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246화 (247/251)

246화. 최종장(1)

“…계약.”

내 자그마한 중얼거림과 동시였다.

뭉클!

직후 심장 어림에서 주먹 한 줌 정도의 새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건…?”

“마기입니다.”

“……!”

대번에 라포르테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마기?”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마기라고 해도, 전 칠악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그 반대라면 또 모르겠지만.”

“잠깐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거라. 대관절 그게 무슨 뜻이냐?”

직후, 라포르테 공작이 ‘팍’ 하고 눈에 힘을 줬다.

그 표정이 꼭, 잘못된 길로 접어들려는 어린아이를 계도시키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너만은 이래서는 안 된다! 내가 죽어서 어찌 주군을 뵈라고…….”

“이상한 상상하지 마시라니까 그러네. 색욕, 식탐, 오만, 탐욕, 나태. 다섯 죄악이 제 손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힘만을 취한 것뿐이고요.”

“그,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잘만 되던데요.”

“…….”

그제야 상대가 입을 다물었다.

허나, 그 얼굴은 여전히 불신으로 가득했다.

“하면, 아까 말한 그 계약이라는 게…….”

“네. ‘데스나이트’입니다.”

“음…….”

깊은 침음이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물론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태생부터 기사인 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일 테지.

“데스나이트라고 꼭 선입견을 가지고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어떤 존재가 될지는 저도 알지 못하니까요.”

“…그거야말로 아주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래봐야 한낱 언데드다. 미안하지만 아까 대화는 없던 것으로 하지. 천륜을 거슬렀을지언정, 내 스스로 기사의 긍지까지 져버린 것은 아니야.”

“언데드가 되면 기사의 긍지를 져버리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나는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흔히 언데드. 그중에서도 데스나이트는 육신뿐만 아니라, 기사의 고귀한 혼(魂)을 마족에게 바쳐야지만 주종의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죠.”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데스나이트가 될 수 없는 거다. 그 사악한 존재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니… 혹여나 이지를 잃은 내가 사람들을 해치면서 영원히 구천을 떠돌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느냐?”

“만약 그 대상이 마왕이 아니라 ‘저’라면요?”

“……!”

순간, 라포르테 공작의 두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입니다. 계약도 여러 종류거든요. 일단 그 주체부터 제각각이죠. 고위 흑마법사와의 계약, 리치와의 계약, 마지막으로 마족과의 계약까지.”

“……!”

앞선 두 가지는 본체인 마왕의 대리인으로서 ‘간접 계약’을 맺는 것이니, 그다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가령 일곱 마왕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것과, 칠악과 계약을 맺는 차이랄까.

하지만 후자는 아니었다.

마족.

그것도 최상위 포식자인 일곱 마왕과의 직속 계약이라면, 생전의 능력을 대부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 어쩌면 그 이상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다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애당초 나는 이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으니까.

아까도 말했듯, 그저 ‘죄악’이라는 힘의 일부만 받아들였을 뿐, 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다.

요상한 것은, 그럼에도 왜인지 계약이 가능할 것도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즉, 네 힘만으로 데스나이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냐? 아니, 그보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되다니 어이가 없군. 그래도 나름 대륙에서 ‘광휘의 검사’로 불리는 몸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데스나이트라니…….”

“일단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마법이 만능은 아니니까요. 그 상태로는 얼마 버티지 못하실 거예요.”

“으음…….”

순간, 라포르테 공작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멈춰뒀던 핏물이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모양새가, 아무리 봐도 타임 스톱이 풀리기 직전의 상태였다.

“한번 믿어보세요. 원하신다면, 절대로 나쁜 짓은 시키지 않겠다고 마나의 맹세라도 할 테니까요.”

“…….”

그럼에도, 상대에게서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분명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으니까.

당장 나조차, 계약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래, 해보자.”

“……!”

“사내로서 한 입으로 두 말할 수는 없지. 이미 남은 목숨은 네게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그제야 내 입가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이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쐐애애애액!

직후, 허공을 유영하던 마기가 당장에 라포르테 공작에게로 쏘아져 갔다.

더 정확히는 부서진 마나 홀이 자리한 하복부를 향해서.

곧이어…

“…흡!”

파르르르르.

찰나, 헛숨을 들이킨 라포르테 공작이 전신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주종의 계약, 그것의 전조현상이었다.

새까만 마기는 빠르게 상대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하복부로부터 시작하여 심장과 두뇌까지.

중요 장기들을 모조리 집어삼킨 기운은 곧, 지면으로 ‘뒤집힌 육망성’을 그렸다.

한데,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에 들어 있는 ‘오만’의 지식을 따라가던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라면 역 육망성을 완성한 뒤에는 마왕을 불러내야 했다.

허나, 내게는 그 대상이 될 마왕이 없었다.

그렇기에…

저벅, 저벅, 저벅.

나는 본능에 따라 ‘직접’ 육망성의 중심으로 움직였다.

연신 마기가 휘몰아치는, 그 거대한 폭풍우 속으로.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 즉시 전신으로 쏟아지는 미증유의 힘에, 나는 흠칫 몸을 굳혔다.

그리고, 이곳으로 들어서자 보다 선명한 무언가가 전해졌다.

홱!

내 시선이 곧장 한곳으로 향했다.

시야에는 전혀 미치지 않는 머나먼 곳.

허나, 적어도 이곳에서라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중간계에… 마왕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점차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다만…

“…무언가 이상한데?”

이내 내 고개가 다시 갸웃거려졌다.

마왕의 강림이라면, 이그드라실에 큰 변고가 발생했다는 뜻인즉.

다시 말해, ‘중간계의 마계화’다.

한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계화가 가속화될수록 도리어 내 힘은 강해지고 있었으니…

…그것도, ‘그냥’ 강해진 느낌 정도가 아니었다.

스르륵.

“…….”

나는 시험 삼아 눈앞에 보이는 바위를 향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일견 보기에도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였다.

물론 접촉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여전히 예의 역 육망성 내부에 자리해 있었으니까.

그 즉시,

퍼석!

“……!”

현 상태로는 입을 열 수 없는 라포르테 공작이 눈만 동그랗게 떴다.

당장 그 일을 벌인 나조차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내가 행한 일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손짓 한 번으로 코끼리만 한 바위가 단숨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 자신이 ‘마왕’의 힘을 갖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

같은 시각.

여기, 인류의 운명을 건 최후의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충돌은 제노스와 질투의 지로시였다.

콰쾅! 콰콰콰콰콰쾅!

장병기에 해당하는 대낫과 창.

두 무구가 맹렬하게 허공에서 격돌한다.

일평생을 통틀어 가장 가까이에 본체를 두고 있지만.

그리하여 마계에서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대부분 끌어 쓸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지로시는 상대를 압도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런 빌어먹을!”

콰아아아앙!

거칠게 대낫을 휘둘러 낸 지로시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떨쳐 낼래야 떨쳐 낼 수가 없었으니까.

자석이라도 붙인 듯, 2미터 길이의 마력 창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붙었다.

상황은 앤그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평소 바위조차 으스러뜨리는 무지막지한 힘은 온데간데없이,

퍼펑! 퍼퍼퍼퍼퍼펑!

“…큭!”

웬 새하얀 광채를 수백 개나 띄운 빛의 마녀에게 휘둘리고 있었으니까.

놀랍게도, 외형만큼은 한낱 라이트 마법 따위에 불과한 저 구체에 앤그리의 주먹질만 한 파괴력이 잠재해 있었다.

“이런 씨발!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전투가 계속될수록 지로시의 의문은 짙어지기만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분명 힘은 모두 되찾았는데, 실속이 전혀 없는 듯한 느낌.

마기를 마계에서만큼 다룰 수 있지만, 진짜 ‘죄악’의 권능은 조금도 발휘할 수 없었다.

물론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홱!

“제길…!”

곧 지로시의 떨리는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걸리는 건 역시 한 가지뿐이었으니까.

저기 암흑 포탈 너머의 예의 ‘일곱’ 존재.

“으득!”

직후, 지로시가 강하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래도 마왕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

이그드라실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망설임 없이 리비아의 성도로 돌아왔다.

몇 가지 조치만 해놓은 뒤, 곧장 그곳으로 향할 요량이었다.

그리고, ‘계약’은 생각보다 싱겁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기분은 좀 어때요?”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긴, 겉으로 보기에도 딱히 달라진 건 없네요. 그저 피부만 좀 까무잡잡해진 느낌?”

지금 내 곁에는, 어느새 완전히 상처를 회복한 라포르테 공작이 서 있었다.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백인에 가깝던 그의 피부가 이제는 흑빛을 띈다는 정도?

그것 말고는 전혀 변한 게 없었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말이다.

“그 이전에, 내가 진짜 데스나이트가 되기는 한 건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역시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군. 분명 그만한 상처가 회복된 것을 보면 계약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은데…….”

“뭐, 거창한 피의 의식이라도 치를 줄 아셨나 봐요?”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칠 거라 생각은 했지.”

이어지는 상대의 말에, 내 입가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져 갔다.

“그만큼 제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하시고요?”

“애당초 그 부분은 처음부터 인정하던 바였다. 네가 대공을 꺾는 그 순간부터, 나는 진심으로 너를 존경하게 되었으니까.”

“…너무 이렇게 나오면 재미없는데?”

이내 내가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마 실비아나 유리나였다면, 나대지 말라며 쌍욕이라도 박았을 텐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얘들은 어디 갔다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리비아의 성도 중심가였다.

돌아온 왕국민들이 도시를 복구하는 작업에 한창이건만, 이곳에서 그녀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또 부상자들이라도 돌보러 간 건가?”

“야, 세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잠시 후, 나는 피식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저 멀리서 유리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실비아 또한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바로 뒤를 쫓고 있었다.

“얌마! 기뻐해라! 우리가 엄청 대단한 걸 찾은 것 같거든?”

“대단한 거?”

순간적으로 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마 나보다 더 대단한 건 아닐 텐데.

만약 내가 ‘대륙제일검’을 잡았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저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허나…

“엉. 듣고 나자빠지지나 마라. 아무래도 우리가 ‘지저 세계’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으니까!”

“…뭐시?”

바로 다음으로 이어진 유리나의 말은,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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