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마계화(5)
전투는 끝났다.
“……?”
일순, 내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올랐다.
레오나르도 대공이 펼쳤던, 예의 ‘검의 무덤’은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한데…
“…왜 이 지면은 그대로인 거지?”
일백의 기사들로 구성된 황금 사자단.
그들을 막기 위해 나는 무려 7써클 마법인 그레이트 어스퀘이크를 시전했다.
허나, 그것이 펼쳐진 공간은 어디까지나 검의 무덤 내였다.
바깥으로 빠져나온 이상, 지면 또한 원래대로 수복되어야 정상이건만.
“대공 각하아아아아아아아!”
“…….”
직후, 쩌렁한 고성이 고막을 때렸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나와 제국군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만들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크레이터.
그것이 떡하니 중간에 자리해 있었기에.
“…이래서 잘 키운 마법사가 100만 대군 부럽지 않다고 하는 건가?”
곧 떠오른 실없는 생각에 피식 실소를 터뜨리던 그 순간,
“……!”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제야 쓰러진 사내가 시야로 틀어박혔기에.
“라포르테 공작님?”
나는 후다닥 그쪽으로 다가갔다.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치명상이었다.
죽은 듯 쓰러진 그에게서 끊임없이 핏물이 꿀렁꿀렁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마나 홀이…….”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이미 늦었다.
복부를 관통한 적색의 검은 가장 중요한 ‘그릇’마저 완전히 헤집어 놓은 상태였으니까.
“…정말로 대공을 이겼군. 이 괴물 같은 놈…….”
“……!”
희미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온다.
하여, 나는 빠르게 몇 가지 마법을 캐스팅했다.
특정 범위의 시간만 멈추는 타임 스톱.
그리고,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만드는 페인 킬러까지.
“…좀 낫군.”
“조금만 참아봐요. 곧 치료할 방법도 찾아볼 테니까…….”
“아니, 나는 이미 틀렸다.”
“…….”
이내 상체만 간신히 들어 올린 라포르테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광휘의 검사라는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안색마저 파리하게 질린 채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으니까.
애당초 내게 이만한 상처를 치료할 능력이 있었다면, 스승님의 경우도 아무런 문제조차 되지 않았겠지.
“마지막으로… 조금만 대화를 나눠볼까?”
“…더 말하지 마요. 상처가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기력의 소모까지 어찌할 수는 없으니까.”
“어차피 죽을 육신이다. 더욱이, 네게는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직후, 라포르테 공작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편하게 주저앉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내 앞에 무릎을 꿇었으니까.
“왜 이래요?”
“…네 부친, 이리스 폰 트쉬베르… 아니, 이리스 쿤 이그니스의 목을 벤 것은 나다.”
“……!”
의외의 말에, 순간적으로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구차하게 변명은 하지 않겠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니까.”
“…어디, 제 어머니나 저를 빌미로 황제가 협박이라도 했나 보죠? 아버지를 베지 않으면 죽이겠다면서요.”
움찔.
그는 가볍게 어깨만 들썩일 뿐이었다.
허나, 그 반응이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자연스레 머릿속에 상황이 훤히 그려졌으니까.
황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형의 인물이었고.
이미 다른 이의 사람이었던 라포르테 공작 또한 쉽게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손으로 직접 주군의 목을 베라고 지시했겠지.
…만약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얘기를 접하지 못했다면, 상황을 이리 일목요연하게 떠올리지는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맙다.”
잠시지만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이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덕분에 이제야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군.”
“아니요. 아직 용서해 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음…….”
그제야 상대가 무거운 침음을 도로 삼켰다.
“용서를 받고자 한 말은 아니었다만… 곧 죽을 사람에게 적선하는 셈 치면 안 되겠느냐?”
“황제의 명이 있었든 그렇지 않든, 당신이 내 아버지의 목을 벤 사실만큼은 분명하잖아요. 내 입장에서, 당신은 필생의 원수나 다름없습니다.”
“…그야 물론 그렇겠지.”
이윽고 라포르테 공작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곤 제 목을 곧게 뻗어 내게 들이밀기까지 한다.
“…하면, 이 목숨을 네게 주겠다. 네 손으로 직접 베어 부친의 원수를 갚거라.”
“이미 다 죽어가는 사람인데, 뭣 하러 제가 그런 수고를 해요?”
“…응?”
“그보다, 분명 그 목숨. 제게 주겠다고 하셨죠?”
이어지는 내 물음에, 라포르테 공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침 줄곧 시험해 보고 싶은 능력이 있었으니까.
매번 생각만 해놓고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계약’ 말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다시 한번 이그니스 가문의 기사가 되어 저를 도와주세요.”
“하지만 나는…….”
“아니요. 방법이라면 있습니다. 다만, 공작님의 입장에서는 조금 께름칙할 수도 있겠네요.”
“…….”
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더불어, 또 한 번의 커다란 기회가 될 것임도 분명하고요.”
“……?”
“그 황제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쥐는 셈이거든요.”
“……!”
찰나, 크게 뜨여진 라포르테 공작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방금 그 말이 없었더라도 내 선택은 같았을 테지만… 그 방법이라는 게 궁금하기는 하군.”
“그 말씀은?”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다만. 만약 살 수만 있다면 남은 이 목숨, 기꺼이 너를 위해 바치겠다.”
그제야 내 입꼬리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그 의지, 확실하게 접수했습니다.”
***
같은 시각.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탑의 한복판에서는 역사상 유래 없는 마력의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의외네. 아이젝, 너는 끝까지 나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야말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로드가 직접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군.”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니까, 이승에서의 마지막 에피소드라고 생각하면, 썩 그럴듯하지 않아?”
“생각이 꽤나 인간 같아졌군. 그보다, 이리나는 어디에 있지?”
“그걸 왜 나한테 묻는데? 혹시 또 모르지. 늘 그랬듯, 아이리스의 뒤꽁무니나 쫓고 있을지도… 아, 지금은 아이리스가 아니라 세타인가?”
“…….”
“둘이 한창 좋을 때잖아.”
암흑 포탈이 여전히 크기를 불려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느긋한 대화와는 달리, 아이젝의 얼굴은 점차 심각하게 변해갔다.
“…로드. 이미 잘 알겠지만, 제시간 안에 이그드라실을 복구시키지 못하면 일곱 마왕이 이 땅에 현현할 것이다.”
“빡빡하게 잡으면, 제한 시간은 대략 반나절 정도인가?”
드래곤 로드, 일루니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암흑 포탈이 절반 이상 열리면, 제아무리 그녀라도 어쩔 수 없었다.
깨진 둑은 물이 범람하듯.
그때부터는 ‘마계화’도 손쓸 새 없이 가속화될 테니까.
“물론, 마왕 이전에 라크제. 저 녀석부터 처리해야겠지만.”
“다들 미친 광룡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라크제는 블랙 일족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야. 알지?”
“그리고, 나는 역사상 가장 강한 바람의 일족이지.”
“…어머. 자신감 좀 보게?”
외형만큼은 어린 소녀인 일루니스가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니들도 괜찮겠니?”
곧 그녀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또 다른 일행인 세논과 제노스가 그곳에서 투닥이고 있었다.
“핏덩아? 넌 빠져 있어라. 저기 나머지 둘은 이 누나가 상대할 테니까.”
“…제자를 믿지 않으시나 봅니다.”
“엉?”
“만약 자유 연합주님 혼자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면, 녀석이 저를 함께 보내지는 않았을 테지요.”
바로 며칠 전, 제노스는 세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지금 즉시 마탑의 중심부로 향해 달라고 말이다.
물론 그때에는 그게 이만한 스케일의 일일 줄 꿈에도 몰랐지만…
“하긴, 나도 살다 살다 드래곤을 실제로 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글쎄요.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 이미 있었을런지도 모르지요.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일반 인간과 구분하기가 힘드니까요.”
“뭔 헛소리래냐.”
제노스의 의미심장한 말에, 세논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튼 너는 빠져 있어. 지금부터 마기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내가 손수 보여줄 테니…….”
스팟!
“……!”
순간, 세논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노스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기에.
“얌마! 괜히 깝치지 말고 짜져 있으라니깐!?”
누구 친구 아니랄까 봐, 말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안 듣는다.
곧 대낫을 든 칠악과 핏덩이가 정면에서 충돌했다.
쩌어어어어어어어엉!
“……!”
한데, 바로 다음의 광경이 실로 기가 막혔다.
척 보기에도 무지막지한 마기를 뿜어내는 사내를 상대로, 녀석은 한 치의 밀림도 없었으니까.
“이 애송이가…?”
놀란 건 대낫 놈도 마찬가지였는지, 가볍게 헛숨을 들이킨다.
“…아무래도 여러 곳에서 얕보이는 것 같은데.”
쾅!
어느새 생성해 낸 마력 창을 크게 떨쳐낸 제노스가 자신만만하게 중얼거렸다.
“칠악 정도는,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
리비아의 성도 중심가.
“…….”
앞서 걷는 은빛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리나가 곧 입을 열었다.
“실비아, 생각은 좀 해봤냐?”
“…신부라면 너나 해. 난 조금도 관심 없으니까.”
“뭐래. 미쳤냐? 우리도 도울 수 있는 걸 찾아보자고 했잖아. 언제까지 부상자들만 돌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어…?”
“뭐야, 너 설마…….”
일순, 유리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냐?”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하긴, 루나 틴 론지에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지만. 영웅은 삼처, 사처도 기본이라고들 하니까.”
“다, 닥쳐! 그런 거 아니라고!”
“아니면 아닌 거지, 뭘 또 성질은.”
한차례 어깨를 으쓱인 유리나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아무튼, 내가 얼핏 들은 얘기가 좀 있거든?”
“…으흠. 무, 무슨 얘기?”
“근데 이게 좀 쉽사리 신뢰가 가는 내용은 아닌데…….”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
“아즈문 사트리노 학장님이 살아 계신다고 하더라.”
“뭣!?”
순간, 화들짝 놀란 실비아가 토끼 눈을 떴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학장님께서 살아 계신다니?”
“너도 믿지 못하겠지? 하긴 무려 3년이나 지났는데, 나도 이게 참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데…….”
“학장님이 땅 밑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내 눈으로 직접 봤어! 그런 근거 없는 소리로 괜히 애 흔들 생각은 하지도 마!”
“……?”
직후, 유리나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야, 그쪽이 아니라 ‘님’ 걱정이었냐?”
“아니고!”
“근데, 이건 그 ‘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신 내용이라.”
“……!”
그제야 실비아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무슨 뜻이야?”
“땅 밑에, ‘지저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 여태 탈출할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학장님은 여전히 그곳에 생존해 계신다고 하더라.”
“지저 세계…?”
“너도 처음 들어봤지?”
실비아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단언컨대, 그런 용어조차 생소했으니까.
“그러니깐, 우리가 관련 서적들을 뒤져 보자고. 혹시 또 모르잖아? 그 녀석에게 달리 큰 도움이 될지.”
“…그야, 지금 상황에서 그 아이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학장님의 생존 여부기는 하지만…….”
기회는 좋았다.
달리 가장 오래된 국가라는 리비아답게.
이곳에는 실로 무수한 고서적들이 잠들어 있을 테니까.
다만, 도서관과 같은 시설들이 얼마나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났는지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루나처럼 우리도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잖냐.”
“…그 말은… 너 설마, 진심이야?”
“어.”
실비아의 물음에, 유리나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도 용기를 좀 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