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마계화(3)
콰콰콰콰콰콰콰콰!
마력이 떨어 울린다.
대기가 요동친다.
물론, ‘나’로 인한 변화였다.
생모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학장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까.
낳아준 부모와 키워준 스승.
적어도 내게는 후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친부모님이라고 해봐야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분명 그러할진대…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눈빛 또한 깊게 침체되어만 갔다.
“크크크. 제법 화는 나는 모양이로구나.”
“…화?”
“하지만 걱정하지 말거라. 황자비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
찰나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살아… 계신다고?”
“궁금한가? 네 어미의 행방이.”
“…….”
“흐흐흐. 못 알려줄 것도 없지. 하지만, 그냥 알려주는 건 또 재미없겠지? 하니, 조건을 하나 걸지.”
쿠궁!
직후, 묵직한 압박감이 전신을 내리눌렀다.
곧 주변 모든 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치 이 드넓은 평야에 오직 나와 그, 단둘만이 남겨진 듯한 느낌.
“검으로 극의에 오르면, 이런 일 또한 할 수 있지.”
“…….”
직후, 나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봤다.
단 몇 초 사이에, 일대는 많은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황량한 평야는 온데간데없었고.
초원으로 가득한 들판에는 무수한 검들이 역으로 꽂혀 있었다.
이건 마치…
“…무덤?”
“그래. 검의 무덤이라는 오직 나만의 공간이다.”
“…….”
신체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
이건 마스터 위의 마스터라는, 소위 그랜드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설명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준비는 되었느냐?”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지.”
“뭐냐? 아까도 말했지만, 황자비는 네가 나를 꺾어야지만…….”
“그것 말고.”
“……?”
“만약 내가 당신을 꺾고 황제의 목숨마저 취하게 된다면, 그땐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나?”
움찔.
내 뜬금없는 물음에, 찰나 레오나르도가 멈칫했다.
“…훗. 참으로 웃기지도 않은 질문이로구나. 벌써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이더냐?”
“아니. 그저, 이 일련의 사태를 경험하고 나니, 당신네들의 생각도 이해는 갈 것 같아서.”
“뭐?”
“힘이 곧 정의다. 강자의 의지에 따라 세상에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다시없을 평화가 도래하기도 한다. 즉, 세상은 힘의 논리다.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지?”
“호오?”
그제야 레오나르도가 음침한 웃음을 내흘렸다.
“잘 알고 있구나. 특히나 제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네가 말한 ‘강자존’의 법칙이 강하게 적용되어 왔다. 트루크의 야만인들처럼 단순히 상대를 물고 뜯는 짐승 같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진짜’ 강자들만이 정점에 올랐지.”
“그런 게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라고?”
“물론이다. 결과만 놓고 말해볼까? 네 아버지는 그저 약했기 때문에 제국의 역사상 다시없을 대역죄인이 된 것이고, 작금의 폐하는 보다 강하셨기 때문에 지금처럼 황위를 계승하신 거다. 허나…….”
일순, 말을 잇던 레오나르도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만약 그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힘을 가진 게 네 아버지인 이리스 폰 트쉬베르였고, 진 쪽이 폐하셨다면?”
“…….”
“오히려 대역죄인은 폐하가 되셨겠지.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까. 한데, 네가 힘으로 나를 누르고, 폐하마저 벤다면? 흐흐흐. 정말로 꿈에나 일어날 일이겠지만, 그때부터는 오롯이 너의 세상이 될 게다. 설령 네가 황위에 오른다고 선언해도, 그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이미 네 안에는 황족의 피도 흐르고 있는데 말이다.”
이윽고 상대가 말을 마친 그 순간이었다.
푸푸푸푸푸푸푸푹!
“……!”
순간, 주변에 역으로 꽂혀 있던 검들이 일제히 뽑혀 나왔다.
그리곤 하나같이 맹렬한 ‘오러’를 뿜어내며 내 쪽을 겨누었다.
단순 체감상으로, 그 하나하나가 마치 진짜 마스터를 상대하는 듯했다.
“하니, 할 수 있다면 나를 꺾어봐라. 그리만 된다면, 너는 제국이 아니라 이 세상을 가질 수 있을 터이니.”
***
한편.
쾅! 쾅! 콰아아아아아앙!
폭음이 연이어 울려 퍼진다.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이다.
“…세타?”
찰나, 강하게 검을 떨쳐 낸 라포르테가 멈칫했다.
곧 그의 잇새로 나직한 침음이 새어 나왔다.
“검의 무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레오나르도 대공이 지닌 최악의 한 수.
그 비기가 만천하에 공개되었기에.
갑작스러운 소강상태에, 맞은편의 파이만도 짧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대단하군. 대공을 상대로 검의 무덤까지 이끌어낼 줄이야.”
“…….”
“애당초 정말 마법사가 맞기는 한 건가? 저만한 육신으로, 어찌 대공과 비슷한 수준의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는 거지?”
그제야 라포르테가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와 비슷한 표정의 파이만이 예의 어그러진 대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대가 너무 오만한 것이겠지.”
“…내가 오만하다고?”
“오래전 고대 시대에는, 몇 가지 마법만으로 일반인이 어지간한 기사를 상회하는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었다. 바로 그 점이, 그 옛날 기사가 아닌 마법사가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겠지.”
“…다시 말해, 고대 시대의 부활을 알리는 8써클 마법사라는 건가.”
파이만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그건 또 어떨지. 다만, 대단하기는 하군. 대공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저 기개만큼은.”
“그리 감탄만 할 때가 아닐 텐데?”
“라포르테. 기사의 긍지조차 잊고 비겁하게 등이나 기습하는 놈이 퍽 기세는 등등하구나.”
파이만의 모욕스러운 언사에, 라포르테도 어중간한 평대는 집어치웠다.
“네놈도 힘을 잃은 내 주군의 사지를 잘랐지 않나?”
“크크크크. 그야, 나는 이미 한낱 고깃덩이가 된 육신을 베었을 뿐이지만. 살아 있는 그의 목을 취한 건 분명 네놈일 텐데? 이제 와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인가?”
불끈, 다시금 라포르테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아아, 그날이 생각나는군.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는 한 편의 신파극이었어. 주군, 주군 하며 울부짖는 다 큰 사내놈이나, 그걸 이해한다는 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어리석은 대역죄인이나.”
“…놈. 내 주군을 모욕하지 마라.”
“잊었나? 우리 제국은 힘이 곧 정의다.”
우우우우웅!
일순, 파이만의 주변으로 묵직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아니꼬우면 힘으로 네 의지를 관철해라.”
스팟!
그 즉시, 라포르테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광휘’라는 이름에서, 그를 ‘쾌’만을 추구하는 검사로 오해하곤 하지만.
기실 그의 검은 ‘무거움’으로 대륙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반대로, ‘폭발’이라는 칭호에서 강(强)이나 중으로 오인할 법한 파이만은…
“…단순히 무거움만으로는 변화를 이기기 힘들지.”
직후, 그의 검이 수십 개로 불어났다.
허공을 수놓는 무수한 오러의 결정체.
그 하나하나가 무지막지한 폭발력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일백의 기폭.”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순간, 허공을 수놓은 검들이 일시에 폭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러는 다시 수백, 수천 조각의 파편이 되었고.
피피피피피피피핏!
이내 비가 되어 폭포수처럼 라포르테를 향해 쏟아져 갔다.
쩌정! 쩌저저저저저정!
라포르테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허나, 그 모든 파편들을 남김없이 막아낼 수는 없었다.
하여, 급소로 향하는 오러만 쳐내고 나머지는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럴수록 라포르테의 전신은 피로 점칠되어 갔다.
“라포르테. 네놈은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아.”
다만, 그런 와중에도 라포르테의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으니.
‘기습을 하고도 이기지 못한다면… 나는 영원히 네 번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느리지만 조금씩, 라포르테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
그 모습에 파이만이 흠칫 몸을 굳혔다.
“…놈.”
기실, 파이만도 상당한 무리를 감행하고 있었다.
생성한 오러의 덩어리를, 파편의 단위로 쪼개는 건 전적으로 그의 개입이 필요했으니까.
일종의 마나 운용 방식이다.
검을 휘둘러 오러를 생성하고.
특정한 시기에 그 오러를 조각 단위로 쪼개 비산시켜야 하는.
허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스스로가 폭발의 범위에 휘말려서는 안 됐기에.
그를 중심으로 반경 1미터가량은, 완전한 무풍(無風)지대였다.
즉, 거리를 내어주고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이기는 건 나다, 파이만 공작.”
“……!”
어느새 파편의 폭우를 헤치며 라포르테가 코앞까지 당도했다.
그런 그의 전신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지독했다.
마치 핏물로 샤워라도 한 듯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으니까.
다만…
“이제 내가 2번째다.”
푸우우우욱!
그렇기 때문에, 라포르테의 검은 마침내 파이만의 육신에 도달할 수 있었다.
***
“으음…….”
순간, 레오나르도가 불편한 침음을 토해냈다.
예상외로 상대가 선전하고 있었기에.
끊임없이 접근해 오는 검들을 녀석은 용케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검의 무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실제로, 이 공간 내에서 레오나르도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마나의 효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이곳에 존재하는 무수한 검들은 오직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문자 그대로, 생각만으로 상대를 베어낼 수 있는 경지.
한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될 듯하다.
아무래도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상대를 베는 건 요원해 보였으니까.
“…끌끌. 이런 애송이를 상대로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가.”
줄곧 뒷짐만 지고 있던 레오나르도가 그제야 걸음을 내딛는다.
한데…
퍼어어어어어엉!
“……!”
그 순간, 레오나르도의 동공이 잘게 요동쳤다.
갑작스레 공간의 일부가 폭탄이라도 맞은 듯, ‘펑’ 하고 터져 나갔기에.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돕겠습니다, 대공!”
직후, 누군가 ‘검의 무덤’ 내부로 침입했다.
원인 모를 이유로 결계가 깨어진 결과물이었다.
“자, 잠깐! 나는 괜찮다. 모두 물러서라!”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잠깐 사이, 최소 일백은 되는 듯한 기사들이 안으로 진입했다.
황금 사자단.
대 황실 기사단을 제외하고, 그가 직접 키워낸 명실상부 제국 최강의 기사들이었다.
엑스퍼트 이하의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가장 약한 놈이 아마 중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이들이 무려 일백.
허나, 그럼에도 레오나르도는 왜인지 모르게 불안했다.
“이놈들! 나를 욕보이려고 하느냐!? 당장 물러들 서라지 않더냐!?”
쾅!
레오나르도가 마나를 담아 고성을 내질렀다.
허나, 그마저도 소용없었다.
이미 눈이 돌아간 기사들은 상대를 향해 돌진해 가기 바빴기에.
“이런. 이렇게 되면…….”
직후, 레오나르도가 지체 없이 땅을 박찼다.
…아니, 정확히는 박차려고 했다.
쿠우우우우우웅!
“……!”
만약 순간적으로 공간 전체를 떨게 만드는, 방금의 울림이 없었다면.
“그레이트 어스퀘이크(Great Earthquake).”
쩌저저저저저저적!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동시에, 지면 전체로 실금이 간다.
오직 레오나르도만의 공간이 또 한 번 조각조각 깨어져 나가고 있음이다.
“말도… 안 되는…!”
공간의 힘에 개입할 수 있다는 건, 최소 상대도 이와 비슷한 능력자라는 의미인즉.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으아아아아아아악!”
‘우와!’가 ‘으악!’이 되는 순간이었다.
직후, 용맹하기 그지없는 그의 기사단이 일제히 지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이놈! 세타 쿤 이그니스!!!!!!”
이윽고 레오나르도가 한줄기 빗살이 되어 쏘아져 갔다.
“…….”
어느새 짙은 미소를 베어 물고 있는, 일생의 호적수를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