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26화 (209/251)

26화. 정치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작위’를 내린다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귀족들의 말 한마디면 당장에 목이 달아날 수 있는 평민.

평소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하던 그들이, 한순간에 자신들과 동등한 기득권 계층으로 올라서는 일이다.

귀족들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까?

대개 가진 자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자신의 것을 나눔을 극도로 싫어한다.

예상대로, 반응은 곧장 터져 나왔다.

“아니 될 말씀입니다, 폐하!”

“이제 고작 열여섯 먹은 핏덩이입니다. 한데 작위라니요?”

“더욱이 그 아이는 평민입니다. 무릇 권력이란 책임을 질 수 있는 이에게 쥐어져야 하는 법. 배운 것 하나 없는 코흘리개가 무얼 알겠습니까?”

실제로, 지금 당장 내가 작위를 갖게 되면 왕국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일이기는 했다.

과거까지 통틀어도 열여섯의 나이에 작위를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건 내 옆에 있는 제노스나 실비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신분은 ‘공작가의 자제’이지, 가문과 독립된 특정한 작위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얘들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대관절 무엇이 문제란 말이지? 그 아이는 이번 참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수많은 인명을 구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들었소. 거기에 더해 국가 대항전에서 왕국의 위상까지 드높인다면, 딱히 못 해줄 일도 아닌 것 같은데?”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하시는 사내.

지엄하신 왕께서 말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스네이크의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입을 열었다.

“단순히 배가 아파서 저희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폐하.”

“배가 아파서라… 그래도 아이작 후작은 제법 솔직하군.”

“예. 폐하의 말씀대로, 진정 그만한 공적을 쌓는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내려야겠지요. 허나, 적어도 그게 작위는 아닙니다. 과거를 돌이켜봐도, 이보다 더한 공적을 쌓고도 작위를 부여받은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거야 걔 중에는 ‘평민’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일평생을 평민으로 살아온 열여섯짜리 어린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귀족이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손에 들어온 칼은 휘둘러 보고 싶은 법이지요.”

“어린아이의 손에 칼을 쥐여 주는 것과 같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분명 우려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흠…….”

이내 왕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한데, 멀지 않은 곳에서 그 표정을 살피던 나는 볼 수 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입가에 그려진 지극히 자연스러운 미소를.

‘이거 설마 쇼였어?’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나는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으레 있는 공치레일 뿐, 실상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 왕이라는 작자가 내게 보이는 관심도, 단순한 호기심에 그칠 뿐이라는 사실을.

하기야 처음부터 줄곧 신경 쓰이기는 했다.

카리스마 넘치기로 그 위명도 자자한 현 국왕이, 자신의 코앞에서 귀족들이 반발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으니까.

‘나를 고작 그 정도로밖에 안 봤다 이거지?’

제아무리 그 초월의 마법사와 같은 후천적 마나 각성자라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경지는 고작해야 2써클이 전부.

또래만 놓고 따져도 평균 이하였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별개의 문제다.

애초에 말이나 꺼내질 말던가?

내 얼굴이 조금씩 붉어져 갈 무렵, 왕의 관심은 이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일단 그 얘기는 보류하도록 하고… 하면, 마지막 안건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곧이어, 그의 무심한 시선이 학장 할아버지를 향했다.

“아즈문.”

“예, 폐하.”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상벌이 확실한 사람이야. 싫어도 집고 넘어갈 문제는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야겠지?”

“…….”

정작 당사자는 침묵을 지키는데, 이번에도 다른 귀족들이 나서서 입방정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지극히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폐하.”

귀족들의 반응에,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은 왕이 말을 이어나갔다.

“당근 다음은 채찍이네. 아즈문, 이번 일은 자네도 그리 간단하게만은 생각하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어떻게 책임질 생각인가?”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리란 말인가.

책임?

학장 할아버지가 한 거라고는 뭣 빠지게 뒷수습한 일밖에 없는데, 무슨 놈의 책임?

“이번 참사로 발생한 사상자가 얼마나 되지?”

왕의 물음에,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 예의 아이작 후작이라는 작자가 대답했다.

“사망자 스물일곱. 중상자가 쉰둘. 경상자는 족히 이백에 가깝습니다.”

상급 마물에, 무려 칠악 중 둘이 나타났다.

하물며 밀집된 공간에서 벌어진 사고였으니, 객관적으로 봐도 그 피해가 상당히 경미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한데도, 귀족들은 이런 나와 생각이 다른 듯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입니다. 무엇보다 안전을 신경 써야 할 아카데미에서 이런 대참사가 벌어지다니요!”

“타국인들을 보기가 민망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의 심장에서! 이건 치욕입니다. 듣기로, 희생자 중에는 테오르 백작가의 안주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대적인 추모식을 준비하는 한편, 안전과 관련된 책임자들을 크게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데 어우러진 목소리들이 연이어 귀청을 때렸다.

그럴수록, 나는 속에서 열불이 치솟아 올랐다.

이들은 작금의 상황이 절호의 기회라는 듯, 그저 목표한 먹잇감을 물어뜯기에 바빴으니까.

나는 감히 묻고 싶었다.

이들이 과연 나라를 지탱하는 귀족들이란 말인가?

이런 게 정치라는 말인가?

이들의 행동이, 상처 입은 맹수의 뒤꽁무니만 쫓는 하이에나 무리와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덥썩.

“……!”

드물게 흥분하려는 나를 막아선 것은 역시나 학장 할아버지였다.

당신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저어 보였다.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듯.

“어린 영웅아.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느냐?”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예의 왕이라는 인간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곧바로 이번 조치에 대한 부당함을 하나하나 열거하고자 했다.

허나, 그런 나보다도 한 박자 빨리 움직이는 이가 있었으니.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제가 학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폐하.”

“……!”

재차 귓가로 틀어박히는 학장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내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

“부디 우려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왕궁 내 접객실에서 홀로 기다리는 바이커는 초조했다.

왕정 회의가 시작된 지도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데도, 안에서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공로 치하라고 했지만, 바이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치란, 그리 아름답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벌컥.

“……!”

순간, 노크도 없이 열어 젖혀지는 출입문에 바이커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허나, 그 표정은 이내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얼굴이었으나, 내심 기다리던 이는 아니었으니까.

도리어, 이 사람만큼은 꼭 피했으면 하고 생각하던 이가 지금 막 접객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형님…….”

“누가 네 형님이라는 거냐?”

“…….”

“…쯧. 그냥 가려다가 잠시 들렀다만.”

이번 아카데미 참사를 막은 주역중 하나.

크리스 론 인버스가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여전히 한심하더구나, 네놈은.”

“…저도 돕고 싶었습니다.”

“네 그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말이냐?”

“…….”

“그따위 건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다. 능력도, 재능도, 의욕도. 그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너니까. 그래서 인맥이라도 쌓아보자고 향했던 아카데미가 아니었더냐?”

자신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바이커를 보며, 크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룸메이트라는 놈은 나도 봤다. 듣자 하니, 네 유일한 친구라지?”

“아…….”

크리스가 세타를 언급하자, 바이커의 표정이 그나마 조금은 펴졌다.

그래도 현재의 아카데미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은 단연 그였으니까.

허나, 일말의 기대감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산산이 부수어졌다.

“네 선택. 그런 머저리 놈을 친구랍시고 사귀고 있으니, 너는 도무지 구제 불능이다. 이래서야 이 이상 아카데미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도 의미 없는 시간 낭비일 터.”

“머저리…?”

“너는 이 길로 곧장 가문으로 돌아가라. 마침 나와 수도에 당도한 가솔들도 함께 왔으니. 그들과 귀가하여, 네 장래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말을 마친 크리스는 그대로 접객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허나,

“세타는… 머저리가 아닙니다.”

곧 그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

“못난 저와는 달리, 제 의지를 관철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다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제 친구입니다.”

이어지는 바이커의 말에, 크리스의 얼굴에 조소가 맺혔다.

“제법 잔재주가 있는 것은 나도 봤다만. 그 나이에 고작해야 2써클이 아닌가?”

“…….”

“가문도 하찮은… 아니, 아니지. 심지어 평민이라고 했던가? 능력은 고작해야 2써클 마스터인 네 유일한 평민 친구. 그런 이가 자랑스럽다고 했느냐?”

이내 크리스가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에야말로, 그 시답지도 않은 생각을 반드시 고쳐 주겠노라 다짐하면서.

예전부터 그랬다.

이 녀석은, 너무 자기 세계에만 빠져 사는 경향이 컸으니까.

남들과 어울리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었지만, 순전히 착각이었다.

역시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차라리 오늘 왕정에 있었던 생도들 중 다른 아무나를 친구라고 했다면, 나는 너를 인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형님은 행복하십니까?”

“뭐라고?”

“배경을 보고, 능력을 따지고, 그렇게 친구를 골라서 사귀어 온 형님은 과연 행복하신지. 그걸 여쭙는 겁니다.”

“행복…?”

순간 작게 중얼거리는 크리스를 똑바로 마주 바라본 바이커가 또박또박 힘주어 말을 잇는다.

“저는 행복합니다.”

“……!”

“세타가 제 친구라서. 그런 훌륭한 친구가 제 곁에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너…….”

“최소한 그 아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주니까요.”

***

귀족들마저 자리를 떠난 왕정.

이제는 단 두 사람만이 남은 그곳에서 두런두런 대화가 오고 간다.

“너무 심하신 것 아니에요?”

“무엇이 말이냐?”

반문하는 왕좌의 사내를 보며, 예의 흰 고양이 여인이 가면을 벗어냈다.

그와 동시에, 아직 어린 티가 완연한 10대 중반의 소녀가 얼굴을 드러냈다.

눈앞의 사내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금발의 그녀.

실비아나 유리나와는 또 다른 느낌의 외모를 가진 소녀였다.

서서히 성숙미를 더해가는 그네들과는 달리,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소녀다운 귀여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예전부터 마음에 드시는 이를 너무 굴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아버님은.”

“그게 아니지. 고작 이 정도 시험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내 눈이 잘못된 것이겠지.”

“그래도요.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던데,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요?”

순간, 사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그 녀석이 마음에 드느냐?”

“그, 그런 게 아니라요.”

“우리 공주마마가 이토록 얼굴을 따지는지는 몰랐는데.”

“아니라니까요?”

“허나, 이게 맞는 거다.”

짤막하게 대꾸한 사내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시간이라니…….”

연이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사내였으나, 소녀로서는 그 깊은 뜻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만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정이 안 될 것 같으면… 내가 직접 만나봐야지.’

이래서 딸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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