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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226화 (227/251)

226화. 제국군 본대(3)

서걱!

“…그륵!”

“쉽군.”

마지막 남은 기사의 목마저 베어낸 황제가 중얼거렸다.

이미 그의 주변은 시산혈해였다.

문자 그대로, 시체가 산을 형성하고 피가 바다를 이루는.

그런 황제의 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알폰스 폰 트쉬베르…!”

그는 감히 자신을 상대로 존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미욱한 힘으로 검을 겨누어대기까지 한다.

여태 무수한 기사들이 이 손에 스러져 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텐데도 말이다.

“그래도 강단은 있군, 골드런 공작.”

황제가 새빨갛게 미소 지었다.

대륙의 금력을 절반 이상 틀어쥐고 있다는 5대 상단주.

저자는, 이번 전쟁에서 필수적으로 제거해야 할 인사였다.

“달리 남길 말은 없겠지?”

황제는 망설이지 않았다.

곧 그의 검이 높게 치솟았고.

한순간, ‘뚝’ 하고 아래를 향해 쇄도했다.

허나, 상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꿰뚫을 듯한 기세로 이쪽을 노려만 볼 뿐.

황제는 그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한데,

쩌어어어어엉!

“……!”

그런 열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난데없이 나타난 무언가에 검이 가로막힌 것이다.

웬 반라의 사내가 시야로 들어온다.

곧장 황제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너는…?”

“에이스 디 파르마다.”

“8월의 검사?”

그제야 황제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의외의 인물이기는 했다만…

단지 그뿐이었다.

“나를 막을 셈인가?”

“나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면.”

“재밌군. 그대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지?”

“그야…….”

우우우웅!

일순, 말끝을 흐리던 에이스가 있는 힘껏 마나를 진동시켰다.

“내 제자를 돕는 것이지.”

“……!”

황제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곧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려온다.

과연 그 명성다운 힘이라고 해야 할까?

“허나…….”

“……!”

화아아아악!

직후, 황제의 전신에서 찬란한 황금빛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운무와도 같은 마나는 그대로 황제의 검으로 스며들었고.

종래에는 맞댄 힘을 밀어내기까지 했다.

“뭣…!?”

에이스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제아무리 황제가 마스터라 하더라도, 자신은 그 마스터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십이월이 아니던가?

“놀랐나?”

“큭!”

부르르르르르르.

에이스는 대답할 여력조차 없었다.

검과 검의 힘겨루기는, 그리 오래가지도 않았다.

털썩!

“……!”

믿기지 않게도, 힘에서 밀린 에이스가 이내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으니까.

“언제부터… 이렇게 강해진 거지…?”

곧 불신으로 가득한 에이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처음부터 강했다.”

“뭐라고…?”

“애당초 십이월(十二月)이라는 칭호를 누가 하사하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

압력이 더 거세어졌음일까?

순간, 에이스가 ‘콰득!’ 제 입술을 깨물었다.

곧 닫힌 잇새로 시뻘건 핏물마저 흘러내렸다.

“바로 나다.”

“…….”

“너희들이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명예 또한, 이 내가 만들었다는 의미다.”

“…….”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내가 바로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이니라.”

“풋.”

직후, 황제를 올려다보고 있던 에이스가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왜 웃는 게지?”

“그냥. 좀 허무해서.”

그제야 찌푸려진 황제의 얼굴이 펴졌다.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한다. 믿어 의심치 않던 세상이, 실은 내 손아귀에서 굴러가는 한낱 톱니바퀴에 불과했으니…….”

“아니, 그게 아니라.”

부들부들.

직후, 에이스의 관절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황제의 이마 위로 희미한 힘줄이 불거졌다.

그 표정이 꼭, ‘어떻게…?’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에 에이스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저딴 개소리 따위가 아니라,

“그대가 공들인 이 세상도, 곧 산산이 부수어질 거라고.”

“……!”

그리고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이는, 에이스가 알기로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

‘막’을 형성한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론 우리 군의 것이었다.

3만에 이르는 연합군의 예비대가 나를 바짝 뒤쫓고 있음이다.

“이대로 골짜기를 빠져나갈 거야.”

“진짜 어이가 없네. 뭔 우산도 아니고, 마법이 이리 만능이라고?”

“마법이라서가 아니라, 나니까 가능한 일이지.”

유리나의 투덜거림에 나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에 비해 루나는 조용히 내 뒤를 쫓고 있었고.

다시 그 뒤를 실비아와 제노스가 줄줄이 잇는다.

티티티티티티티티팅!

“이런 빌어먹을! 대체 저 막은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고!?”

골짜기 위에서, 적군 수뇌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

직경이 무려 1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막은, 사라지지도 않고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으니까.

7써클 마법, 에어포스 쉴드(Airpos shield)라는 것이었다.

바람의 기류를 뒤틀어 외부의 충격에 반응하는.

이곳 위로 충돌한 물리력은 곧장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바로, 우리 주변의 화살들처럼.

“세타.”

“어허. 이그니스 공작님이라고 불러야지?”

움찔.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내가 장난스레 반문하자, 말을 걸어오던 실비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잊으셨나 본데, 네 자리에는 내 공적도 있거든?”

“네 공적…?”

실비아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나는 일전에 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너, 나더러 약혼자이니 뭐라느니 하는 말을 했다던데. 사실이야?”

“……!”

이어지는 내 물음에, 실비아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시뻘게졌다.

“무, 무, 뭔…….”

“아니면 뭐, 희망 사항 같은 건가?”

“착각하지 말아줄래? 그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던데.”

“아, 꺼져, 그냥.”

실비아가 팩하고 고개를 돌렸다.

직후, 내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덕분에 분위기가 상당히 유해졌다.

도망치기를 장장 30여 분.

날아드는 화살은 이제 한 발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저 멀리 반대편에 골짜기의 끝이 보였다.

딱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와장창!

“……!”

순간, 내 몸이 움찔 떨렸다.

마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부수어지는 듯한 느낌.

그 즉시, 내 고개가 힐끗 뒤쪽을 향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눈치 빠른 루나가 빠르게 내게로 다가섰다.

“…생각보다 더한 괴물이었잖아?”

곧 내 잇새로 나지막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다만, 그뿐이었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니까.

더욱이 그가 이대로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준다면…

“…진짜로 미치고 팔짝 뛰어 버릴지도.”

이윽고 내 입가로 음흉한 미소가 번져 갔다.

***

테라에서 리비아로 이어지는 골짜기.

투-콰아아아아앙!

그곳에서 때 아닌 폭음이 울려 퍼졌다.

“……!”

중심부에 모여 있던 제국군은 대번에 그 폭발에 휩쓸렸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외부의 어떤 충격에도 꿈쩍하지 않던 검은 구체가 터져 나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으니까.

“이, 이게 무슨…?”

바닥에 흩뿌려지는 흑의 파편.

뭉클 솟아오르는 희뿌연 먼지.

그 사이를 가르며 한 인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고, 공작 각하!”

이내 한 기사가 경악하여 외쳤다.

인영의 정체를 확인한 직후였다.

“무, 무사하셨습니까?”

“세타 쿤 이그니스…….”

잠시 후, 씹어 내뱉듯이 중얼거린 웨이브로 공작이 주변을 둘러본다.

적어도, 겉으로는 상당히 멀쩡해 보이는 그였다.

툭!

“내가 이 안에 얼마나 있었던 거지?”

발치에 걸리는 파편들을 한차례 헤집어 놓은 웨이브로 공작이 물었다.

“대략 한 시간이 조금 안 됐습니다.”

“한 시간? 체감상으로는 고작 일 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크크크…….”

순간, 낮게 웃음을 터뜨린 그가 아까의 상황을 떠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구체.

그 안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과도 같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다.

그곳의 어둠은, 종래에는 살아 있다는 인지능력조차 앗아가려 했다.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신이 붕괴됐을 테지.

“…핫! 하하하하하하하하!”

직후, 웨이브로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살아생전, 그는 이런 경험을 처음 해봤다.

무섭느냐고?

천만에!

웨이브로는 즐거웠다.

말년에 이만한 적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역시,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놈들은 어디에 있지?”

“…송구합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골짜기를 완전히 빠져나갔을 듯합니다.”

“그래?”

휘하 기사의 보고에도 웨이브로의 미소는 떠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반응이 도리어 무서워진 기사가 재차 고개를 숙였다.

“뒤쫓을까요? 이미 선발대는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아니, 되었다. 선발대는 곧장 본대로 합류시키도록.”

“예? 그 말씀은…….”

“우리는 이대로 저들이 들어온 반대편 골짜기로 빠져나간다.”

“……!”

전혀 예상치 못한 명에, 기사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물론 항명 따위는 하지 않았다.

웨이브로 공작은 그 무력만큼이나 지략도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일천의 병력으로 일만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난 상관이 바로 그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놈이 어떤 준비를 해놓았을지는 몰라도, 저 스스로가 결국 리비아라는 선택지를 택했다 함은…….”

찰나, 말끝을 흐리던 웨이브로가 짙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테라는 이제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던가?”

“…하지만 각하. 폐하의 최우선 명은, 테라의 복속이 아닌 세타 쿤 이그니스의 생포였지 않습니까? 아마 그걸 듣고 저리 과감하게 움직이는 걸지도…….”

“그러니 우리는 더더욱 테라를 노려야겠지.”

“…예?”

“듣기로 동료들에 대한 정이 상당히 각별하다더군.”

“……!”

그제야 기사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까지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다면, 부관 자리는 때려치워야 한다.

“물론 인질 따위로 겁박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는 단지, 녀석이 도망치지 않고 나와 맞서주기를 바랄 뿐이니까.”

이내 웨이브로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런 그조차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

“…누가 내 욕하나?”

레이브 성의 지붕 위.

어느새 환히 떠오른 해를 올려다보며 이리나가 제 귀를 후벼 팠다.

물론 욕을 할 녀석이라면 하나 떠오르기는 했다.

끝까지 함께 가달라고 생떼를 부리던 놈.

허나, 이리나는 단호할 정도로 녀석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녀가 나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왕이 참전했을 때뿐.

인간사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쥐똥만큼도 없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청만큼은 그녀도 귀담아 들어줬다.

“…하여튼 건방진 꼬맹이라니까. ‘그럼, 혹시나 이리나 님의 평화를 방해하는 삿된 무리가 보이면 처리해 달라니…’.”

짐짓 세타의 목소리를 흉내 낸 이리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실소마저 새어 나올 정도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버러지들이 어디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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