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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244화 (245/251)

244화. 마계화(4)

털썩!

“후욱, 후욱…….”

힘없이 무릎을 꿇은 라포르테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의 옆에 이미 쓰러진 파이만 공작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도, 좌측 가슴이 뻥 하니 꿰뚫린 채로.

“운이… 좋았군.”

직후, 라포르테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계라면 이미 옛적에 넘어섰다.

온몸의 근육은 하나같이 비명을 내질렀고.

내면의 마나는 당장이라도 폭주할 듯 하염없이 요동쳤다.

그럼에도, 라포르테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주군의 핏줄이 싸우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상대는 대륙제일검이었다.

후회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만약 여기서 저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죽어서도 주군을 뵐 면목이 없다.”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한 걸음씩.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그의 두 다리는 전방으로 나아갔다.

한데, 그 순간…

푸욱!

“……?”

라포르테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를 향했다.

등가죽을 꿰뚫고 비죽이 튀어나온 적색 일변의 검.

“내가 그리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했나?”

“…쿨럭!”

곧 목구멍으로 피가 역류했다.

그와 동시에, 라포르테의 동공 위로 의문이 떠올랐다.

분명 심장을 확실하게 꿰뚫었을 텐데…?

“좌우 반전 지체.”

“……!”

“내 심장은 오른쪽에 있다. 물론, 폐하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지.”

허나, 그리 말하는 파이만의 목소리에도 생기는 전무했다.

설령 심장을 빗겨 갔다고 해도, 침투한 마나가 내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을 것인즉.

다시 말해, 그 또한 최후의 힘을 쥐어짜고 있음이었다.

“…큭.”

라포르테가 이를 악물었다.

그 상태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두 손으로 검을 단단히 붙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인 파이만 공작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온다.

그 즉시,

번-쩍! 서걱!

라포르테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회전력까지 더해진 은의 실선은 단숨에 상대의 목을 베어냈다.

마치 십수 년 전의 ‘그날’처럼.

부르르르르르르.

곧, 목을 잃은 육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허나, 그럼에도 끝끝내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야말로 일국을 호령했던 마스터의 의지라는 듯.

하여, 주인은 잃었지만 검은 여전히 라포르테의 복부를 관통한 채였다.

“…훗. 이렇게 저도 벌을 받게 되는군요, 주군.”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일까?

라포르테의 시야가 점차 흐릿하게 변해 간다.

그 사이로, 한 사내의 얼굴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렸다.

이리스 폰 트쉬베르.

생에 유일무이하게 진심으로 충성했던 사내.

하물며, 그분은 제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폰 트쉬베르’라는 성을 버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이름은…

“라포르테… 쿤 이그니스인가.”

곧 그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번져 갔다.

그분은 일개 부하에 불과한 식솔들에게 혈족들과 똑같은 성을 허락했다.

그런 주군을, 라포르테는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했다.

“곧… 뵙게 될 것 같습니다.”

이윽고, 라포르테의 신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

한편, 아직도 복구 작업이 한창인 리비아의 성도.

“야, 실비아!”

“……?”

정신없이 움직이던 실비아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런 그녀의 양손에는 갖가지 소독약이며 피 묻은 붕대가 가득했다.

제국군과의 일전으로 중상을 입은 부상병들.

그들을 돌볼 인력이 무척이나 부족한 실정이었기에, 실비아 또한 두 팔 걷고 나선 와중이었다.

“…유리나?”

“잠깐만 얘기 좀 하자.”

“무슨 얘기?”

“아니, 우리는 이대로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건가 해서. 뭔가 특정 사람들만 고군분투하고 있는 느낌 아니야?”

“…….”

이어지는 유리나의 말에, 이내 실비아가 고개를 원래대로 돌렸다.

“이대로 안 있으면?”

“뭐?”

“우리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그 위명도 자자한 십이월마저 어쩌지 못한 마당에.”

“…….”

유리나가 곧장 입을 다물었다.

직후, 불편한 침묵이 주변을 잠식했다.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냐?”

“사실이니까. 멍청하게 시키지도 않은 선발대를 자처해서는, 상황만 더 악화시켰잖아?”

“야! 그게 지금 무슨 말버릇이냐고!?”

“각자 맡은 바 임무라는 게 버젓이 존재하는 법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모로서 연합군 본대가 합류할 때까지 무조건 대기하라고 지시했어. 괜히 원군이랍시고 깝치다가 이게 뭐야?”

“너 진짜…!”

실비아의 태도에 유리나는 곧바로 역정을 내려고 했다.

“깝쳐서 미안하다.”

“……!”

지금처럼 제3자의 개입이 없었다면, 분명 그리했을 터였다.

“에, 에이스 씨?”

“어쩌겠어. 내 성격이 이 모양 이 꼴인걸.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있었지 않나?”

허나, 실비아의 미간은 더욱 좁혀졌다.

에이스는 목발에 의지한 채 외다리로 간신히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또 말 안 듣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죠?”

“또 일부러 쌀쌀맞게 얘기하긴.”

“착각은 자유라죠. 그래서, 그 소기의 성과라는 건 뭔가요?”

“황제의 진짜 실력을 파악했잖냐.”

“…그것참 대단한 성과네요.”

실비아의 비아냥거림에, 에이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 얘긴 됐고, 너네 둘 중에 누가 내 제자랑 결혼할 거냐?”

“에?”

“아, 둘이 아닌가? 그 흑발 검사 아가씨도 있으니까… 최소 신부 후보가 셋은 되겠구먼.”

이 뜬금없는 발언에, 유리나와 실비아가 차례로 반응한다.

“이게 뭔 헛소리래냐?”

“하다하다, 이제는 머리까지 어떻게 되신 건 아니죠?”

그럼에도 에이스의 미소는 도리어 짙어졌다.

“걔가 부모가 있냐, 가족이 있냐? 친부모는 아니지만, 내가 녀석의 아버지나 다름없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고.”

“…대체 세상 사람 누가요?”

“이런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니,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말이야. 그런 거라면, 후손이라도 보고 죽어야 덜 억울하지 않겠어? 난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가령 손자 같은 거 말이야.”

“소, 손자?”

“자, 자. 어필들 해봐라. 이제는 미래의 꿈나무 정도가 아니라, 이미 마탑주이자 대륙 제일의 마법사잖냐? 그런 이를 지아비로 받들 절호의 기회라고?”

“…대꾸할 생각조차 안 드네. 진짜 기도 안 차서…….”

실비아가 가장 먼저 몸을 돌렸다.

에이스에게 우호적이었던 유리나조차도 그 자리에서 연신 ‘쯧, 쯧’ 혀를 찬다.

“나는 왜 이런 팔푼이 같은 아저씨를 걱정하고 있었던 걸까?”

“어허. 진짜 후회들 안 하겠어? 이 내가 먼저 기회를 주겠다니까?”

“그만해요. 아마 아저씨가 환자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쌍욕이 날아들었을 것 같은데.”

은발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한 유리나가 에이스를 제지했다.

한데…

“…전 또래 중 가장 강한 검사입니다.”

멈칫.

그 순간, 거짓말처럼 실비아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잠시 뒤, 일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유리나도 뜨악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인근까지 접근한 루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묘하게 얼굴마저 붉힌 채로.

“…아, 그게, 어필해 보라고 하시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

고요한 침묵 속, 오직 루나의 목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

무패의 대공 레오나르도 펜 아르카스.

역시나 그는 강했다.

과연 그 명성대로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쐐애애애애액! 꽈아아아아아앙!

최초, 짓쳐들어오는 검을 쳐냈다.

묵직한 충격이 손아귀를 넘어, 전체로 퍼져 간다.

그뿐인가?

쩌저저저저저저정!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검들이 서로를 향해 부딪힌다.

무덤에서 솟구친 오러 블레이드와, 내가 생성해 낸 마력 검들이 거칠게 충돌하고 있음이다.

의지만으로도 상대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경지.

그런 초월자들 간의 전투에 여유를 느낄 새는 조금도 없었다.

“흐흐.”

직후, 음침한 웃음을 내흘린 레오나르도 대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예의 내가 시전한 그레이트 어스퀘이크의 결과물인, 갈라진 초원을 밟으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다.

쩌어어어어어어엉!

“…욱.”

내 잇새로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묵빛 대검이 내 마력 검을 때린 직후였다.

주르르륵!

단숨에 내부가 진탕되고, 나는 그 반발력에 못 이겨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아까 내가 말했지? 황자비는 살아 있다고.”

“……!”

“참고로 네 어미는 지금 ‘황성’에 있다.”

일순, 내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핏!

그 즉시, 어깨의 살갗이 갈라지며 핏물이 튀었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던 내 마력 검이 최초로 뚫린 것이다.

그는 심리적으로 나를 흔들려 하고 있었다.

“아직 이용 가치가 남았다고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황자비는 폐하께서 직접 관리하고 계신다.”

“…….”

“그래서 그리 말했던 게다. 제국의 정점은, 단순히 힘만 세다고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승리를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분이니… 만에 하나라도 네가 이겨도, 이후의 일은 또 어찌될지… 흐흐흐.”

마음이 빠르게 안정되어 간다.

쩌정! 쩌저저저저저저정!

그럴수록, 허공에서 부딪히는 검들도 더욱 투기를 더해갔다.

잠깐의 방심이 목숨과 직결되는 위험천만한 상황.

하여, 나는 역으로 상대의 심리를 건드리기로 했다.

“그러는 대공이야말로, 사실 황제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뭐라?”

“말이랑 행동이 다르지 않습니까. 진정 스스로를 대륙제일검이라 생각한다면, 황위 또한 충분히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요? 당신의 논리인, 실력 만능주의대로라면 말입니다.”

“…후후후.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태생의 한계는 명확하지.”

“그러니 당신은 모순덩어리라는 겁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지요? 만약 당신이 마음먹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다면, 제국의 황 씨는 트쉬베르가 아닌 아르커스로 바뀌었을 것이고, 레오나르도 펜 아르커스는 한낱 역모자가 아닌 최초의 혁명가가 되었을 테니까.”

멈칫.

찰나지만 아주 미세하게 상대의 어깨가 들썩였다.

“…훗. 놈, 제법 간계에도 능숙하구나.”

“간계가 아니라 사실이겠지요. 당신은 겁쟁이입니다, 대공.”

“…내가 겁쟁이라고?”

“강자에게 도전할 깜냥은 없으니, 저보다 약한 약자들이나 괴롭히는… 딱 하이에나 정도가 되겠군요.”

“…….”

“차라리 기사단의 이름도 황금 사자단이 아니라, 누런 하이에나단이 어떻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그편이 훨씬 더 잘 어울릴 듯합니다만…….”

“이놈!”

직후, 레오나르도 대공이 분기탱천한 얼굴로 내게 쏘아져 왔다.

내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번져 갔다.

바로 이 순간을 노렸으니까.

콰드드드드득!

흠칫.

순간, 쇄도해 오던 레오나르도 대공이 몸을 굳혔다.

온몸을 옥죄는 기묘한 위화감을 그제야 느낀 것이겠지.

“이건…?”

내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가 빛을 발하고 있음이다.

나는 그저 ‘상쇄’를 위한 마력 검만을 생성해낸 것이 아니었으니까.

상대의 검을 쳐내는 한편, 일대에는 끊임없이 ‘마법진’을 그려냈다.

다름 아닌, 충돌로 발생한 마력의 파편들을 이용해서.

“어, 어느새…?”

곧 주변의 지면 위로 선연한 육망성이 떠올랐다.

“들어는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아르타인의 육망성’이라는 것입니다.”

괴력 신 아르타인.

다른 이명은, 무한의 악력 아르타인.

마치 그의 억센 손아귀에 붙잡힌 듯.

일단 이 안에 갇힌 존재는 평소의 최소 수만 배에 달하는 중력을 경험하게 된다.

불룩!

“……!”

곧 압축된 대기가 사방에서 레오나르도를 짓눌렀다.

“…컥!”

그의 얼굴이 붉어진다.

온몸의 피부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두 눈에는 새빨간 핏발마저 불거졌다.

8써클에 해당하는 마나를 모두 쏟아부었으니, 저건 이제 나라도 멈출 수 없었다.

모든 마력이 소모되는 그 순간까지, 중력을 점진적으로 배가시킬 터였다.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 높은 검사, 레오나르도 펜 아르카스.

그런 대단한 위인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고작 ‘한 명’의 상대에게 패해 이름 모를 평야에서 스러진다.

이만한 불명예가 또 어디 있을까?

“…이게 당신에게 내리는 내 벌입니다, 대공.”

천천히 허물어져 가는 풍경 속에서, 이윽고 나는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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