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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마법 천재-206화 (206/251)

206화. 첫 번째 권속(1)

우웅! 우우웅!

몇 차례의 웅혼한 공명음이 울려 퍼진다.

“……!”

직후, 오만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신체의 접촉.

더하여, 완벽한 굴종의 상태.

이 두 가지로 조건은 충족되었다.

사아아아아아아!

일순, 내 몸 안에서 새까만 마기가 흘러나왔다.

색욕과 식탐이 본능에 따라 오만을 탐하고 있음이다.

당장에라도 먹어 치우려는 듯, 그 어금니마저 드러내면서.

- 아, 안 돼. 이런 빌어먹을…!

악마와 똑같은 외형을 한 오만이 당장에 몸부림쳤다.

허나, 의미 없는 반항일 뿐이다.

내 언령(言靈)은 고작 그 정도로 풀릴 만한 힘이 아니었으니까.

- 죽인다, 세타 쿤 이그니스! 반드시 죽이고 말 것이다! 이대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내 뒤에는 제국이, 대 마계의 동지들이 있다. 너는 소멸하는 그날까지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며, 네 주변 이들 또한 영원토록 지옥 속에서…….

“알았으니까 입 닥치고 사라져.”

콰콰콰콰콰콰콰콰!

순간, 내 마기가 빠르게 오만을 집어삼켰다.

- 으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끊임없이 울린다.

놈의 마나와 마기가 사방으로 비산한다.

색욕과 식탐은 아낌없이 오만을 먹어치우기 바빴다.

그 결과,

와장창!

“…흡!”

놈의 악마화가 산산이 부수어졌다.

그 뒤로 숨겨져 있던 이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본래 이 육신의 원주인인, 사내의 얼굴이.

“하아…….”

그제야 나는 가볍게 날숨을 내뱉었다.

전신으로 물밀듯 들이닥치는 힘이 명명백백히 느껴졌으니까.

이제 오만은 내 눈앞에 없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욕지거리가 그 증거였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잭 디스페로우.”

나는 사내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한참이나 파르르 떨어대던 그가, 이내 제 고개를 들어 올린다.

“…여기는…?”

“뭘 모르는 척이십니까.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만과 모든 감각을 공유하셨을 테니까요.”

“…….”

잭 디스페로우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써클을 잃은 몸.

더욱이 육신을 지탱해 주던 새로운 힘마저 완전히 잃은 그.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곧 죽겠군.”

“예. 죽을 겁니다.”

“역시 그런가.”

“그나마 실낱같던 희망을, 당신 스스로 걷어찬 셈이죠.”

“…….”

내 확인 사살에, 잭 디스페로우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나를 원망하나?”

“원망합니다.”

“…그 부분은 미안하게 됐어. 딱히 너를 믿지 못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시지요.”

“…눈앞에서 부하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이제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으니까.”

“……!”

찰나 내 몸이 움찔 떨렸다.

그제야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차원의 틈새에 갇힌 마법사들.

예의 스실라 씨 곁에서 죽어가던 그들의 모습을, 잭 디스페로우 또한 분명히 봤을 터였다.

내게는 딱히 정이랄 것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잭 디스페로우는 아닐 것이다.

최소 수 년.

어쩌면 수십 년도 더 함께해 온 동료들일 테니까.

그런 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상황에서, 내가 잭 디스페로우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힘을 잃은 병신이 되었으니 그저 가만히 주저앉아 있기만 했을까?

“…죄송합니다.”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직후, 나는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갑자기 웬 사과지?”

“전후 상황도 모르고 파괴의 마탑주 님을 몰아세웠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너무 늦었습니다.”

“아니.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죠.”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러니까, 사과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

위대했던 한 존재의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훗.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군. 하면, 내 부탁이나 하나 들어주겠나?”

“……?”

“남은 내 부하들을 잘 부탁한다. 너라면 방법이 있겠지?”

내 눈썹이 꿈틀했다.

잠시 후,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린 내 시선이 정면을 향하자,

“세타 쿤 이그니스. 내가 너를, 믿어도 되겠느냐?”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표정으로 부탁한다면… 나는 거절할 수 없다.

“…네. 믿으셔도 됩니다.”

“내가 살아온 집을, 내 가족들을 믿고 맡겨도 되겠나?”

“목숨을 걸고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

찰나, 내 눈이 크게 뜨여졌다.

“나는 이제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

“애당초 내가 부덕하여 벌어진 일이건대, 어찌 너를 탓할 수 있을까?”

“…파괴의 마탑주 님.”

꽉 쥔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분명 약속했다.

그를 반드시 고쳐 주기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나였다.

한데도, 그는 내 탓이 아니라고 한다.

“…쿨럭!”

순간, 잭 디스페로우가 울컥이며 무언가를 역류시켰다.

일견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새까맣게 죽은 피였다.

“…이제 한계인 모양이다.”

“…….”

“뒤는 잘 부탁한다.”

잭 디스페로우의 동공에서 빛이 꺼져 간다.

꼿꼿이 서 있던 두 다리도 하염없이 휘청였다.

그 상태로, 그는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역시, 나는 이렇게 그를 보낼 수 없었다.

“…아직 아니에요.”

“……?”

“약속했잖아요. 제가 반드시 고쳐 주기로.”

이어지는 내 말에, 잭 디스페로우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내 몸 상태는 내가 더 잘 안다. 마기가 신체의 모든 장기를 헤집어놨으니… 이제는 무리다.”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문득 떠오른 발상을 행동으로 옮길 때였으니까.

외상은 스실라 씨가 잘 치료해 줄 것이다.

부서진 써클은, 이리나에게 얻은 드래곤 하트 조각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머지 내부의 장기들은…

“모조리 갈아치우죠. 아예 새롭게 태어나는 겁니다.”

“응?”

“그 전에, 이건 전적으로 파괴의 마탑주 님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대관절 그게 무슨 뜻이지?”

“이미 한 번 경험해 보셨지 않나요? ‘계약’입니다.”

“…설마…?”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잭 디스페로우의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계약.

여기서 말하는 ‘계약’이 무엇인지는, 이미 우리 둘 모두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가진 힘이 마왕의 것이라면…

“제 첫 번째 권속이 되시지요.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부활하시는 겁니다.”

“……!”

“그리고, 그 손으로 직접 가족들을 지키시지요.”

이론적으로는, 이런 일 또한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

한편, 테라의 레이브 성.

“일이 이렇게 잘 풀려도 되는 거야?”

실비아는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지금 막, 스란 공국 군이 완전히 물러났다는 전보를 받은 직후였다.

다만 그 내용은 가히 직접 듣고도 믿지 못할 종류의 것이었다.

“8월의 검사가 제국의 마스터이자 십이월, 르반 공작을 일대일로 꺾었다. 그리고…….”

찰나 말끝을 흐리던 실비아의 잇새로, 이내 불신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제노스 델 카이클이 빙결과 뇌전의 두 마탑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실비아는 좋으면서도 내심 기분이 오묘했다.

고작 그녀와 같은 나이인 아카데미 동기.

더불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으로 맞서던 녀석.

허나 이제는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

“…설마 전쟁이 끝나면 다시 왕좌를 탐내는 건 아니겠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뒤늦게 알게 된 카이클 공작가의 내막은, 실비아조차 치가 떨리는 얘기였으니까.

현 국왕의 피가 흐르는 테레이라 혈족은 모조리 쓰레기였다.

그런 이를 잠시나마 목숨 걸고 지켰다는 사실에 다시금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결국 나는 그쪽 편에서 싸울 수밖에 없겠지. 이미 무수한 동료들이 카이클 공작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까.”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저쪽으로 옮겨 붙으면, 죽어서 그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하니, 최선은 이 이상의 내전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그보다, 그 변태 아저씨도 생각보다 대단하네. 르반 공작은 십이월 중에서도 상위권이라 들었는데.”

“그걸 이제 알았냐?”

“히약!”

순간, 실비아가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잠시 후, 끼기긱 하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면으로 고개를 돌리자,

“변태 아저씨…?”

상념의 주인공이 그곳에 있었다.

“그런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니까? 이 버르장머리 없는 계집애야.”

“흐흠, 고생하셨어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셨네요?”

“고생은 나보다 그 녀석이 더했지.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괴물 같은 놈이라니까? 두 마탑주를 ‘동시에’ 상대해 무릎 꿇리다니.”

“……!”

실비아의 두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도, 동시?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왜 반란군이 빠른 시간 안에 테라 전역을 삼킬 수 있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런…….”

“아님 뭐, 그 두 마탑주가 생각보다 약하다던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뇌전이야 하위권으로 분류된다 쳐도, 빙결은 이미 20년도 더 전에 마탑주에 오른 상위 탑 파이브니까.

그런 둘을 홀로 감당했다는 말은…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이내 실비아의 동공이, 지금 막 방 안으로 들어서는 인영에게 고정됐다.

“제노스 델 카이클.”

“……?”

실비아는 의문을 홀로 삭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여, 곧장 마음속의 물음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너랑 세타 중에… 누가 더 강해?”

“…….”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이었는지, 그 제노스조차 찰나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뭐?”

“아, 아니이. 그게… 일단은 고생했고, 트, 특별히 다른 뜻은 없어. 순수하게 궁금해서 말이야. 두 마탑주를 동시에 상대한다니, 세타 그 녀석이 아니면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얘기잖아?”

얼굴까지 빨개진 실비아가 황급히 해명을 내놓았다.

“…….”

그럼에도 제노스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자,

“흠흠. 미안. 알다시피 내가 호기심이 조금 왕성해서…….”

“…지금은 호각.”

“응?”

“허나, 내가 곧 확실한 우위로 올라설 거다.”

“……!”

“이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

그 자신만만한 대답에, 실비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그래?”

물론, 참모로서는 이만한 괴물 둘이 아군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든든해졌지만.

***

타임 스탑(Time stop).

특정 대상의 시간을 완전히 정지시키는, 7써클 최상위의 마법.

이걸로 ‘이틀’이라는 시간을 벌었다.

잠시 그 상태로 잭 디스페로우를 지면에 누인 나는, 곧장 내부를 관조했다.

- 이것 당장 꺼내라! 꺼내지 못하겠느냐아아아아아!?

내 안에서, 오만은 지치지도 않고 여전히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이름답게 무척이나 프라이드가 강한 놈이었기에.

누군가에게 종속된다는 건,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았겠지.

허나, 이미 내 안으로 흡수된 이상 오만은 이제 내 것이었다.

- 내,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를 놓아준다면, 내 반드시 네가 만족할 만한 보상을…….

“닥치고 기억이나 내놔.”

- 이 미친…!

단말마 욕지거리와 동시에, 오만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든다.

물론 내 의지였다.

그리고 곧, 기억의 파도가 머릿속으로 빠르게 들이닥쳤다.

어쩌면 잠깐의 호기심일 수도.

혹은, 누구 말마따나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일 수도 있는.

“…부모.”

내 태생의 비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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