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광휘의 검사(2)
“…….”
눈앞의 사내를 보며 나는 잠시간 고민했다.
광휘의 검사 라포르테 공작.
과연 그는 믿을 만한 인물인가.
더하여, 내가 아는 진실을 과연 어디까지 알려줘야 할까.
고민해 봤지만 딱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았다.
허나, 이런 상황에서도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최소한 그는 내게 적의를 품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내게 내비치는 감정은 명백한 ‘호의’였다.
하니, 이 이상의 고민은 의미가 없다.
“이리스 쿤 이그니스.”
“……!”
“그게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
라포르테 공작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볼 뿐.
종래에는 가만히 고개를 젓기까지 한다.
“틀렸다.”
“……?”
“네 아버지의 진짜 이름은 이데아리스 폰 트쉬베르.”
“……!”
“황족의 성은 스스로 버렸고, 이리스는 주변 이들이 부르는 애칭이지.”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연이어 귀청을 때렸다.
상황이 이리되자 나도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관계셨습니까?”
“내 첫 번째 주군이셨다.”
“…….”
첫 번째가 있다면 두 번째도 있겠지.
그리고 그 대상은 지금의 황제일 가능성이 컸고.
이걸로 확실해졌다.
역시, 오만의 기억 속에서 나를 안고 숲으로 뛰어든 젊은 사내와 라포르테 공작은 동일 인물이었다.
직후, 내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배신하신 겁니까?”
“배신이라…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군.”
“확실하게 대답해 주시지요.”
“네 어머니의 마지막 명이었다.”
“명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라.”
“……!”
“그게, 내게 남긴 유언이셨지.”
유언(遺言).
죽음에 이른 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최후의 뜻.
“그리고, 그분은 마지막까지 너를 잘 부탁한다고 거듭 당부하셨다.”
“그래서 배신하신 겁니까? 내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고자?”
“그래. 황제 폐하께 붙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휘하 기사들에게조차 박쥐라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그리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말을 마친 그는 제 어깨죽지를 내밀어 보였다.
곧 상의가 걷어지고,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 시야로 들어왔다.
쇄골을 중심으로, 마치 톱니를 연상케 하는 흉터가 자리해 있었고, 주변으로는 피부마저 새까맣게 괴사한 상태였다.
“마물과 사투 중 입은 상처다. 당시의 나는 체력마저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지.”
“…….”
“너를 안은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이건 그때 생긴 상처고. 그런 와중에, 황제 폐하의 기사들은 지척까지 접근해 왔지.”
내 입가로 조소가 맺혔다.
“나는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해해 달라. 뭐 그런 뜻입니까?”
“전혀. 그런 생각이었다면 이리 당당하게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털썩!
직후 그의 행동은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라포르테 공작은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내 앞에 무릎까지 꿇었으니까.
“혹여나 네가 살아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봤던 적이 있다.”
“…….”
“그리고, 장성한 네가 나를 찾아오는 꿈도 꿨었지.”
“…….”
“그때 다짐했다. 만약 네가 내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내어 주기로.”
말을 마친 그는 내게 목을 내밀었다.
문자 그대로, 완벽한 무방비의 상태.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무엇이든.”
“기사는 평생 단 한 명의 주군만을 섬긴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당신의 선택은 변함이 없습니까?”
그는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이다.”
“…그렇습니까?”
라포르테 공작은 진심이었다.
이런 사내에게, 나는 이 이상 잘잘못을 따질 수 없었다.
애당초 딱히 원망 따위도 들지 않았고.
말이 배신이지, 그건 기억에도 없는 오랜 옛날의 일이었으니까.
“일어나시지요. 저는 당신에게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는 건가?”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면서요.”
“하지만…….”
“됐습니다. 당사자인 어머니께서 그리하라고 명하셨다는데, 제3자인 제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법이겠죠.”
“…….”
그제야 라포르테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한껏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하면 나도 한 가지만 묻지.”
“……?”
“진실을 모두 알고도 이 전쟁에 끼어들었다 함은, 결국 네게도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겠지? 자선 사업가는 아닐 테니까.”
“…….”
“너에 대해 조금 알아봤다. 과거를 생각하면 테라에 대한 애국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 텐데, 나라를 위해 두 발 벗고 뛰는 모습이 이상했거든.”
“…….”
“다시 묻지. 너는 ‘복수’를 꿈꾸느냐?”
내 침묵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복수?
솔직히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에게 특별한 정은 없었다.
상대의 말대로 다른 애국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니, 이건 복수라기보다는…
“제 미래.”
“……!”
“그것을 위해서입니다.”
“네 미래를 위해서라고…?”
멍하니 중얼거리는 라포르테 공작을 향해 나는 씨익, 하고 미소 지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지는 못해도, 최소한 같은 비극은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말은…?”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울타리가 필요하겠지요. 어떤 외부의 힘에도 무너지지 않는, 아주 튼튼한 울타리 말입니다.”
직후, 나는 손을 내밀어 라포르테 공작을 일으켜 세웠다.
“처음에는 그게 힘 있는 귀족 가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보다 더 괜찮은 울타리가 있더라고요.”
“그게 뭐지?”
“무너질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강철의 벽. 저는 그게 ‘스왈로우’라는 울타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제야 라포르테 공작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짐작하신 대로, 저는 제국을 먹어치울 계획입니다.”
***
한편.
“대체 어디로 가신 거야아아아…….”
레베카는 지금 막 연회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활짝 열린 문틈으로, 화장실을 다녀 오겠다던 세타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을 발견한 직후였다.
“보기보다 은근히 칠칠치 못하시다니깐…….”
역시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런 성격일수록 내조를 잘해줄 수 있는 여자가 필요하겠지.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점차 빨리하던 그때였다.
“…응?”
순간, 레베카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정신없이 뒤를 쫓던 중, 어딘가 이상한 부분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을 가겠다던 분이 왜 바깥으로 나가시는 거지?”
설마 찾다 못해 노상을 이용하려는 거라던가?
정말로 그런 거면 조금 깰 것 같은데…
“…안 되지, 안 돼.”
일순, 레베카의 얼굴 위로 다급함이 떠올랐다.
이리 허무하게 환상이 깨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한데…
“……!”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어떤 ‘특정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한 인영을 발견하고 나서부터였다.
“서, 설마 라포르테 공작?”
그 즉시, 레베카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사방이 개방된 정원 한가운데에서, 두 사람은 대범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홱 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앗!”
곧 두 사람의 인형이 자취를 감췄다.
레베카는 이 기현상을 잘 알고 있었다.
수준 높은 기사들이 펼치는 기막(氣膜).
그것으로 눈과 귀는 물론, 다른 오감까지 속일 수 있다고 익히 들어왔으니까.
“세타 님이… 간자?”
직후, 레베카의 동공이 하염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상하기는 했다.
제국군이 너무 쉽게 물러나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세타 님이 스파이라는 것은 더 말이 안 된다.
그런 거라면, 구태여 이런 수고를 감수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아니, 사실은 처음 접근부터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면…….”
홀로 중얼거리던 레베카가 이내 고개를 세차가 흔들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녀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세타 님은 언제나 그녀에게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이제는 가족보다 더 의지가 될 정도로.
한데, 그런 사람이 간자라니…
“이렇게 의심하는 것 자체가 무례라고. 레베카, 이 얼빵한 계집애야!”
“혼자서 뭐 해?”
“히야아아악!”
순간, 레베카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언젠가부터 상대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으니까.
예의 로브 인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세, 세, 세, 세, 세타 님?”
“뭐야, 그 반응은. 꼭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아, 그, 그게 아니라…….”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레베카는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구, 궁금한 게 있어서요…….”
“응?”
차마 다음 말은 잇지 못하고 레베카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믿기로 했다면, 차라리…
“아, 아니에요.”
이윽고 레베카가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저… 갑작스럽지만,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될까요?”
“뭔데?”
“세타 님은… 제 편이신 거죠?”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상대는 그저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으니까.
이상한 점은, 그 미소가 어떤 대답보다 안심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이지.”
***
웨에에엥!
색욕의 이능을 통해 나는 마침내 레이브 성으로 돌아왔다.
- 만약 방금 한 말이 네 진짜 의지라면, 나도 기꺼이 도와주도록 하겠다. 전력을 다해서.
문득 떠나기 전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라포르테 공작이 내게 건넨 마지막 인사였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말은 분명 진심이었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전혀 뜻하지 않은 수확을 얻은 셈이다.
“왜 오자마자 혼자 실실 웃고 난리실까?”
“……!”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내가 움찔 몸을 떨었다.
어느새 이리나가 그 예쁜 미간을 좁히며 다가서고 있었다.
뉘엿뉘엿 해마저 보이기 시작하는 새벽.
아무래도 그녀는 꼬박 밤을 새워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갑자기 사라져서 당황하셨죠?”
“어. 잠깐이면 된다던 놈이, 설마 이렇게 늦게 올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하하하…….”
“감히 드래곤을 바람맞힌 존재는, 인간 중 네가 최초가 아닐까 싶네.”
찬바람이 쌩생 이는 이리나의 모습에, 나는 머리만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룰 수 없는 급한 일이었거든요.”
“그 급한 일이라는 거, 마무리는 잘하셨고?”
“네. 이제 언제든 출발해도 됩니다. 총 네 분의 일족이 남아 있다고 하셨죠?”
“…….”
탐탁치 않은 낯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리나가 이내 팔짱을 풀었다.
“그래. 마족과 결탁한 것으로 의심되는 블랙 일족을 제외하면 말이지.”
“하면, 어디부터 방문할까요?”
“가장 우선적으로 만나야 할 존재는… 역시 골드 일족이 좋겠네. 어쩌면, 그녀가 이 세상의 마지막 로드일 테니까.”
순간, 내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로드? 드래곤 로드가 살아 있다고요?”
“그래. 가장 현명하다고 알려진 골드 일족 중에서도, 유독 능력이 뛰어난 존재니까… 네게도 꽤나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우우우우웅!
묵직한 공명음과 동시에, 눈앞으로 시퍼런 포탈이 생성되었다.
역시 드래곤이라 그런지 손짓 한 번으로 워프 하나 만들어내는 건 우스웠다.
“바로 가면 되겠지?”
“네.”
직후, 우리는 곧장 그 안으로 몸을 집어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