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폐허가 된 리비아(1)
페르.
세간에서는 달리 초월의 마법사라 불리는 그가 리비아에 도착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일주일 전이었다.
“어이, 변태 친구.”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뭐 어쩌라고. 너도 어린놈이 따박따박 반말하잖냐.”
“그런 얼굴로 존대를 듣고 싶나 봐?”
“잘 모르시나 본데, 외모 가지고 나한테 왈가왈부했던 것들은 최소 반죽음이었어.”
“누가 보면 나랑 나이 차가 무지막지하게 나는 걸로 오해하겠네. 그래봤자 당신이랑 나랑 한 살 차이거든?”
“한 살은 나이 아니냐?”
출진 와중에도 페르와 에이스는 연신 티격대기 바빴다.
딱히 둘 사이가 나빠서라기보다는, 성향의 차이였다.
어딘가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에이스와 달리.
페르는 의외로(?) 권위적이고 예를 중시했으니까.
그런 둘이 길다면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리비아의 성도에 도착했고,
“허…….”
이윽고 둘은 목격하고야 말았다.
웬 마수 떼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리비아의 궁성을.
정확히는 하늘만 그랬다.
지상을 점령한 제국군은 끝을 모르고 내부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으니.
“간다르 테이들러, 레이나 더글린… 저 노망난 할방구랑 골 빈 계집애가 기어이…!”
“아는 사람들이야?”
“…옛 동료들이다.”
“마탑주?”
“그래. 정확히는, 전(前) 조합과 소환의 마탑주들이지.”
“그래? 하면, 저 둘은 그 쪽에게 맡겨도 되겠지?”
“뭐…?”
“지금 막, 나도 목표물을 찾은 것 같아서 말이야.”
스팟!
그리 말한 에이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방을 향해 쇄도해 갔다.
“야, 야! 대체 이 전쟁통에 혼자 어디 가겠다는…!”
그리고 무심코 시선을 쫓던 페르는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반쯤 허물어진 성문(城門).
그곳에서 살육을 자행하고 있는 인물은 그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아니, 비단 페르에게뿐만 아니라 대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었다.
“화, 황제…?”
페르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왕을 잡으면 전쟁은 끝이 난다.
하여, 이 시점에서 페르는 잠시 갈등했으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단은 두 배신자부터.
전쟁에서 실로 막강한 효율을 자랑하는 마탑주들을 제거한 이후에, 움직여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애당초 에이스처럼 저 군영 사이를 가로지를 자신도 없었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역시 저 연놈들부터.”
직후, 페르는 곧장 몸을 띄우려 했다.
허나, 결론적으로 그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순간 또 다른 두 인영이 그의 앞을 막아섰으니까.
한쪽은 웬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사내였고.
다른 한쪽은 무척이나 나른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단도 계집애였다.
여기까지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칠악…?”
“칠악? 역시 그들이었나… 하긴, 세상천지에 마기를 쓰는 것들은 놈들밖에 없을 테지.”
“자, 잠깐만요. 페르가 왜 발이 묶였는지는 잘 알겠어요. 환상의 마탑주 님 혼자서 다른 탑주 둘을 상대하기도 상당히 벅찼겠죠.”
“맞아.”
“그래도 너무 빨리 밀렸잖아요. 더군다나, 이 잔해들은 대체…….”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한때 대륙 제일의 부유국이라 불렸던 이곳은, 이전의 모습을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건물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으니까.
“무슨 뜻이겠냐?”
“네?”
“황제와 제국군이 네 예상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괴물들이었고, 일전에 상대한 그 1황자 놈의 군은 한낱 예비대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의미겠지.”
“리, 리비아의 왕은요? 황금주라 불리는 골드런 공작은? 스승님은요!?”
내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더욱이 골드런 공작이 잘못되었다 함은 레베카도 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으니까.
“…리비아의 왕은 죽었다.”
“네에!?”
“황제가 단칼에 베어버리더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버러지는 필요 없다면서.”
“미, 미친…….”
절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왕을 그 자리에서 즉각 처형시켜 버리다니!
“골드런 공작은 생포됐는데, 어디로 잡혀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당장 나조차 정신이 없던 상황이었다 보니…….”
“페, 페르는 괜찮은 거예요?”
“물론, 나야 까딱없지. 비록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이 이리되었다만.”
그제야 상황이 한눈에 그려졌다.
페르는 두 칠악에게 발이 묶였고.
리비아 군은 내 예상과 달리 순식간에 제국군에게 무너져 내렸겠지.
고작 만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다만, 아직 질문의 대답은 다 듣지 못했다.
“하면… 스승님은요?”
“…….”
페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미소로 침묵만 지킬 뿐.
바로 그 점이 내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미안하다. 내가 곧장 도왔어야 했는데… 그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두 곱등이들에게 정신만 팔리지 않았어도…….”
“그런 말은 집어치우고, 어떻게 됐냐니까요!?”
멈칫.
나도 모르게 페르에게 윽박을 지르고 말았다.
대번에 잠자코 관망하던 루나가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럼에도 나는 흥분을 쉬이 가라앉힐 수 없었다.
“…….”
이런 내 모습에, 한참이나 망설이던 페르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네 스승은…….”
***
“……?”
지면에 대(大)자로 뻗은 웨이브로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 그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큼지막한 물음표가 떠올라 있었다.
“이게 무슨…?”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고 했잖니?”
“……!”
웨이브로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그제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벌떡!
직후, 그의 신형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이런 젠장!”
“그냥 누워 있지? 무리하지 말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
“누워 있으라고.”
움찔.
일순, 웨이브로의 전신이 크게 흔들렸다.
그 찰나의 순간, 거짓말처럼 온몸이 굳어졌기에.
자연스레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이 힘은 대체…?’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마나는 단단히 응고된 듯 요동이 없었고.
방금까지 목소리를 뱉어내던 입조차 굳게 닫힌 지 오래다.
물론,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
이런 종류의 힘은 웨이브로가 알기로 대륙에 딱 하나밖에 없었다.
‘언령…? 그럼 저 여인은…….’
이제, 웨이브로의 전신은 물에 빠진 생쥐마냥 푹 절여졌다.
실로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다만, 제국의 입장에서 달리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정보이기도 했다.
테라가 무려 드래곤의 비호를 받는 나라였다니…
먼 옛날에도 그들의 사랑을 받는 인간의 국가가 존재하기는 했다.
약 일천 년 전의 고대 시대.
마법 문명이 극도로 발달했던 그때는, 특히 드래곤의 도움이 지대했으니까.
하물며, 당시 ‘바람의 일족’ 중 하나는 드래곤답지 않게 인간들과 무척이나 어울려 지냈다는 일화도 있었다.
“한 대 더 쳐 맞고 갈래, 그냥 갈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이브로는 순간적으로 ‘욱’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자신은 제국의 공작인데.
그 위명도 자자한 대륙의 십이월인데.
마스터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꼬리를 말고 도망치면, 앞으로 부하들은 무슨 낯으로 본다는 말인가?
“대답.”
“가, 가겠다.”
허나, 결국 그 웨이브로조차도 오늘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그가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일대일로 드래곤과 맞붙는 건 객기이고 오만일 뿐이었으니까.
그래, 이건 절대로 겁에 질려서가 아니라 일종의 ‘전략적 후퇴’다.
“도, 돌아간다.”
애써 자기합리화를 시킨 웨이브로는 이내 부하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
리비아의 성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
“…살기를 가라앉히는 게 좋을 것 같다, 세타.”
“응. 그렇게 할게.”
“…아직도 전혀 갈무리되지 않았다.”
“…….”
루나와 나는 그곳을 걷고 있었다.
페르는 성도에 남겨둔 채였다.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여, 곧 도착할 예비대와 함께 수색을 부탁했다.
그럼에도, 우리 둘만 따로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제국군은 완전히 퇴각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혹시나 뒤늦게 찾아올 나를 의식했는지, 황제는 일부 병력을 이곳에 남겨뒀다.
불타오르는 왕성의 벽면에 큼지막한 글씨로 그리 써놓았으니까.
다만, 실제 그 병력이라는 건 고작 2개 기사단에 불과했다.
참으로 제국의 지배자다운 오만함이다.
물론 나는 그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세타 쿤 이그니스?”
우리가 접근하는 즉시, 한 사내가 불쑥 몸을 일으켰다.
숲속 초입부의 너른 공터.
기사단이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퍼질러 앉아 있던 사내들이 분분히 몸을 일으킨다.
“다들 앉아 있어. 고작 애 하나에 뭘 또 다 일어나고 그러냐?”
“예, 주군.”
허나, 먼저 선 사내의 한마디에 냉큼 도로 착석하는 그들이었다.
“…파이만 공작이 누구지?”
“엥? 오자마자 파이만 공작님은 왜 찾으실까?”
“지금 나한테 지껄이고 있는 당신이 당사자인가?”
“허허. 이 어린놈의 자식이 말본새 좀 보게?”
상대의 이마 위로 희미한 십자 마크가 떠올랐다.
그 즉시, 다시금 몇몇 사내가 자리를 박찼다.
“이 건방진 애송이 새끼가!”
“당장 그 사지부터 잘라서 무릎 꿇려주마.”
“창자를 뽑아내 줄넘기를 해버릴라.”
곧 서슬 퍼런 기세가 내게로 집중되었으나, 나는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갈 뿐.
“다시 묻겠다. 파이만 공작이 누구지?”
“하하하하하! 패기는 좋군. 한데, 설령 공작님이 여기 계신다고 하더라도 너 같은 애송이를 상종이나 하겠느냐? 무려 우리 제국에서도 2번째 가는 대단한 검사님이신데.”
“…이곳에는 없다는 말이군.”
폭발의 검사 파이만 공작.
그 명성은 나 또한 익히 들어왔다.
일전에 만났던 웨이브로나 라포르테 공작보다 몇 수 위로 평가받는 사내였으니까.
다만,
“그렇다면 어쩔 건데? 이 희여멀건 마법사 나부랭이야.”
“…그래 봤자 만년 2인자일 뿐이지.”
“……!”
순간, 시종일관 장난스럽기 그지없던 사내의 인상이 굳어졌다.
다른 기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털복숭이는 아예 검까지 뽑아 들며 내게로 쏘아오기까지 했다.
“놈! 무례를 허용하는 건 여기까지다!”
한데, 그 움직임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과연 제국의 기사들은 급이 다르다더니.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마스터에 필적하는 엑스퍼트 최상급쯤은 되어 보였다.
“나는 플래르쉬 후작가의 3석 기사 액스트라우다. 내 검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도록!”
우우웅!
그 와중에 제 소개를 마친 털복숭이가 검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그리곤 지체 없이 그것을 내게 뻗어왔다.
털복숭이의 목적은 분명했다.
노리는 곳은, 내 오른쪽 팔.
빙글.
“뭐 어쩌라고.”
“……!”
나는 허공을 가로지르는 은빛 실선을 가볍게 피해냈다.
어느새 갖가지 7써클 마법으로 온몸을 강화한 내 신체 능력은 어지간한 마스터에 필적했으니까.
그리고…
쾅!
“…컥!”
가속도가 붙은 털복숭이의 얼굴을 단단히 부여잡은 나는, 냅다 지면 위로 메다꽂았다.
“따까리는 빠져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