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마계화(2)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무슨…!”
대군의 선두.
앞서 걷는 파이만 공작의 등이 길게 찢어졌다.
얼핏 보기에도 결코 얕지 않은 상처였다.
“라포르테.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무슨 짓이긴. 골든 뱃(Golden bat)이라는 별명 값을 하는 것뿐이지.”
“…….”
파이만이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마나를 이용해 빠르게 등의 상처를 지혈해 나갔다.
한데, 그럼에도 피는 쉽게 멎어들지 않았다.
“내 마나가 보기보다 그리 녹록진 않을 거요.”
“네놈. 부끄럽지도 않나? 나름 광휘의 검사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이름 높은 십이월이, 고작 이따위 기습질이라니…!”
“…부끄러움은 말이오.”
순간, 싸늘한 미소를 베어 문 라포르테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당신이 내 주군을 들개들의 밥으로 던져 주던 ‘그날’ 이미 모조리 느꼈소. 이제 와서 그런 감정이 내게 남아 있을 것 같소?”
“……!”
한편, 등 뒤에서 일어나는 실랑이를 레오나르도 대공도 금세 인지했다.
“저런… 쯧. 역시 배신인가? 하지만 타이밍이 요상하군. 설마하니 적진 한가운데서 자살 행위나 하려는 요량은 아닐 테고…….”
그가 다른 곳에 시선이 팔린 그 순간이었다.
번쩍!
나는 지체 없이 단거리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목표는 예의 레오나르도의 목.
최초의 기회에, 전력을 다해 써클을 휘돌렸다.
세상 그 무엇보다 은밀한 바람.
달리 암풍(暗風)이라고까지 불리는, 7써클 마법이었다.
그 절삭력과 은밀함은, 가히 전 주력 중 최상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으나.
쩌어어어어엉!
“……!”
결과적으로, 바람은 목표물에 도달하지 못했다.
내가 행한 최초의 기습이 목에 닿기 직전, 상대가 무리 없이 검으로 쳐냈기에.
“크크크크… 예상은 하고 있었지.”
“…….”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세타 쿤 이그니스.”
땅딸막한 노인의 외형을 한 레오느라도 대공이 혀를 내밀어 제 입술을 핥았다.
물론 이 정도로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애당초, 대륙에서 제일 강하다는 검사를 이리 쉽게 처리할 것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이리스 전하의 친자라지?”
“맞는데, 일단 목덜미에 피부터 닦으시죠.”
“……!”
찰나, 레오나르도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리곤 곧장 제 손을 목으로 가져다 댄다.
곧 끈적한 핏물이 점점이 그 손에 묻어났다.
“…이리 또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군, 흐흐흐.”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감당? 그야말로 우스운 소리로구나. 제국의 무수한 이들이 네 아버지를 동경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어. 너를 베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을 거라는 뜻이야.”
“그거 말고요.”
“……?”
“감히 저를 상대로, 감당하실 수 있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
재차 울리는 내 목소리에, 레오나르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표정에서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예 입까지 멍하니 벌리고 있었으니까.
“…미친놈.”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사방을 잠식했다.
그리곤 제 몸보다 더 거대한 대검을 내게 겨누었다.
“얼굴은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최소한 그 입만큼은 찢어 놓아야겠구나.”
“할 수 있으시다면.”
“…너는 오늘 이후로 내 인형이 될 것이다. 오직 나만의 인형 말이다.”
레오나르도의 음침한 시선이 다시금 내 위아래를 훑었다.
직후, 내 살갗 위로 오소소 닭살이 돋아났다.
아무래도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제국에서도 제일가는 남색(男色)이라는 얘기가.
쉬익!
일순, 레오나르도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최소 십수 미터는 훌쩍 떨어진 거리였으나, 저만한 검사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공간을 격하고 날아드는 참격.
콰아아아아앙!
“……!”
허나 곧, 레오나르도의 눈에 놀랍다는 빛이 떠올랐다.
단숨에 마력 검을 생성해 낸 내가, 무리 없이 참격을 막아냈기에.
폭음이 터지고, 손아귀가 절로 떨려왔다.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다.
“검도 쓸 줄 알았나?”
“주력은 아니지만, 기본은 할 줄 알지요.”
“…크크크. 감히 내 앞에서 검으로 기본이라…….”
“단순히 관심뿐만이 아니라, 소질도 좀 있습니다. 제가 검이 아닌 마법을 택한 이유도, 그저 후자가 더 익숙했기 때문이니까요.”
사실이었다.
스승님의 말을 빌리자면, 검사로서의 내 재능도 썩 나쁜 편은 아니라고 하셨으니까.
오래전 아카데미 시절에야 자질이 없다는 투로 말씀하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과 관련된 내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규격 외였기 때문이다.
“시건방진 애송이 놈. 어차피 눈대중으로 배운 검술 따위로는 내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하니, 처음부터 네 특기를 내보이거라.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음이니…….”
“수준 높은 스승 아래에 덜떨어진 제자 없는 법이지요.”
“…호오? 그건 좀 흥미는 동하는구나. 해서, 네 스승이 어디 전설의 마검사라도 되더냐? 분명 내가 알기로는…….”
“다른 의미로 전설이기는 하지요. 제가 존경하는 세상 몇 안 되는 사내니까.”
“대륙제일마의 존경이라… 과연, 크크크. 짐작 가는 사내는 있다만. 그래서 이름은?”
“에이스 디 파르마.”
“…….”
이미 예상했다는 듯, 레오나르도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군. 하지만 어쩌나? 그놈도, 그놈의 스승도, 결과적으로 모두 너처럼 우리에게 맞서다 인생을 망친 머저리들인 것을.”
“이번에는 좀 다를 겁니다.”
“뭐라?”
“적어도 대륙제일검과의 악연은, 내 대에서 끝날 테니까.”
이윽고 내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오늘로 당신은 내 손에 죽습니다, 레오나르도 펜 아르카스.”
***
암흑 포탈.
세계수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차원의 통로.
무수한 마물들은 여전히 그 안에서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통로를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까지 치면서.
그리고, 그 선두에 여전히 일곱의 인영이 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앞으로 만 하루면 이그드라실의 결계가 완전히 걷어질 겁니다. 그리만 되면, 이 중간계도 완전히 마계와 일원화를 이룰 수 있겠지요.”
“내가 더 도울 일은?”
“이제는 특별히 없습니다.”
라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아래에, 적발의 인영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앤그리! 이참에 우리도 다시 전쟁에 참여하는 건 어때? 힘을 대부분 회복한 기념으로 말이야!”
“…지로시, 넌 지금 너무 흥분해 있다.”
“흥분이 아니라! 마계의 문이 완전히 열리게 되면 모두가 미쳐 날뛸 게 뻔하잖아! 기회가 있을 때 한시라도 빨리 먹잇감을 독식해야지.”
“불가. 아직 포탈이 완성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이곳을 철저하게 사수해야 한다.”
“아니, 뭔 놈의 불가는 불가여!? 여기, 같은 일족조차 찜 쪄 먹는 지상 최강의 드래곤 님께서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데, 어느 누가 감히 이곳을 노리겠느냐고?”
칭찬에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음일까?
그 즉시, 라크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갔다 와도 좋다. 그 말마따나, 여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들었지? 봐봐! 얼른 가자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움찔.
한데, 갑작스레 라크제가 움찔 몸을 떨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고요하기 그지없는 호수 너머의 숲속.
그곳에서 때 아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기에.
“…저건?”
“…….”
그제야 앤그리와 지로시도 인기척을 감지했다.
곧 두 쌍의 시선이 빠르게 숲속으로 향했다.
웬 네 명의 남녀가 거침없이 숲을 가로질러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설마…….”
순간, 라크제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둘은 생소했지만, 나머지 둘은 무척이나 익숙한 외형을 하고 있었기에.
“로드 일루니스… 그리고 아이젝까지…….”
“애, 앤그리. 저거 그놈 맞지? 그 마탑주들조차 씹어 먹었다는 괴물 같은 애송이 놈!”
“…분명히 내 기억 속에도 있군. 옆의 여자는 빛의 마녀다.”
“허…!”
지로시가 참지 못하고 놀라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즉, 힘을 시험하기에는 딱 알맞은 상대들이잖아?”
마왕이 가까이에 있는 지금, 권속들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하여, 머릿수가 하나 부족함에도 지로시는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
다만…
“위대하신 라크제 님이시라면, 일족 둘 정도는 아무 문제없으시겠지?”
“……?”
“하면, 남은 둘을 나와 앤그리가 하나씩 맡으면 된다는 뜻인데…….”
상대의 대답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로시가 한 명을 지목한다.
“앤그리, 네가 마녀를 상대해. 저 애송이는 내가 맡을 테니까.”
“…….”
앤그리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속내가 훤히 보였으니까.
지로시는 넷 중에서 그나마 가장 만만한 이를 택했다.
“…네 마음대로 해라.”
그럼에도 딱히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방금 들은 구도가 가장 적절해 보였으니까.
***
제국의 황성.
그곳에서도, 가장 깊은 심층부.
“…이전보다 더 커졌군.”
황제가 정면을 바라봤다.
오십 평 남짓한 공간.
그곳 한가운데, 웬 새까만 구체가 자리해 있었다.
기실, 눈앞의 물건은 ‘대륙일통’의 진정한 목적이기도 했다.
“신구(神球)…….”
일순, 황제가 천천히 예의 구체를 쓰다듬었다.
마치 자아라도 가진 듯.
그 즉시, 구체가 ‘웅, 웅!’ 하고 공명음을 토해낸다.
칠악 따위와 계약을 맺고, 혈육들까지 죽여가며 이룩하려 했던 것.
허나, 대대로 제국의 그 어떤 선대 황제도 해내지 못한 일.
“…나는 이 땅의 지배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구체는 점점 공명음을 더해갔다.
오만이 말해줬다.
대륙의 생명이 사그라들수록, 신구의 힘은 강해진다고.
다시 말해,
“…이 전쟁이 끝나면, 나는 마침내 이 땅의 진정한 지배자가 될 것인즉.”
직후, 황제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져 갔다.
“왕(王)을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 내가 바로 신(神)이 된다.”
***
초토화(焦土化).
지금 이 일대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딱 그것이었다.
기습을 허용한 파이만 공작과 라포르테는 여전히 전투에 한창이었다.
다만, 어느새 가까이 접근해 온 제국군들은 접근이 불가했다.
“오지 마라!”
첫째로, 군의 사령관인 레오나르도 대공의 엄명이 있었으며.
푸-화아아아아악!
그런 명령조차 무시하고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서던 이들은, 내 성 난 마력에 곧장 갈려 나갔으니까.
“…마력을 예기의 형태로 유형화시킬 줄도 아는구나. 진짜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검사로도 볼 수 있겠어.”
“그러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쪽 방면으로도 소질이 있다고.”
“크크크크. 알면 알수록 탐나는 아이로고.”
또다시 레오나르도가 징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베어 물었다.
다만, 이제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입방정 그만 떨고, 슬슬 끝내죠?”
“나는 너와 조금 더 즐기고 싶다만…….”
“사양할게요.”
이 이상 대꾸할 가치도 없었기에, 나는 있는 힘껏 써클을 휘돌렸다.
“한데, 그건 아느냐?”
“……?”
“네 아비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을 당했고, 너는 도망쳐 이리 내 앞에 있지.”
“…그래서요?”
“하면, 그 자리에 있던 마지막 사람은 어찌 되었을까?”
“……!”
찰나 움찔 몸을 떠는 나를 보며, 레오나르도가 새빨갛게 미소 지었다.
“네 어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