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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231화 (232/251)

231화. 대격전(1)

“후우…….”

루나가 가볍게 심호흡을 마쳤다.

고작 1분 상간에, 주변은 많은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한층 뜨거워진 대기.

검 위로 솟아오른 선연한 오러.

사방에 널브러진 기사들까지.

순식간에 십수 명이나 되는 머릿수가 쓰러졌고, 나머지 기사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네, 네년은 누구냐? 어찌 이만한 검술을 구사하는 거지?”

“내 이름은 루나 틴 론지에다.”

“루나 틴 론지에…? 테라의 얼음꽃!?”

한 기사가 놀라 외쳤다.

그 즉시, 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얼음꽃?”

“흠흠.”

무안했는지 루나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기실, 이름 앞에 이명(異名)이 붙는다는 건 상당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었다.

이는 일종의 명예였으니까.

그것도 어느 대륙인들이나 모두 알아줄 정도의 큰 명예 말이다.

달리 십이월이니 십이지왕이니 하는 예시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만 물러서라. 제 주군을 지키지 못한 시점에서, 너희들은 이미 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큭…!”

“황제가 자만했군. 그는 점멸의 검사가 아니라, 폭발의 검사를 이곳에 남겼어야 했다.”

여전히 검을 곧추세운 채 루나가 말을 마쳤다.

한데, 예상외로 기사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생각이 복잡해졌을 테지.

주군을 잃고 귀환한 기사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황제는 그만큼 상벌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치명상을 입은 플래르쉬 후작이 내 손안에 있는 이상.

이 전투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루나. 혹시 기사들이 돌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부탁 좀 할게.”

“맡겨둬라.”

연신 쿨럭이는 플래르쉬 후작을 일별하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주변의 상황과는 별개로, 지금은 지체 없이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더 늦기 전에 스승님을 찾아내야 한다.

그분의 기운을 나는 누구보다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 일을 위해서 또 한 번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다.

최소로 잡아도, 반경 일천 킬로미터 이내까지 마나 탐지 마법을 펼쳐 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만에 하나 성공하더라도 마나의 태반이 소모될 터였다.

즉, 캐스팅 전후로 나는 완벽한 무방비의 상태가 될 것인즉.

‘…등은 믿고 맡기기로 했으니까.’

허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루나가 나를 신뢰했듯이.

나 또한 그녀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우웅! 우우우우웅!

직후, 묵직한 공명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바람’을 찾는다.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자유로운 혼(魂)을.

비록 그 기운이 미약하기 그지없더라도.

나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바람… 스승님의 바람…….’

감각이 확장된다.

그럴수록 미간은 더욱 좁혀졌다.

온갖 자연물 속에서 스승님의 존재만 콕 집어 탐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스승님이 잘못되기라도 하셨다면…

“…그게 누구든, 모조리 씹어 먹어준다.”

***

와장창!

“……!”

포탈을 통과한 직후였다.

다시금 울리는 굉음과 동시에, 두 사내는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무한의 굴레 내부입니다.”

“…애벌레야. 여기가 정말로 굴레 안이라는 뜻이냐? 하면, 에반젤린은?”

“지금부터 찾아봐야겠지요.”

직후,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실로 기묘한 공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하늘과 땅이 정반대로 뒤집혀 있었으니까.

두 발을 딛고 선 장소가 하늘이었고.

시선을 들어 올리면 땅이 보였다.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는 광경에, 그는 시야마저 빙글빙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아으, 머리 아파.”

“정신 똑바로 차리시지요. ‘아차’ 하는 순간, 길을 잃고 미아가 될 겁니다.”

“다시 말해, 지금 내가 길이나 잃고 헤매는 코딱지만도 못한 애새끼라는 뜻이냐?”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콧김을 펑펑 뿜어내는 아타락시아 페르잔을 일별하며, 제노스가 가만히 주변을 둘러봤다.

실제로 타인이 시전한 굴레에 개입하는 것은 제노스 또한 처음이었다.

이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환상 마법은 환영의 주력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었다.

인간의 오감을 속이는 데 초점을 둔 후자와 달리.

전자는, 오히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개념이었다.

끔찍한 무간지옥을 만들어내 인간을 가둔다던가.

혹은, 현계가 아닌 타 차원에 존재하는 마물을 소환해 낸다던가.

문자 그대로,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공상’의 총체가 이 환상 마법의 정의였다.

“자신은 있는 게냐?”

“……?”

“어쩔 수 없이 네 녀석에게 부탁했다만, 상대는 두 마탑주다. 에반젤린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가정하에, 네 녀석이 그중 하나를 오롯이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가 아니라…….”

순간, 제노스가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일전에도 누군가에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엉?”

“저는 이 세상에서 단 한 존재를 제외하고, 상대가 누구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

찰나,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말인즉,

“…그 한 존재라는 게, 나는 아니겠지?”

“…….”

제노스는 무언으로 일관했다.

허나, 아타락시아 페르잔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었다.

“시건방진 애벌레 같으니라고…….”

의외로 그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입만 산 놈이었다면 모를까.

이 애벌레는 이만한 자신감을 내보일 자격이 있는 놈이었으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성격상 같이 가자느니 하는 부탁 또한 하지 않았을 터였다.

“아무래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합니다.”

“그것도 느껴지는 거냐?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마나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느끼셔야 합니다.”

“흠…….”

그제야 아타락시아 페르잔도 눈을 감았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마나를 쫓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녀석은 지금, 그 버릇을 버리라 말하고 있었다.

조금 묻힌 듯하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아타락시아 페르잔도 대륙에서 손꼽히는 천재였다.

“…과연. 무슨 말인지 알겠군.”

마나가 아닌 존재를 느껴라.

허나, 이곳은 아무런 생기조차 감지되지 않는 무(無)의 세계였다.

다만, 공간의 존재감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졌으니.

“…그 공간의 존재감 중 이질감이 느껴지는 곳. 바로 저긴가?”

직후,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천지(天地)의 위치가 뒤바뀐 공간.

뭉게뭉게 피어 있는 구름 중 하나였다.

다른 곳과 달리, 그곳 내부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가시죠.”

제노스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내심 든든한 마음에, 아타락시아 페르잔은 다시금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무척이나 긍정적인 상황이기는 했다.

만약 여기서 두 마탑주를 잡는다면…

“…마탑의 잔당들은 이걸로 끝이다. 그리고 세타 녀석은 완연한 통합 마탑주로 거듭날 수 있을 테지.”

직후, 아타락시아 페르잔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그리만 된다면, 열두 마탑의 모든 힘이 오롯이 녀석에게 집중될 테니까.

***

“…곤란한데.”

연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사내를 향해 디자이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줄곧 그만을 바라보던 레이지가 곧장 다가섰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8월의 검사가 계약을 거부하고 있어서.”

“응? 진짜?”

“쉽게 넘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건드려 봐도 요지부동이야.”

“아직은 살 만한가 보지. 계속 의식이 없는 상태라서 그런 건 아닐까? 제 현실을 자각하기에는 시간이 없었잖아.”

마나를 다루는 검사가 마나를 잃게 되었을 때,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니, 레이지는 그 부분을 파고들라고 말했다.

이미 삶의 의지를 잃었다면, 계약은 진즉 성사되었을 테고.

남은 건, 이대로 깨워서 자아를 죽이는 방법뿐이었으니까.

저 스스로가 얼마나 무력해졌는지.

얼마나 보잘것없어졌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거다.

“…손이 제법 많이 가게 생겼군.”

다시금 디자이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쉽게 가면 좋으련만.

언젠가부터 무엇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되는 일이 없었다.

“도와줄까?”

“…아니. 지금은 아니야.”

“왜?”

“황제의 호출이 있었거든. 일단은 그부터 만나봐야 할 것 같아.”

“황제가?”

레이지가 대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아니지. 그랬다면 앤그리나 지로시가 먼저 알려왔을 텐데…….”

“가보면 알겠지.”

“알았어. 그럼, 이 아저씨는 내가 잘 맡고 있을게.”

“부탁하지.”

“맡겨만 둬!”

평소의 나른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레이지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슬며시 디자이어의 팔짱을 껴대기까지 한다.

“…뭐 하는 짓이지?”

“노동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잖아.”

“대가?”

“큰 건 바라지도 않아.”

직후, 손가락 두 마디를 들어 올린 레이지가 가볍게 제 뺨을 토닥였다.

“여기, 뽀뽀.”

“…너…….”

“어허. 자꾸 이렇게 딱딱하게 나올 거야? 이전에 내 육신이 소멸당할 때, 대공이 울부짖던 목소리가 나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한데…….”

와락!

“……!”

순간, 말을 잇던 레이지가 눈을 크게 떴다.

갑작스레 대공의 드넓은 가슴팍이 눈앞으로 다가왔기에.

“…지금은 이걸로 끝내자.”

“…….”

자연스레 대공의 품에 안긴 상태가 된 레이지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흠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넘어가 줄까나?”

“고맙군.”

디자이어가 당장에 거리를 벌렸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고깝게 바라보던 레이지가 재차 입을 삐죽였다.

“하여튼 무드라고는 쥐똥만큼도 없어요. 대계가 코앞이니까 마음 넓은 내가 봐준다.”

“…다녀오겠다.”

그 길로 디자이어는 곧장 지하를 벗어났다.

“…….”

잠시,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레이지가 이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고생길이 훤하네. 에휴,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기실, 그녀는 최근 들어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믿어 의심치 않던 동료들이 하나둘 소멸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벌써 셋.

심지어 그중에는 그 스노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대공의 계획에 의심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순탄하기만 그지없던 길이, 어느 순간 가시밭길이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야.”

순간, 레이지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래, 그 세타 쿤 이그니스인가 하는 녀석.

놈이 등장하면서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이미 놈의 손에 한 번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고.

세 동료도 모두 녀석의 손에 소멸을 당했으니까.

과연 녀석에게 어떻게 물을 먹이고, 종래에는 어떤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러고 보니, 8월의 검사는 그 녀석의 스승이었지?”

레이지의 시선이 힐끗 아래를 향했다.

여전히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반라의 사내가 시야로 들어왔다.

“…대공이 애써 데려왔지만, 크게 보면 대계에는 딱히 도움도 안 되는 놈이야. 더욱이, 스스로 계약까지 거부했다면…….”

일순, 짙은 살기에 대기가 요동쳤다.

“…그냥 죽여 버릴까?”

곧 레이지의 품 안에서 날 선 단도가 삐죽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 한 치.

그저 팔을 휘젓는 가벼운 동작이면, 이 사내는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그리했을 때 세타 쿤 이그니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만으로도 흥분되잖아?”

머릿속을 관통하는 어마어마한 쾌락에, 레이지가 잠시간 숨을 헐떡였다.

조금씩, 천천히.

단도가 사내의 목에 접근할수록 쾌락은 배가되어 갔다.

역시 이대로 죽이는 편이…

“그 검 치워. 이대로 네 목부터 날아가기 싫다면.”

“……!”

허나, 레이지는 결국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내부가 아닌 외부의 요인으로.

부르르.

어느새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에, 그녀가 잘게 몸을 떨었다.

“…설마…?”

곧 레이지의 시선이 힐끗 뒤쪽을 향했다.

바로 그곳에, ‘녀석’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다?”

“너… 세타 쿤 이그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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