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태한 마법 천재-203화 (203/251)

203화. 오만(3)

첨벙! 부그르르르르!

호수에 몸을 던짐과 동시였다.

새하얀 기포가 연이어 떠오른다.

그 위에서, 어느새 접근한 루나가 걱정스레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참, 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더니.

‘주군이 되어서 따르는 기사를 이 이상 염려시킬 수는 없지.’

수중 속에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나는, 이내 더 깊게 잠수를 이어갔다.

수영?

아쉽게도 할 줄 모른다.

마법과 달리, 지식은 무용하고 배운 적도 없었으니까.

다만, 그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알고 있었다.

“바디 디포메이션(Body deformation).”

우우웅!

시전어를 웅얼거리자 곧 가벼운 공명음이 뒤를 이었다.

아카데미 시절에만 하더라도 내 주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마법.

신체 변형이다.

촤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몸 곳곳에 지느러미가 돋아난 내가, 빠르게 물살을 갈랐다.

대번에 물속 친구들이 놀라 요리조리 피해댔는데, 그게 내게는 또 신선한 경험이었다.

한데,

“……?”

한참이나 호수 아래를 구경하던 나는 이내 한곳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수 중심지에 웬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저건… 수목(水木)?”

내 눈이 점차 크게 뜨여졌다.

곧 아이리스의 지식이 물밀듯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지금껏 내가 본 그 어떤 나무보다도 커다란 저것의 이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고목이며.

대륙의 탄생과 함께한 생명수.

모든 만물의 근원.

“이그드라실(Yggdrasil)…?”

태고의 나무, 이그드라실.

더 큰 문제는, 내 신경을 건드리는 차원의 틈새도 저곳 인근에서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혹, 스노비는 저것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건가?”

문득 옛 전설이 떠올랐다.

이그드라실은 대륙의 뿌리다.

하여, 중간계 내에서는 이것이 사라지면 세상이 멸한다는 설화까지 퍼지곤 했다.

물론 그 정확한 위치까지는 나도 알지 못했는데, 그게 이런 호수 속이었을 줄이야.

“이건 좀… 곤란한데?”

이그드라실은 일종의 결계목이다.

중간계의 수호목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다른 차원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놓는 역할을 한다.

세상은 하나로 이어지려는 특성이 있었고.

그 세상에는 ‘정령계’나 ‘마계’ 따위를 모두 포함하니까.

그런 이그드라실이 사라진다면, 이후의 일은 불을 보듯 뻔했다.

“설마, 노린 건가?”

아니, 설마가 아니었다.

충분히 신빙성 있는 얘기였으니까.

스노비가 구태여 본체로 현신하는 리스크까지 감수해 가며 이곳으로 올 이유가 없지 않나?

더욱이 드래곤 열 마리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 거대한 이그드라실을 뿌리까지 뽑으려면, 보통 힘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인즉.

허나, 만약 그게 성공한다면…

“…마계와 중간계의 일체화.”

이내 내 얼굴이 한껏 굳어졌다.

상념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이그드라실의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한데, 착각일까?

부르르르르르.

“……?”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 즉시 이그드라실은 몇몇 가지를 떨어댔다.

그것도 모자라,

“……!”

곧 웬 줄기가 튀어나오더니, 슬금슬금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예의 줄기 끝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구체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옅은 빛 덕분에 볼 수 있었던 광경은…

“……!”

다름 아닌 이그드라실의 표피 위에 생성된, 차원의 틈새였다.

“이런 미친…!”

마계와 중간계의 일체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하여, 나는 지체 없이 그 구체를 붙잡았다.

부르르르르!

마치 스스로 자아라도 가진 양, 이그드라실이 다시금 가지를 떨어댄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조금만 기다려. 금방 치료해 줄 테니까.”

부르르!

이번에도 반응이 있었다.

직후, 나는 곧장 전방을 향해 쏘아져 갔다.

웨에에엥!

마치 색욕의 이능에서 날 법한 소음과 동시에.

차원의 틈새는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다.

***

한편.

쐐애애애애애액!

여기, 세상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또 하나의 사내가 존재했다.

십이월 중 8월의 검사.

달리, 초속의 에이스라고도 불리는 이.

“흡.”

그런 그가 순간적으로 호흡을 멈췄다.

집중을 거듭해, 단숨에 적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서.

상대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과연 제국 출신다운 오만함이나.

오늘만큼은 그 오만함이 패인(敗因)이자 사인(死因)이 될 것인즉.

뭉클!

“……!”

허나, 아쉽게도 기대했던 광경은 일어나지 않았다.

검이 심장을 꿰뚫기 직전.

르반 공작의 전신으로 웬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으니까.

그 이명다운, 짙디짙은 ‘안개’였다.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

“…….”

어느새 에이스의 등 뒤에서 나타난 르반 공작이 중얼거렸다.

원래 자리에 있던 인영은 안개처럼 제자리에서 흩어졌다.

기실, 그는 에이스보다 살아온 세월조차 길었으며.

십이월 전체에서도 네 번째로 손꼽히는 강자였다.

객관적인 평으로는,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에이스가 명백한 열세라는 의미다.

다만,

“…순위는 깨라고 있는 거지.”

재차 검을 곧추세운 에이스가 미소 지었다.

어느새 안개로 화한 르반 공작이 눈앞으로 쇄도해 오고 있었다.

최초의 검은 두 개로 불어났고.

다시 십 단위로 더 늘어나 눈을, 시야를 현혹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생성되었던 검이 다시 자취를 감추기까지 한다.

르반 공작의 특기인 안개의 검술.

그 기본은, ‘변(變)’과 ‘환(幻)’에 치중되어 있었으니.

‘실체만 찾아내면 이까짓 칼질쯤…….’

에이스의 동공이 빠르게 검을 쫓았다.

어차피 검은 하나다.

시각을 아무리 현혹한다 한들, 내가 속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그랬는데…

서걱!

“……?”

최초의 파육음이 시작이었다.

서걱! 서거거거거걱!

“……!”

순식간에 에이스의 전신으로 핏물이 튀어 올랐다.

저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을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아니, 베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베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

정곡을 찔렸기에, 에이스가 눈을 크게 떴다.

분명 검은 눈앞에서 의미 없이 허공이나 그려대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어느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가 싶더니,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당했다는 사실이다.

“자네와 같은 ‘쾌(快)’를 추구하는 검사들의 공통점이 그래. 아무리 무거운 검이라 한들, 만 가지의 변화를 품은 검인들, 그저 상대가 베기 전에 내가 베어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을 하지. 아닌가?”

“…….”

“그럴수록 생각은 단순화되지. 아니, 생각 자체를 하려 들지 않아. 그저 어떻게 하면 더 빨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보다 더 신속하게 벨 수 있을까. 온통 그런 고민만 해댈 뿐.”

“…….”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라네.”

이미 승자라도 되는 것마냥.

르반 공작이 검을 어깨에 걸친 채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자네와 같은 쾌검수는, 최초의 일격만 막아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지.”

“…누가 보면 벌써 이긴 줄 알겠네.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무리하지 말게. 힘줄만 골라서 베었으니, 자칫 평생 검을 못 쥘 수도 있다네.”

파르르르.

그 말대로였다.

이가 안 되면 잇몸으로라도 버티려고 했건만.

의지와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새 피칠갑을 한 에이스의 전신은, 지금도 하염없이 떨려대고 있었으니까.

“8월의 검사가 속도를 잃었다… 이미 답안지는 나온 것 같은데?”

마음껏 조롱하라지.

에이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칠게 마나 홀을 불살랐다.

이대로라면, 그 녀석에게 면목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스승인데, 꼴이 이게 뭐냐고. 제자 놈은 벌써 대륙 제일을 꺾었다는데, 두 번째도 아니고 고작 네 번째를 상대로.”

휘오오오오오오!

순간, 일대에 한줄기 바람이 불어닥쳤다.

잠시 고개를 갸웃한 르반 공작의 동공이 이윽고 깊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같이 죽을 셈인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미안하지만, 나는 노총각으로 죽고 싶은 생각이 쥐똥만큼도 없어서.”

“…만용이로군.”

“자신감이겠지.”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흉포해졌다.

최초 옷이나 머리칼 정도만 나부끼던 그것은, 이제 지면의 흙먼지마저 일으켰으니까.

“잔재주를…….”

스팟!

그 즉시, 르반 공작이 움직였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기 위해서.

“…….”

에이스는 다가서는 그를 가만히 마주 바라봤다.

일초를 수십 등분으로 쪼갠 찰나의 찰나.

종래에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기까지 했다.

“무슨…?”

대번에 르반 공작의 의문성이 들려온다.

검을 눈으로 쫓으려 하지 마라.

이건 에이스가 항상 두 제자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한데, 정작 자신은 그걸 실천하지 않고 있었으니…

‘…오랜 평화로 나도 녹이 슨 거겠지.’

기감을 확장했다.

그러, 주변의 기운이 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역시 검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 위명답게, 곳곳에 무지막지한 마나로 만들어낸 오러 소드를 섞어 놨다.

저런 식의 공격 방식은 아무리 십이월이라도 마나의 소모가 극심할 텐데도.

“건방지다!”

번쩍!

순간, 에이스의 눈이 반개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측 옆구리를 파고드는, 선명한 오러가.

팽그르르르르.

“……!”

직후, 에이스가 팽이처럼 몸을 휘돌렸다.

검은 허무하게 공간을 스쳤고.

에이스는 회전력을 이용해 그대로 상대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소용없다고 했을 텐데!”

다시금 르반 공작의 전신으로 ‘뭉클!’ 새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허나, 이제는 안다.

저것은 시야를 가리는 안개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힘을 지닌 ‘마나’라는 사실을.

르반 공작은 저 안개를 일종의 ‘장막’처럼 이용했다.

때로는 상대의 시선을 속이고.

밀도 높은 그것을 이용해 방패로도 사용하고.

순식간에 인간의 형상을 이루어내, 그 자신과 위치를 바꿔놓기까지 했다.

다만 그 모든 일은,

‘상대보다 움직임이 빨라야 해낼 수 있는 일.’

시간이 느려진다.

이 세상, 오직 에이스의 시간만이 천천히 흘러간다.

확장된 감각 속, 적의 움직임은 여전히 선명하게 전해졌다.

불과 3미터 범위까지 접근했음에도, 상대는 이제야 안개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너는 절대로 나를 벨 수 없다!”

“미안한데, 이미 베었어.”

“……?”

르반 공작의 얼굴 위로 의문이 떠올랐다.

그 순간, 웬 ‘푸욱!’ 하는 한줄기 소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를 초월한 속도.

문자 그대로, 극쾌의 검.

“이… 무슨…!”

한 박자 늦게, 르반 공작의 신형이 무너진다.

그 얼굴은 완연한 불신으로 가득했다.

심장이 꿰뚫린 그는, 채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으니.

“…….”

삽시간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양측의 군사들조차 여태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뭣들 하는 거야!? 다 같이 덤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뇌전의 마탑주가 고함쳤다.

쩌저저저적!

빙결의 마탑주는 아예 행동으로 실천했다.

외견상 얼음 마녀를 방불케 하는 그녀는, 순식간에 빙산(氷山)을 만들어내며 전방으로 질주했다.

지금이 에이스를 죽일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콰아아아아아앙!

“……!”

허나, 결론적으로 그 목적은 이룰 수 없었다.

그녀의 앞을 막아선 한 존재로 인해서.

“너희 둘의 상대는 나다.”

순식간에 텔레포트로 이동한 제노스였다.

“이 미친… 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

제노스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번만큼은 숨김없이 마나를 외부로 방출할 뿐.

우우우우우웅!

웅혼한 공명음이 곧장 뒤를 잇는다.

대번에 에르사 아인하르트의 얼굴 위로 쩌저적, 금이 갔다.

“이 마나… 서, 설마 7써클?”

그 즉시, 지금 막 접근한 뇌전의 마탑주도 눈을 부릅떴다.

제 존재감을 만천하에 드러낸 제노스가 그제야 차갑게 미소 짓는다.

“누구인들 관계없다. 지금의 나는,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백 퍼센트 승리를 자신하니까.”

물론, 그 한 명도 승산은 6:4 정도로 자신이 우세하다 생각했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