신뢰가 가는 게 정상 아니겠어요?”
이어지는 내 말에, 일순 이리나가 옅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아부도 썩 잘하네? 그래서, 술식을 풀 방법은 있고?”
“인간이 만든 문제는 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죠.”
다시금 마법진을 바라보던 내 입가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둥그런 원 안에 자리한 별은 전형적인 마법진의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별의 각 꼭짓점에 이면의 술식을 숨겨뒀군.”
즉, 진을 이루는 커다란 술식이 하나.
다시, 내부를 구성하는 다섯의 식이 더 은폐되어 있음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 술식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었다.
“고대 시대의 인간 마법사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요소가 뭔지 아세요?”
“…뭐?”
“마법사든 기사든, 경지가 오를수록 서서히 잊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감정들이 있거든요.”
희노애락.
한때는 내게도 희미했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잠깐만. 하나가 비는데?”
“…마지막은…….”
나는 대답 대신 예의 마법진의 꼭대기로 올라섰다.
“바로 제 자신입니다.”
“뭐…?”
“규격 외의 힘에 도취하여, 너 자신을 잃지 말라.”
“…….”
“기실, 고대 시대의 인간들은 그 부분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드래곤까지 사냥할 미친 생각을 했으니, 가장 큰 적은 도리어 제 자신이라는 오만하면서도 인간다운 판단을 한 거죠.”
우우우우우웅!
이윽고 내 다리를 타고 마나가 전체로 뻗어나간다.
점차 선명해지는 마법진.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지면.
요동치는 대기까지.
그 마력의 폭풍우 속에서 마법진은 서서히 하나의 ‘포탈’을 생성해 냈다.
“정답인 것 같은데요?”
***
제국의 황성.
우우우우웅!
이곳에서 또 하나의 짙은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곧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로 웬 새까만 포탈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 색깔만큼이나 성질도 리비아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 황제여, 때가 되었다.
“내가 신이 될 ‘때’ 말인가?”
- 흐흐흐흐. 준비는 되었는가?
“물론, 준비라면 언제든지 되어 있다.”
- 좋군.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이미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모든 것을 이뤘으면서, 굳이 신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른한 표정으로 황좌에 앉아 있던 황제가 미소 지었다.
“이미 다 가졌기 때문에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 무엇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은 무척이나 시시하거든. 이런 감정은 나보다 그대가 더 잘 알 텐데?”
- 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직후, 쩌렁한 광소가 사방을 잠식했다.
-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마신(魔神)인가?
“애당초 내가 선신(善神)이 될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손에 묻힌 피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니까.”
고풍스러운 레드 까펫에 내리깔린 웅장한 대전.
어느새 그곳 허공 위로, 연기로 이루어진 새까만 ‘악마’의 형상이 떠올랐다.
- 과연, 그렇군. 이래서 나는 너와 같은 인간이 좋다. 이 내가, 고작 하등한 종족 따위에게 동질감마저 느끼게 만들어 주니까.
“피차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시작하지.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했나?”
- 맞다. 너는 그저 내 진실된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된다. 이그드라실이 파괴됨으로써 조건은 이미 갖추어졌고, 네 부름으로 나는 이 땅에 강림하여, 너와 합치를 이룰 터이니.
저벅, 저벅, 저벅.
황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황좌에서 내려선 그는 거침없이 대전의 중심부로 나아갔다.
- 그리하여 나는 네게 영생(永生)의 축복과 힘을. 너는 내게 또 한 편의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니…….
이윽고, 황제가 연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계약이다, 마몬(Mammon).”
***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음…….”
지저 세계의 첫인상은, ‘오래된 유적’이었다.
그것도 최소 수천 년은 훌쩍 지난 듯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지는.
신전의 외형을 한 건축물은 당대에는 전혀 볼 수 없는 양식이었고.
그마저도 반쯤 허물어져 푸른 이끼가 가득 뒤덮여 있었다.
더욱이, 진짜 놀라운 광경은 따로 있었으니.
“…….”
나는 멍하니 전방을 바라봤다.
무수한 돌덩이들이 신전 양옆으로 길게 줄을 잇고 있었다.
크기는 직경 5미터 남짓.
반듯한 정사각형의 돌덩이는 일견 그 쓰임새가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와 이리나만큼은 이것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골렘…?”
핵에 마나를 불어 넣으면 형상이 뒤바뀌는 고대 시대 최강의 전쟁 병기.
과거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단순히 머릿수 싸움의 전쟁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대륙을 지배하던 시대답게.
마법의 개량, 창조, 혹은 보다 강력한 마도 병기의 개발 유무 따위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골렘은 고대 시대 최강의 무기 중 하나로 손꼽혔다.
“골렘은 마스터의 검기조차 버텨내고, 5써클 이하의 마법은 완전 무력화시킨다지…?”
“그뿐이냐? 그것도 ‘최소’란다. 6써클로도 흠집을 내는 게 고작이라고 들었으니까.”
“그런 게 지금 내 눈앞에 수백 기나 있다고…?”
나와 함께 포탈로 들어선 유리나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곁의 실비아도 그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아마 이 골렘들을 ‘수족’처럼 부릴 수만 있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완전히 종식시킬 수 있을 테지.”
전장에 골렘들을 풀어놓고, 나는 직선으로 ‘왕’을 노린다.
이 얼마나 심플하면서도 확실한 전략인가?
“…근데, 생각했던 거랑 이미지가 많이 다르네. 땅 밑 세상이라고 하길래, 나는 진짜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이곳은 고대 시대의 살아 있는 증거나 다름없어. 당장 천장에 곳곳에 자리한 라이트 구만 봐도, 수천 년이 지난 여태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니까.”
“일단 들어나 가보자.”
잠시 눈치를 살피던 유리나가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꾸만 하던 실비아가 곧장 그 뒤를 따랐다.
마법사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할 역사의 중심지에, 우리는 최초로 발을 들인 셈이었다.
“…잠깐만.”
순간, 앞서가던 유리나가 걸음을 멈췄다.
그런 그녀의 등 너머로, 가장 먼저 웬 재단이 시야로 들어왔다.
이곳이 정말로 신전이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네모 모양의 단 위로, 웬 인영이 반듯이 누여 있었다.
한데…
“저거 설마… 미라는 아니겠지?”
문제는 그 인영이 내게 퍽이나 익숙하다는 사실이었다.
“……!”
점차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가장 먼저 인영의 거대한 체구가 단숨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스팟!
뒤를 이어 실비아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즉시, 나는 지면을 박찼다.
후회로 점칠된 과거.
그 안에서,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사람.
당신의 모습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학장 할아버지!!!!!!!!!!”
곧 내 쩌렁한 고성이 지하 내부를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