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통합 마탑(2)
없었다.
문자 그대로, 마탑 내부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들 다 어디 갔어?”
페르가 가장 먼저 당혹성을 토해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수천의 사람들이 들어 있던 탑이다.
각국의 고위급 인사들에 탑의 마법사들까지.
한데, 지금은 문자 그대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피 냄새가 더 짙어졌는데?”
세논 스승님이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페르의 얼굴도 한껏 구겨졌다.
“…이 비린내면 최소 수백 명분도 충분히 되겠군.”
“괜찮냐? 네 부하들도 있다며.”
“꽤나 익숙한 경험이라서. 그저 무사할 거라고 믿는 수밖에.”
말과는 달리 페르의 표정은 이 이상 심각할 수가 없었다.
직후, 그는 곧장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뭐야, 어디 가냐?”
“애들 찾으러. 너희는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
“흥. 그럴 거였음, 처음부터 예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저벅.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루나가 한 걸음 크게 발을 내딛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응?”
“순전히 제 감이지만… 아래층이나 위층에서도 생기(生氣)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움찔.
거짓말처럼 페르가 움직임을 멈췄다.
가볍게 흘려들을 얘기는 분명 아니었으니까.
일신의 전투 능력은 페르가 더 뛰어날지 몰라도.
순수 신체적인 능력만 따졌을 때는, 이곳에서 루나가 가장 뛰어났다.
수십 년간 몸을 극한까지 단련해 온 검사.
그것도 ‘벽’을 뛰어넘은 마스터였으니까.
…물론, 이 사실은 아직 나만이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엄청 놀랐었지. 루나가 마스터의 경지에 완전히 올라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나와는 세 살 터울.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야 고작 스물셋의 나이였다.
더욱이 타고난 성별의 한계까지 깨부수며 그녀가 이룩한 경지를, 나는 경외하고 존경했다.
하니, 제아무리 스승님이나 페르라도 루나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능력을 갖춘 초인이기 이전에, 나의 기사였으니까.
“저, 페르…….”
하여, 곧바로 내가 입을 떼려는 순간.
“…어리지만, 마스터의 말이라면 귀를 기울여 줄만 하지.”
“동감이야. 고작 엑스퍼트 수준이었다면, 이 나이 먹고 내가 제자 놈 연애질이나 보고 있어야 하냐고 호통이라도 쳤을 텐데 말이지.”
“네 제자는 능력도 좋아? 저런 능력 있는 미녀를 다 꼬시고.”
“인복(人福)은 있는 모양이지. 사실 나도 의외기는 해. 연애에는 완전히 젬병인 줄 알았거든. 아카데미 시절에 워낙 찐따였어야 말이지.”
“너네 부연합주처럼?”
“걔는 말도 마라. 제 올챙이 적 시절은 생각도 하지 않고 설친다니까?”
이어지는 페르와 스승님의 대화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루나조차 일견 백치미마저 느껴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어떻게…?”
“뭘 어떻게야. 우리가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냐? 추구하는 방향은 달라도, 타고 올라가면 그 궤는 같아.”
“단지 그릇만 다를 뿐, 똑같은 ‘마나’라는 뜻이지. 우릴 너무 물로 보는 것 아니냐? 흑발 곱등이.”
차례로 페르와 스승님이 대꾸했다.
“너는 좀 따뜻하게 대해주지? 어쩌면 제자의 예비 신붓감이 될지도 모르는 아인데.”
“전혀? 그 제자 놈이 좀 뺀질거려야 말이지.”
“헹.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이대로라면 끝이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곧장 두 사람의 대화를 끊어냈다.
“잠깐, 잠깐만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 탑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죠?”
“우리야 모르지. 거기 네 여자 친구한테 물어봐라. 걔 입에서 나온 말이잖냐.”
페르가 장난스레 루나를 눈짓했다.
물론, 나는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장난의 정도가 심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루나. 확실해?”
“확실하다.”
“…그렇다면…….”
직후, 나는 눈을 감고 기감을 확장했다.
우웅! 우우우웅!
전신의 마나는 곧 빠르게 탑을 넘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감지할 대상은 인간의 생기(生氣).
아니, 마기를 포함한 인근의 모든 기운.
어지간한 초인들조차 해낼 수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다.
종족의 범위를 초월한 능력.
나는 ‘드래곤’의 지식을 가진 인간이니까.
“…찾았다.”
이윽고 번쩍 눈을 뜬 내가 빠르게 땅을 박찼다.
***
쐐애애애애애액!
마치 화살이라도 쏘아지는 듯, 세찬 파공음이 연이어 귀청을 때렸다.
그와 함께 주변의 풍경도 빠르게 허물어졌다.
온갖 신체 강화 마법을 걸어 전신의 능력을 극대화한 내가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속도로 따지면… 대략 75마일?
치타의 최고 스피드가 아마 그쯤 되었으니, 지금의 나는 대륙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 아닐까 싶다.
‘…가만. 다른 사람들은 괜찮겠지?’
당연하게도 스승님과 페르는 감히 나를 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속도는, 기사조차 따라붙기 힘들 것이기에.
그나마 주력의 한계를 초월한 페르라면 조금 가능성이 있을까?
다만, 마나의 소모가 상당히 극심할 터였다.
적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 그만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으실 테지.
애당초 성격상 탑에 남을 확률도 더 높았고.
내가 본 페르는,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말은 그리했지만 제 휘하 마법사들이 탑에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분명 그곳에서 조금 더 머무를 것이다.
‘…혼자서도 가능할까?’
자연스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거리상으로 대략 30킬로미터는 훨씬 떨어진 듯했다.
다시 말해, 최악의 경우 나머지 마탑주들을 나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타.”
“……!”
그 순간, 내 고개가 따귀라도 맞은 것처럼 홱 돌아갔다.
잊고 있었다.
단 한 명.
나를 충분히 따라붙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루나…?”
“적을 발견한 건가?”
“…….”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발은 연신 땅을 박차면서.
“응. 어차피 돌아가라고 해도 듣지 않을 거지?”
“잘 알고 있군.”
“쩝.”
내심 좋으면서도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나는, 화롯불에 몸을 던지는 부나방과 다를 바 없었기에.
“그보다, 내게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데. 이것도 네 능력인가?”
“물론. 나야 마스터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니까.”
“…….”
나름 장난스레 대답한 거였는데, 루나는 무척이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 심각하게 반응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줄곧 느껴왔으니까. 너는 상당히 비밀이 많은 주군이라고.”
“…….”
그제야 내 입이 다물어졌다.
언젠가 루나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으니까.
예의 나에 대해 알려달라느니… 했던 그 말.
“…기다리겠다.”
직후,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요즘 따라 루나와 함께 있으면 부쩍 이런 분위기가 자주 연출됐다.
“…….”
다만, 그 와중에도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루나의 얼굴 위로 떠오른 희미한 초조함을.
…이러면 대답해 줄 수밖에 없잖아.
“때가 되면 전부 얘기해 줄게. 루나는 이제 내 기사니까.”
“……!”
이런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찰나 루나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시간이 느려진다.
빠르게 허물어지던 주변의 풍경도 이 순간만큼은 일시 정지했다.
잠시 후,
“…기다리고 있겠다.”
루나가 말갛게 미소 지었다.
이게 뭐라고 그리도 기쁜 건지,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순수하고 해맑은 웃음을 내보인다.
“…스승님 말씀대로, 나도 인복은 있는 모양이네.”
이에, 자연스레 내 입가로도 완연한 호선이 그려졌다.
***
대략 1시간이 조금 안 됐을 때.
“와…….”
우리는 곧, 한 폭의 대자연을 목도할 수 있었다.
마탑이 자리한 대평야는 지리적인 특이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마탑이 자리한 중심지였다.
열두 개의 우뚝 솟은 탑은 둥그런 형태로 건축되어 있었다.
거기서 더 깊숙이 들어가면, 하나의 거대한 호수가 자리해 있다.
즉, 하늘에서 보면 호수 하나를 열두 마탑이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형태였다.
“…여기야.”
문제는, 내가 감지해 낸 기운이 이곳에서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비릿한 혈향을 물 내음으로 감추려는 것일까?
그도 아님, 이곳에 특별한 ‘비밀’이라도 숨어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눈앞의 호수는 분위기부터 범상치 않았다.
“…이그란트의 눈물.”
“응? 무슨 눈물?”
“세상의 중심. 달리 대륙의 화수분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야. 심지어 최초의 인류 또한 이곳에서 시작해 전체로 뻗어나갔다는 가설까지 있지.”
“…그래?”
물론 나는 이곳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아이리스의 지식이 알려줬다.
루나가 퍽이나 대단하다는 듯 설명했지만…
…사실 이곳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중요한 장소였다.
‘설마 아니겠지?’
순식간에 뇌 내를 잠식하는 불길한 상상을 애써 떨치며,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군.”
루나의 말대로 사람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허나, 감각은 여전히 말해주고 있었다.
찾고 있던 장소는 이곳이 분명하다고.
우웅! 우우웅!
그 순간, 품 안에서 통신용 수정구가 떨어 울렸다.
곧 그 위로 익숙한 얼굴이 떠오른다.
“…스승님?”
- 이 짜샤! 이제야 연락받네. 말도 없이 혼자 어딜 싸돌아다니냐!? 진짜 한 대 맞아볼래?
“어라? 통신 상태가 왜 이러지. 여기도 마나가 불안정한 곳인가?”
능청 반 진담 반이었다.
스승님의 호통에 애써 시선을 회피했지만, 진짜로 수정구는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스승님의 얼굴이 연신 치직, 치직 요동치기까지 했다.
“그보다 스승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 뭔… 헛… 너, 당장 안 돌아올…!
“좀 급하거든요. 혹, 이제는 제게도 ‘아락서스’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
시간이 없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나갔다.
표정을 보아 의사 전달은 확실하게 된 듯싶었다.
나와는 달리, 저쪽은 통신 상태가 양호한 모양인데.
아무튼, 나는 줄곧 의문을 품어 왔다.
기실 이건 세상의 음모론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아락서스는 달리 빛의 일족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당연하게도 마기를 다루는 이들과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들이다.
여기서 문제는, 아락서스를 궤멸시킨 것은 마탑이고.
그 마탑 뒤에는 ‘제국’이 있다는 점.
당장 2황자는, 마기를 다루는 칠악 중 하나이기까지 했다.
이즈음 되면, 일반인이라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까?
표면적으로 아직 20대에 불과한 2황자다.
아락서스가 몰살당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그가 어린아이였을 때고.
다시 말해, 진정한 흑막은 칠악인 2황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면, 그 흑막은 무슨 이득을 위해 아락서스들을 죽였는가?
확실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모를까.
선인(善人)인 이들을 죽여 봐야 세상의 평판만 나빠질 텐데?
‘…확실한 이득이 있겠지. 처음부터 의문이었어. 한낱 부족 국가에 불과했던 스왈로우가, 고작 한 사람의 힘으로 대륙 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한 일도 그렇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음모론은 사실이 되어갔다.
가령, 황제는 ‘마족’과 관련이 있다.
아니, 대대로 스왈로우의 황족들은 모두 마기를 사용한다.
그런 종류의 가설이라면…
- 너… 무슨 생각… 있는…!
치직! 치지지지직!
스승님의 목소리는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레 통신용 수정구가 급격하게 진동을 일으켰기에.
빠직! 빠지지직!
더 나아가, 아예 수정구 전체로 실금이 가기까지 했다.
“이건…?”
대번에 루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부지불식간, 희미하던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있었기에.
“…호수 밑?”
그녀의 중얼거림과 동시였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어마어마한 물줄기를 흩뿌리며 한 거대 생명체가 하늘 높이 튀어 올랐다.
그건, 드래곤을 제외하고 지금껏 내가 본 그 어떤 존재보다 거대한 존재였다.
다만, 이번에도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리, 리바이어던(Leviathan)?”
뱀을 닮은 기다란 몸통.
절로 몸서리 쳐지게 만드는 수천 개의 송곳니.
온몸을 덮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비늘까지.
전설에 나오는 괴수와 꼭 닮은 그것을 보며, 루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허나,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신화 속 괴물인 리바이어던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저건 ‘오만’이야.”
“……!”
마침내 내가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2황자, 스노비 벨 그레이스.”
순간, 예의 괴물의 입가가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 오랜만이군. 세타 쿤 이그니스.