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233화 (234/251)

233화. 대격전(3)

“방금 뭐라고 했지?”

내 목소리가 절로 떨려댔다.

그럴 수밖에.

방금 들은 말은,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으니까.

꽈아아아악!

“살아… 살아 있다고! 아즈문 사트리노 백작은 살아 있어! 정말이야!”

다시금 손아귀에 힘을 주자 레이지가 필사적으로 목구멍을 쥐어짰다.

대규모 탐지 마법에 이은 색욕의 이능.

남은 마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큰 무리는 없었다.

나태의 레이지.

그녀에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으니까.

‘학장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다고?’

한때 ‘혹시나’ 하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허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장장 3년이라는 기간이 더 흘렀으니까.

그 오랜 시간을, 지저 아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뭇 생명체에게는 물과 식량이 필수적이었고, 지하 밑바닥에는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즉…….”

“있어! 확실해! 지저 아래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공이 직접 확인했다고!”

“대공? 설마 일전의 그 탐욕의 사내를 말하는 건가?”

“그래! 지저 세계에 대한 얘기는 극비에 부쳐졌어. 여차하면 우리가 그곳으로 숨어들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건 또 왜지?”

“지금은 같은 편이지만… 황제는 우리 입장에서도 그리 신뢰가 가는 인물이 아니니까.”

“…….”

이걸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황제와 칠악 사이에, 내 생각만큼의 크나큰 유대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 살려주는 거지…?”

“…의외인데? 다른 생은 하찮게 여기는 네가, 왜 그렇게 제 삶에는 집착하는 거지?”

“그건…….”

이 부분에서는 레이지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여, 나는 다시금 기세를 끌어올렸다.

“마, 말할게! 말한다고!”

“말해.”

“사, 사랑하는 사내가 있어.”

“……!”

찰나,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건 정말로 의외의 대답이었기에.

뭐, 사랑?

“너도 소중한 이를 잃어봐서 잘 알잖아? 나는 이 감정을 이제야 깨달았어.”

“…그걸 깨달았다면서, 내 소중한 사람은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8월의 검사를 그리 만든 건 황제라고! 너도 들었을 텐데?”

“하면, 아까 내가 봤던 광경은 뭐였지?”

“오, 오해야. 나는 그를 죽일 생각이 전혀…….”

“입 다물어.”

내 전신으로 살기가 들끓어 올랐다.

한없이 요동치는 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다.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마녀였다.

“…어차피 내가 놓아준다고 해도, 너는 또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겠지. 제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을 저지르는 잔인한 족속들. 그게 너희 칠악이니까.”

“자, 잠깐만! 얘기하면 살려준다고 했잖아!”

“살려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뭐!?”

나는 곧바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스승님은 여전히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그 자리에 쓰러져 계셨다.

직후, 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네 소중한 존재가 이 지경이 되어 있다면, 너는 그 원흉을 그냥 둘 수 있겠나?”

“개… 새끼…!”

“죽어.”

우드드드득!

이윽고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

서걱! 푸푸푸푸푹!

한 자루의 창이 움직인다.

아니, 춤을 춘다.

빠르게 내질러진 창은 순식간에 하피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것도 모자라, 뒤쪽에 자리한 트롤의 허벅지마저 베어냈다.

“크워어어어어어!”

“뭐, 뭐 이런 괴물이…!”

이미 주변은 마물의 시신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페르의 말대로, 녀석은 너무도 강했다.

에반젤린이 걱정한 것이 무안해질 정도로.

굴레의 특성상,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사전 허가를 시전할 수는 없었다.

이건 지정이 아닌 범위 마법이었으니까.

‘두 마탑주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따위의 조건을 내거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서걱!

“꺄아아아아아악!”

녀석, 제노스는 적을 압도하고 있었다.

마력 창에 팔뚝이 베인 레이나 더글린이 비명을 내지른다.

순간 뇌리를 관통하는 쾌감에, 에반젤린이 저도 모르게 불끈 주먹을 틀어쥐었다.

저 가슴만 큰 골 빈 계집애.

언젠가는 크게 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일 줄이야!

뒤에서 간다르 테이들러가 열심히 소환된 마물들을 강화시키고 있지만, 그조차 역부족이었다.

“전투 마법을 저 정도나 자유자재로 구사하다니… 이미 로마르니까지 넘어선 것 같은데?”

“전투의 마탑주뿐이겠느냐. 말하지 않았나. 저 녀석의 재능은 블레어 마탑주 급 이상이라고.”

“그건 봐서 잘 알겠는데, 재능이 현재 실력을 대변하는 건 아니니까…….”

“실제로 빙결과 뇌전의 마탑주를 잡은 것도 저 녀석이었다.”

“그, 그거 과장된 소문 아니었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도 모르겠나?”

에반젤린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고작 약관밖에 안 된 아이의 손에 무려 네 마탑주가 당한 셈이 아닌가?

‘아, 아니. 아직 당한 건 아니지만…….’

곧 그녀의 시선이 전방을 향했다.

지금 막, 마력 창에 허벅지를 베인 레이나 더글린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 갔다.

대경한 간다르 테이들러가 갖가지 독 마법을 살포했지만…

후우우웅!

녀석은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그 맹독을 모두 날려 보냈다.

“…대단해.”

물론 상성의 이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대인전이라면, 전투 마법을 이길 수 있는 주력은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특히나, ‘조합’이나 ‘소환’은 전쟁과 같은 대규모 싸움에서 능력이 극대화되었으니…

…다만, 그런 사실들과는 별개로 에반젤린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페르.”

“응?”

“만약 세타와 저 녀석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 같아?”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눈이 뛰어난 페르조차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먼젓번에 저 녀석이 그리 말하더군.”

“뭐라고?”

“세상에서 단 한 존재를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

실로 오만한 발언이었다.

허나, 지금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 개인적인 견해를 묻는 것이라면… 호각(互角).”

“호, 호각?”

“그 정도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이야.”

직후, 흐뭇해하면서도 왜인지 씁쓸해 보이는 눈빛을 내보이는 페르였다.

“시대가 바뀐 게지. 아마 작금의 전쟁이 끝나고 나면, 바야흐로 저 녀석들의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 싶군.”

***

폐허가 된 마을.

그 위로 설치된 무수한 천막들.

흠칫.

천막의 숲을 걷던 디자이어가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응? 갑자기 왜 그래, 대공?”

뒤따라 걷던 앤그리와 지로시가 대번에 고개를 갸웃했다.

“…대공.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이럴 시간 없어. 황제가 테라를 치라고 명했다며. 우리도 할 일은 해야지. 마침 가는 길목이잖아?”

“지로시의 말대로…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이그드라실이 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황제에게 끌려 다닐 수는 없어.”

“중간계를 마계화시키는 데 성공만 한다면, 그깟 황제쯤이야.”

지로시가 자신만만하게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디자이어의 표정은 조금도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먼저들 가라.”

“뭐야,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탐욕의 감각에 무언가 걸리기라도 했다던가…?”

번-쩍!

허나, 지로시가 물음을 채 마치기도 전에 디자이어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한줄기 간절함마저 떠올라 있었으니.

“뭘 저리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따라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엥?”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어. 하니, 우리는 곧장 이그드라실로 간다.”

이어지는 앤그리의 말에, 지로시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여튼 상관에 대한 예의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하기야 뭐, ‘강함’의 순서로만 따지자면 이쪽이 더 대장에 어울리기는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 어디까지나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자는 것뿐이니까.”

“암요, 암요.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잠시 디자이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두 사내가, 이내 반대편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스승님!”

레이지의 육신을 내팽개친 나는 곧장 스승님을 안아 들었다.

호흡이 일정치가 않았다.

하물며 다리 아래의 상처는 척 보기에도 상당히 심각해 보였다.

적절한 조치를 받지 않아, 절단 부위 주변이 곪아 썩어가고 있었으니까.

“제길…!”

나는 빠르게 응급조치를 이어갔다.

상처에는 균을 소멸시키는 정화 마법을.

더하여, 자가 치유력을 극도로 상승시키는 초재생 마법도 함께 펼쳐냈다.

물론, 이미 잃은 다리는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마법이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뿐더러.

이만한 치명상은 신전의 고위 사제가 직접 와도 완벽한 회복은 불가능해 보였다.

“스승님…….”

꿈틀.

“……!”

순간, 내 몸이 흠칫 떨렸다.

미동조차 없던 스승님에게서 반응이 있었기에.

잠시 후, 이윽고 스승님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스, 스승님! 정신이 드세요?”

“세… 타냐?”

“네. 저예요. 저예요, 스승님!”

나도 모르게 왈칵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언제나 강인해 보이던 스승님이셨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검사가, 그것도 ‘쾌’를 중시하는 검사가 다리를 잃었다 함은.

이미 무인(武人)으로서의 생명은 끝났다고 봐야 했으니까.

“왜…….”

“네?”

잘 들리지 않아 빠르게 귓가를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왜 이렇게 늦었냐, 이 빌어먹을 제자 새끼야.”

“……!”

그리 중얼거린 스승님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댔다.

애써 미소 지으려고 하시나 본데,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리곤 무척이나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다시 혼절해 버리고 마신다.

“…핫!”

그게 너무 어이가 없어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분명 울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계속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곧 웃음은 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 분노가 향하는 곳은 명확했다.

저벅, 저벅, 저벅.

내 걸음이 거침없이 한 곳으로 나아갔다.

바로 그곳에, 레이지의 늘어진 시신이 자리해 있었다.

내가 이러는 와중에도 오만은 줄곧 나태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옭아매고 있었다.

더 나아가, 식탐은 끊임없이 내면에서 외쳐 댔다.

당장 눈앞의 나태를 집어삼키라고.

스멀, 스멀.

곧 레이지의 육신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내게는 4번째 죄악의 힘.

나태였다.

“…남김없이 먹어치워 주마.”

스승님의 복수는 확실하게 행할 것이다.

방법이야 이미 생각해 뒀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했으니…

이 나태의 죄악으로, 놈을 상대하려 한다.

놈을 꿇어 앉혀 그 죄를 묻고, 학장 할아버지의 행방까지 알아낼 것이다.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세타 쿤 이그니스으으으으으으으!”

허나, 결론적으로 그 시기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투-쾅!

곧 농도 짙은 마기가 전신으로 쏟아졌다.

레이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기운이었다.

그리고 이 힘의 정체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무시무시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 눈앞의 사내를 발견한 내가 미간을 좁혔다.

“탐욕의 디자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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