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폐허가 된 리비아(3)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공간.
“여기는…?”
그곳에서 에이스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봤다.
마치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듯 온몸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그는 걷고 또 걸었다.
“대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에이스.”
“……!”
순간, 에이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언젠가부터 어둠만이 가득하던 주변 환경이 일변했다.
빛이 스며든다.
이름난 명인이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듯이.
곧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우리 집?”
직후, 에이스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
어느새 일곱 살로 회귀한 에이스가 연방 주변을 힐끗거렸다.
“뭘 그리 어리버리하고 있는 게냐? 수련 안 나갈 거야!?”
“아, 아버지…!”
잇새로 나오는 목소리조차 상당히 앳되어진 상태였다.
아버지는 딱히 실력 있는 검사는 아니셨다.
촌구석의 일개 남작령에서 간신히 기사라는 작위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당신은, 제 신분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리고…
“에이스. 정말로 무슨 일 있는 거니?”
“…….”
에이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지금의 그와 무척이나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 그곳에 서 있었다.
줄곧 사랑만 주셨던 당신.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얼굴.
끝내 단 한 번만이라도 불렀으면… 하고 바라마지않던 그 이름.
“엄마…….”
에이스의 두 눈으로 습기가 차올랐다.
“얘가 오늘 왜 이런담? 갑자기 왜 울고 그래?”
“끅… 끅…….”
“나 참, 항상 웃고 다니라고 바로 어제 말했던 것 같은데. 에이스 너는 인물이 훤칠해서, 오히려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편이 사회생활에 훨씬 도움이 된다니깐?”
“아… 아아아…….”
에이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목구멍이 그러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아, 안 돼!”
허나, 그게 실책이었다.
그 찰나 동안 벌어진 감정의 격동이 바라마지 않던 기회를 완전히 앗아가 버렸으니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풍경들은 또 한 번 빠르게 뒤바뀌어 갔다.
평화롭기 그지없던 에이스의 마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불길에 휩싸였다.
‘그날’의 악몽이 재현된 것이다.
웬 덩어리와도 같은 괴물이 마을을 습격했고.
예의 괴물은 남김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먹어’ 치웠다.
“…큭.”
에이스가 저도 모르게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이날, 그는 가족과 집을 모두 잃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불안정했던 만큼 기억 또한 상당 부분 사라진 채였으니까.
그 뒤로, 에이스는 용병단을 전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없을 소중한 인연을 또 만나게 된다.
철이 들 무렵까지 부모와 다름없던 역할을 해주셨던, 생에 두 번째 은사.
“스승님…….”
“엥?”
털이 수북한 중년 사내가 대번에 에이스의 머리 위로 꿀밤을 먹였다.
물론 고통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징그럽다. 사내새끼가 그딴 표정 짓고 있지 마라.”
“아…….”
에이스는 또 한 번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제는 확실하게 인지했으니까.
이건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과도 같은 ‘꿈’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이 감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번져 가는 따뜻함을 잃고 싶지 않았다.
허나, 이조차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다음 장면은…
서걱!
“스승님!”
또 한 번 스러지는 풍경에, 에이스가 대경하여 외쳤다.
생각과 동시였다.
관중들이 가득 들어찬 연무장 위에서 스승님은 당시 제국 제일의 유망주에게 목숨을 잃었다.
살인을 허용치 않는 ‘기사 대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단지 ‘실수’였다는 한마디로 제 죄를 정당화시켰다.
그때 놈이 짓던 표정을, 에이스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네가 그의 제자인가?”
“레오… 나르도…!”
“…역시 질풍의 검사가 보는 눈이 있군. 재능이 상당해 보여.”
“그 입… 닥쳐…!”
허나, 들릴 리가 만무했다.
이것은 현실이 아닌, 에이스의 기억에 불과했으니까.
“마침 괜찮은 연공법을 하나 얻었는데, 사죄의 의미로 네게 주마. 나랑은 상성이 맞지 않아 딱히 쓸모도 없던 참이었으니까.”
툭!
곧 눈앞으로 오랜 서책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너와는 잘 어울릴 것 같군. 그리고… 절대로 고의는 아니었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강자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흥이 동했던 게지.”
“…….”
“…훗. 그만하지. 네 표정을 보니 이 또한 변명밖에 안 될 것인즉.”
“…….”
“그걸로 죽을힘을 다해 기어 올라와라. 네 도전이라면 언제든 받아줄 테니까. 나는 정점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그래야만 네 스승의 명예도 지켜질 테니. 질풍의 검사는, 당대 대륙 제일의 검사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말이다.”
에이스의 시선이 다시금 예의 서책으로 향했다.
오늘날 그를 십이월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물건.
‘마나 연공법’이었다.
기실 스승님의 검술은 무척이나 뛰어났지만, 단 한 가지.
연공법만큼은 아니었다.
그건 오래전부터 용병이 아닌, 기사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스승님은 오직 검술 하나로 초일류 반열에 올랐다.
에이스는 그런 스승님을 무척이나 존경했다.
아무튼, 원래 재능이 있던 에이스에게 연공법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고.
오직 스승님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껏 버텨왔다.
그러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를 둘이나 만났고.
녀석들에게서 느낀 동질감에 종래에는 제자로 받기까지 했다.
심지어 한 놈은 검사도 아닌 마법사였음에도 말이다.
“…….”
다시 배경이 허물어져 간다.
이 시점에서 에이스는 내심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이 장소는, 에이스에게 무척이나 자극적인 장면들만 보여주는 공간인 듯했으니까.
다만,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들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해줄까… 하는 설렘이었다.
“에이스.”
“……!”
직후, 에이스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어느 순간 정말로 의외의 인물이 그 앞에 서 있었으니까.
“대장…?”
“너, 꼴이 그게 뭐야?”
세논이었다.
한데, 그녀가 무척이나 슬픈 얼굴로 자신의 신체 일부를 가리키고 있었다.
비틀!
“……!”
그 순간, 에이스가 힘없이 지면 위로 쓰러졌다.
곧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자,
“……!”
무릎 아래, 완전히 사라진 우측 다리가 시야로 들어왔다.
그제야 에이스는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랬었지. 나는 황제에게 다리를…….”
“이게 뭐야. 나랑 약속했잖아? 죽을 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기로.”
“그건…….”
“설마 말뿐인 약속이었던 거야?”
“아니. 아니야. 난 대장 곁을 끝까지 지킬 거야.”
“지켜? 그 다리로 네가 이제 무얼 할 수 있는데?”
움찔.
일순, 에이스의 전신이 거칠게 들썩였다.
대장이 세상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냥 쉬자.”
“뭐…?”
“모두 다 포기하고, 그냥 이대로 쉬자고. 나랑 같이.”
그 말과 동시에, 사라졌던 소중한 이들이 다시금 나타났다.
불꽃에 스러지던 부모님도.
검에 심장을 꿰뚫린 스승님도.
마지막으로, 눈앞에서 손을 뻗어오는 세논까지.
“이만하면 충분하잖아?”
“…….”
솔직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장장 이십 수년.
그 오랜 기간을 쉼 없이 달려만 왔으니까.
허나, 그럼에도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은…
“…대장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응?”
고개를 갸웃하는 세논을 일별하며 에이스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뭣 같은 능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엿이나 까 잡수시라고.”
“……!”
척하니 중지를 올려 세워준 에이스는 다시 죽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없다면 두 팔로.
에이스는 그렇게라도 계속 달릴 작정이었다.
***
레이브의 성도.
“자, 잠깐만. 그럼, 환상의 마탑주 님이 위험하신 것 아니에요?”
왈가닥 곱등이가 이리 뒷북을 쳐왔다.
“구할 방법은 있는 거겠죠?”
“유리나, 호들갑 떨지 마. 그래서 지금 초월의 마탑주 님이 방법을 설명하고 계시잖아.”
“냉정한 척하기는. 너도 사실은 불안하잖아?”
“불안해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니?”
나직이 한숨을 내쉰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이내 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질감이 무한의 굴레였군요.”
“그래. 하니, 일단은 기다렸다가 너는 곧장 나랑 에반젤린을 구하러 가줘야겠다. 금발 곱등아.”
“아니요.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뭐?”
“강제로 개방하면 그만이니까요.”
“그게 무슨…….”
우웅! 우우우우웅!
놈은 행동으로 설명을 대신했다.
예의 금발 곱등이가 무어라 웅얼거리기를 대략 10여 분.
빠직! 빠지지지직!
“……!”
곧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로 점차 실금이 가기 시작했으니까.
녀석이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던 아타락시아 페르잔이 쩌억 하니 입을 벌렸다.
“이거 설마…?”
파차차차차창!
마치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음과 동시였다.
허공 위로, 웬 포탈을 닮은 기류가 생성된 것은.
“들어가시죠. 굴레 안으로 진입하는 통로입니다.”
“미, 미친…!”
그는 너무나 놀라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기실, 이건 무척이나 경악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무한의 굴레는 환상 계열 최상위 마법이었다.
외부에서는 충격 자체를 줄 수가 없으며, 평범한 마법사들은 그 존재조차 깨닫지 못한다.
한데도 그런 힘에 강제로 개입할 수 있다 함은.
첫째, 이 녀석 또한 최소 시전자와 동급의 경지일 뿐만 아니라.
둘째, 그 마법에 대한 수식조차 낱낱이 꿰뚫어 보고 있다는 의미다.
고작 약관의 나이.
이런 녀석을 단순히 ‘천재’라는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법의 종주라 불리는 드래곤이라면 또 모를까, 대체 이 녀석은…….’
“안 들어가실 겁니까?”
“가, 간다.”
아무래도, 이 녀석만큼은 더 이상 곱등이라 부르지 말아야 할 듯싶다.
하니…
“…오늘부터 넌 애벌레다.”
***
푸욱!
“……!”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그 즉시, 내 눈앞의 플래르쉬 후작이 전신을 떨었다.
마스터치고는 너무도 허무하게 등을 내주었으나,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와 나 사이의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으니까.
점멸의 검사.
그 이명대로, 그는 ‘쾌’를 중요시했다.
속도를 우선하는 검사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일격필살’이다.
말이 거창할 뿐이지, 기실 이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단번에 적의 목숨을 취할 살상력을 지녔으면서.
실패하면, 오히려 본인의 생명이 위태로워졌으니까.
그 유명한 십이월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검을 얼마나 더 빠르게 내지를 수 있느냐를 끊임없이 연구할 뿐.
적이 검을 막게 되었을 경우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쾌검수들의 검술이 비교적 단조로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었다.
“후, 후작 각하를 보호하라.”
“우아아아아아아아아!”
한 박자 늦게, 기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곧 무수한 검들이 쏟아져 왔다.
휘릭!
그 시점에서 루나가 움직였다.
채채챙! 서거거거걱!
짓쳐들어오는 은빛의 실선들을 루나는 하나도 남김없이 쳐냈다.
그 움직임을, 이곳의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플래르쉬 후작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마스터’였으니까.
더욱이, 한때 그 황제의 관심마저 받았던 대륙 제일의 인재.
전투는 이미 끝이나 다름없었다.
촤아아아악!
“…쿨럭!”
등을 관통한 내 마력 검이 거칠게 뽑혀 나왔다.
나는 이런 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플래르쉬 후작의 발언으로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유추해 낼 수 있었으니.
“스승님은 아직 살아 계신다.”
…그리고, 그런 거라면 충분히 내가 구할 수 있다.
음울함만이 가득하던 내 두 눈은, 어느새 새로운 의지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